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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수소 인간
게시물ID : panic_1021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윤기사(가입:2020-11-12 방문:46)
추천 : 4
조회수 : 88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1/01/14 15: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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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뱅뱅사거리 00은행 VIP 미팅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미팅실의 문 쪽 으로는 50대 후반으로 남자가, 반대 쪽에는 은행 관계자인 듯한 30대 남자가 서류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30대 남자가 서류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까칠하게 입을 열었다.


“박 사장님, 지금 이 정도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여기 투자 상담을 오셨습니까? 이게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요? 뭐, 한 100년 후면 모르겠네요? 정말 획기적인 스타트업 제품인 거, 아님 확실히 우리 은행에다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거, 아님 다 필요 없고 제가 지금 당장 체험해보고 아, 정말 쓸 만하다 싶은 거, 뭐? 이 정도는 되어야 위에 품위라도 올려보지요. 이런 걸 '떡' 하니 그냥 가져오시면, 대출 부서에서 제 얼굴이 모가 됩니까? 여기가 자선사업 하는 곳도 아니고요. 이 서류들, 그냥 가져가세요.”


30대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뱉는 말들을 바로 앞에서 들은 박 사장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고개를 푹 숙이고, 서류를 가방에 쑤셔 넣고선 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마침 뒤이어 들어오는 이 박사와 어께를 부딪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먼저 온 손님이 계시는 줄 몰랐네요. 김 대리님 안녕하세요?”


“거, 조심 좀 하시지, 안녕하십니까? 뭐, 일단 자리에 앉으시지요. 00은행 본점 영업부에서 대출 및 투자 담당을 맡고 있는 김 대리 라고 합니다.”


이 박사는 얼른 양복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앞에 있는 김 대리에게 건 냈다. 김 대리는 명함을 받으면서 안의 내용을 천천히 보았다.


“음, 벤처기업 사장님이시네요? 엉? 그런데 철학박사 학위를 받으셨어요?”


“아, 예, 저는 철학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그 내면의 악함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인간은 본래부터 선하게 태어나며, 환경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악하게 변한다는 논리는, 포장된 말 뿐이라는 걸 일찍 깨달았죠. 인간은 본래부터 악하게 태어났어요. 악한 내면을, 어쩔 수 없었던 나의 상황과 인격이라는 좋은 갑옷으로 포장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지요.”


김 대리는 이박사의 이야기가 따분한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있다가 말미에 눈을 떴다.


“예, 예, 덕분에 이 박사님의 철학 강의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인 일로? 혹시 행선지를 잘 못 오신 것 아닙니까? 저, 5분 있다 외근 나가야 되거든요. 이 박사님?”


“아하~ 정말 죄송합니다. 갑자기 철학 이야기를 꺼내 시 길래...”


이 박사는 무척 미안해하며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어 김 대리 앞에 올려놓았다. 김 대리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서류를 들려다 보았다.


“이게 모야? 수소바이크?”


“예, 요새 전기 차 다, 수소트럭이다 미국도 그렇고 친환경 기술이 엄청 뜨고 있는 것 잘 아시지요? 그래서 저는, 일반 오토바이 시트 밑에 저만의 특별한 기술인 초정밀 사이즈의 수소 연로 통을 장착하여...”


“잠깐만요, 이 박사님, 뭐, 내용은 그럴 싸 한데, 여기 앉아있는 제가 무슨 바보인 줄 아십니까? 저도 이 바닥에서 5년입니다. 5년. 사실, 수소 차다, 수소바이크다, 벌써 몇 년 전부터 말들이 나왔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지지부지 한 이유는... 잘 아시죠? 일단 많은 양의 수소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소 건설비용이, 전기 차 충전 시설 짓는 비용하고는 게임도 안되잖아요.”


이 박사는 특별한 대꾸 없이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그래서 수소차를 대량으로 생산할 만한 설비 시설이 잘 세워지지 못하는 것 이구요. 여기서 문제의 요지는 어떡하면 양질의 많은 수소들을 빨리 모아서, 산소와 함께 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 이거지요. 이 정도면 저도 이쪽 분야에서 박사 해도 되겠지요? 이 박사님. 보여주신 제안서는 잘 보았는데, 경제성이 없어요, 경제성이. 충전소가 먼저 해결이 안 되는데 자체 제조비용도 엄청난 그깟 수소오토바이 몇 대 더 만들어 바야 뭐하겠습니까? 가격이 원체 비싸서 잘 팔리지도 않는데 개발자들 월급은 어떻게 주실 건가요? 우리 00은행이 호구입니까? 아님, 여기가 천사들의 집인가요? 안 그래요? 이 박사님?”


