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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다운 신드롬
게시물ID : panic_1012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구글구글구
추천 : 20
조회수 : 3479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20/03/21 21: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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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 환자분, 일어나보세요.”

 낯선 이의 목소리에 남자는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가 어디죠?”

남자는 굉장히 긴 꿈을 꾼 듯 자신이 있었던 장소도 잊은 것 같았다.


“안심하세요. 여긴 정신과 진료실입니다. 선생님께선 들어오시자마자 기면증 증세가 나타나서

잠에 빠지셨어요. 한 30분 정도 지났습니다.”

의사는 차분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단정한 검정 머리에, 둥근 안경을 쓴, 꽤나 젊어보이는 의사였다. 남자는 아직 불안한지 경계심을 유지한 채로 자신의 증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건 꿈이 아닌가요. 바쁘실텐데 죄송합니다. 

제가 기면증이 생겨서는 요새 잠에 빠지는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또 거기다, 한번 꿈을 꾸게 되면 연속해서 꾸게 되서 현실하고 구분이 안돼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번엔 진료실 안을 살폈다. 

진료실 벽은 티클 하나 없는 하얀색 벽지로 깨끗하게 도배되어 있었고, 따뜻한 밝기의 LED조명이 책상을 환히 비춰주고 있었다. 

책상 뒤로 보이는 전문서적이 잔뜩 꽂혀있는 책장은 지금 이 분위기에 신뢰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몽중몽’이란 말처럼 꿈에서 깨어나면 또 꿈이고, 갈수록 꿈의 갯수가 늘어난다는건가요?” 

 

“네, 정확해요. 그거에요.”


남자는 기면증에 희귀한 증상이 겹쳐있었다.  

꿈 속의 꿈 다시 그리고 꿈.

몽 중 몽.

원인 모를 기면증 때문에 잠에 수시로 빠지기도 했고, 또 꿈을 계속해서 꾸는 통에 어떤게 현실이고, 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남자는 침대에서 일어날 때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기이한 습관마저 생겨버렸다.


남자의 설명에 의사는 방금 전과는 다르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락다운 신드롬이 의심되는 군요.”

“락다운 신드롬이요..?”

처음 듣는 병명에 남자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외부의 바이러스들을 상대해야할 우리의 면역 체계가 고장나 바이러스가 아닌 우리몸을 공격하게 되는 병들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죠.”

남자는 혼란스런 표정으로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환자분의 뇌도 마찬가지로 본인의 의식을 외부의 적으로 인식하고, 

꿈으로 본인의 의식을 자물쇠처럼 걸어잠그려는 겁니다.  

 결국엔 꿈을 꾸는 횟수는 앞으로 더 많아지시겠죠.”


“네?,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질환이죠. 점점 심각해지면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해 사고를 당하실 가능성이 커질거에요.”

  

“그럼 어쩌죠? 잠을 안 잘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남자는 답답한지, 직전보다 다급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희귀한 질환이지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있으니 걱정말아요.

조금 훈련이 필요할 뿐이에요. 이제부터 꿈에서 깨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의사는 손가락 끝으로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꿈 속에서는 스스로 꿈인 걸 자각하게 되면 깨어나게 되죠?

그런 식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훈련을 하면 깨어나기 쉬워질 겁니다.

자, 첫 번째로는 꿈에서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사물을 찾는 겁니다. 

특히 먼 곳보다는 가까운 곳을 유념해서 관찰해보세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의 뇌라도 꿈에서 현실을 완벽히 모사할 수는 없어서

디테일이 떨어지기 마련이거든요."


“예를 들면요?”

아직 의사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했는지 남자가 되물었다.


“음, 제 경우엔 화장실에 들어가 발을 씻으려는데 글쎄, 양발이  모두 오른발이었지 뭡니까?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깼었죠. 꽤 오래된 꿈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네요."

의사의 멋쩍은 웃음을 들은 남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익숙한 갈색 구두를 신은 양발은 멀쩡한 한쌍이었다.



“자, 두번째로는 환자분께서 항상 그 장소에 어떻게 오게 되셨는지 떠올려보세요.

꿈에서는 항상 과정은 생략되기 마련이니까요.”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남자에게 제안을 건넸다.

“한번 지금 해보시겠어요? 여기 병원은 어떻게 오셨죠?”


남자는 더듬더듬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듯 눈을 깜빡였다.

“처음에… 인터넷에서 기면증 병원으로 검색해보니 여기가 나왔어요.

집이 역삼역 근처라서, 그래서....”


남자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집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차를 몰고 온 건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의사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방금 전에 진료실에서 주무시면서 꾼 꿈과 헷갈리시는 건 아닐까요?”


“그런것 같아요. 제가 자가용이 있는데, 주차를 한 것 같거든요. 

집이 가까운데, 여기까지 차를 갖고 올 일은 없긴 하거든요.”

남자는 분명 손에 차 열쇠를 쥐었던 기억이 있었다는 듯

자동차 열쇠를 돌리는 시늉을 해보았다. 


“그럼 무슨 차인지는 기억 나시나요?”


“아, 아반떼에요. 2년 정도 된 차죠.”


“좋아요, 처음엔 그 정도만 해도 훌륭해요.

아직 꿈의 잔상이 남아서 헷갈리신 모양이네요.”

의사는 박수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간단한 일이었지만 칭찬을 받자 남자는

어쩐지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의사는 말을 마치고서 남자에게 펜 하나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뭐죠?”


“별건 아니고 저희 병원 개업 기념 선물입니다.

의사로서 할 말은 아닌 것도 같지만, 힘드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들러주세요.

환자분의 병도 꾸준하게 훈련을 하다보면 증상이 점차 나아질 거에요.

불치병은 아니니까요.”


“ 감사합니다.”

그 때, 남자는 펜을 받고 주머니에 넣으려다 그만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이고, 제가 줍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책상 아래로 머리를 숙인 남자는 

다음 순간 펜을 줍지 않고서 그대로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선생님, 근데 발이 전부 오른발이시네요?”


...

...

...






첫 단편입니다
정말 재미난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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