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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奇談 - 두번째 기이한 이야기 (5)
게시물ID : panic_616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곰
추천 : 16
조회수 : 157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2/13 10:17:03
  시간에 맞춰 식당에 온 2중대 인원은 모두 스물두 명이었다. 2중대 행보관은 열을 맞춰 인원을 식당에 두 줄로 앉히더니 옆 식탁의 의자를 끌어다 놓고 팔짱을 낀 채 걸터앉았다. 병사들 앞에 행보관이 해원을 대동하고 떡하니 섰다. 사전에 해원이 행보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모두 알려준 터였다. 행보관이 그들을 한번 쓱 하고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시간도 없고 하니 간단하게 묻겠다. 휴가나 외박 후 복귀하면서 뭔가 이상한 물건 가지고 온 사람 없나?”
 
  해원이 미리 귀띔한 대로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병사들은 대부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지만, 개중 몇몇은 다소 불안한 듯한 모습이었다. 행보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검열 나온 거 아니니까 이상한 잡지나 사제품 들고 온 놈들 찾는 거 아니다. 그런 거 말고 뭔가 이상한 거, 그러니까 자기 게 아닌데 어디서 줍거나 누구한테 받은 물건을 가지고 온 사람 없냐는 이야기야. 해가 되는 일은 없으니까 빨리 손 들어.”
 
  잠시 불안한 침묵이 흘렀지만 아무도 자진해서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 해원이 나섰다.
 
  “‘그 물건’을 가지고 온 분은... 아마도 최근에 악몽에 시달렸을 것 같습니다만.”
 
  해원이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몇몇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한쪽으로 쏠렸다. 유독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던 키 작은 병장이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느끼고는 버럭 짜증을 냈다.
 
  “아 뭐 보는데! 사람 처음 보냐!”
 
  “시끄럽다, 김성현이! 뭘 잘했다고 고함을 치고 있어?”
 
  행보관이 바람처럼 달려가 그 병장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을러댔다. 병장은 반항적으로 행보관을 올려다보다 곧 포기한 듯 고개를 숙였다.
 
  “예, 어제 작업 나갔다 온 애들한테 들었습니다. 반지 찾았다던데 그럼 다 끝난 거 아닙니까?”
 
  “끝났다고 보기에는 문제가 좀 있어서요.”
 
  어느새 곁에 다가온 해원이 사근사근한 말투로 느닷없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꺼냈다.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인원은 돌려보내고 나니 식당 안에 딱 다섯 사람만 남았다. 텅 빈 식당이 어쩐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조리실에서 저녁 준비하는 취사병들이 아니었으면 정말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행보관 대신 다시 해원이 나선 상태였다. 2중대 행보관은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의자에 앉아 이쪽만 주시하고 있었다. 얼굴의 주름이 아까보다 훨씬 깊어진 상태였다. 김성현 병장과 마주 앉은 해원이 침착하게 말했다.
 
  “명단을 보니까 한 달 전에 포상으로 휴가 갔다 오셨더라고요. 이건 어디서 주우셨죠?”
 
  “아니 뭐, 그냥 길거리에서.”
 
  병장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행보관이 다시 으름장을 놓으려 했지만 재빨리 해원이 나섰다.
 
  “아까 말씀드렸을 텐데요. 목숨이 위험하다고. 정명훈 일병처럼 되고 싶으신가요?”
 
  협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험 권유쯤으로 들리는 태평스러운 말투였지만 효과는 아주 제대로였다. 병장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기세는 다 어디로 갔는지 심지어는 말까지 더듬을 지경이었다.
 
  “무, 무서워, 꿈에 그 남자가......”
 
  “그 반지는 어디서 주우셨죠?”
 
  해원이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병장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더듬더듬 두서없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술 마시고 새벽에 집에 가는데, 그러니까 복귀 전날이라서 친구들하고 마시고. 그런데 앞에서 퍽 소리가 나서 가 보니까 남자가 쓰러져 있더라고. 머리에서 피가 나는데, 반대쪽으로 사람들이 도망가고. 퍽치기구나 했지. 그런데 피가 많이 나는 것 같아서 가까이 갔는데, 이게 그 옆에 떨어져 있더라고. 딱히 가지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어차피 그냥 떨어져 있던 거니까 꼭 그 사람 거라는 법도 없고 해서 그냥......”
 
  “주머니에 넣었군요.”
 
