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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생사의 갈림길
게시물ID : panic_719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으앙쥬금ㅜ
추천 : 3
조회수 : 18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20 18:19:36

 
생환
 
 
 
세상을 살다보면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가령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술을 마시던 중 피곤하며 자겠다던 친구가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나, 중학교 때 나를 괴롭히던 친구가 군대의 후임으로 들어오는 경우나, 꿈자리가 좋아서 구입했던 복권이 2등에 당첨되는 경우 등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 또한 일상적인 삶의 범주에서 이해하려고 하며 적응하지 못할 것 같던 일들은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에게 적응이 된다.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결코 일상적인 일이 아니며 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나는 분명 친구를 만나기 위하여 버스를 탔고 조금은 먼 거리라 생각되어 맨 뒷자리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다리에 올리고 팔짱을 낀 채로 편안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분명 내가 다시 눈을 뜬다면 나는 버스 안에 있어야한다. 이것은 당연한 사실이며 나의 실수로 하차해야하는 정류장을 지나거나, 버스를 잘못 타서 완전 다른 마을에 있다거나 이러한 일들은 내가 종종 했던 실수기 때문에 결코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편안하고 한적한 버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붉은 바위와 자갈만이 보이는 그러한 땅에 누워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나는 지금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몸을 일으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한 것은 내 눈앞에는 내가 원하는 서울의 고층빌딩이나 사람들의 모습 등의 모든 것이 보이지 않으며, 그저 붉은 땅위에 나체의 내가 있으며 내 앞에는 붉은 산 하나가 솟아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버스에서 자는 동안 누군가가 납치를 했나?, 내가 아직 잠에서 덜 깬 것일까? 등의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내가 아무리 깊이 잠이 들어도 중간에 안 깼을 리가 없으며, 나의 신체에는 아무런 상흔도 없다는 것은 나는 저절로 옮겨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아직 꿈에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의식이 선명하며 확인하려고 비틀었던 나의 살은 현실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부끄러움을 느끼고 중요한 부분을 가리고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손을 내린 채 온몸을 훑어보았다. 딱히 아프다거나 고통이 느껴지는 부분은 없으며 몸에 별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해나 달이 없으나 어둡지는 않고 마치 붉은 사막 같다. 그렇다고 사막처럼 숨을 못 쉴 만큼 덥거나 모래로 둘러싸이지 않고 적절한 날씨에 모래대신 붉은 바위와 자갈이 있다.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이러한 모습으로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 눈앞에 있는 산을 올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의 몸에선 땀이 나기 시작했고 맨발로 걷던 발바닥은 눈에 띄게 부어있었다. 중간에 계속적으로 쉬기는 했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단 끊임없이 밀려오는 통증이 나의 발걸음을 지연시켰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필시 두 시간 이상은 걸었겠지만 나의 노력과는 다르게 처음 보았던 산의 모습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다리의 고통이 극에 달하였을 땐 결국 바닥에 쓰러지듯 눕고 자고일어나면 다시 버스 안에 있을 것이란 생각에 눈을 감고 잠을 청하였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나는 가끔씩 엄청난 피로를 느끼고 편안한 침대에 누워도 잠을 못 이룰 때가 있었다. 그러한 날에는 몇 달에 한 번 정도로 자주 오는 편은 아니지만 한 번 잠을 이루지 못하면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나의 피로와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치 뇌에 카페인이 가득차서 뇌가 나의 수면시간을 착각하기라도 한 듯 밤새 뒤척거리곤 했는데 지금 나는 그러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어차피 잠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고통을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픔을 참고 오르기를 계속하자 산은 나의 노력에 답하기라도 한 듯 처음과는 다르게 조금은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리에 통증을 이기지 못하여 중간에 대자로 누워 잠을 청하여 보아도 이상하리만큼 또렷한 정신으로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나는 악으로 그리고 나를 여기에 가둔 사람에 대한 분노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이곳은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해라는 자연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붉은색의 세상이 존재하였고 바람이나 비 따위의 자연현상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삼일은 족히 지난 듯하다. 중간에 큰 소리로 욕도 해보고 머리를 쥐어뜯고 많은 일들을 해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배고픔도 존재하지 않았고 목마름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땅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나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내가 살던 현실에서 누군가 나를 본다면 아마 좀비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는 동안 이미 걸어서 올라갈 정도의 경사는 없었고 온몸으로 산을 오르다 보니 나의 손톱은 이미 반 이상이 닳아있었고 손의 물집이나 온몸의 상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제일 심각한 것은 역시나 다리였다. 이제는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상처가 깊었다. 또한 아픔을 견디려고 계속적으로 입술을 깨물다보니 입술 또한 끊임없는 고통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였고 산을 오른다 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드디어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걷는다는 표현보단 기어서 오른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 같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마지막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결국은 바닥에 눕는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흐를 때마다 온 얼굴의 상처에 스며들어 고통을 느꼈지만 이러한 작은 고통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러한 곳에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하는 것일까? 눈을 감았다. 이상하게 그토록 원해도 느낄 수 없었던 졸음이 쏟아진다. 이대로 잠들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죽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잠드는 것이 좋았다. 이대로 눈을 감고 죽어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울고 있었다. 나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저 그들의 우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나는 결국 죽은 것일까? 그래서 나의 부모님은 울고 있는 것일까? 존재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서 나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삶에 대한 의지를 느꼈다. 이대론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붉은 산의 정상이 보이는 곳에서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이 산을 오를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고통스러웠고 이제 나에게도 한계가 다가옴을 느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빛이 있었다. 태양이 비추는 빛과는 다르게 굉장히 강하고 눈이 부셔 눈을 뜰 수 없었다. 나는 그 빛을 맞으며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잃어갔다. 하지만 나는 웃었다.
눈을 뜸과 동시에 정상에서 느꼈던 엄청나게 강렬한 빛을 느꼈다. 나는 아직도 정상에서 죽지 못한 것일까? 온몸의 고통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강렬한 빛에 적응이 되어 완전히 눈을 떴을 때는 산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이곳은 병실이다. 나는 그 산에서 구조된 것일까? 그리고 내 청각을 자극하는 엄청난 소리에 나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은빈아!!! 아이고 은빈아!! 살아났구나... 살아났어! 의사선생님!!”
 
