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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븅신사바] 공포소설 - '잠에서 깨면'
게시물ID : panic_859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요올
추천 : 14
조회수 : 1803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6/01/28 06: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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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20대 청년으로, 어제까지만 해도 공부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오던 길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 사무실 책상이 아닌 도서관의 책상 앞에서 또다시 연필을 손에 쥐게 되었지만, 그것이 평범한 대한민국 20대 청년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너무나 큰 충격에 빠져버렸다. 건조한 손바닥을 들어 다시 한 번 얼굴을 매만져보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거울 속에 주름진 저 얼굴이 너무도 낯설다. 무릎이 아파와서 더는 오래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바로 어제 27세 청년이었던 나는 오늘, 80세의 노인이 되어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 어르신. 그만 돌아다니시고, 이제 그만 앉아 쉬세요. " 


 그렇게 말하며 옆의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를 부축하며 이끌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나는 얼음이 된 채로 입만 오물거렸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 아.. 아아..!! "

" 어르신. 자아, 어서요. "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걸어나가면서도, 충격이 너무 커서 어버버거리는 소리만 내뱉는 내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 노인? 내가 노인이라고?!? '


" 어르신, 왜 또 우세요? 자식들 생각이 나셔서 그러셔요?? "


 아주머니의 부드러운 음성이 나를 다독이듯이 말하였다. 하지만 내 충격을 달래주지는 못하였다. 나는 너무 무서웠다. 왜 내가 이런 모습으로 이런 곳에 와있는 것일까? 내가 있는 곳은 어떠한 시설 같았다. 주변에는 나와 같은 모습을 한 노인들이 기운 없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 으흐흑.. "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하였다. 지금의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 아주머니, 여기가 어딥니까? 왜 내가 여기에 있죠? "


이끌리듯, 끌려가듯 걸어가면서도 나는 떨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또박또박 말을 이으려고 애썼다.


" 아이고, 어르신. 몸이 불편하셔서 이렇게 우리 시설에 오신지 벌써 5년이세요. "

" 예? 왜 자꾸 어르신이라고 하세요?? 나는.. "


간병인의 부축을 받아 이르른 곳에는 병원식 침대가 있었다. 일렬로 몇 개의 침대가 늘어서 있고, 다른 침대에는 다른 노인들이 힘없이 누워있었다.


" 자아, 어르신. 잠깐 낮잠이라도 한숨 주무셔요. "


 아주머니는 나를 빈 침대에 누이고는 이불을 덮어주며, 불편한 곳이 없는지 살피더니 이내 자리를 떠났다. 나는 너무나 경황이 없고, 어이가 없었고, 두려웠지만, 무엇보다도 너무나 피로하였다. 몸에는 힘이 없어 온데만데 쑤시고 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눕자마자 바로 잠이 솔솔 오기 시작하였다.


' 꿈일 거야. 어쩌면 이리도 생생한 꿈인지.. '




 밥때가 되자 간병인들이 잠든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니 역시나 같은 방 안이다. 나는 절망했다. 이게 정말 현실이란 말인가? 침대에서 일어난 노인들이 하나씩 천천히 방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나도 침대에서 일어나 그 뒤를 따라나섰다. 걷는 동안 무릎이 삐꺽거려서 잘 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른 노인들을 따라 들어선 곳은 공동 식당이었다. 자리에 앉자 간병인들이 노인들 앞으로 음식이 담긴 식판을 가져다주었다. 몸이 많이 불편한 노인은 간병인이 옆에 앉아 일일이 수저를 떠넘겨주고 있었다.


 나도 내 앞에 놓인 수저를 들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자 흐릿한 내 두 눈으로 주름진 투박한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 손이었다. 남자 손이었지만 나름 손이 예쁘단 소리를 들어왔었다. 그런데 탄력 있고 부드럽던 피부는 온데간데없고, 주름지고 건조한 손이 내 앞에 놓여있었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한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어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몇십 년 전의 과거의 기억이었나 보다. 납득하기 싫지만 지금의 나는 노인이다. 치매가 왔던 모양인지 기억이 오락가락 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요양원에 맡겨진 지 벌써 5년이라 하였지?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기억이라고는 취업과 씨름을 하던 20대 취준생의 기억이 마지막이다. 내게 자식이 있다던 간병인의 말이 얼핏 떠올랐다. 지난 5년간 나의 자식들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을까? 나는 대체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던 것일까? 생각을 마친 나는 그대로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 수저를 집고 입안에 밥을 퍼 넣었다. 밥은 죽처럼 퍼져있었지만, 어차피 이가 별로 없어 씹기가 힘들어서 그냥 대충 씹어 넘기며 식사를 마치었다. 음식들의 수준은 별로 좋지 못하였다. 노인들의 사정을 고려해서 음식들은 부드럽다 못해 물렀고, 반찬들은 평범하였다. 나는 허기가 졌었다. 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릴 형편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식기의 음식들을 모두 비웠다.



