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막장왕조 남북조시절 제나라 일대기
게시물ID : panic_73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맨담
추천 : 15
조회수 : 316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0/09/15 00:10:49
본의아니게 송나라 일대기끝에서 한 더 하.드.코.어란 단어가 예고편이 돼버렸군요...
베스트간거 지금확인하고 예정에 없었지만 제나라꺼도 올려요 ^^;;



싸이코패스 기질이 다분한 유송 왕조를 멸하고

 

그 뒤를 이어서 제위에 오른 사람은 53세의 소도성이었습니다.

 

그는 폭정에 신음하던 백성을 위해서 정사에 열심히 임했고

 

평소에 주변 신하들에게 입버릇처럼

 

"내가 천하를 십년만 다스린다면 황금을 흙처럼 흔하게 만들겠다"고 말했으나

 

제위에 오를 때 고령이었기 때문인지 재위 3년만에 붕어합니다.

 

 

사실 고제 소도성은 자손들이 화목할 것을 매우 강조해서

 

(유송이 어떻게 결딴나는지를 직접 체험했으므로)

 

고제의 아들 무제 때까지는 제나라 황족들이 무탈했으나

 

 

명제라는 걸출한 또라이가 즉위한 후

 

그 명제 한 사람이 고제와 무제의 자손을 

 

전부 쳐죽이는 가공할 살인극을 저지릅니다.
고제 소도성이 3년만에 세상을 떠나자 

 

태자 소색이 즉위해 무제가 되었습니다.

 

무제 소색의 치세 10여년간은 국가가 안정되고 번영하여

 

당시의 연호를 따서 '영명의 치'라 불렀습니다.
무제 때의 특기할 만한 사항은

 

무제의 아들인 문혜태자 소장무와 경릉문선왕 소자량이 문예를 애호해 

 

남제에 일대 문풍이 불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경릉문선왕 소자량은 문인들을 극진하게 대접하여

 

그의 문객으로 있었던 8명의 문인, 

 

곧 사조(謝朓), 임방(任昉), 심약(沈約), 육수(陸倕), 범운(范雲), 소침(蕭琛), 소연(蕭衍), 왕융(王融)

 

이들은 경릉팔우(竟陵八友)라 불리며 당대를 풍미하는 작품들을 남깁니다.

 

 

 

경릉팔우가 역사적으로 유명하게 된데 공헌한 사람은 바로 소연이었습니다.

 

제나라 황실의 먼 친척이었던 소연은 소자량의 문하에 들어갈 때 나이가 20대였는데

 

당대의 명사 왕검(王儉)은 소연의 관상을 보더니

 

"이 사람은 매우 관상이 좋아 서른살이 지난 이후에는 감히 그 귀함을 말할 수 없다"고 평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후 18년이 지나서 소연은 제나라를 이어 양나라를 개국하니

 

바로 양의 무제가 소연 이 사람입니다.

 

 

 

무제의 아들들은 무제 생전에는 무탈하게 지냈습니다.

 

무제의 후계자였던 문혜태자 소장무는 영명 11년 정월에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당시 조정에서는 무제의 다른 아들 중에서 태자를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무제는 소장무의 아들인 소소업을 황태손으로 책봉합니다.

 

 

그리고나서 같은 해 7월에 무제가 붕어하니 

 

황태손 소소업이 제위에 오릅니다.

 

 

 

소소업은 용모가 단아하고 서예를 잘해서 증조부 소도성과 조부 소색이 아꼈지만

 

소소업의 품성이 포악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챈 아버지 소장무는 

 

아들을 감시했지만 그는 아버지 몰래 거리를 나다니며 

 

공연한 트집을 잡아 행패를 부리는가 하면 남에게 돈을 꾸고 안 갚는 짓을 자주 했습니다.

 

 

  

소소업은 자기가 빨리 황제가 되기 위해서 아버지가 빨리 죽으라고 굿을 하면서 저주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아버지 소장무가 세상을 떠나버리고...

 

이에 소소업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기절할 정도로 대성통곡해 옆사람이 오열하게 만들어 조부를 감동시킵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소소업은 아예 조부마저도 빨리 죽기를 기원하는 굿판을 벌입니다.

 

이 또한 효험이 있었는지 얼마 뒤에 소색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즉위한 소소업은 소색의 관뚜껑이 덮이자마자 

 

궁궐에서 풍악을 울리며 궁녀들을 끼고 술판을 벌이는가하면

 

아버지의 후궁들을 간음하고 음란하기 짝이 없는 행각을 했고,

 

낭비벽이 매우 심해서 기분 내키는대로 수십, 수백만냥의 돈을 물쓰듯 하는 바람에

 

증조부 소도성과 조부 소색이 국고에 모은 8억만냥의 돈과 금은보화, 비단을 1년도 안되어 탕진해버립니다.