나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쉬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난 그저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다는 것과 내가 살아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분 뒤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 그들은 나의 맥박을 체크하며 계속적으로 이것저것을 질문하였다. 나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모든 것을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의사와 간호사가 자리를 비웠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어떻게 된 것인지를...
 
내가 들은 사실은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었다. 나는 벌써 다섯 달이나 이곳에 누워있었으며 다섯 달 전 내가 타고 가던 버스가 역주행 하는 트럭과 충돌에 트럭기사와 버스에 있던 승객과 버스기사 모두가 즉사했다. 맨 뒤 자석에 있던 나는 기적적으로 살았지만 외상이 심하여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고 살아난다 하여도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다섯 달 만에 극적으로 깨어난 것이다 중간에 심장에 완전히 멎었던 적도 있었으나 이렇게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다음 여러 사람이 왔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 등이 왔지만 나는 차마 붉은 산에 대하여 말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말하여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은 나의 붉은 산에서의 생환이 아닌 그저 나의 극적인 생존에 대하여 놀라움의 표시만 할 뿐이다. 나는 움직일 수 있는 손으로 온몸을 만졌다. 약간의 고통은 있었지만 내가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무리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과 극구 말리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창문을 걷었을 땐 온몸으로 따스한 빛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은 이 빛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그 빛만큼이나 따뜻한 손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아무런 말없이 있었다.
 
얼마 후 나는 완치에 가까울 정도의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였다. 사람들과 의사는 기적이라고 하였지만 그런 말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모든 행동과 생각이 행복하고 감사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항상 힘든 일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하늘에 있는 빛을 바라보았다. 그 빛은 항상 밝고 따스했다. 그리고 그 빛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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