 식사를 마친 후에 공동 식당을 나와 느린 걸음으로 창가에 다가섰다. 이곳은 꽤 시골이었는지 창밖의 풍경이 녹색으로 일렁거렸다. 이제 봄인 것일까? 20대의 나는 노년의 인생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그때 학업과 그리고 취업과 싸우느라, 그런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라며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도 느껴졌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이런 모습으로, 이런 곳에 있는 것이다.


" 아빠.. 엄마.. "


 내 나이를 보건대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신 뒤일 것이다.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로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창밖의 풍경이 더욱 흐릿해져 갔다.


" 아..! "


 갑자기 몰려오는 오한과 어지럼증과 함께 뒤로 나자빠지는 나의 몸이 느껴지었다. 귀를 찢는 비명이 울려 퍼지고 나에게 달려드는 간병인의 모습이 낡은 영화 필름처럼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하였다.



" 헉!!.. "


 침대에서 문뜩 눈이 뜨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피자, 주변 사위가 깜깜한 것이 아직 새벽녘인 듯하였다. 익숙한 방안의 풍경. 우리 집이었다. 내가 매일 먹고, 자고, 일어나 도서관을 향하던...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바로 형광등을 켰다. 방 안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아니면 엊그제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당장에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대로 부모님이 계시는 안방 문 앞에 우뚝 섰다. 코골이가 심한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고스란히 방문 밖으로 울려왔다. 문고리를 돌려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안방에는 부모님이 아직 곤히 잠들어 계셨다. 항상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아버지와 그 이불을 온전히 다 덮고 주무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이토록 가슴 떨리는 모습일 줄이야.. 나는 다시 조용히 문을 닫고 내방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어쩌면 그리도 생생한 꿈이 다 있을까? 아니면 지금 이것이 꿈인 것인가? 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내 오른뺨을 세차게 때렸다. 아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그리고 또다시 한 번 내 양 뺨을 거침없이 세차게 갈겼다. 아프다.. 눈물 나게 아팠다.


 꿈이다! 어제의 일은 모두 꿈인 것이다!! 어쩌면 그런 꿈을 꿀 수가 있단 말인가? 취업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에 내가 얼마나 안도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너무도 끔찍한 꿈이었다. 늙고 병든 몸으로 가족이 아니라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같은 처지의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그 꿈은 너무도 리얼한 악몽이었다.


 시계를 살피자 새벽 5시경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다시 잠들기가 두려워졌다. 잠도 이미 다 달아난 후였다. 노인의 삶, 그 단편을 미리 엿본 것은 꽤나 불쾌한 일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내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몇 년 전에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생각이 났다.


" 할매.. 할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


 나는 눈물이 났다. 꿈속의 내가 느낀 그 기분들, 감촉들이 너무나 소름이 끼쳤다. 다시는 그런 꿈 따위 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미래에는 거부할 수 없는 반드시 다가올 일 일지도 몰랐다. 견디기 힘든 감정이다.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안도하고 또다시 불안하였다. 불안해졌다.


" 할매, 나.. 늙는 것이 무서워요. "


 나는 두려웠다. 지금의 이것도 꿈일까 두려웠다. 새벽빛이 선한 옥상 위에 선 지금 왠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 할매.. 자주 찾아오지도 않던 불효한 손자가 왜 이렇게 빨리 왔느냐고, 너무 나무라지 마셔요.. "


 허공에 손을 뻗자 차가운 공기가 맞닿아왔다. 오래 입어 낡고 늘어진 셔츠가 바람결에 펄럭인다. 세찬 바람이 나를 가른다. 아니, 내가 바람 사이를 가른다. 이제는 꿈을 꾸지 않아도 된다. 꿈에서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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