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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귀 - 1장. 사냥꾼
게시물ID : panic_1021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eptunuse
추천 : 5
조회수 : 85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1/02/03 17: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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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Prologue

 

한 남자가 꿈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숨이 턱에 닿을 듯 달리는 와중에도 그의 입에선 쉴새없이 비명이 흘러 나왔다.

 

그런 그를 무언가 끔찍한 것이 뒤쫓고 있었다.

 

그건 악몽 따위로는 표현하기 부족할 정도로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역병들을 한사람 몸에 다 담은 듯 끔찍했다.

 

 

 

 

 

 

 

1. 사냥꾼

 

기령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다. 이미 날이 밝아 창호문 너머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대충 훑어내고는 갈증이 났는지 머리맡에 있던 물그릇을 들어 순식간에 비워냈다.

 

방금 전까지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았는데 전혀 기억을 할 수 없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 버렸다.

 

그저 며칠간 멧돼지를 잡는다며 설쳐댄 탓에 피곤해서 나쁜 꿈을 꾼거라 생각했다.

 

기령이 일어났는가?”

 

네 어르신. 일어났습니다.”

 

밖에서 들리는 노인의 목소리에 기령은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몸은 괜찮은가? 안색이 영 안좋구만. 요새 좀 무리한건 아닌가 싶네만.”

 

아닙니다, 어르신. 괜찮습니다.”

 

어르신이라 불린 노인은 마을 이장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왜소하고 병약해 보이지만 눈빛 하나 만큼은 호랑이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렬했다.

 

조선 최고의 사냥꾼이라 자부하는 기령조차도 이장과 눈만 마주치면 이상할 정도로 쩔쩔매게 되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만. 알겠지만 이제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네. 혹여나 쓰러지기라도 해서 제때 준비를 못한다면 선처를 바랄 수 없을테니 명심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 문제없이 준비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매번 얘기하지만 자네는 우리 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재야. 내가 직접 자네를 지목하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하네.“

 

기령은 몸이 바닥으로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황망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나저나 오늘은 자네에게 부탁이 있어서 왔네. 괜찮겠는가?”

 

네 어르신 말씀만 하십쇼.”

 

그래. 다른게 아니라 마을 어귀에 있는 울타리 말이야. 수리가 필요할거 같은데 일손이 조금 부족하네. 해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어르신 곧 가서 손보겠습니다. 그런데.... 울타리가 망가졌다는건.....”

 

기령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이장은 눈을 감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역귀가 내려온 겁니까?”

 

그래. 놈이 또 마을경계까지 내려와 울타리를 넘으려 했지. 다행히 경계를 서고 있던 녀석들이 잘 쫒아냈네만 오늘 안에 수리가 필요하네.“

 

기령은 한기를 느끼며 예전에 마주쳤던 역귀의 모습을 떠올렸다.

 

역병을 옮기고 다닌다는 그것은 이름대로 온갖 추악한 병들을 한몸에 다 담은 듯한 모습이었다.

 

멀리서도 그것의 악취를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의 울음소리는 고통에 울부짖는 병자의 비명 같았다.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기령이 할수 있었던 거라곤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

 

만약 운 좋게 경비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 역시 역병이 옮았을지 모른다.

 

아무튼 간에 부탁 좀 하겠네. 잘 알겠지만 우리마을이 역병으로부터 무사한건 다 역귀를 잘 막아내서네.

 

저놈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 마을도 역병이 퍼지고 말게야. 그렇게 되면 모두 죽은 목숨이니, 내 자네만 믿겠네.

 

경비대들도 쉴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마을 수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장 휘하 경비대가 매일밤 경계를 서며 역귀를 쫒아내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경비대는 모두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며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기령역시 언젠가는 이 경비대에 들어가길 꿈꾸고 있었다.

 

". 어르신 염려 마십시오.“

 

그리고 한번 더 당부하네만. 절대 늦지 말게.”

 

그렇게 말한 노인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기령은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지 크게 한숨을 쉬고는 곳간에서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울타리를 빨리 수리해야 사냥을 나갈 수 있다.

 

이번 달에는 마을 세금의 반 밖에 채우지 못했으니 혹여나 기일을 제때 맞추지 못한다면 마을 밖으로 추방 되버리고 말것이다.

 

훌륭한 이장덕에 역귀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이 마을과는 달리 전국은 지금 역병으로 인해 사람이 파리처럼 죽어나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쫒겨 났다간 다른 마을에 당도하기도전에 역병에 걸려 비참하게 죽을 것이 뻔했다.

 

기령은 그런 일만은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염병! 오늘은 토끼새끼 하나 안보이네.”

