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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BGM] 한빙지옥
게시물ID : panic_633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으앙쥬금ㅜ
추천 : 11
조회수 : 338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1/28 13:04:37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4dh3P
 
 
한빙지옥
 
 
나의 고등학생 시절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항상 남들과 몸으로 부딪히는 것을 좋아했다.
주먹 꽤나 쓴다는 녀석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다녔던 것이 유일한 낙이 되어 버렸을 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우월감은 어느 새 옥좌로 변해 있었다.
거기에 꿇리지 않는 체력과 자존심이란 왕관을 쓰자, 알아서 충신들이 모여 들었다.
물론 절대권력의 대가는 반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역할이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조용히 하교 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몇몇 제물의 희생이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었거나 슬슬 기어오르는 놈들을 지목하곤 했는데, 가끔 예외가 있었다.
최영수, 이진철.
단지 맘에 안 들게 생겼다는 이유 하나였다.
천민 따위가 어찌 감히 왕에게 대적하겠는가? 맞으라면 맞는 것이고, 침 뱉고 먹으라면 먹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연민 따위는 느끼지 못 했다.
그저 철창 안의 원숭이들이었고, 난 즐거운 관람객이었다.
언제는 정말 죽기 직전까지 후려 팼었다. 영수의 팔목에 금이 갔고, 진철의 다리가 부러졌다.
아무도 말리지 못 했다. 아니, 감히 말리지 못 했다.
나중에서야 용기를 낸 누군가가 그 이유를 물어봤었다.

“아, 시발 그 때 여자친구랑 헤어졌거든”

녀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내 손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정기적으로 월 10만 원 입금하라던 협박을 강화시켜서, 월 20만원으로 인상했다.
처음에는 둘이서 꼬박꼬박 40만 원씩 잘 바치다가, 갑자기 20만원으로 줄었는데
범인은 진철이 녀석이었다.
며칠 전부터 연락을 피하는가 싶더니 입금이 끊김과 동시에 녀석의 모습도 사라졌다.
영수를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별 다른 정보를 얻지 못 했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영수가 두 몫을 해내면 됐으니까.
입금하지 못 하고 안절부절 할 때면, 얼마 전에 시작한 사채 업의 단골손님으로 끌어들였다.

“날 원망하진 말라고. 널 버린 친구를 탓하란 말이야”

나와 달리 녀석은 진심으로 진철이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돈을 갚으러 왔던 영수가,

“진철이…… 궁금하지 않아?”
“뭐가?”
“왜 연락이 끊겼는지……”
“알 거 없잖아. 제때 돈 갚기나 해”

그렇게 진철이란 친구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 갔고, 5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

습관처럼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명품 브랜드 특유의 매끈함과 찬란한 금색 빛깔이 손에 들러붙었다.
비록 두 달치 월급을 몽땅 털어버렸지만,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쉽게 거금을 만질 수 있었기 때문에
별로 위협이 되지 않았을 뿐 더러, 오히려 그 잘난 콧대를 더욱 높여버렸다.

“제…… 제발…… 한 달만 시간을 더……”

입맛 까다로운 호랑이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토끼는 더욱 몸을 웅크리며 빌빌 떨었다.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 그러나 청바지는 색이 닳고 달아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래를 힐끔 쳐다보니, 신발이 자리잡고 있어야 할 양쪽 발은 다 찢어진 슬리퍼가 대신하고 있었다.
녀석의 모습은 누가 봐도 허약한 토끼이자, 훌륭한 먹이 감이었다.

탁-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더니 커다란 울음소리가 났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영수가 순간 몸을 뒤로 젖혔다.

“야 이 개새끼야, 지금 이게 몇 번째인지 알아?”
“미안해……”
“미안하면 빨리 돈을 갚으란 말이야, 뒤지고 싶어?”
“……”
“어라? 대답이 없다?”

소매를 걷어 부쳤다. 우락부락한 팔 근육이 그대로 드러났다.
시계를 풀어 주머니에 넣고는, 단숨에 영수의 멱살을 들어올렸다.
자물쇠처럼 꽉 잠긴 내 손을 풀지 못 하고 바둥거리는 녀석의 모습은 역시나 흥미로웠다.
갚으라는 돈 대신, 항상 내게 짜릿한 전율을 주었다.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자존심 따위 다 팔아버린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말이다.
조금만 힘을 가하면 어찌할 줄 모르고 바둥거리는 쥐새끼처럼.

