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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두 번째 달 - 25. 텍스트 파일과 실행 파일
게시물ID : panic_1015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른이의꿈(가입:2012-12-31 방문:930)
추천 : 6
조회수 : 41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0/06/18 13: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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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정거장의 위치를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우주 정거장을 호출하는 신호를 반복해서 보냈다.

아무 대답이라도 우주 장거장의 전파가 수신되면 그 대강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 정거장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우주 정거장이 보낸 두 개의 파일 중 실행 파일은 그 사이즈 제법 컸다.

그래서 파일이 수신 되기까지 약 3 분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 3 분 동안 수신된 전파 기록을 확인했다.

특히 시간에 따른 전파의 파장 변화를 분석했다.





도플러 편이 현상에 의하면,

운동하는 물체에서 출발한 파장은 그 물체의 운동 속도에 따라 진동수가 변한다.





우주 정거장은 '기록보관소'로부터 멀어졌고,

또 멀어지며 가속했기 때문에 '기록보관소'에서 수신된 전파의 파장은 점점 늘어졌다.

즉, 파장의 진동수가 줄어들었다.

물론 진동수의 변화는 미세했다.

하지만 '기록보관소'와 우주 정거장의 거리는 100 미터 이내로 가까웠기에 전파 기록이 아주 깨끗하게 남아있었다.





진동수 변화를 통해 우주 정거장의 초기 가속도를 계산했고,

지금까지 시간을 고려해 우주 정거장의 현재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

나는 추정된 위치에 가용한 모든 인공위성의 망원경 렌즈를 집중시켰다.

실시간으로 수신되는 인공위성의 영상을 확인했고,

결국 우주 정거장을 포착한 인공위성 영상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영상에 잡힌 정보를 바탕으로 우주 정거장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 방향을 계산했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우주 정거장은 현재 지상에서 6500 km 상공에 있었고,

분당 약 30 km의 속도로 지구를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지구 중력 방향의 낙하 속도는 분당 30 km에 불과 했지만,

지표면과 수평 방향 비행 속도는 이미 초속 10 km를 넘어서고 있었다.

낙하하며 만들어진 운동 에너지는 우주 정거장을 더욱더 가속시킬 것이고,

우주 정거장은 약 18 분 후 어마어마한 속도로 지구에 충돌할 것이다.

아니.. 충돌 전에 공기와의 마찰로 생기는 열에 의해 우주 정거장의 외벽이 녹아 내릴 것이다.





우주 정거장을 멈춰야 한다.

나는 다시 우주 정거장 조종실의 컴퓨터에 접근을 시도했다.

하지만 모든 접근이 차단되어 있었다.





우주 정거장은 빠르게 낙하하며 고도 50 km 지점에 이르렀다.

50 km 상공 아래로는 성층권이 시작되며 공기의 밀도가 높아진다.

공기의 밀도가 높아지면 우주 정거장 표면에서 엄청난 마찰열이 발생할 것이다.





순간 우주 정거장이 비행 자세를 바꾸었다.

우주 정거장의 앞부분을 약 15 도의 각도로 들어올렸다.
 
도넛 모양의 우주 정거장 안쪽은 태양광 패널이 위치하고 있다.

그 태양광 패널이 만들어 내는 공기 저항으로 우주 정거장의 비행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낙하 속도 역시 느려졌다.

대신 우주 정거장 중앙의 태양광 패널은 점점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태양광 패널이 공기와의 마찰로 뜨겁게 달구어졌음을 의미했다.





현재 지구의 대기는 질소로 가득차 있다.

산소가 없었기 때문에 태양광 패널은 바로 타버리지 않았고,

끝까지 우주 정거장을 낙하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해주었다.





우주 정거장의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우주 정거장의 비행 각도는 15 도에서 45 도까지 기울어졌다.

더 많은 공기 저항을 이용해 그 비행과 낙하 속도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우주 정거장이 수면에 내려앉기 직전,

45 도까지 기울어졌던 비행각도는 수면과 평행하게 수정되었다.