김 대리가 마지막 멘트와 함께, 노골적으로 손목에 찬 시계를 쳐다보았다.


이 박사는 김 대리에게 무슨 말을 더하려다 이내 포기를 하고, 서류를 가방에 주섬주섬 넣었다. 그리고도 김 대리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


“보통 사람들이 능력이 안 되면 성의라도 있고, 성의가 부족하면 눈치라도 있어야 되는데... 이건 뭐. 또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이 박사는 무표정에서 갑작스레 표정이 바뀌며, 김 대리를 보며‘실실’웃기 시작했다.


“사실, 이 수소바이크 말고 제가 특급 프로젝트로 비밀리에 혼자 진행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직 완성단계가 아니라, 오늘은 얘기를 안 꺼내려고 했는데, 제가 이 자리에서 장담 드립니다만, 이건 확실히 돈이 될 겁니다. 생각 있으시면 언제 날짜 잡아서 김 대리님께 직접 체험을 시켜드리죠. 오늘 만남도 인연인데, 한번 체험해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제가 다른 은행이나 투자사는 무조건 패스하고, 반드시 김 대리님 하고만 전속 계약토록 하겠습니다. 만약에 체험해 보시고 정 마음에 안 드시면, 그냥 바람 쐬러 시골에 놀러 왔다 생각하시고, 저하고 귀한 보양식도 한 그릇 하시지요. 그날은 제가 풀코스로 모시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이 박사는 이야기 도중에도 계속 굽신 대며‘실실’웃었다. 김 대리는 이 박사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같이 따라 웃었다.


“하하하. 이 박사님. 그래도 사람이 눈치는 좀 있으시네. 제가 요즘 좀 몸이 허하긴 한데. 그럼 이 박사님의 성의를 생각해서 시찰을 한번 가볼까요? 음, 언제, 어디로 가면 될까요?”


이 박사는 그저 조용히 웃기만 하였다.


                                                                              ***


김 대리가 어느 시골의 허름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이 박사가 문을 열고 창고 안으로 들어 와서는, 안에서 열쇠로 창고의 문을 잠궈 버렸다.


“이 박사님이 간곡히 부탁해서 오기는 왔는데, 영 연구소 분위기가 아닌데요? 진짜 여기 맞아요? 무슨 폐쇄된 공장 같기도 하고, 분위가 영 이상하네?”


“전 세계에도 아직 없는 신기술이라, 남들 몰래 작업한다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김 대리님도 아시겠지만 이쪽 기술은 보안이 생명이라서요.”


“뭐, 그건 그렇긴 한데, 실험 장비들도 별로 보이지 않네요. 저쪽에 검은색 커튼은 왜 쳐져 있죠? 아~ 저 안에서 연구하다, 밤에 주무시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그러시는구나?”


이 박사는 웃으며 검은색 커튼 쪽으로 다가갔다.


“김 대리님 지금부터 저의 특급 프로젝트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물론, 대리님께서도 보시면 엄청나게 만족하실 겁니다.”


이윽고 이 박사가 커튼을 활짝 열어 재꼈다.


김 대리는 막상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모습들을 직접 보고서도, 머릿속으로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앞에는 상반신을 탈의한 어떤 남자가 코와 입 주변으로 큰 호수 관들이 연결된 채, 침대에 묶여서 누워있었다.


“이 박사님. 이, 이게 지금 뭐하는 거죠? 저 사람은 또? 왜? 침대위에 묶여 있는 거죠? 코와 가슴에 붙어있는 저 수 많은 관들은 또 뭐야?”


그러면서 김 대리는 침대위에 묶여져 있는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콧구멍에 큰 호흡관이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큰 호흡 관과 작은 전선들은 다시 침대 반대편의 수족관 같이 생긴 물체를 향해 쭉 뻗어져 있었다.


갑자기 침대 위의 사람이 눈을 번쩍 떴다.


“아, 그래! 이 사람, 그때 대출 땜에 우리 은행에 다녀간 박 사장님이잖아, 그런데 왜 여기 있지?”


“역시 우리 김 대리님은 기억력이 참 좋으시네요? 그럼 제가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죠. 저번에 김 대리님께서 문제점으로 지적하신 어마어마한 수소충전소 건설비용을 줄일 수 있는 대체 수단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수소 인간 발전 시설이죠.”


“수소 인간?”


이 박사는 계속하여 침대 옆에 있는 수족관 같은 것들을 손으로 가리킨다.


