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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캐비닛 살인범
게시물ID : panic_1014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GoodGuys처키
추천 : 22
조회수 : 381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6/01 12:37:09
                                                 
외부이미지
 
1995년 2월 16일 오전 9시 15분경.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A 통상 사무실. 사장은 아침부터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십수일째 무단결근을 하고 있는 경리과 직원 윤민수 씨(가명·25) 때문이었다.
 
“윤민수 씨 이거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하는구먼! 연휴 끝난 지가 언젠데 이렇게 오래 무단결근을 하다니…. 도대체 일할 마음이 있는 건가.”
 
“다시 한 번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동료의 무단결근 때문에 아침부터 사무실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직원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장의 눈치를 보느라 안절부절못했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실종된 지 17일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한 청년에 대한 얘기다. 설날 당일에 사라진 이 청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설 연휴가 끝나고 모든 직원들이 업무에 복귀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윤 씨만 출근하지 않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윤 씨는 전화 한 통도 하지 않고 무단 결근을 계속했다. 당연히 윤 씨가 맡고 있는 경리업무는 며칠째 거의 마비상태였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거라 생각했지만 벌써 2주째였다. 결국 이날 오전 사장은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윤민수 씨처럼 무책임한 직원과는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어요. 이런 직원은 필요없습니다. 오늘부로 퇴사처리 하겠습니다. 당장 윤민수 씨 개인 짐을 챙겨서 몽땅 집으로 보내도록 하세요!”

서슬퍼런 사장의 지시에 동료직원들은 윤 씨의 개인 물건을 챙겨서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으악!’

사무실 한켠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비명을 지른 사람은 윤 씨의 짐을 정리하던 동료직원 김성찬 씨(가명·26)였다. 김 씨는 사무실 한쪽 벽면에 놓인 캐비닛 앞에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직원들이 일제히 김 씨에게 모여들었다.

김 씨는 고개를 돌린 채 캐비닛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형 캐비닛 안에는 정체불명의 물체가 담긴 커다란 비닐봉지가 들어 있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잠시 후 직원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이불과 옷가지에 둘둘 말린 채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것은 놀랍게도 피투성이 사체였다. 다름 아닌 윤민수 씨였다. 윤 씨는 전깃줄로 손발이 결박된 채 쪼그려 앉아있는 자세였다. 발견 당시 윤 씨는 복부와 팔 등 몸 곳곳을 예리한 흉기에 찔려 끔찍한 모습이었다.”

사체 상태 등으로 보아 윤 씨는 이미 살해된 지 보름가량이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소식이 끊겨 그렇게도 속을 태우던 직원이 회사 캐비닛에서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되자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조사결과 이 회사는 지난달 28일 오후부터 설 연휴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직원들은 “코앞에 다가온 연휴로 사무실 분위기가 한껏 들떠 있었다.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사무실에서 업무를 정리한 뒤 개별퇴근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직원들이 회사에 다시 출근한 날은 그로부터 엿새가 지난 2월 3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직원들이 윤 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월 28일인 셈이었다.

윤 씨의 살해추정 시각을 감안하면 수사팀은 윤 씨가 이날 오후 혼자 사무실에 남아있다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윤 씨의 가족들은 “1월 31일 설날에 어머니께 세배를 드렸다. 이날 밤늦게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따라서 수사팀은 윤 씨가 1월 31일 밤부터 2월 1일 사이에 살해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직원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상한 조짐은 이미 연휴가 끝난 다음날부터 포착됐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설 연휴를 마치고 직원들이 회사에 복귀한 날은 2월 3일이었다. 그런데 출근하고나서 사무실을 둘러보니 바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핏자국이 있었다는 것이다. 카펫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꺼림칙하게 여긴 직원들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은 사무실을 쓱 훑어보고나서 ‘별일 아닌 것 같으니 바닥을 잘 닦으라’고 말하고는 그냥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같은 날 오후엔 형사계 직원이 현장에 출동해서 재차 조사를 벌였으나 범죄 낌새를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고 했다. 당시 연휴 뒤라 밀린 업무처리에 정신이 없었던 직원들도 미처 캐비닛을 열어볼 생각은 못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다고 했다.”

도대체 윤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 윤 씨를 살해하고 캐비닛에 유기한 범인은 대체 누구일까.

수사팀은 우선 범행동기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피살된 윤 씨의 소지품이 없어진 것으로 보아 단순 강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연휴기간 중 회사에 홀로 나와 있다가 빈 사무실을 노린 범인에게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었다.

