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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를 보았다
게시물ID : panic_500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꼬꼬~
추천 : 2
조회수 : 127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12 17:02:24

지금 나는 5층 건물의 가장 자리로 걸어가고 있다. 나는 곧 죽게 될 것이다. 왜 굳이 떨어져 죽을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소공포증이 있는데도 말이다. 다만 마지막은 답답하고 싶지 않았다. 막힌 공간이 싫다. 마지막 세상과 작별을 고하며 하늘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건물 가장 자리로 향하고 있다. 


내가 몇 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는 너무 내 삶을 낭비하고 있었다. 온갖 탐욕을 이기지 못했다. 잠도 이기지 못했고 술도 이기지 못했으며 하다못했다. 젊은 날에는 색욕의 노예가 되어 쾌락을 탐하며 살았던 적도 있고 일확천금의 노예가 되어 늘 돈돈하며 아까운 열정을 낭비했다. 그렇게 부질없이 시간이 흘렀다. 뭔가 변변히 하나 이룬 게 없다는 게 이렇게 참기 힘든 감정인지는 몰랐다. 젊을 때 원기왕성할 때는 이런 나약한 시절이 있을거라고는 차마 생각지도 못했다. 어쨌든 내겐 희망이 없다. 더 이상 내게 남은 반전의 카드는 없다. 포기할 것도 분노할 것도 남아있지 않다. 사치다. 곧 세상을 등질 사람에게는. 


왜 좀 더 내 꿈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없지는 않았다. 그 느낌이 강하지 않았을 뿐. 지금 다시 선택하라면 그 길을 선택하고 싶은 뭔가는 있었다. 하지만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세상 사람들이 그 일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는 이유로 접었다. 버렸다. 늘 했으면 하는 생각만 있었을 뿐 실제로는 하지 못했다. 


마지막을 앞 둔 지금 이 순간. 왜 그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죽음을 택하게 되었을까도 생각해 본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났다. 이제는 어떤 것도 변화시킬 힘이 없다. 열정도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갈 필요가 없는 너무나 많은 길을 택하려고 방황하다 결국 아무것도 못한 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잠시 풍족했던 시절이 있었을 뿐 지금 내겐 모은 돈도 없다. 구석진 방, 곰팡이 냄새 나는 이불에서 더 이상 목숨을 연명하고 싶지 않다. 궁핍해도 봉사의 손길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 얘기를 들어 줄 따뜻한 차 한 잔은 그리웠다. 가족들은 떠났거나 이미 죽고 없다. 내 친구들은 남이 되어 버렸거나 내가 갈 먼 곳으로 먼저 떠났다. 그들을 이제 만날 때가 왔다. 인생의 끝은 누구나 이렇게 외로운 걸까? 건물의 모퉁이를 향하는 한 발 한 발에는 천 가지의 사연이 담겨 있다.


비틀거리며 건물의 모퉁이에 올라섰다. 왜 이렇게 살았을까? 높이에 몸이 움찔한다. 그러나 물러서지는 않는다. 더 이상 있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게 잘못되었다. 이미 실패했다. 살만한 가치, 남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이승의 가장자리에 섰다. 모퉁이에 올라선 나는 잠시 건물 아래를 봤지만 나약해 질 것 같아 바로 먼 산을 응시한다. 두려움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마지막 소주 한 병의 힘은 크다. 울컥 무언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라올 때 나는 느꼈다. 이게 내가 이승을 하직할 마지막 힘이구나라고. 비상하고 싶었다. 훨훨 날아오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나는 추락하고 있다. 지면을 향하기보다는 땅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 중심을 잃었고 허공을 가르며 추락하는 이 찰라와 같은 마지막 순간에도 삶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이 두 눈에 가득하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이게 마지막 기억이 되는 걸까? 그 때 갑자기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과연 다음 생은 있을까? 죽음 이후에도 우리는 존재할까? 왜 그런 생각이 마지막 순간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을 살다간 모든 사람들이 궁금했지만 아무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던 그 의문의 답이 곧 풀린다. 이 순간 이후에도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확인할 수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리자. 


갑자기 이마에서 번쩍하며 불꽃이 튄다. 묵직한 충격은 없다. 그냥 멍한 기분이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볼 틈도 없이 어둠이 덮쳤고 윙하는 묵음만이 내 모든 걸 삼킬듯하다. 이제 비밀이 풀리기 직전이다. 과연 죽음 이후의 세계는 존재할까? 나는 확인할 것이다. 


칠흙 같은 어둠 저편에서 서서히 빨간 불빛이 하나 선명해 진다. 점점 색이 진해지고 그 강렬함은 커진다. 서서히 주변이 밝아 온다. 목에서 서늘한 땀이 느껴진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섰다고 확신하던 바로 그 순간 나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잠에서 깬 채 멍하니 앉은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느 노인의 기구한 마지막 순간이 현재 내 삶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 동안 꿈쩍도 하지 못했다. 무서운 이 체험이 너무 사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괴로움과 후회, 원망의 마음이 느껴진다. 나 아닌 내가 분명히 다른 세계에 존재했었다. 무엇이 꿈일까? 그 세계일까? 지금 이 세계일까? 아니면 그 어느 곳도 꿈이 아닌걸까? 이생에서의 마지막은 언젠가 또 다른 어딘가로 이렇게 이어져 있는걸까?


나의 미래와 같은 그 노인의 죽음은 내게 무엇을 전하는 걸까? 나는 왜 이런 체험이 내게 왔나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길과 실제로 가고 있는 길이 다르다. 결국 죽음 앞에서 되돌아 볼 때는 찰라와 같은 인생일텐데 왜 난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계속 남의 인생처럼 원하지도 않는 일들로 내 시간을 채울 것인가? 하룻밤에 겪은 죽음과 새로운 시작의 경험으로 나는 문득 내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면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다음 텀은 돌아오고 나는 이 생을 마감해야 한다. 그때까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살자. 


언제 생을 마감하게 되더라도 지그시 눈 감으며 후회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루하루.


늘 마지막인 것처럼 후회하지 않는 선택으로 가득찬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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