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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소음이 다시 울리고
게시물ID : panic_1020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파동파
추천 : 0
조회수 : 65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12/07 17: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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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우우우우우

"아아 신발.."

 

오늘도 저녁 10시 반이면 울리기 시작하는 저주파 진동에 호정은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좀 지나면 사그라들지 않을까 했던 소음은 밤새 웅웅댔고 밤잠을 설치다가 약국에서 처방 받은 수면제 두 알을 먹고서야 서너 시가 지나서야 어떻게 잠에 들었다. 그렇게 두세 시간 눈을 붙이고 울리는 알람에 눈을 뜨면 밤새 울리던 소음은 멎어있었다. 주변은 고요했지만 더 잠들 수 없는 출근시간. 하루내 몽롱한 기분으로 생활해야 했다. 점심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던 여느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호정이 식사를 거르고 의자에 기댄 채 부족한 잠을 채우는 날이 생기는가 하면 주변이들로부터 사람 좋은 이라는 호평을 받던 호정의 낯빛에서는 웃음이 자취를 감췄다. 수면 부족 때문인지 괜히 밀려오는 짜증에 부하 직원의 실수에 버럭 화를 내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이대론 안 되겠어. 소음 측정 업체라도 불러서 객관적인 수치라도 얻어서 소송이라도 걸든 신고를 하든 해야지."

소리의 근원이 분명한 기계 작동 소리나 발자국 소리와는 다르게 울리는 소음의 특성 때문에 아랫집인지 윗집인지도 분간이 안 돼 두 집 모두 들러봤던 호정이었다. 윗집은 2년 째 사는 호정이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서양인 부부였다. 외국인이 우리 아파트에 살았나 의아했던 호정은 이내 "빅 노이즈 빅 노이즈" 같은 어색한 영어를 열심히 전했지만 무슨 말인지 대강 알겠다는 그들은 이내 고개를 으쓱하면서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돌아섰다. 아랫집은 20대 초반의 남자였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모르는 일이라는 대답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저녁 열 시 반. 어김없이 찾아온 진동. 소음에 치미는 분노와 짜증을 어떻게든 가다듬고 내일 출근을 하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올 리가 없었다. 계속되는 소음에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그런 시도에도 머리를 울려대는 소음에 꾹 감았던 두 눈을 부릅 뜨고 이불을 걷어 제낀 채 무작정 윗집을 향했다.

 

딩동.

반응이 없다.

딩동, 딩동.

"아랫집입니다. 여쭤볼 게 있어서 그런데 문 좀 열어주세요."

문에 귀를 대보니 어떤 인기척도 없다.

그런데 그때 호정의 귀에 익숙한 진동이 들렸다.

우우우우우웅

 

"요놈, 잡았다!"

한 달 넘게 잠을 설치게 했던 소음의 근원은 바로 윗집이었다.

츄리닝의 긴소매를 걷어올리고 격분한 호정은 대문을 주먹으로 가격하기 시작했다.

쿵쿵, 쿵.

"소음 모른다고 하시더니 지금 나는 소리는 뭐죠? 문 좀 열어버시라니까요!"

씩씩대던 호정이 소음 속에 이상한 음을 감지한 것은 그때였다.

웅우우웅우우우우웅. 치키, 우우우우웅우우우, 치키, 우우우웅우우

".......뭐지?"

 

익숙치 않은 잡음이 궁금해 대문에 귀를 바짝 대고 골똘히 듣고 있자니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음의 정체가 문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윽고 문에 둔탁한 쇠가 닿는 소리가 들리면서 동시에 거칠게 문이 활짝 열렸다.

호정은 눈 앞에 마주한 상대에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설설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호정의 앞에는 그가 어렸을 때 그토록 동경하던 머피(Murpy) 요원, 로보캅이 있었기 때문이다.

 

"웰컴, 아임 머피. 왓츠업?"(반갑다. 난 머피다. 무슨 일인가?)

"아임 다운 퍼슨. 빅 노이즈 프롬 유"(아랫집 사람인데 윗집에서 소리가 나서 왔어요)

개떡 같은 그의 어설픈 영어도 찰떡 같이 받아주는 상냥한 머피 요원.

유년 시절 아이돌이었던 머피가 예상치도 못 한 곳에서 마주하자 윗집을 향했던 당초 목적도 잊고 기억 속 저편에 잠식된 옛추억이었던 영화 제목이며 명대사를 읊고 있었다. 늦은 밤 이웃집 문앞이라는 것도 잊은 채.

"오케이, 컴 인"(그래 그냥 집으로 들어와 얘기하자.)

 

얘기가 길어지자 머피는 호정을 집안으로 들여와 일대일 대화를 나누는 후한 팬서비스를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그간 호정을 괴롭혔던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저주파는 로보캅의 몸통에 내장된 배터리를 충전을 하는 소리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렇게 두어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 두 시.

꼬르륵 하는 소리가 영민한 올드보이 에이아이인 로보캅의 음성 감지 센서에 감지되고 우람한 몸통을 일으키며 "썸띵 투 이트?"(뭐 좀 먹을래?)라 호정에게 물으며 야식을 찾기 위해 부엌으로 향한다.

 

우우우움 치킨 우움 치킨

로보캅의 움직이는 소리에 호정은 문득 야식으로 치킨이 당겼고 로보캅에게 요기요 야식배달로 치킨을 시켜먹자고 구슬른다.

"굿 아이디어 오케바디"(좋다 그리 하자.)

 

호정과 로보캅은 이내 어플을 돌려 뿌링클 황금올리브콤보를 시켜 오순도순 나눠먹으며 밤을 새서 이야기 꽃을 피우며 하룻밤을 새웠다. 하지만 이제 출근 시간. 생업을 내팽개치면서까지 덕질을 할 수는 없는 법. 조만간 다시 보자는 약조를 나누고 호정은 윗집 대문을 나선다.

 

"아일 비 백"(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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