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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금 소설) 요녀 - 4 (BGM)
게시물ID : panic_527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39
조회수 : 3215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3/07/15 00:33:12





봉춘골에 핀 불꽃이 파도처럼 술렁이기 시작했다.
말 위에 오른 무인은 봉춘골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네년의 행실이 고을로는 색을 뿌리고 나아가 전국의 풍기를 문란케 하여,
그 입소문이 장안에 떠들썩하니! 조정의 대신들도 네 년의 망측함이 진노하시고
네 년의 목을 가져오라 엄명을 내리셨다! 필시 네년도 네년의 죄를 모르진 아니할터!
네년은 본보기를 삼아 한양에서 팔다리를 찢고 목을 잘라 성문 앞에 걸어
타인의 귀감으로 삼을지니, 죄인 소진은 네년의 죄를 깨닫고 오라를 받으라."
 
무인의 말이 떨어지자, 그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말에서 날아올랐다.
하늘을 나는 그들은 쓸데없이 공중제비 일곱바퀴 반을 돌아 소진이 년의 앞으로 착지했다.
그들은 오라줄로 소진이 년을 칭칭 휘감았다.
 
찰나와 같은 순간이었다.
 
그들의 신기와 같은 무술에 사람들은 넋이 나가 침을 꼴딱 삼켰다.
그들이 하나같이 한 자루 씩 차고 있는 대검도 봉춘골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칼을 찬 무인들이라하면 봉춘골에서는 쉬 볼 수 있는 자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씨는 괘씸한 소진이 년을 이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해서 민씨는 박 대감의 옆구리를 찌르며 일렀다.
 
", 뭐해? 뭐라고 말 좀 해봐! 우리꺼라고."
 
민씨의 것이었다.
 
소진이를 찢어 죽이는 즐거움은 당연 민씨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민씨는 생각했다.
허나 소진이 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오라에 감겨 무인들 어깨에 들춰 업혔다.
민씨에 눈엔 소진이 년이 도망을 치는 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대론 소진이 년이 끌려가는 것이 자명했다.
강물을 거스를 수야 없으나, 민씨는 억지라도 부려 소진이 년을 잡고 싶어졌다.
이렇게 자신의 손을 떠나보내고 나면 복장이 터져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소진이 년은 필시 민씨의 손에 찢겨 죽어야했다.
 
박 대감은 큰기침을 하곤 폼을 재며 무인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에게 다가섰다.
무인은 박 대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박 대감은 험험! ! ~~! 하고 억지로 큰기침을 뱉었다. 무인이 마지못해 물었다.
 
"무슨 연유로 제 관심을 청하시지요."
 
관심? 청이라? 건방진 놈.
박 대감의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박 대감은 감히 자신에게 청이라는 말을 쓰는 새파란 놈이 거슬렸으나,
지금은 역성을 들 때가 아니었다. 민씨가 안절부절을 못 하고 있었다.
저러다 화병으로 경을 칠 일이었다.
박 대감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자신도 무인이었다.
박 대감은 새파란 놈을 처음 봤으나, 그를 설득할 수 있으리란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다.
 
박 대감이 물었다.
 
"자네, 어디 도장 출신인고? 한양성이라면 그 똥강아지 같은 국춘 장군은 안녕하신가? 내 그와 아주 친분이 깊네만."
 
무인은 그제서야 박 대감을 내려다 봤다.
무인의 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위용이 빛났다. 그 위용 또한 새파란 빛을 띠었다.
 
무인이 말했다.
 
"대감. 대감이 뉘신지, 소인 선견지명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대감께선 입이 험하다는 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춘 장군을 욕보이신 대감의 목을 지금 잘라도 골백번을 잘라야 하나,
지금은 소인 대감의 목을 칠 생각이 없으니,
그를 그간 쌓으신 덕으로 여기시어,
앞으로는 평생 그 입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 대감은 귓불이 빨게 졌다.
박 대감에게 면전에서 무안을 준 것을 못 참은 건, 민씨였다.
민씨는 득달 같이 달려들어 무인을 쏴붙였다.
 
"야 개새끼야! 너 뭔데 으른한테 말 그따우로 찍찍하냐? 말에서 안 내려와? 싸가지 없는 노무, ! 아주 상노무새끼."
 
박 대감은 그런 민씨를 살살 만류하며 무인을 타일렀다.
 
"그러지들 말고, 이보게 자네. 우리가 그렇지 않아도 지금 저 소진이 년을 튀겨죽일까,
찢어 죽일까, 고민을 하고 있던 참이오. 저년이 하도 극성 맞는 년이니,
봉춘골 사람들이라고 그 사실을 영영 참고만 있었겠소?
지금 모여든 사람들은 좀 보시오. 모두 소진이 년에게 경을 치려고 모인 것이외다.
그러니 이만 발길을 돌려 상부에는 소진이란 년이 이미 죽고 없었다고 보고하는 게 어떻겠소?"
 
무인은 박 대감보고 피식했다.
분명히 비웃음이었다.
박 대감의 마지막 자존심이 꿈틀하려는 찰나,
무인은 소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더 이상 박 대감을 상대할 마음이 없어진 것이었다.
 
어명이오. 이 이상 내게 수작을 걸 생각이라면, 내 독단으로 역모의 죄를 물어 목을 밸 터이니, 함구하시오.”
 
무인의 말은 봉춘골에 핀 불꽃을 흔들었다.
어명이란 태풍이 거셌기 때문이다.
아낙과 남정네들의 당황은 웅성임이 되어 소란을 만들었다.
 
