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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억
게시물ID : panic_1015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용사☆(가입:2014-09-20 방문:2038)
추천 : 2
조회수 : 60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6/17 22: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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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란 곳은 꽤나 촌이었습니다.
과장을 좀 해서 마루에 앉으면 보이는 것은 주변의 논밭과 산이고 들리는 것은 가축들의 울음소리, 학교마저 가는데만 30분가량 버스를 타야 했던 곳.
특히나 할머니의 직업이 무속인, 흔히 말하는 무당이셨기 때문인지 제가 살던 집은 그 촌에서도 좀 더 구석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나가지 않는 이상 놀 곳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는 뒷전이고 나가선 저녁 시간이 한참 넘어서야 어슬렁어슬렁 들어오는 그런 손자의 태도에... 아니, 시험지에 매번 비가 잔뜩 내리던 손자의 성적에...
그날은 그러니까 화가 제대로 나셨던 모양입니다.
매를 한번 들어야 정신을 차리겠다며 빗자루를 찾으시는데..
옷이야 입고 있겠다.
신발도 신고 있겠다.
선택지에 도망친다 밖에 없더라구요.
등뒤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무시했었습니다.

오래전 어느 여름.
그저 놀고 놀던 나이.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짓이었지만 할머니에 대한 약간의 반항심도 있었을 겁니다.
그땐 참 무당 손자라는게 싫었는데 신기를 물려받은건지 저도 뭔가 보이고 그랬거든요.
아마 어차피 미래가 정해졌는데 노력해봐야 뭐하겠냐는 마음도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뭐.. 그날 그렇게 도망치긴 했는데 워낙 촌동네다 보니 돌아다녀도 뭐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시간도 이미 늦어서 누굴 불러 놀수도 없던지라 그냥 계속 걷고 또 걷기만 했습니다.

한쪽은 논밭, 한쪽은 산.
너무나도 익숙해서 지긋한 풍경의 반복이 해가 저물어서 그랬던건지 괜시리 오싹하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그냥 혼날 걸 생각하고 얌전히 집으로 들어가자 생각했었죠.
이쯤되면 화도 좀 풀리셨겠지 하는 근거 없는 믿음도 있었구요.

[......]

하지만 그럼과 동시에 뭔가 확인하고싶어 계속 걸었습니다.
다른게 아니라 그무렵 애들한테 -갈림길- 이라는 괴담이라 해야하나 놀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게 퍼져 있었거든요.

'야, 너네들 그거 들었어? 밤에 말이야....'

대체 누가 처음 퍼뜨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래와 같았습니다.

우선 반드시 혼자일 것.
어두워진 밤에 두 갈래 길 앞에 선다.
그런 다음 왼쪽길을 향해 [네꺼지? 가져간다] 라고 말한다.
그뒤에 갈림길의 오른쪽으로 네발자국정도 들어간 뒤 [오른쪽이야]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오른쪽길에서 벗어난 뒤 [찾아봐!] 하고 말하고 도망친다.

그렇게 하면 뭔가 따라오는 느낌이 난다거나 갑자기 찬바람이 확 분다거나 하는 거였죠.

정말 바보 같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는데 그때는 꽤나 흥미가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기도 했지만 그냥 그게 남자다운 짓이라고도 생각했었습니다.
뭔가 난 여자애들처럼 겁 먹고 그러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전 그 한밤중에 가까운 갈림길로 갔고 그 행동을 그대로 했습니다.

[네꺼지? 가져간다]

[오른쪽이야]

[찾아봐!]

그러고는 그대로 도망치듯이 집으로 뛰어 갔습니다.
집으로 가는 동안 무슨 이상한 일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할머니한테 그 시간까지 밖에 있었다고 엄청 혼났죠.
하지만 저는 조금 의기양양해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별 거 없던데?' 하면서 제 배짱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다음날 학교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어디쯤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대문을 나선지 얼마 안돼서 정신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때 기억이 없어 후에 들은 이야기를 적자면 이랬다 합니다.
동네 누나가 학교에 가면서 같이 가자 불러도 대답이 없고 걷는 것도 휘청휘청 거리길래  따라가봤더니 정신이 없어보이더랍니다.
몇번을 크게 불러도 못들은 것처럼 계속 걸어가는데 가만히 보니 한쪽 팔을 앞으로 내밀고 꼭 누가 끌고가는 모양새였다 하더라구요.
놀라서 어깨를 잡고 당기니까 그냥 그대로 쓰러졌답니다.

누나는 급하게 근처에서 밭일을 하던 아저씨를 불렀고 저는 그 등에 업혀서 다시 집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제가 다시 정신을 차린 건 점심을 넘긴 낮 때였는데 처음엔 그냥 내가 안 나가고 자고 있었던 건가 했습니다.
그런 제 옆에는 할머니가 앉아계셨구요.


[학교 갔어야 할 놈이 업혀서 들어오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뭘 붙여서 왔더구나]

[.......]

그제서야 전 제가 분명 대문을 나섰다는 걸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제 손목에 누군가 꽉 쥔 모양새로 보라색으로 멍이 남았다는 걸 깨달았죠.

할머니는 한숨을 쉬고 마저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들러붙은 걸 떼기는 했는데.... 널 계속 보고 있다.. 뭘 계속 찾고 있는데... 아가, 할미한테 제대로 말하거라.]

저는 그 말에 꽤나 길게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은요.. 어젯밤에...]

......
그날 참 많이 혼났습니다.
말로 혼나는 걸 넘어서서 방구석에 놓여있던 빗자루로 엄청 맞았죠.
네가 한 짓이 어떤짓인지 아냐 부터 해서 무슨 생각으로 그런 위험한 짓을 한 거냐고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이 썩을놈! 아무 것도 모르는 애도 아니고! 네가!]