 

기령은 텅 비어있는 덫을 보며 욕지거릴 뱉어냈다. 아무것도 잡지 못했는데 벌써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허탈한 마음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산 아래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크고 작은 산들이 빼곡이 자리잡은곳 한가운데 위치한 마을은 외진곳에 있는 것 치고는 상당히 규모가 컸다.

 

기령이 태어나기 전만해도 촌락에 불과했다지만 훌륭한 이장 덕에 빠르게 발전한 것이다.

 

역병으로 난리가 난 와중에도 이 마을만은 안전하여 인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 마을의 주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부심이 생기는 듯 했다.

 

잠시 미소지었던 기령은 이내 표정을 굳혔다.

 

저 마을에서 계속 살기 위해선 반드시 기한안에 정해진 만큼의 상납을 해야했다.

 

평소라면 빈손이라도 그냥 포기 하고 돌아갔겠지만 아침에 이장님이 했던 말도 있고 해서 마음이 급해졌다.

 

기령은 꿩 한마리라도 잡아 돌아가리라 마음먹고는 좀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짐승의 흔적을 쫒아 산을 오르다 보니 금세 어둑어둑 해졌다.

 

해가 완전히 떨어져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때까지 산을 헤메고 다닌 기령이 잡을 수 있었던건 토끼 한 마리와 뱀 한 마리였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빈손보다는 나았다.

 

내일은 뱀술이라도 담가서 이장님께 선물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한 기령은 횃불을 붙이기 위해 나뭇가지를 꺽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끔찍한 악취가 풍겨왔다.

 

기령은 즉시 소리를 죽인채 그 자리에 웅크렸다.

 

잠시 귀를 기울이자 멀지않은 곳에서 기묘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것은 울음소리라기 보단 고통에 찬 신음소리에 가까웠다.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어두운 산속은 근처의 윤곽만 간신히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기령은 단도를 빼서 단단히 쥐고는 가만히 소리에 집중했다.

 

냄새는 점차 진해지고 있었고 이제 바스락 거리는 발걸음 소리 역시 들을수가 있었다.

 

단검을 쥐고 있는 기령의 손에서 땀에 배어 나왔다.

 

견딜수 없을 정도로 지독해지는 냄새에 코를 틀어막은 기령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곧 지척 거리에 있는 커다란 형체를 발견했다.

 

키는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클 뿐이었지만 몸체는 살덩이를 잔뜩 뭉쳐 놓은 듯 두꺼웠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몸은 온갖 고름과 상처와 진물로 범벅이 되어있을게 뻔했다.

 

팔은 축 늘어진채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짤막하지만 두꺼운 다리는 비틀거리면서도 용케 넘어지지 않고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역귀...’

 

예전에 봤던 그 모습이었다. 기령은 우선 움직이지 않고 녀석이 지나가길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역귀란 녀석도 머리 같은게 있기는 했지만 역시나 몸통처럼 엉망이기에 눈이 좋지 않을 것이다.

 

기령은 사냥하던 때의 감각을 살려 역귀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도록 숨을 죽였다.

 

역귀가 그냥 지나가길 바랬지만 기령의 바람은 금세 깨져 버리고 말았다.

 

잠시 멈추는가 싶었던 역귀는 갑자기 새된 비명을 지르며 기령의 방향으로 달려왔다.

 

이런 젠장!”

 

기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력으로 산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틀대던 역귀는 달리기 시작하자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달리는 토끼도 몰아 잡던 기령을 금세 따라 잡을 기세 였다.

 

이곳에서 저번처럼 경비대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이대로 도망만 가다간 잡힐게 뻔했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기령은 역귀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단검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역귀가 지척으로 다가온 그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서는 역귀의 머리를 향해 단검을 집어던졌다.

 

단검은 힘있게 날아가 바로 몇발자국 뒤에있던 역귀의 머리에 정통을 꽂혔다.

 

담검을 날리는 반동으로 중심을 잃은 기령이 묘기를 부리듯 바닥을 굴러 일어났을때 역귀는 머리에 칼이 박힌 채 쓰러져서 꿈틀대고 있었다.

 

잘못하면 역병이 옮을지 모르니 곧바로 도망쳐야 했지만 문득 기령은 욕심이 생겼다.

 

만약 자신이 역귀를 죽인다면 이장에게 인정받고 경비대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령은 재빨리 횃불하나를 만들어 불을 붙이고는 허리춤에서 손도끼를 꺼내어 역귀에게 다가갔다.

 

손도끼를 높이 들어 올리고 불빛으로 역귀의 모습을 비친 순간 기령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기령이 움직이지 않자 역귀는 다시한번 비명과 같은 울음소리를 지르고는 꿈틀거리며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역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까지도 기령은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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