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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 - 인간실격 (3)
게시물ID : panic_1013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꼬지모
추천 : 1
조회수 : 6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5/07 18: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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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야기들 – 인간실격 (3)

by 꼬지모


 모든 건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경험하다 보면 별 것 아닌 게 된다. 낯선 사람에게 길 물어보기, 혼자 영화 보러 가기, 꼴보기 싫은 인간 앞에서 웃으며 비위 맞춰주기, 세상 피로해보이는 얼굴의 공무원들이 제발 오지말라고 엄포 놓는 것 같은 관공사에 가서 일처리 하기 등. 


 길냥이를 죽이는 것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야구배트로 몇 번 머리를 내리치자 파르르 몸을 떨더니 곧 축 늘어져 버렸다. 난 한동안은 그것이 죽은 척을 하다가 반격을 기회를 노리는 건 아닐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시체 주위를 떠나지 못하곤 했다. 그러나 한번 몸이 늘어진 길냥이들은 털뭉치 인형처럼 바람에 털이 휘날릴 뿐 다신 예의 그 활시위처럼 팽팽 당겨진 허리를 움찔거리거나 야옹 야옹 하고 울지 못했다. 


 이처럼 살묘(殺猫)의 과정은 너무 쉽고 간결해서 생명이란 게 이리도 가볍고 하찮아도 되는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하긴, 매년 여름이면 밥을 먹으면서도 한 손으론 모기를 잡아죽이는 인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시체를 처리하는 일은 고역이긴 했다. 고양이는 모기처럼 손으로 꽉 움켜쥔 다음에 툭툭 손을 털어내어 처리하기엔 너무나 큰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실 애초에 야쿠배트를 휘두른 건 그들을 없애겠단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죽는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역시 인간이란 당연하게 느껴지는 모든 진리들을 직접 겪어보고서야 깨닫는 듯하다.


 내가 무슨 연쇄살인마도 아니고 길냥이를 토막내거나 유기시킬 이유는 없었다. 딱히 그들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난 동네 사람들이 봉투들에게 했듯이 고작 혐오스럽다거나 밉다는 이유로 그들을 죽인 게 아니었다. 사실 그런 이유로 무언가를 죽이는 인간들처럼 한심한 작자들도 없을 것이다. 하다 못해 모기를 죽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단지, 말하자면 난 이미 봉투의 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나의 자의로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갈고리처럼 생긴 인형뽑기 기계에 걸려 이리저리 흔들리다 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원래는 회색이었는데 하얀색이 주위를 점령하자 까맣게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연 생태계에서도 먹이사슬의 관계나 천적의 관계를 형성하는 건 해당 개체의 몫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 셈이다. 그래, 그런 셈이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한참 고민하다가 털뭉치 인형처럼 늘어진 그 녀석들을 인형뽑기 기계의 갈고리가 그러하듯 집어들어 주민들이 거주하는 오피스텔 단지 쪽 잘 보이는 곳에 고이 내려놓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내 행동을 보던 봉투들은 그저 입만 벌린 채 어리둥절한 얼굴들이었다. 난 주민들이 길냥이들을 사랑하고 또 심지어 숭배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나보다는 더 그들의 시체를 잘 처리해줄 수 있겠단 생각에서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정확히 빗나가고 말았다. 생을 다한 길냥이들을 보자마자 그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구역질까지 했다. 딱히 생전이랑 겉모습은 크게 차이가 없었는데. 생과 사라는 경계가 이토록 무시무시한 것일 줄이야. 대신 그들은 경찰을 불러 ‘저것’ 좀 치워달라곤 부탁했다. 길냥이와는 전혀 접점이 없는 삶을 살아왔을 애꿎은 중년의 경찰관이 똥 씹은 표정을 하며 ‘저것’들을 들곤 포대에 담아 어디론가 가져가 버렸다. 


