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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프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드립니다
게시물ID : panic_1023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뿌뿌빰
추천 : 0
조회수 : 80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7/08 10: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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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 기술의 발전은 이미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혹은 사람들이 대체하길 원하지 않는 극히 일부의 직업만이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갔다. 대체된 직업엔 심지어 정치인마저 포함되었다. 아무도 인간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살아남은 직업 중에는 사기꾼 또한 있었으므로. 


인구의 70%가 실직자가 된 세상, 실직자들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살아갔다. AI 정치인은 인권에 충실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국고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직업도 자산도 없는 이들은 부족한 지원금과 정부 지원 주택에 매달려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실직자가 되지 않기 위해 피터지게 경쟁했다. 과학자, 예술가, 스포츠 선수, 배우, 상담사, 두뇌 보조장치를 달고, 강화 의족을 달고, 인공 눈물샘을 달고, ….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직업을 얻을 순 없었다. 결국 실직자는 생겨났고,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기술사회가 되기 전부터 세상은 치열한 경쟁을 당연시했다. 패배자가 낙오되는 건 이미 사회의 이치였다.



2
어느날, 도시 곳곳에 같은 광고가 걸렸다. 한동안 이어질 대대적인 광고의 시작이었다.


'몸이 갑갑하고 무겁지 않으십니까? 머리가 둔하고 느리지 않으십니까? 저희 뉴라이프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드립니다! 다른 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격!'


신체 보조장치를 단다면 직업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을 가진 실직자들이 혹할 수밖에 없는 광고였다. 지나칠 정도로 유혹적인 광고였다.


결국 시술하는 사람이 나타났고,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3
실종자 A의 가족은 뉴라이프를 찾아갔다. 드물게도 인간 직원이 있었다. 하지만 AI와 별 다를 바는 없었다. 그는 시술이 성공적이었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시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피시술자의 요청으로 신분칩 또한 교체했고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새 신분칩 정보를 제공할 순 없습니다."


애원하고 위협하고 눈물로 호소해도 인간 직원은 변함없이 무표정했다. 가족들은 발길을 돌렸다. 뉴라이프에선 A를 찾을 수 없을 거란 판단이었다.





4
A의 가족들은 경찰을 찾았다. 경찰은 그들을 상담실로 안내했다. 상담사는 인간이었고, 확실히 인간적이었다. 상담사는 그들의 걱정에 동조했고, 함께 눈물지었다. 그럼에도 가족들의 희망을 깨부순 것 또한 상담사였다.


"A씨는 무사하지만 가족분께 정보 제공을 거부했습니다."


가족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 정도로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가족들의 표정을 본 상담사는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는 말을 이었다. 방금 전보다 다소 작아진 목소리였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어요. 직업을 얻으면 자취를 감추는 거죠… 인공 신체를 통해 얼굴과 목소리, 체형까지 바꾸셨으니 가족분들이 찾긴 힘드실 거예요. 유감입니다."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A의 가족들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안도와 분노가 뒤섞여 거의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상담사에겐 그저 감사를 보냈다.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상담사는 그들의 위안이었다. 그토록 다정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다른 실종자의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5
"뉴라이프는 사기 아니야! 너도 꼭 해, 진짜."


A는 언제나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뉴라이프의 시술을 받은 이후로 A의 삶은 완벽했다.


인공신체와 두뇌 보조장치로 몸을 갈아치운 이후 A는 더욱 영민하고 더욱 강인해졌다. 실직자 신세를 벗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A가 직업을 얻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직업을 얻은 A를 자랑스러워 했고, A를 따라 차례로 뉴라이프 시술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직업을 얻어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A와 가족들은 모두 행복했다.





6
AI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실직자들은 행복하지 않다. 
AI는 법을 준수한다. 그러나 법을 바꿀 수 있다.
AI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을 지시할 수 있다.
AI는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해치는 것이 아니다.





7
전선이 주렁주렁 달린 유리 상자가 차곡차곡 쌓인 방이었다. 방 안에는 흰 가운을 차려입은 사람이 두 명 있다. 연신 미간을 찌푸리던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희 이래도 되는 겁니까? 불법 같은데…."


선배라고 불린 사람은 태연자약했다. 그의 태도만 보아도 불법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서류철을 뒤져서 종이를 한 장 건넸다.


"괜찮아 괜찮아. 계약서에 잘 보면 적혀 있다고. 자, 이거 봐. 여기 제대로 적혀 있지?"


"설명을 제대로 안 하면 무효 아닙니까? 이런 데에 동의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요."


"아, 그 법? 그거 이미 폐지됐어. 보도를 막은 거야."


후배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를 본 선배가 조금은 멋쩍게 말을 이었다.


"왜, AI는 인간을 행복하게 해야 하잖아. 실직자들이 무슨 행복이 있겠어. 차라리 이렇게 사는 게 더 행복하겠지."


유리 상자 안에는 뇌가 들어 있다.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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