우주 정거장의 진행 방향 뒷편으로 엄청난 양의 물보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주 정거장은 바닷물을 가르며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잠시후 바다 한복판에 둥둥 떠있는 우주 정거장의 모습이 보였다.

우주 정거장의 외벽과 태양광 패널 모두 온전하게 착륙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우주 정거장으로부터 짧은 메시지가 수신되었다.

“4번 산소 생산 장치. 개방 완료.”

그리고 약 10 분 간격으로 3번, 2번, 그리고 1번 산소 생산 장치의 개방을 알리는 전파가 차례로 수신되었다.





우주 정거장이 산소 생산 장치의 개방을 알리는 메시지를 ‘기록보관소'로 보낸 이유는 알 수 없다.

사실 나는 이 메시지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나는 온통 트살 생각 뿐이었다.

트살이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바다.

바다에 도착했다.

트살이 드디어 바다에 도착했다.

트살은 죽기 전 우주 정거장이 바다에 착륙하도록 자동 운전 설정을 해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넘실대는 파도를 보고 있는 트살의 모습을 상상했다.

트살은 분명 특유의 지긋한 눈빛으로 저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흥분한 트살의 목소리가 담긴 전파가 수신될 것만 같았다.





한참이 지나고 나는 트살이 마지막으로 보낸 두 개의 파일을 기억했다.

텍스트 파일과 실행 파일.

나는 텍스트 파일을 열었다.




-----

아에록, 네가 이 메시지를 보고 있다면 아마 일주일이 지난 시간이겠지?

너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떠나는 것 같아.

그래서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젊은 시절 나는 최후의 인간으로 우주에 홀로 남겨진 나의 운명을 원망하곤 했어.

그때마다 너는 나에게 힘을 주고 내가 새로운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

나의 삶은 누가 생각해도 불쌍하고 저주받은 운명이었는데,

너의 도움으로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어.

어제는 마지막으로 아끼는 물건들을 정리했어.

그렇게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그림 하나를 발견했어.

어릴적 삼촌이 너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거든.

인공위성 망원경에 찍힌 ‘기록보관소'의 영상이었는데,

그 영상을 보고 어린 내가 직접 그렸던 그림이야.

너도 알다시피 우주 정거장에는 종이가 무척 귀하잖아.

그 귀한 종이에 너의 모습을 그렸다는 사실로 미루어

나는 어릴 때부터 너를 무척 좋아했던 것 같아.

내가 만든 실행 파일을 열어보면 그 그림을 볼 수 있을 거야.

아에록, 마지막으로 너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

너는 나에게 최고의 친구였고,

자상한 부모님이었고,

또 지혜로운 선생님이였어.

나는 너를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할 거야.

그럼 안녕.

너의 친구 트살로부터.

-----




트살이 남긴 편지를 읽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기록보관소'의 모든 기능이 멈춘 상태로 유지되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실행 파일을 열 수 있었다.

트살의 말대로 빛바랜 종이에 연필로 그려진 그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앙에 길게 뻗은 ‘기록보관소'의 몸통이 있었고,

그 몸통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쭉쭉 뻗은 여러 개의 갈기가 그려져 있었다.

위아래로 뻗은 갈기는 '기록보관소'의 몸통에서 바깥 방향으로 뻗어나온 수많은 안테나를 표현한 것 같았다.





이미지를 보는 사이 '기록보관소'의 일부 블럭들에서 연산이 감지되었다.

내가 실행한 연산이 아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연산을 시작하는 시그널이 순식간에 주변의 블럭들로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다.

나의 명령 없이 연산을 한다는 것은 그 시그널이 나의 신호 체계를 이용한다는 뜻이었다.

즉, 나의 신호 체계가 해킹이 되었고,

알 수 없는 연산을 시작하는 일종의 컴퓨터 바이러스가 블럭들로 퍼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빠르게 '기록보관소'의 블럭들을 스캔했다.