  병장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남자는 어떻게 하셨죠?“
 
  병장은 대답이 없었다. 해원이 다시 추궁했다.
 
  “119나 병원에 알렸나요?”
 
  병장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안 알렸군요?”
 
  “이 자식 이거 아주 개새끼구만!”
 
  버럭 고함을 지른 사람은 놀랍게도 2중대 행보관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냅다 군홧발을 들어 병장을 걷어차려 했다. 나와 행보관이 간신히 뜯어말리는 가운데, 해원이 여전히 침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부터 무슨 꿈을 꾸었죠?”
 
  “부대 복귀한 날부터. 그 남자가, 피를 흘리면서, 계속 나한테 와......”
 
  병장은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말을 계속했다.
 
  “밤마다 나오니까 무서워서, 초소 제초작업 나갔을 때 아래에다 집어던졌어. 그러고 나니까 꿈에 안 나오던데, 그런데......”
 
  병장의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흡사 경련이라도 하듯 벌벌 떨면서 떠듬떠듬 간신히 말했다.
 
  “다시, 꿈에, 나와.”   
 
  “다시? 언제부터?”
 
  “그 날부터, 그 날부터......”
 
  “정 일병이 죽은 날부터?”
 
  병장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해원의 말투가 반말투로 바뀌어 있었지만 병장은 그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병장의 고개가 푹 꺾이더니, 무릎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는 끅끅대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무서워, 살려줘, 살려줘! 난 죽기 싫어! 살려줘!”
 
  “뭘 잘했다고 울고 지랄이야, 이 좆만 한 새끼가!”
 
  2중대 행보관의 목소리가 식당에 쩌렁쩌렁 울렸다. 놀란 취사병 몇몇이 조리실에서 나와 이쪽을 살폈다. 행보관이 그런 2중대 행보관을 달래듯 팔을 툭툭 두드렸다. 한참 씩씩대던 2중대 행보관이 우리 행보관을 보더니 조금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야, 최 상사. 그쪽에서 우리 일에 계속 끼어드는 것 같아서 내가 어제부터 좀 떽떽거렸는데 미안하다.”
 
  그러더니 해원을 보고 말했다.
 
  “이해원이라고 했지. 이런 쪽을 잘 안다고 하던데 미안하지만 어떻게 좀 해결해 주면 좋겠어. 아까 들어보니 김성현 이 새끼가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아무리 죽일 놈이라도 진짜 죽어버리면 안되잖아.”
 
  2중대 행보관의 하나뿐인 조카가 예전에 퍽치기를 당해 입원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이번 사건이 모두 끝난 후의 일이다. 해원은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울고 있는 병장에게 다가가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이봐요 아저씨. 살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살 수 있다는 말에 반응했는지 병장이 고개를 벌떡 들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인 얼굴이 그야말로 꼴불견이었지만 눈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해원은 허리를 펴고 행보관에게 다가갔다.
 
  “행보관님, 잠시 전화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아직 백일휴가도 다녀오지 않은 이병 나부랭이가 무려 행보관에게 전화를 요구하는 어이없는 진풍경이었다. 그러나 행보관은 아무 거리낌 없이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해원에게 내주었다. 해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곧 누군가가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예 어머님. 해원입니다. 예. 부대 안에서 지금 전화 드리고 있습니다. 예. 예. 밥 잘 챙겨먹고 있습니다. 바리도 잘 있습니다. 실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예. 역시 알고 계셨군요. 예. 맞습니다. 일단 제가 어떻게 해 볼 생각입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위험할 것 같아서요. 바리도 있고 하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대신 내일이라도 천도제(天導祭)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그냥 떠나기에는 한이 너무 깊어서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부대 주소는 알고 계시지요? 예. 전에 드린 그 주소대로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어머님. 식사 거르지 말고 잘 챙겨드십시오.”
 
  절반도 못 알아들을 통화를 마치고 해원은 다시 휴대전화를 행보관에게 돌려주었다.
 
  “행보관님. 세 번째 부탁도 마저 드려야겠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그거 위험한 거 아냐?”  해원이 미소지었다.
 
  “좀 위험하긴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이게 일이라서.”
 
  해원의 세 번째 요청은 오늘 밤에 자신이 초소에 가서 근무를 서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군에서 초소 근무를 혼자 서는 법은 없다. 함께 가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젠장.
 
  하지만 해원은 한술 더 떴다. 
 