“이 커다란 수조안에는 멸균된 증류수가 들어있습니다. 이 증류수를 전기분해 한 다음, 분해된 수소가스를, 연결 관을 통해 인간의 코로 들어가게 합니다. 물론 그와 동시에 입으로는 공기 중의 산소를 들이 마시겠죠. 인간이 들이마신 수소와 산소는 일차적으로 폐를 통할 것이고, 제가 이미 이 사람의 가슴을 절제해서, 양쪽 폐 전면부에 달아 논 탄소 음극 패치를 통해 수소와 산소가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해... 되셨나요? 김 대리님?”


그렇게 말하며 이 박사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박 사장의 가슴에 붙은 전선줄을 '쭉' 따라갔다. 전선줄의 끝에는 돼지 코 모양의 220V 콘센트가 달려있었고, 콘센트에 가정용 선풍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김 대리님 한번 잘 보십시오. 직접 시연을 해보겠습니다.”


이 박사가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송곳을 꺼내더니, 침대에 누워있는 박 사장의 허벅지 한 가운 대를 정통으로 찔렀다. '아얏!'  묶여있는 박 사장이 눈을 부라리며 갑자기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게 1단.”


선풍기의 날개가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외부 자극에 의해, 흥분을 하면 할수록 호흡의 횟수가 계속 늘어나고, 그러면 수소 및 산소 포화도 농도가 높아져서 더 많은 수소 전력을 얻어낼 수가 있습니다. 자, 그럼 2단 갑니다!”


이번에는 이 박사가, 가지고 있던 송곳으로 아까보다 더 세게 허벅지를 여러 번 찌르자, 박 사장이 허공을 향해 소리를 더 크게 지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 이번에는 3단, 강풍!“


이 박사가 체중을 실어 손에 힘을 주면서 송곳으로 있는 힘껏 박 사장의 허벅지를 내리 찍었다. 침대 주변은 이미 박 사장의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박 사장은 짐승처럼 사정없이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다 결국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선풍기 날개가 더욱 더 세게 회전하였다.


이 광경을 바로 앞에서 지켜본 김 대리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갑자기 헛 구역질을 해대며 이 박사에게 마구 소리를 쳤다.


“그만, 그만, 그만해. 당신은 미쳤어 미쳤다고. 이건 신기술이 아니라, 살인이야, 살인. 이 미치광이 살인마 새끼”


이 박사는 김 대리에게 점점 다가가며,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경제성, 돈 되는 기술, 그게 당신이 원한 것 아닌가요? 이 세상에는 정말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넘쳐나죠. 저기 박 사장도 그랬어요. 도박에 눈이 멀어, 재산을 다 탕진하고선.”


“뭐, 뭐라고요?”


“그때 은행에서 어깨를 잠깐 부딪혔을 뿐인데, 그 때, 지나가는 말로 돈을 줄 테니 내 실험에 참가할 생각이 없냐? 고 흘낏 물어 보았더니, 자기 발로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악인의 기질을 가지고 있죠. 당신도 나도. 개과천선 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그때, 그 시간 뿐 이에요. 그래서 제 아이디어의 핵심은 이 세상에서 도저히 정화가 안 되는 인간들을 모으고 모아서 이렇게 수소인간으로 재활용을 하자는 겁니다.

지금은 한명이지만 두 명, 세 명이 되면 자동차나 큰 화물 트럭도, 구지 큰 충전소를 설치할 필요 없이, 인간들만으로 이렇게 손쉽게 충전할 수 있어요. 더운 날,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선풍기를 돌리듯 이 말이죠. 어떻게, 이 정도면 은행에서 투자가 가능할까요?”


“시끄러, 누가 뭐래도 당신은 결국 살인자야. 이 세상은 당신 같은 미치광이만 있는 게 아냐. 인간의 가치는 그 누구도 함부로 측정 할 수 없다고, 알아? 내가 나가서 제일 먼저 경찰에 신고하겠어. 당신은 우리 은행의 투자금이 아니라 그 말도 안 되는 죗값을 먼저 치러야 돼.”


김 대리는 얼른 창고 문 쪽으로 달려가, 문손잡이를 계속 잡아 당겼다. 하지만 단단히 잠긴 듯 아무리 용을 써도 열리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서 112를 눌렀지만, 통화권 이탈 표시가 뜨며, 통화가 전혀 되지를 않았다.


“경제성만 따지는 당신의 입에서 그런 멋진 말들이 나오다니 정말 뜻밖인데요? 오늘 나는, 당신을 풀코스로 확실하게 모시기로 했어요. 그렇죠?”


문 고리를 잡고 계속 흔들며, 살려 달라 울부짖고 있는 김 대리 앞으로 이 박사가 천천히 다가갔다.


“자, 김 대리님. 이제는 직접 체험해보실 시간입니다. 저쪽~ 박 사장 옆 침대로 같이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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