어명이랴.”
어명이 누구요?”
어부 친구 아니오?”
어부 친구는! 어명이면 임금이란 소리지 이 답답아!”
 
새파란 무인의 눈에선 봉춘골 사람들 횃대의 붉은 불꽃이 파란빛을 띠며 타올랐다.
 
새파란 무인은 긴장이 되어 손에 땀이 찼다.
그는 말이 없었으나, 속으로는 소진이란 년의 몰골을 처음으로 마주하니,
가슴이 떨리고, 허리에 힘이 빠졌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으나,
정녕으론 박 대감과의 대화중에도 두 번이나 낙마를 할 것만 같았다.
 
소진이란 년이 거의 벌거벗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흰 속곳 사이로 살갗이 슬쩍 비춰 보이고 있었다.
 
무인은 침을 삼켰다.
 
그의 부하들은 당연하다는 듯 새파란 무인의 말안장에 소진이란 년을 엎어 줄을 매었는데,
그러자 소진이란 년의 팔뚝 살이 무인의 엉덩살을 슬슬 문지르는 꼴이 되었다.
새파란 무인은 잠시나마 소진이란 년을 품고 딴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한양이 아니라 저기 남의 바다로 소진이란 년을 빼돌려 떠나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줏대 없는 놈이었다.
 
대감! 대감 저 놈의 목을 부러트려, 소진이를 못 잡아가게 해주시오! 대감!”
 
무인은 소리치는 여인을 돌아보았다.
마귀처럼 산발인 여인이 목을 끓이는 듯 계속하여 자신을 죽이라 명하고 있었다.
소진의 어미였다.
 
무인은 살기를 느끼고 급하게 박 대감도 돌아봤다.
박 대감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때 퍼드득하고 바람을 가르는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새파란 무인을 팔을 휘둘러 소리를 물리쳤다.
 
횃불이었다.
 
무인이 고갤 돌리자, 그곳엔 성곤이 씩씩거리며 서있었다.
성곤이 말했다.
 
어명이고 뭣이고, 네놈들, 내 목을 치기 전엔 소진이 못 가져간다.
찢어 죽이려거든, 나부터 찢어발기고 가야 할 것이야.”
 
성곤과 새파란 무인은 서로를 한참 응시했다.
새파란 무인의 곁으로 또 다른 무인이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새파란 무인은 그에게 그리 전했다.
 
내 손으로 하겠다.”
 
새파란 무인은 말에서 내렸다. 깃털처럼 몸짓이 가벼웠다.
잔상을 흘리듯 성곤에게 다가선 새파란 무인이 물었다.
 
그대, 자가 어찌 되는가?”
성곤이오. 박 성곤.”
 
박 대감이 소리쳤다.
 
뭣 하는 게요!”
 
새파란 무인의 표정이 결연해지더니,
그의 주위로 백지장 같이 넓고 하얀 기운이 날카롭게 뻗어 나왔다.
유유한 곡선을 그리는 그 하얀 빛은 새파란 무인의 검이 달빛을 튕겨 발하는 것이었다.
 
박 대감의 눈이 달덩이처럼 커졌다.
성곤의 몸이 조각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파란 무인은 그 찰나 같은 순간 열두 번이나 칼을 휘둘렀다.
성곤의 피가 저 하늘의 달도 적실 듯 높이 솟구쳤다.
박 대감의 괴성이 무인을 덮쳐왔다.
민씨의 비명은 소진이 년 대신에 밤하늘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봉춘골의 분노가 소진에게서 새파란 무인에 넘어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새파란 무인을 향해 횃대가 날아들었다.
소진이 끌려가는 게 못마땅하던 봉춘골 남정네 들이었다.
무인이 횃대를 쳐내자, 횃대는 소진이 년의 초가 지붕위로 올라가 불을 놓았다.
 
그 뒤로는 말 한 마리가 새파란 무인에게 무섭게 날아들었다.
박 대감이 집어 던진 것이었다.
새파란 무인은 차마 피하지 못하고, 말에게 칼을 휘둘렀다.
다시 하얀 광체가 뿜어 나오며 말이 여덟 등분이 났다.
 
여덟으로 조각이 난 말이 쏟아져 내리며 새파란 무인이 시야를 되찾자,
그 앞으로 박 대감의 양 손에 다른 무인들이 들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박 대감의 옆으로 이미 열넷 중 열의 무인들이 나뒹굴었다.
 
소진이 년의 초가지붕에 불이 붙으며 삽시간에 봉춘골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장 물을 길러 불의 활로를 끊어야 했다.
봉춘골의 횃불들은 저마다 흩어지며, 불을 끄기 위해 분주했고,
이를 틈타 죽은 척 잠잠하던 마가 놈이 소진이 년이 매달린 말에 달려 들었다.
마가 놈은 대롱거리는 다리의 고통을 무시한 채 필사적으로 말에 올랐다.
 
그 모습을 박 대감도 새파란 무인도 모두 지켜보고 있었으나,
둘 중 누구도 선뜻 마가에게 손을 댈 생각을 못했다.
먼저 틈을 보이는 자는 목이 꺾일 판이었다.
 
소진이 년의 초가지붕에서 붙은 불이 슬그머니 옆집으로 달라붙기 시작하였다.
 
민씨는 성곤의 두 동강이 난 얼굴을 주워 담으려 흙바닥을 뒤적였고,
그 순간 마가는 말에 올라 타 말의 고삐를 휘둘렀다.
소진이 올라있는 말은 담장을 뛰어 넘어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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