 

 

 

이에 고제 소도성의 둘째형 시안정왕 소도생의 아들인 서창후 소란이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여러 차례 간언했지만 오히려 소소업은 소란을 의심했고

 

결국 소란은 군사를 이끌고 황궁으로 쳐들어가 소소업을 참살하고 그의 동생 소소문을 제위에 올립니다.

 

 

 

재위 2년만에 22세로 살해된 형 소소업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소소문은

 

몸이 약한데다가 소란의 위세에 눌려서 생선찜 하나 먹고 싶어도 

 

소란의 명이 없다는 이유로 궁중의 요리사가 만들어 주지 않는 등

 

소란의 꼭두각시로 지내다가 재위 3개월만에 폐위되어 독살되니 겨우 15세였습니다.

 

 

 

이후 소란이 황제에 오르니 바로 명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소란은 제위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황실의 종친이었기 때문에

 

고제와 무제의 자손에게 일종의 자격지심 같은 것이 있어서

 

제위에 오른 후 고제와 무제의 자손을 일거에 쳐죽입니다.
남조 제나라의 다섯번째 황제로 즉위한 소란...

 

원래 그는 제위와 가깝다고 말하기 모호한 위치의 종친이었습니다
제나라의 초대 황제인 고제 소도성의 조카였습니다.

 

소란이 즉위하기 전의 제나라 황제들은 모두 고제의 자손들이었기 때문에

 

(2대 무제 : 고제의 아들, 3대 울림왕과 4대 해릉왕 : 고제의 증손자)

 

 

얼핏 생각하면 소란이 엄청나게 장수를 누렸기 때문에 

 

고제의 증손자들을 죽이고 황제로 즉위했나 싶기도 하지만

 

소란이 제위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43세,

 

제나라는 건국된지 겨우 16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아마도 결혼을 일찍해서 아이를 빨리 낳았던 것에 기인했는지도)

 

 

이렇게 해서 즉위한 명제 소란은 자기 아들에게 보위를 물려줄 때 잠재적 경쟁자를 없애기 위해서

 

그때까지 생존한 (그리 나이를 많이 먹지도 않은) 고제와 무제의 자손을 모두 살해합니다.

 

 

 

이와 관련해 청나라 때의 사학자 조익은 다음과 같이 평합니다.

 

"송나라 자손들이 비명횡사한 경우가 많기는 하나

 

그래도 그것은 문제, 효무제, 폐제, 명제 등 여러 사람이 저지른 것이었다.

 

제나라 고제와 무제의 자손들은 모두 명제 한 사람이 살해한 것이니,

 

그 악독하고 참혹함은 전에 없던 일이다."

 

 

 

더욱이 명제가 황족들을 없앨 때 쓴 방법이 가증스럽기 짝이 없으니

 

살육을 벌이기 전날 밤에 향불을 피우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제의 아들인 계양왕 소삭은 명제를 알현한 후에 주변에 말하기를

 

"일전에 폐하께서 오열하는 것을 본 뒤에 

 

파양왕(고제의 아들)과 수군왕(무제의 아들)이 주살되었다.

 

오늘 폐하를 보니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기색이 있었은즉 이제 내 차례인가?"

 

 

그리고 계양왕은 바로 그날 밤으로 명제가 보낸 군사들에게 살해당합니다;;;

 

 

 

하지만 이렇듯 피비린내을 진동하며 간신히 차지한 제위였음에도 

 

명제는 겨우 5년만에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귀축매니아인 소보권이 황제로 즉위하는데

 

 

그는 괴팍하기 짝이 없는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미녀들의 사지를 잘라서는 목줄을 채워 개처럼 사육하는가하면

 

지나가던 임산부의 배를 갈라서 태아 꺼내기를 즐기고,

 

승려가 눈에 보였다 하면 마구 화살을 쏴서 죽이는 등
(이유는 대머리여서)
 

 

도대체가 정신 상태를 이해하기 힘든 엽기적인 짓만 하다가

 

신하들의 반란으로 19세에 허리가 잘려 죽음을 맞이합니다.

 

 

다음으로 즉위한 사람은 명제의 아들이자 동혼후 소보권의 동생인

 

화제 소보융입니다만 소연에 의해 옹립되고 날서 얼마 안가 그에게 선양해서

 

제나라는 멸망하고 양나라가 세워집니다. 

 

 

양무제 소연은 유송과 남제에 이어져온 관례(-_-)에 따라

 

제나라의 남은 황족(이라고 해도 명제의 아들밖에 안 남았음) 중

 

중병에 걸려 침상에 누운채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파릉왕 소보의를 제외한

 

나머지 명제의 아들들을 살해합니다.

 

때로는 현실이 공포소설보다 더 소름끼치죠....
.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