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불(黑佛) 산촌 기록
시대는 전국 시대. 아직 천하가 제 갈 길을 드러내지 못 하고 있을 때였다.
카나가와 현의 어느 산 속에는 숯장이들의 작은 부락이 있었다.
평소엔 사용하지 않는 마을이지만 겨울에만 일시적으로 수 명이 모여 살곤 했다.
산 아래 마을엔 내려가지 않는 별종 뿐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느 날, 그 작은 부락으로 한 여인이 도망쳐 왔다.
그 여인은 산을 세 개 넘은 곳에 있는 작은 마을 출신인데, 마을이 습격을 받았고 혼자서 겨우 도망쳐 왔다고 하였다.
새하얀 기모노 차림에 맨발, 머리는 풀어헤치고 있어서 처음엔 귀신으로 착각했다.
손발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눈에 초점이 없어서 서둘러 산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다른 마을 사람은?"
숯장이들이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덜덜 떨기만 하고 도통 말을 하지 않았다.
겨우 그 여인이 입을 떼서 해준 이야기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번 달 들어서 "지주를 저주하기 위해 산제물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여인의 마을에 흘러들어왔다.
몇 마을은 습격을 받아서 전멸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아무도 안 믿었지만 그럼에도 마을에 불온한 공기가 떠돌았다.
닷새 전 여인의 마을에 기묘한 가면을 쓴 무리가 나타났다.
지주의 명으로 마을 정중앙에 액막이 의식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주의 편지를 촌장에게 전달한 집단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촌장의 경계를 풀기 위해서 무언가를 건넸다.
여인은 그 무언가를 보진 못 했지만, 그걸 받고 촌장의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에
'돈을 받은 게 아닌가'하는 소문이 돌았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차례대로 자다 일어나 마을 전체에 소동이 일었다.
진득진득한 무언가가 마을을 집어 삼키고 한 사람도 남김 없이 잡아 먹는 꿈이었다.
그 꿈은 한 두 사람만 꾼 게 아니었다. 마을 사람 거의 모두 그 꿈을 꾸었다.
그 기묘한 의식과 관계가 있을 것 같아, 촌장이 마을 변두리에 머물고 있는 우두머리에게 항의하러 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이변이 일어난 후였다.
걸어가던 촌장과 몇 젊은이가 갑자기 눈 앞에서 사라졌다.
새카만 안개 같은 것이 무언가를 소리내며 '먹고 있었다'
이어서 횃불에 비친 것은 굴러오는 촌장의 머리였다.
마을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여인은, 그 후에 있었던 일은 떠올리기도 싫다고 했다.
그 여인은 등 뒤로 이지러지는 비명과 고함소리 때문에 귀를 막으며 산 속을 헤치고 도망쳤다고 한다.
그리고 눈을 먹고 계곡 물을 마시며 겨우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었다.
여인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산길이 눈으로 막히기 전에 산 아래 마을에 알려주어야만 한다.
숯장이들은 여인을 업고 산을 내려갔다.
촌장은 숯장이들이 별난 사람들이지만 성실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믿었다.
"수상한 무리가 오면 마을에 들여선 안 된다"
"지주에게 바로 보고를 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고 여인을 마을에 맡기고 숯장이들은 부락으로 돌아갔다.
적어도 이상한 의식을 하지만 않으면 마을은 괜찮을 거라고 믿고...
그리고 사흘이 지나고 겨우 부락으로 돌아온 숯장이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가면을 쓴 수상한 무리가 부락 안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도망치려 했지만 숯장이들은 지쳐 있었기 때문에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너무나 쉽게 붙잡혀서 포기하고 상황을 받아들였다.
"이미 마을은 구했다. 너희에게 속지 않겠다!"
숯장이 중에서도 연장자가 그렇게 말하곤 웃었다.
그러자 수상한 집단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인물의 안색이 변했다.
"너희들... 누굴 마을로 들였느냐?!"
그 분위기에 휩쓸릴 뻔 했지만, 숯장이 마을의 연장자는 그래도 허세를 부렸다.
"너희가 덮친 마을의 여인을 구했다..."
"멍청한 것 같으니!!!"
사내의 말을 가로 막고 우두머리는 소리쳤다.
"너희가 끌어들인 것은 사람 모습을 한 도깨비니라!"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 귀여운 여인이 도깨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거짓말 말게! 너희가 하는 말을 어찌 믿겠는가!"
"...너희는 이 겨울 산에서 여자 몸으로 헤메며 얼마나 살 수 있을 것 같은가?"
"......"
"그 계집은 진작에 죽었을 게다. 눈은? 몸은? 생기는 있던가?"
남자의 말이 가슴에 울렸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우두머리는 계속하여 말했다.
"모두를 죽인 마을에서 그럴싸한 사람이 보이면 그 속에 숨어 들어 다음 마을을 습격하지.
하지만 마을마다 악령 퇴치 부적이 있는 곳이 많아서,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한 게야"
그 말을 들은 숯장이들은 터무니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말도 나오질 않았다.
황급히 돌아가려는 숯장이를 우두머리가 가로막았다.
"...이미 늦었네. 이틀이나 지났다고 했지.. 또 한발 늦었군..!!"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숯장이들에게 이 땅에서 나가라고 하더니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산 아래 마을로 향했다.
귀신을 쫓기 위해서...
숯장이들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이 마을에 대한 자료는 향토 자료관의 지하 도서고에 잠든 "흑불 산촌 기록"에만 기록되어 있다.
"마을 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한 명도 남김 없이 사라졌다.
개도, 고양이도, 소와 말도... 모든 것이 없었다.
다만, 여기저기 튀어 말라 붙은 피의 흔적만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하는 듯하였다.
마을 사람이 저항하여 싸운 듯한 흔적은 없었다.
그러나 말라붙은 피를 보니 분명히 죽은 흔적이 있다.
시체도 없고, 그저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당시에 이 지방을 다스리던 지주에게 보고된 것 중에서, 이 이상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아마 도적 같은 것에 죽임을 당했고, 살아남은 자도 시체와 함께 끌려간 게 아닌가 하고 여겨졌다.
전국 시대 세상에서 산 속의 작은 마을이 사라지는 것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진상이 밝혀지는 일 또한 없었다.
숯장이들의 이후 행적은 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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