“컥……커헉……”

그리고 항상 마지막에 복부를 걷어찼다.
이번 타격은 꽤 힘이 들어갔다. 멀리 굴러 떨어져나간 영수의 입은 쉴새 없이 무언가를 토했다.

“다음에 내가 찾아 올 때는 각오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

사실 더 패주고 싶었지만, 쓰레기장 같은 집안에서 나는 냄새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집이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골목길 옆 작은 공간에 판자 몇 개를 얹혔으니 말이다.
뻔히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무슨 생각으로 사채를 썼는지 내 알 바가 아니다.
적어도 다음 주까진 돈을 받아내야 되고, 이런 식으로 압박을 줘야 한다.

“어휴…… 거지새끼. 나 같으면 자살하고 말겠다.”

시계를 꺼내 손목에 차려는 찰나, 이상한 흔적이 눈에 띄었다.
영수의 멱살을 잡을 때, 녀석이 바둥거리며 내 팔을 꽉 쥐었던 흔적이었다.
동상 걸린 피부마냥, 빨간 손자국 모양으로 심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대충 소매로 가리고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 때까지 돈 안 가져 오면 진짜 죽여버리던가 해야지’
 
 
 
 
 
 

언제나 적응이 안 되는 쓰레기 냄새가 후각을 매섭게 자극했다.
갑자기 짜증이 밀려오면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화가 나서 문이라고 생각하는 판자대기를 발로 부숴버렸다.
그 것은 힘 없이 내동댕이쳐졌다. 네가 무슨 잘못이 있으랴, 주인 잘못 만난 탓이지.
이쯤 행동했으면 진작 기어 나와서 무릎을 꿇어야 할 놈은, 어째서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술 쳐먹고 자빠져있나”
“……”

눈치 없는 고요함에 더욱 열이 받았다.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닥치는 대로 발길질을 해댔다.

“어이, 당장 안 튀어나와?”
“……”

아, 그래.
숨바꼭질을 하자 이거지?
영수가 애지중지 하던 가족사진이 내 발 밑으로 떨어졌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짓밟았다.

“꼭꼭 숨어라 친구, 머리카락이라도 보이면 뒤지는 거야.”

포켓나이프를 집고 날을 세웠다.
아무리 비좁은 공간도 가능성만 있다면 꼼꼼하게 확인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이 곳, 영수네 집은 내 예상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바닥을 가득 메운 휴지 조각들, 까맣게 물든 벽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찾아 보자는 생각은 결국 냉장고를 끝으로 백기를 들었다.
냉장고 안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뭉쳐있었다.

“우웩……”

소름 끼치는 한기가 나를 휘감는 망토가 되어 펄럭였다.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나왔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잠깐의 휴식과 안정이 필요했다.
몇 일째 집을 방치한 걸로 봐선, 아마도 영수는 내 눈을 피해 도망친 것이 틀림없었다.
꼴사납게 몸을 떨며 숨을 고르는 와중에,

끼이익 –

갑자기 들린 소음이 귓속을 휘 집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용수철처럼 몸을 앞으로 튕겼다.
순식간에 입구로 뛰어갔더니, 그 곳에는 이진철이가 문짝을 들고 서 있었다.

“너 이 개새끼……오랜만이다?”
“……”
“엄청 반갑긴 한데, 타이밍이 좀 지랄 맞지?”
“……”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언 5년만이던가.
그 때의 모습 그대로 내 앞에 나타난 지금까지.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 대신 욕이 튀어나왔다.
녀석 또한 도망으로 응답했고, 만족을 못한 나는 그냥 무작정 녀석을 쫓아갔다.

“야! 거기 안 서?”

결코 느린 질주가 아니었건만 진철이와 나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 동안 수 없이 많은 질문들을 장전했고, 녀석을 잡는 순간 속사포로 발사할 준비를 마쳤다.
뜬금없이 영수의 집에 찾아와서는 왜 나를 보고 도망가는 것인지.
그 동안 뭐 하고 숨어 지냈는지.
저 멀리 코너에서 녀석이 몸을 꺾었다.
나 또한 전속력으로 달려서 코너에 이르렀고, 다시 목표물을 찾아내려는 순간.