 내가 그렇게 길냥이들을 하나둘씩 ‘저것’으로 만들어 버리자 날 만류한 건 재밌게도 봉투들이었다. 얼룩 고양이의 참치캔이나 뺏어먹던 그 남자 봉투가 내게 어눌한 말투로 부탁했다. 그, 그만 하거라.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왜요? 그는 이미 나에게 겁을 집어먹은 듯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독여줬다. 난 아저씨 편인데요. 그러자 불안하게 눈을 굴리며 그는 대꾸했다. 그, 그러면 말이야, 우, 우리가 위험해진단다.


 남자 봉투는 적어도 나보단 현실적인 판단을 잘 하는 모양이었다. 길거리에 길냥이들 시체가 늘어나자 심약하고 예민하신 주민들이 받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봉투들에게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저것’을 만든 게 앙심을 품은 봉투의 짓으로 판단했다. 일곱 번째 ‘저것’이 발견되었을 때, 예의 그 똥 씹은 표정의 경찰관이 성실하게 일을 처리하고 자리를 떠난 뒤 주민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잔인한 새끼들, 그 놈들은 인간도 아니에요!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신고했지, 근데 cctv에 찍힌 것도 없고 경찰 입장에서도 물증이 없다니까 어떡합니까. 하지만 그래도 흉흉해서 못 살겠어요, 어쩌다 우리 동네에 이런 일이. 우리 본질을 고민해봅시다, 원인은 바로 그 더러운 새끼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 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어머, 맞아요!, 역시 고등학교 선생님이셔서 좀 다르시네. 저 분 학원 선생인데요. 흠, 학원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긴 합니다. 그나저나 그럼 어떡하지?, 저번처럼 두들겨 패서 본 때를 보여줄까. 전 반대입니다, 그러면 그들과 똑같은 야만적인 놈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맞네 맞아 그것도 그러네. 그럼 어떡하잔 말이야. 품격 있는 대응이 필요합니다. 품격이라, 그것 참 적절한 말이구만!


 이런 품격 있는 대화 속에서 난 차마 봉투가 아니라 내가 했노라고 말할 순 없었다. 나의 죄가 있다면 남들 앞에 나서기엔 쑥맥이라는 점 하나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직접적으로 ‘너가 했느냐!’ 묻는다면 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라나마 ‘내가 했습니다’라고 답했을텐데. 그러나 아무도 내게 그런 걸 물어오지 않았다. 누가 물어봐서 입을 여는 것과 스스로 적극적으로다가 입을 여는 것은 내성적인 인간들에겐 차원이 다른 법이다. 


 난 조용히 겁에 질려 있던 봉투들에게 다가가 주민들의 품격 있는 회의를 전달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다소 안심한 눈치였다. 이 동네를 떠나면 딱히 살아갈 곳이 없는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주민들이 원한다면 석고대죄하며 길냥이들을 위한 제사를 지낼 용의도 있는 듯 했다.


 나는 한동안은 봉투들의 사정도 있으니 길냥이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야구배트도 잠시는 들어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러는 중에 주민들의 품격있는 대응이 정체를 드러냈다. ‘저것’을 처리하던 중년의 경찰관이 아닌 그보다 더 젊고 험상궃으며 더 똥 씹은 얼굴을 한 경찰관들이 동네에 들이닥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일종의 동네 미화 사업을 정부에 요청한 것이었다. 음지에 웅크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던 봉투들은 하나둘씩 경찰들의 손에 잡혀갔다. 난 그들을 태우고 사라지는 경찰차의 뒤꽁무니를 보며 그들은 종국에 재활용 될 수 있을 것인지 폐기처리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주민들과 길냥이가 야만스럽게 두들겨 팰 때도 개의치 않았던 봉투들이 품격있는 공권력에 대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봉투들이라 그런지 인간과 다르게 분노를 유발시키는 스위치도 특이한 듯 했다. 그렇다. 그들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봉투란 개체가 화를 낼 수 있을 리 없다고 믿어온 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봉투들의 화는 품격있는 공권력에게 향하지 않았다. 그 공권력을 물러온 주민들을 향해 몰려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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