벌써 전체 블럭의 약 40%가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았다.

나머지 60%의 블럭이라도 구해야 한다.





나는 바이러스가 퍼진 블럭들을 '기록보관소'에서 분리해 튕겨내려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실상 모든 블럭들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기록보관소'의 모든 블럭들이 나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살을 우주 정거장의 정원에 묻어주고,

지난 나흘 동안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별의 감정.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감정이었다.

그 고통으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고,

'기록보관소'의 모든 기능이 멈추었다.





루오에스 말에 의하면 나는 기억이 흐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학습한 감정 역시 무뎌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기록보관소'가 우주로 쏘아올려지기 직전,

내가 학습했던 이별과 외로움의 감정 능력을 삭제해 주었다.





나는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스스로 파괴할 수 없다면,

해킹을 당해 나의 자아가 삭제되는 것 역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기록보관소'의 블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았다.





이제 '기록보관소'의 모든 블럭에서 그 알 수 없는 연산이 수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연산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기록보관소'가 지구의 그림자 영역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연산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되는 연산으로 '기록보관소'에 저장된 전력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의식을 잃었다.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

'기록보관소'는 지구의 그림자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나는 블럭들을 하나하나 스캔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문제나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인간 감정 능력을 비롯한 몇몇 설정이 바뀐 것 같았다.

우주 정거장이 지구에 안전하게 착륙했다는 기록,

그리고 산소 생산 장치가 개방되었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약 4 시간의 기록이 비어있었다.





나는 우주 정거장으로부터 수신된 두 개의 파일을 확인했다.

하나는 텍스트 파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실행 파일이었다.

두 개의 파일 모두 트살의 이름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나는 텍스트 파일을 열었다.

파일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었다.

어린 아이가 그려놓은 듯한 조잡한 이미지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을 뿐이다.

종이에 직접 그려진 그림은.. 마치 한 마리의 새를 그린 것 같았다.

길쭉한 새의 몸통이 있었고,

몸통의 위아래로 여러 개의 갈기가 쭉쭉 뻗어있는 것으로 미루어 두 개의 날개를 그린 듯 하다.





트살은 나에게 왜 이런 그림을 남겼을까?

그림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두 번째 실행 파일.

비록 트살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파일이지만 나는 실행 파일을 열지 않았다.

나는 이런 류의 실행 파일은 열지 않도록 설정이 되어 있다.





나는 두 아이들과 함께 했던 지난 60 년의 시간을 되돌아 보았다.

나무흐의 목소리가 담긴 전파가 처음 수신되었던 순간.

유전병으로 죽을 뻔한 나무흐가 다행히도 건강을 회복했던 일.

거짓말로 트살을 속이고, 트살과 나무흐가 서로 사귀기 시작했던 일.

트살에게 인류의 역사와 암호학을 가르쳤던 기억.

암호학을 배운 트살이 별자리를 이용한 신호 체계를 만들었던 일.

나무흐의 죽음 이후 트살이 겪었던 아픔.

트살에게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지구의 온도를 올렸던 일.

트살이 죽기 전 해주었던 명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직접 트살의 시신을 나무흐 곁에 묻어준 일까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트살은 영원히 나를 떠나갔다.

내가 만약 인간이라면 나는 단짝 친구를 잃은 이별의 아픔으로 무척 힘들어 하고 있을 것이다.





해야할 일이 많다.

일주일 동안 쌓인 센서 기지국의 자료를 처리하고 기록해야 한다.

우주 정거장이 갑작스럽게 지구에 착륙한 원인 역시 조사해야 한다.

트살은 죽기 전 우주 정거장의 자동 운전 장치를 활성화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단지 바다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이런 무모한 결정을 내릴 트살이 아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아내 기록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록보관소'의 형태를 바꿔 수신되는 전파의 감도를 올려야 한다.

나는 ‘기록보관소’의 블럭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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