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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괴담 시리즈] 영생어(2020)
게시물ID : panic_1024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환상괴담
추천 : 6
조회수 : 96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9/13 00:03:18

비릿한 냄새가 또 코끝을 간지럽힌다.

깊은 바닷속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진득할 수가 있을까.

혀를 깔짝거리노라면 찝찌름한 맛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런 비릿하고 축축한 공기를 맡고 사는 이들은 모두 반쯤 말린 생선처럼 쭈그러져 있다.

그런 어느 여름날의 불쾌한 저녁이다.

" 무슨 생각으로 매립지 위에 기숙사를 지어놨는지, 아주 소금냄새 때문에 사람 죽겠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야 되는데, 바람이 아니라 쩐내가 들어와, 쩐내가.

이래서야 쉬어도 쉬는 게 아니라니까. 너네 지금 웃지? 한 번 살아봐, 죽겠다 소리가 절로 나올걸. "

" 알았으니까 좀 그만해, 아우, 몇 일을 저 주제로 떠드는거야, 이젠 술자리에서까지 이러냐,

사무실에서도 하루 종일 저랬다니까... 야, 해인아. 네가 기숙사 관리담당이잖아~ 어떻게 좀 해줘봐~ "

" 나? 아니, 뭐... 내가 담당이긴 한데... "

" 그래? 해인이가? 잘 됐다, 기숙사 위치는 애초에 바닷가에 지었으니 이제 와서 옮길수도 없는거고,

내가 내부고발 한 번 하자. 나 같은 층에 누가 개 키우는 거 같더라고, 개가 밤낮으로 낑~낑~, 막 앓는 소리를 내거든,

진짜 왈왈 짖는 것도 아니고, 못 짖게 성대수술이라도 시켰는지 계속 낑낑거려. 기숙사에 개 키울 수 있냐?

내부규정에 반려동물 금지로 못 박아둔 거 아니었어? "

" 개 키운다고? 아~ 진짜 짜증나, 누구야 진짜... 오빠가 몇 층 몇 호였지? "

총무부에서 직원 기숙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해인에게 오늘의 동기모임 화제는 다소 불편했다.

안 그래도 기숙사가 세워진 위치에 대한 불만부터 시작해서 가전기기의 잦은 고장, 쓰레기 분리수거 문제로 인한 이웃주민들과의 마찰,

도어락을 달아달라, 씨씨티비를 달아달라, 별의별 기상천외한 민원이 안과 밖으로부터 쏟아지는 탓에

본인이 회사원인지 원룸 건물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달리고 있던 터였다.

오늘은 그런 민원의 종합선물세트를 맛보던 중 화룡점정으로 개까지 키우고 있다는 고발에 해인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 나 1동 3층 304호. 바로 옆방은 누구 사는지 알고, 내 생각에 304호야. 거의 확실해. "

" 304호? 확실하지? "

" 그래. 제발 어떻게 좀 해라. 네가 못 하겠으면 너희 팀장님보고 조치 좀 하라고 해. 내가 찾아가서 초인종을 눌러봐도 뭐 나와야 말이지.

개만 안에서 끙끙댄다니까, 짖으려면 시원하게 짖던지 그 놈의 낑낑소리 듣다보면 소름끼쳐. "

" 알았어. 월요일에 바로 출근하자마자 그것부터 처리할게. 최소한 내 전화는 받겠지. 기숙사 담당자 전화 오는 건 돈 내놔라 아니면

기숙사에서 나가라 둘 중 하나니까 안 받고 뻐기겠어? "

" 오~ 역시 총무과는 뭔가 다른데. 끗발 있네, 오늘은 기숙사 얘기 끝! 야, 다같이 짠 한 번 하자. "

처리하겠다고 둘러댄 끝에 기숙사에 대한 이야기는 수그러들었지만 해인의 마음 속은 일요일 밤 벌써부터

출근하자마자 처리해야 할 숙제들로 어지러웠다.

김정근이다.

304호에 살고 있는 사원은 낙하산으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도는 김정근이다.

일은 그럭저럭 한다지만 인간관계는 완전히 낙제. 3개월을 주기로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탁구 치듯 떠밀어넘기는데도

해고는 절대 당하지 않는 의문의 인물.

갓 건져올린 오징어 한 마리를 육지에 앉혀놓은 듯 창백하게 질린 혈색은 그의 기분에 따라 울그락불그락,

항상 음울해보이는 표정에, 절대 잇몸과 혓바닥을 보여주지 않을 듯이 조곤조곤 말하는 습관.

