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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동화] 유령선
게시물ID : panic_1026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젤넘버나인
추천 : 7
조회수 : 10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12/15 11: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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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유령선


배가 바다에 표류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해외에서 얻은 물건을 싣고

대양을 건너 고국으로 돌아가던 중

길을 잃고 만 것이었습니다.

 

 

해와 별의 위치로 보아

이곳이 적도 북단이라는 사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

하늘과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의 한결같은 풍경은

마치 벽이 없는 미로와도 같았습니다.


 

싣고 왔던 식량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선원들 사이에서 절망이 전염병처럼 번지던 어느 날 밤

갑판에서 보초를 서던 선원 하나가

저 멀리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를 발견했습니다.

 

 

갑판으로 몰려나온 선원들은

배를 향해 소리 지르며 전속력으로 쫓아갔지만

 배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어느새 배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날이 밝자

선장과 선원 몇이 사라진 걸 깨달은 선원들…


 

선원들이 배 안을 뒤져도

그들의 실종에 대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선원들은 밤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위로

전날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떠다니는 배를

다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선원들은 곧바로 배를 추격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배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고

또다시 배는 홀연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선원들은 동료 몇이 사라진 걸 알게 되었습니다.


 

유령선이다.

저승에서 우리를 데리러 온 것이 틀림없어.

이건 저주야.


 

누군가 공포에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두번의 추격과 선원들의 실종 이후

선원들은 밤이 되면 갑판 아래로 내려가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비록 유령선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선원들은 밤마다 점점 가까워지는

유령선의 존재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고

실종되는 선원들의 수도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결국

그 많던 선원들은 사라지고

부선장을 포함해 선원 다섯만이 남았습니다.


 

해가 지자 갑판 아래의 선실에 한데 모여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던 부선장과 선원들…


 

갑판으로 이어지는 문틈 사이로 희뿌연 안개가 스며들자

선원들은 유령선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소리 가운데

부선장과 선원들을 부르는 공허한 목소리…


 

발작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힌 선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단한 부선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을 향해 사다리를 탔고

선원들은 그런 부선장을 말렸지만

이미 죽음을 각오한 부선장은 그들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갑판에 나온 부선장은

뿌연 안개 더미 사이로 보았습니다.


 

흉한 몰골을 한 배의 모습을…

갈기갈기 찢겨 거미줄처럼 늘어진 돛과

기이한 모습으로 기울어진 선체…

갑판에 모여 부선장을 부르며 손짓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모두 배에서 실종된 선원들이었습니다.

 

 

순간

무시무시한 생각이 부선장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부선장은 유령선에 올라타기 위해 배에서 뛰어내렸지만

유령선은 안갯속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몇 주 뒤

항구에 배 한 척이 도착했습니다.


 

해외에서 얻은 물건을 싣고

대양을 건너 돌아오던 도중 풍랑을 만난 배는

무척이나 흉한 몰골을 하고 있었습니다.


 

배를 덮친 파도에 휩쓸려 실종된 선원이 다섯 명…

그중에는 부선장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원들이 바다에서 보았던 배는

그들을 저승으로 데려가기 위한 저주받은 배나

유령선이 아니었습니다.


 

부선장이 안갯속에서 놓친 그 배는

이승으로 돌아갈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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