무서웠습니다.
할머니가 화를 낸다는 것보다 그렇게나 화를 낼만큼 위험한 짓이었다는 걸 뒤늦게야 알아서 무서웠습니다.

[후우...아무래도 네가 자기 껄 숨겼다고 착각하는 거 같구나.]

할머니는 빗자루를 내려두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잘 들으렴.. 네가 한 것은.....]
..
..


그날밤 제가 한 것은 귀신을 부르는 주술은 아니었습니다.
거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존재한테 말을 거는 거였으니까요.
귀신을 직접적으로 부르는 것은 좀 더 까다롭고 더 위험한 방법이 쓰인답니다.
또한 그런식으로 부른 귀신은 십중팔구 사람에게 좋은 쪽은 없다하구요.
다만 직접 부른 것은 아니어도 이목은 충분히 끌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 정말 겁도 없이 귀신한테 장난을 건 셈이었던 겁니다.
어떤게 엮일지도 모르면서요.

[보고 말해]

말을 끝마친 할머니는 손거울 하나를 가져와 제게 내밀었습니다.


[....주황색이요.]

아까 신기 같은 걸 물려 받았다 말했지만 정확히 저는 귀신은 거의 못봅니다.
하지만 산 사람을 봤을 땐 이 사람이 곧 죽을지 아닐지 같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날 때부터 할머니의 '감'을 이어받았고 그게 좀 특이하게 나타난게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에 얘기했다시피 참 어설픈 반항의 원인이였죠.

[죽지는 않겠구나]


뭐... 그리 대답하고 또 혼났습니다.
볼 줄  아는 놈이 그런 짓을 했냐구요.
그래도 내심 안심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조금 안심했었구요.

[저 그럼.. 그냥 냅둬도 되나요?]

[헛소리말고 얼른 일어나, 화는 나 있어, 무시한다면 장담을 못한다.]

네놈 손 보면 모르겠냐고 구박을 하시곤 잠시 방에서 나가시더니 이내 작은 보따리를 하나 가져오셨습니다.

[밖에 있는 것한테는 잘 말해뒀다.. 어디였는지 기억하지? 들고 가서 이거 대신 준다 하고 잘못했다고해]

그렇게 제 품에 보따리 하나를 안겨주시곤 할머니는 저를 거의 집 밖으로 내쫒듯이 구셨습니다.

[저기 할머니... 그게 저 용서해줬는지 안 했는지는 어떻게 알아요?]

[네가 알아야지!]

혼자 가기 무서운데요 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녁 먹기 전에 들어오라는 말과 제대로 사과하고 오라던 말만이 돌아왔죠.

그 다음엔 별 것 없었습니다.
다행히 가는 길에 아무 일도 없었고 전날밤 그곳에 보따리를 두면서 장난친 거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죠.

저는 아이들이 한 말처럼 도망치면서 이상한 일을 겪었다거나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사과하러 갔을 때 갈림길의 오른편 땅이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던 걸 기억합니다.

누가 그랬던 걸까요.
어쩌면 밤새 있지도 않은 물건을 찾느라 헤맸던 이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토록 찾고 찾아도 없으니 화가 난 채로 찾아 왔었고 저를 끌고 간 것도 어쩌면 네가 직접 찾으라는 의미였을지도요.
있지도 않은 물건을 착각한다는게 의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손목의 멍이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진 건 확실했습니다.

저는 그뒤로 그 놀이를 한 적 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얼마 안 가 놀이를 멈췄습니다.
제가 겪은 일도 일이었지만 후에 인근의 다른 곳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가 시체로 발견돼서 한동안 떠들썩 했거든요.
그 범인이 누구인지는 커녕 어떠한 흔적조차 없어 결국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밤에 길에서 애 등을 칼로 난도질 했다더라, 칼이 아니라 정신병 있는 사람이 물어뜯은거라더라.-

-갈림길 놀이하다가 죽은거래, 도망치다가 귀신한테 잡힌 거래.-

정말로 그 애가 죽은 것은 그 놀이 때문이였는지 아니면 그저 알 수 없는 살인자였던 건지는 모릅니다.
저도 사건 후에 할머니한테서 [...이젠 더 없을게다] 라는 말을 듣고 '어쩌면' 이라고 생각하던게 전부였으니까요.
그저 진위를 알 수 없는 무성한 소문과 함께 사라진 놀이.
그게 제 기억입니다.




---------- 

거의 2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여길 지나갈 생각을 한게 신기한데...."

"보통 위로 넘어서 도망 안 가요?"

조금 우습게도 어릴적 막연하게 커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겠구나 하던 생각과 달리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몰라, 밑에 틈 좀 보인다고 머리부터 들이밀었나보지..."

"저희가 빼는 건 무리고 신고해야겠네요."

"그래야 할 거 같다- 근데 끼여 있어도 괜찮은 거야?"

"노란색, 아주 문제 없고 그냥 조금 갑갑한게 끝이겠네요."

"그럼 괜찮네, 수갑은 뭐 빼낸 다음에 채우던 하자."

아마도요?


지금도 가끔 그때 기억이 나긴 합니다.
다만 제가 그동안 잘못 알았던게 있더라구요.

"장선배, 뭐 좀 궁금한게 있는데요"

"물어봐."

"음,  별 건 아니고 저번에 동창들이랑 얘기하다가 나왔던 말이거든요"

"응"

아마 제 귀가 나빴던 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르지요.
다들 저랑 다르게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찾아봐 하고 잡아봐 하고 차이 많이 나죠?"

"엄청"

"아무래도 그런가요."


하긴 이제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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