퇴근하면 집이 아니라 어디 모래사장 밑으로 파고 들어갈 것만 같이 어둡고 축축한 사람.

'...골치 아프네. 별로 말 섞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몰라, 내일 생각하자. 몰라, 몰라! '

" 야, 띵동 눌러봐, 나 생맥 추가. "

" 오, 해인이 뭐야~ 내일 연차 썼어? 오늘 일요일이야, 내일 무사하려면 알아서 조절해서 마셔~ "

뜨거운 안개로 샤워하는 밤.

업무생각까지 하다간 폭탄처럼 순간 펑 터져버릴 것만 같다.

내일 생각하자면서 내일을 생각하기 싫어 오늘 한 잔해야만 하는 밤이다.

뽀얀 크림이 올려진 생맥주 한 잔 더.

그제야 해인은 술에서 술맛이 난다고 느꼈다.

2.

" 수고 많으십니다, 총무부 정해인입니다. 김정근 대리님 자리 안 계신가봐요? 아, 출장 중이시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휴대전화로 한 번 연락해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

출장 중이라, 그 말미잘 같이 굼뜬 사람이 정작 자기 찾는 날에는 없구나.

해인은 투덜대며 업무용 메신저에 올라와있는 정근의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곧장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벨소리가 들리다 말고 연결음이 꺼져버렸다.

" 뭐야. "

곧이어 도착한 문자 메시지에는 '지금 연락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한 줄만 적혀있을 뿐이었다.

' 아, 짜증나네. 내가 뭐 보고 싶어서 전화한 줄 알아? 혼자 바쁘나? 귀찮게 하네. '

쪽지 쓰기로 '총무부 정해인입니다. 기숙사 관련해서 문의드릴 게 있어서요.. 쪽지 보시면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내용을

남겨둔 뒤 해인은 자리 옆에 잔뜩 쌓인 다른 업무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전화 받고, 물어보고, 내 일은 내가, 남일은 남한테, 돌리고 돌리는 돌림판같은 회사생활이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모를만큼 팽그르르, 돌아가더니 하루가 또 끝이났다.

" 저... 팀장님. "

" 가라~ "

" 팀장님은...? "

" 갈꺼다~ "

" 넵. 내일 뵙겠습니다... "

퇴근카드를 찍고 회전문을 나서는 순간 해방감이 살짝 돈다.

여전히 끝내지 못 하고 남겨둔 숙제가 많이 남았단 사실에 주춤하다가도,

까짓거 퇴근했으면 끝이라며 애써 고개를 휘젓는 해인이었다.

해인의 차가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다.

멀찍이 기숙사가 보인다.

벌써 퇴근하고 사람들이 들어찼는지 반 이상은 창문이 환하다.

기숙사 담당자가 정작 본인은 기숙사에 방 한 칸이 나지 않아

멀리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모순이 퍽 우습다.

기숙사 때문에 시달리는 와중에 그곳에서 숙식까지 할 바에야 이 편이 낫다고 스스로를 달래다보니

어느덧 해인은 자신이 사는 원룸 문을 열고 들어선 참이었다.

반기는 이 하나 없다.

기계적으로 몸이 기억하는 위치를 탁, 때리니 빛이 찾아든다.

에어컨까지 켜놓으니 비로소 밝고 시원한 사람 사는 방 같다.

그러나 오늘도 마음 속 한 켠의 공허함은 빛으로도 바람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 ... "

개? 나도 이 참에 강아지나 키워봐?

그러나 며칠 전 동기가 말하던 '낑낑'거리는 개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혼자 남아있을 강아지에겐 못할 짓이다.

적적해진 마음에 연락처를 이리저리 살펴보다 '엄마'라고 쓰여진 번호 앞에서 한참 머뭇거리지만 그조차도 연락하지 않는다.

혼기가 차오른 딸 시집 보내려고 이 맞선 저 맞선 다 물어오는 엄마가 이번에는 또 어떤 남자를 만나보라고 할 지 겁이 날 지경이다.

" 하아~ 결혼은 무슨 결혼이야. "

대충 샤워. 대충 유튜브. 대충 침대 위에.

대충대충, 회사에선 눈도 열심히 뜨고, 숨도 열심히 쉬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만사에 대충대충.

뭐 어때, 살 맞대고 사는 사랑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아무렇게나 살면 좀 어때.

해인은 대충 그렇게 잠에 든다.

' 나 완전 껍데기만 멀쩡한 사람같다... 속으론 아무 것도 없이 텅빈 사람. 누가 나 확 안 채가나?