“!!!”

간발의 차로 엄청난 경적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성난 황소처럼 돌진했던 덤프트럭과 나 사이에는 불과 몇 cm의 간격뿐이었다.
기겁을 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갔다.
다리부터 천천히, 그리고 허벅지를 지나 상체.
재빨리 다리를 꼬집으며 자극을 주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비록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코너를 돌자마자 완전히 기절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곳은, 덤프트럭 따위가 절대 달려나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 사고 이후로 한 동안 집 밖을 나서지 못 했다.
당시의 상황이 스크린에 투사되면서 겁 먹고 뒤로 자빠져있는 주인공이 등장했다.
잠깐 슈퍼를 가려고 한다면,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덤프트럭이 내 몸을 산산조각 낼 것만 같았다.
반복되는 트라우마 이외에도, 심한 몸살 감기를 얻었다.
그 원인은 사실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햇빛이 쨍쨍한 여름일뿐더러, 감기 걸릴 만한 행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매번 감기약을 먹고 있지만 오히려 악화되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결심을 굳힌 나는, 한여름에 두꺼운 외투를 걸친 채 차에서 내렸다.
목적지는 영수의 집이었다.
내 인내심은 진작에 바닥을 드러냈고, 하수구멍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이 지긋지긋한 채무관계라도 끝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을 손에 쥔 채, 걸음을 계속 했다.
녀석의 불쌍한 인생 또한 끝내기 위해서.
아마 고마워할 지도 모른다. 죽고 싶은 용기를 내가 대신 심어준 것이니까.
지난 번 발로 걷어 차버린 문짝을 지그시 밟았다.
왠 일인지 역겨운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야, 니가 마중 나올 줄이야”
“……”
“숨 잘 쉬고 있었네? 최영수”

뜻밖에도 영수가 안에 서 있었다.
거지 같은 몰골에 꾀죄죄한 옷 차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를 노려보는 시선이었다.

“사과해라”
“응?”
“마지막 기회야”

죽음을 앞에 두고 정신이 나간다더니, 딱 어울리는 상황이네.
돈을 갚을 방법을 못 찾아서 해까닥 한 모양이다.

“뭘 사과하라는 거야? 알려줘”

녀석과 나의 거리를 좁혔다.
충분히 위협적인 자세임에도 어째서인지 도망가지 않았다.

“진철이한테 사과해”
“이진철이?”
“너 때문에 자살한 건 모르지?”
“자살했다고?”
“덤프트럭이 진철이를 짓뭉개놨어. 그 끔찍한 형상, 너도 봤을 텐데”

그 때 내가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갑자기 튀어나왔던 덤프트럭. 그리고 사라진 이진철.
일종의 경고 메시지였다.
무섭다기 보단 오히려 가소로웠다.

“맨날 쳐 맞으며 빌빌거리던 새끼들이 단체로 미쳤나……”

몸을 날려 녀석을 덮쳤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뱃속으로 휘 집어 넣었다.

“축하해”
“뭐?”

피가 흘러 넘치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순간에도, 녀석은 입이 찢어지게 미소를 지었다.

“영원한 지옥으로 온 것을”

그 날 겪었던 한기가 서서히 내 몸을 감쌌다.
미친 듯한 악취까지 동반하며, 지옥수마냥 들러붙었다.
닭살이 돋으며 털 하나하나가 곤두섰다. 미친듯한 추위가 불어 닥쳤다.
일어나 있던 나는 순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어느 새 다리가 꽁꽁 얼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녀석에게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나갔다.
아직까지 팔이 움직이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밖을 향해서 나아갔다.
순식간에 배꼽까지 얼어버렸다. 숨을 쉬는 것 조차 불가능했다.
끝 없는 한빙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미친 듯이 나아갔지만
냉장고 앞에서 양 팔이 얼어버렸다.
그대로 심장이 얼고
목이 얼고
입이 얼었다.
마지막 뇌가 굳어버릴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
 

어디서 부터 꿈이었을까?
끝내 답을 찾아버린 나는, 마지막 질문을 뒤로 한 채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모든 생각이 멈췄다.
 
 
 
 
 
 

다음 날, 영수의 집 냉장고에서 형체를 알아 보기 힘든 시신 두 구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다.
 
출처 :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fear&pg=19&number=6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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