  “다만 아무래도 셋이 같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셋? 설마 이 새끼도?”
 
  2중대 행보관이 놀라서 병장을 가리키며 삿대질했다. 그러나 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대로, 일단 사람은 살려야 하니까요. 그리고......”
 
  해원이 덧붙였다.
 
  “오늘 잘 해결되고 나면 내일 어르신 한 분이 면회를 오실 겁니다. 천도제를 부탁드렸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천도제라면...... 굿 말이지?”
 
  “예.”
 
  “원 참. 내가 군 생활 이십 년이 넘었지만 부대 안에서 굿을 한다는 건 처음이다 진짜.”
 
  행보관이 어이없다는 듯 투덜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따 대대장님께 보고 드리면서 그것도 말씀드려 보마. 내일이라고 했지?”
 
  “예. 부탁드립니다.”
 
 
  그걸로 우리의 한밤중 초소 근무가 결정되었다.
 
 
 
 
 
  한밤중에 초소로 가는 길은 으스스했다. 병장이 길을 안내하고 우리 둘이 뒤를 따랐다. 우리가 사라지기라도 할까봐 불안했을까, 병장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통에 몇 번이나 발을 헛디딜 뻔했다.
 
  출발하기에 앞서 해원은 우리가 지급받은 실탄을 모두 빼서 본인의 건빵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따로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리고 김성현 병장도 그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아무도 말이 없는 가운데 군홧발 소리만 저벅저벅 주변을 울렸다. 저벅 저벅.
 
  저 멀리 초소가 보이자 해원이 마침내 침묵을 깨뜨렸다.
 
  “아까 말한 것 기억하지? 이상한 일이 있어도 절대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항상 침착해. 그리고 잠들거나 하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나와 병장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병장의 낌새가 조금 이상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곧 결심한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발소리가......”
 
  “발소리가 왜요?”
 
  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길가에 매달린 누런 백열등 불빛에 언뜻 비친 병장의 얼굴은 확연히 겁에 질려 있었다. 
 
  “발소리가...... 아무래도......”
 
  하지만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해원이 선수를 쳤다.
 
  “알고 있습니다.”
 
  해원은 앞장서서 초소를 향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나와 병장도 놀라서 허둥지둥 뒤를 따랐다. 하지만 병장의 말 때문에 절로 발자국 소리에 신경이 쓰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차가운 기운이 일순간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우리는 당연히 모두 군화를 신고 있었다. 딱딱한 군홧발이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진 땅을 밟을 때마다 저벅저벅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 발걸음 소리에 약간 다른 발소리가 섞여 있었다. 뭔가 좀 더 부드러운 재질의 신발, 그러니까 운동화 따위를 신은 발이 바닥을 밟은 듯한 보다 가벼운 발소리가.
 
  우리 말고도 누군가가 있었다.
 
  나는 손에 든 총을 꽉 붙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손이 덜덜 떨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흘깃 옆을 보니 병장은 완연히 겁먹은 표정으로 연신 주변을 살피며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해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얼른 따라오세요.”
 
  그렇잖아도 해원에게서 떨어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나와 병장은 앞다투어 해원에서 바짝 붙어서 마치 한 덩어리처럼 초소에 들어왔다. 그나마 초소에 들어오자 안심이 되었다. 해원은 초소의 창밖으로 몸을 내밀더니 옆쪽 전봇대에 매달린 CCTV 카메라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지금 당직실에서는 대대장 이하 중대장과 행보관들이 CCTV를 통해 초소를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카메라의 위치상 초소 내부의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해원은 우리에게 양쪽 구석을 가리켰다. 나와 병장은 얌전히 해원이 시키는 대로 구석에 가 섰다. 해원은 가슴 주머니에서 그 반지를 꺼내더니 초소 중간쯤의 바닥에 가만히 놓았다. 그리고 자신도 맞은편 구석으로 가 반지를 응시했다. 예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살짝 들리더니 곧 해원이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잠들지 말고, 그냥 보고만 있어.”
 
  잠들지 않기 위해서 커피를 세 잔이나 마신 속이 영 더부룩했다. 그러나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 따윈 절대 없었다. 무심결에 손목시계를 보니 열두 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초소 근무치고는 매우 불량한 자세로 벽에 기대어 가만히 반지를 바라보며 나는 내심 진저리를 쳤다.
 
  아까의 발소리가 초소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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