물장난 치듯 사람 간 보는 어중이떠중이들 말고, 확 낚아채서 바다에 같이 풍덩 빠져버릴 사람 없을까...?

말자, 말아. 집, 회사, 집, 회사, 바다는 가지도 않으면서 바다의 왕자님을 꿈꾸고 있어... 음... 음냐.... '

3.

끼잉, 끼잉ㅡ.

바둑아, 누나 여깄어, 너 어디야? 이리 와, 이리 오라니까.

끼잉! 끼잉ㅡ!

어릴 적 잃어버린 강아지가 근처에 있다,

아무리 해인이 목청껏 불러봐도 낑낑거리는 소리만 간신히 맴돌 뿐이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들리는 그 소리가 더욱 해인을 어지럽혔다.

바둑아ㅡ 누나가 갈게, 누나가... 아으윽!

첨벙, 소리와 함께 해인은 어둠 속 깊이 가라앉았다.

물보라가 한 번 일더니 언젠가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깊이도, 폭도, 가늠할 수 없는 완전한 어둠의 바다다.

부글부글, 얼굴에 난 구멍 곳곳에서 쉴 새 없이 거품이 뿜어져나오고 있지만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

'왜, 왜 숨이 안 차지...'

순간 코와 폐를 찌르는 듯 선명한 통증에 해인은 비명을 질렀다.

" 꺄아악-. "

해인은 잠에서 깼다.

정말 물에 빠졌다가 돌아오기라도 한 것 마냥 침대가 흥건할 정도로 땀에 젖어있었다.

코와 목도 쓰라린 것이 더욱 기묘하게 느껴졌다.

하다하다 꿈도 개 꿈을 꾸는거냐며 애써 웃어넘기곤 아닌 밤중의 샤워를 마친 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거실로 나와 티비를 켰다 끄기를 반복하다 끝내 날이 밝았다.

퀭해진 얼굴을 화장으로 덮은 채 출근하는 몸뚱이가 천 근은 되는 듯 묵직했다.

' 아직도 출근을 안 했네. '

출근시간이 훨씬 넘었는데도 메신저에 접속할 기미가 없는 정근을 기다리다 못 해

해인이 동료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대답은 그야말로 반전이었다.

- 김정근? 사표 던져놓고 무단 조퇴에요. 언젠가 사고 치겠지 했는데 하필 우리 부서에서 터지네.

해인은 복도로 나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클어뜨렸다.

기숙사 퇴실 신청도 없이 퇴사부터 하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이대로 연락이라도 두절되는 건 아닐까,

여러 상황을 가정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 저, 팀장님. 저 출장 좀 다녀오겠습니다. "

" 김정근 때문이지? 다녀와. 오늘 뭐 급한 거 없잖아? 천~천히 생각 정리 좀 하다가 와.

내일 연차라도 하루 쓰던지. 요즘 해인 씨 얼굴이 많이 죽었어. 세상 근심걱정 혼자 다 짊어지고 있다고. "

" 죄송합니다. 오늘 김정근 씨 집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마스터키로 문 따고 들어가서 대체 뭐 하는 인간인지 좀 보고 올게요. "

" 그러면 주거침입이잖아. "

" 그럴걸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

" 허어-, 해인 씨. 열 많이 받았네. 조심해서 다녀와! 진짜 문 따고 들어갈 건 아니지? 없으면 그냥 와! "

팀장의 당부를 듣는 둥 마는 둥 해인의 서두르는 발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4.

딩동.

...

딩동딩동ㅡ, 딩동딩동-.

점차 신경질적으로 눌러대자 한참 뒤에 인터폰을 타고 습기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누구세요...

" 저 총무과 정해인인데요! 김 대리님, 사표 내셨다는 거 진짜에요? "

- 예. 맞아요.

" 아니, 방을 언제 뺀다 협의도 없이 출근을 안 하시면 어떡해요? 지금 이사 준비 하시는 거에요?

갈 곳은 정해두셨구요? "

- 내일 얘기하시죠.

" 아뇨! 제가 내일 올 시간이 어딨어요, 사무실 일 처리하기도 바쁜데. 오늘 꼭 얘기해야해요.

기숙사 퇴실 신청서도 다 가져왔어요. 바로 작성하시면 됩니다. "

- ...

" 문 열어주세요! "

- 뭐, 상관없습니다.

' 상관없다고? 완전 어이없네, 자기가 무슨 갑이라도 되는 줄 알아, 뭐야 이 사람. '

문의 잠금이 풀리자 정근이 직접 열어주기도 전에 해인이 벌써 들어온 뒤였다.