현장조사결과 윤 씨는 사무실에서 살해된 뒤 유기된 것이 거의 확실했다. 하지만 모두가 쉬는 연휴기간에 윤 씨가 회사에 왜 나왔는지는 의문이었다. 또 범인이 범행 후 특이하게 사체를 캐비닛 속에 유기한 채 달아났다는 점도 미스터리였다. 단순히 돈을 노린 강도의 짓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수사팀은 윤 씨의 가족 및 주변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수사팀은 중요한 사실을 포착하게 된다. 윤 씨가 회사직원이었던 강재욱 씨(가명·26)와 일전에 심하게 다툰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강재욱은 1월 초 회사공금 1600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회사 측으로부터 고소당한 상태였다. 직원들에 따르면 이 문제로 인해 강 씨와 윤 씨는 크게 다퉜다고 한다. 경리업무를 담당하는 윤 씨가 자신의 횡령사실을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고 사장에게도 일러바친 것으로 여긴 강재욱이 이를 문제삼아 심하게 따지는 바람에 갈등이 터졌다는 것이다.”

조사결과 두 사람은 고교동창 사이로 평소 아주 친하게 지내온 사이로 드러났다. 지난해 먼저 입사한 윤 씨가 주선해 강 씨가 입사한 사실도 드러났다. 직원들은 “고소를 당한 후 강 씨는 윤 씨에게 ‘고등학교 동창인 네가 어떻게 사장에게 고자질을 할 수 있느냐’며 무척 흥분한 모습이었다”고 증언했다.

살인의 동기치고는 다소 미약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도 없는 사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윤 씨는 누군가에게 특별히 원한을 살 만한 인물이 아니었고 당시 강 씨와 다툰 사실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나타나지 않았다.

조사과정에서 수사팀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실종된 설날 당일 윤 씨는 친구이자 직장동료인 강 씨와 함께 어머니에게 세배를 드리고 집을 나섰다는 사실이었다. 강 씨는 윤 씨의 마지막 행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또 윤 씨 사체에 대해 정밀감정을 한 결과 범인이 윤 씨의 오른쪽을 찔러 살해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범인은 왼손잡이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상의 모양이나 각도 등으로 볼 때 왼손을 주로 쓰는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징이 포착된 것이었다. 수사팀은 강 씨도 왼손잡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피살자의 가장 친한 친구가 유력한 용의선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상한 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수사팀은 윤 씨의 사체가 발견되기 하루 전날인 15일 사무실에 강도사건이 발생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괴한은 사무실 자물쇠를 부수고 침입, 강 씨의 이력서와 사진첩 등 각종 서류를 훔쳐간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사무실에 남아있는 강 씨의 자료는 아무것도 없는 셈이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강 씨는 분명 수상한 인물이었다. 범행 후 경찰의 추적을 어렵게 하기 위해 자신과 관련된 모든 서류들을 없앤 것으로 판단한 수사팀은 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즉시 강 씨의 신병확보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강 씨는 설날 당일부터 행적이 묘연한 상태였다. 수사팀은 강 씨의 어머니를 찾아가 아들의 자수를 권유했다. 그리고 ‘아들을 대전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강 씨 어머니의 제보로 대전역 앞에서 잠복했던 수사팀은 18일 오후 6시 30분경 공중전화 부스에 있는 강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강 씨는 순순히 범행사실을 인정했다. 범행동기는 수사팀의 예상대로였다. 그의 자백으로 밝혀진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월 31일 새벽 1시경 두 사람은 회사 사무실에서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취기가 돌자 두 사람의 대화는 어느 순간 강 씨의 회사공금 유용문제로 흘러갔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강재욱은 ‘겉으로는 둘도 없는 친구인 척하더니 사장에게 고자질이나 하고 다닐 수 있냐’며 윤 씨에게 따졌다고 한다. 그런데 윤 씨는 ‘나는 그런 고자질을 한 적이 없다’며 둘러대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강재욱은 윤 씨 때문에 일이 이렇게 커졌다며 따지고 들었다. 이 문제로 서로 시비가 붙은 두 사람은 이날 심한 말다툼을 벌였고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결국 화를 이기지 못한 강 씨는 사무실에 있던 흉기로 윤 씨를 마구 찔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만취상태였던 강 씨는 범행 후 사무실 바닥에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들고 만다. 눈을 떴을 때는 새벽 5시경이었다. 자신의 옆에 피투성이 상태로 쓰러져 있는 친구를 본 강 씨는 몹시 당황했다. 곰곰이 생각하다 어젯밤 일을 기억해낸 강 씨는 사건 수습에 들어갔다. 윤 씨가 사망한 것을 확인한 강 씨는 사무실에 있던 담요와 옷가지로 사체를 싼 뒤 대형 비닐봉지에 넣어 캐비닛에 유기했다. 그리고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사무실 쓰레기통에 버린 뒤 잠적했던 것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친구를 죽인 살인범으로 변해버린 청년은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행동을 뉘우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10년 우정을 돌이킬 수 없는 참극으로 끝낸 청년이 남긴 말은 “조금만 참을 걸 그랬습니다”였다.


이수향 기자 [email protected]
 
http://mn.kbs.co.kr/news/view.do?ncd=3748443
출처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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