구두를 훌렁훌렁 벗어던진 채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해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 이, 이게 뭐야? "

" ... 놀라셨나요. "

" 이게 뭐냐니까요? "

방은 우려와 달리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었지만,

방 가운데 놓여진 가로 세로 높이가 2.5미터씩은 됨 직한 크기의 유리수조 안에

꼬불꼬불 몸을 만 채 두 눈을 번쩍이는 무언가가 입을 이따금씩 벌리고 있었다.

" 영원히 죽지 않는 신입니다. 그래서 영생어라고 하죠. 줄무늬 좀 보세요. 너무 아름다워요. "

얼룩말처럼 죽죽 그어진 줄무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그려져 정체 모를 존재의 전신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소용돌이를 다 펼치면 10m, 20m... 한없이 이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무지개를 그리고 있었다.

" 줄무늬 하나 하나가 자리 잡는데 천년이 넘게 걸립니다. 정말 멋진 나이테죠... "

" 대체 방 안에 뭘 키우고 계셨던 거에요, 강아지 짖는 소리가 났다던데... 그럼 그게 아니고 이 물고기가 그동안 울었던 거에요? "

" 오래 전 수족관에서 일했었거든요. "

" 네? 무슨 말씀이세요. "

"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수족관입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어떤 수족관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저는 선임 사육사였고 모든 구성원을 사랑으로 사육했습니다. "

" 뭐래...? "

" 그런 절 옆에서 응원해주던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관장의 딸이었구요.

우리는 작은 사랑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지만... 곧 그 사실을 안 관장이 저를 해고했습니다. "

" 무슨 소리 하시는 거에요... 술 드셨어요? "

" 최고의 수족관이었어요. 지금은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는 깊은 바다의 진귀한 생물들이 가득 했어요.

애초에 보살필 능력이 안 되니까 수소문해서 저를 부른 건 관장 본인이었다구요. 제가 해고된 후 그 생물들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 해 죽어나갔을 겁니다. 전... 순순히 해고 당해주는 댓가로 이 영생어만큼은 몰래 데리고 나온 겁니다. "

" 우으... "

해인은 어딘지 모르게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다리가 중심을 잡지 못 하고 후들거렸다.

" 안내 팻말도 없이 구정물 가득한 수조에 방치되어있던 이 아이를 전 한 눈에 알아봤었죠, 줄무늬 한 줄마다 천 년을 간직한 영원히 사는 신,

바로 이 아이가 그 영생어라는 걸 말입니다. 전설과 진실이 마침내 일치하는 그 전율을 상상해보세요. "

해인은 숨이 가빠오는 걸 느끼자 목을 두 손으로 감싸쥔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이 영원히 사는 신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평범한 사료는 당연히 아닐테니까요. "

어느샌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해인은 간신히 정신만을 붙들고 있었다.

" 영혼입니다. 해인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해인 씨의 기운이 사라져가는 이유도 바로 영혼을 빨아먹히고 있기 때문이죠. "

해인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정근은 무심히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 참, 아까 개 키우냐고 하셨죠. 그동안 울어서 주위에 피해를 끼쳐드렸나 보네요. 사과하는 의미에서... 뭔지 보여드리죠.

참고로 영생어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영생어는 가청 주파수를 아득히 넘어선 파장으로 의사소통을 하거든요.

뭐... 영생어가 어떻고간에 안 들리시죠? 낑낑 대는 소리 때문에 오셨다면 그게 뭔지나 보여드리는게 우선이겠죠. "

정근이 해인을 번쩍 안아올린 채 베란다로 데려갔다.

~~~?!!

해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끼잉ㅡ.. 끼잉-..

한 여인이 밧줄과 테이프로 번데기마냥 묶여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 아까말한 제 사랑입니다. 수족관 관장의 딸... "

으, 으읍!

공포에 휩싸인 해인이 격하게 몸부림치자 정근은 해인을 귀찮다는 듯 바닥에 휙하니 던져버린 뒤 영생어가 담긴 수조로 다가갔다.

두 여인이 동시에 울부짖든 말든, 수조를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만지며 그의 독백은 계속되었다.

" 백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더러워요. 너무 더러워. 관장도 그래요.

날 추켜세우며 데려와 사육사를 시킬 때는 언제고... 딸과 사랑하려드니 곁에서 쫓아내는 걸 봐요.

전 그 뒤 망해버린 수족관을 통째로 사들였고, 관장을 사육사로 부리다가 물고기밥으로 던져주었죠.

근데, 인간은 참 나약해요, 간사해요. 믿을 수 없어요. 그녀는 다시는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더군요.

열 번, 백 번을 고백해도 받아주지 않더라구요. 제 사랑은 길어봐야 백 년을 못 가는 인간의 사랑 따위와는 차원이 달라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사랑을 줄 수 있다구요, 생각해봐요, 얼마나 황홀하고 낭만적이에요? "

" 영생어가 그런 저에게 구원을 주려해요, 혼을 먹여가며 키운 사육사에게 썩지 않는 육신을 주기로 했어요,

이 여자하고 저에게 말입니다. 둘 다! 이제 그녀는 절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거에요, 아득히 깊은 해구 속을 그녀와 나

둘이서만 영원히 유영한다고 생각해보시겠어요? 칠흑 같이 어두운 바닷 속, 영생어의 줄무늬에서 살짝 살짝 비치는

무지개빛을 가로등 삼아 불멸의 육신을 가진 두 남녀가 영원히! 그래! 영원히! 바다를 거닐고 또 거니는 거에요! "

" 그 누구가 된들 상대방과 영원히 함께 한다면 언젠가는 마음의 문을 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열 때까지, 영원히, 영원히 함께 사는 거에요. 열어도 영원히, 열지 않아도, 영원히, 끝 없이, 아득하고, 깊은 바다. "

" 해인 씨... 아무래도 하객 하나 없는 결혼식은 초라할 것 같아요. 마침 와주셨으니 저희 부부 결혼식에 정식으로 초대하겠습니다. "

정근이 옆에 있던 의자를 집어던져 수조를 깨버리자 그 안에 가득했던 물이 304호 안에 쏟아졌다.

영생어는 뱀처럼 바닥을 기어 문 밖으로 빠져나가고, 정근은 알 수 없는 괴력으로 두 여자를 동시에 들어올린 채 그 뒤를 뒤따랐다.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묘한 광경이었다.

길이의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물고기가 앞을 기어가고, 표정 하나 없는 남자는 낑낑거리는 두 여자를 짊어진 채

그 뒤를 천천히 쫓고 있었으니까.

그 행렬이 바다까지 이어지는 점 또한 그들을 더욱 이질적으로 보이게 했다.

마침내 수면에 이르자 영생어는 여인과 정근의 발목 사이를 휘젓고 다니더니 마침내 끈처럼 둘을 하나로 묶은 채 바다로 기어들어갔다.

해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힘없이 바라만, 바라만 보다가ㅡ...

영생어와 한 쌍의 남녀가 결국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버린 후에는 이미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5.

섬 많은 남쪽 바다 어딘가,

해양경찰 경비정 한 척이 바다에서 사라졌다는 노인 한 명을 찾아 천천히 항해하고 있었다.

쌍안경을 들고 바다를 살피던 전경 한 명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옆의 선임을 넌지시 불렀다.

" 박 수경님.. 남자 한 명이랑 여자 한 명이 물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지 말입니다. "

" 뭐라카노? "

" 정말입니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입니다. "

" 이 새끼 쳐돌았나, 여기 바다 한 가운데야. 수온도 차고 깊이만 해도 수 백 미터다.

어느 정신 나간 커플이 바다 위에 떠있어? 어디 있는데? 한 번 보자. "

" 그게... 지금은 들어가버렸지 말입니다. "

" 덜 잤나? 아니면 덜 맞았나? 와 이라노? 지금 우리가 찾는 건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찾기 전에는 입항 못 한다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라. 한 번만 더 그딴 소리하면 그땐

농담 아니고 정신병원에 쳐넣는다. 알긋나? "

" 죄송함다. "

끼이잉ㅡ.

끼이잉 ㅡ ..

" 아이씨! 너 때문에 나까지 또라이 된 거 같잖아! 와 자꾸 강아지 앓는 소리가 들리노? "

" ... 박 수경님도 그렇습니까? "

" 아아, 그만! 그만하자! 더 이상 얘기하지 마라. 니도 내도 피곤해서 그런거라고 생각하자.

할아버지 찾는데나 집중해라. 이제 말 걸지마라. 내도 말 안 걸테니까. "

끼이잉ㅡ.

끼이이잉 ㅡ...

경비정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슬픈 소리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아주 서서히,

또 다시 '깊은 곳'으로 향하는 모양이다.

ㅡ 환상괴담, '영생어(2020)' 끝.

괴담의 중심 The Epitaph & 공포문학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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