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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븅신사바] 공포소설 - 밤길, 지나가던 벽 너머의 미친 여자.
게시물ID : panic_859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윈스턴
추천 : 16
조회수 : 237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6/01/30 19: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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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지나가던 벽 너머의 미친 여자





윈스턴 作



 숨은 언제 쉬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쁜 일상에 치여, 밤이 돼서야 귀가하는 혜진은 이런 생활이 익숙해서인지 밤공기가 좋았다. 이 어두컴컴하고 서늘한 공기가 흐르는 시간대만이 집으로 향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혜진의 집은 주택가에서 들어서기를 10분, 동네 야산이 지척에 보이는 지점에 있다. 번화가와 대중교통이 가까운 지점은 집 값이 비싸기에 주택가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고, 주택가 너머는 휑한 야산 하나가 자리 잡고 있어 치안 유지가 힘든 까닭에 집 값이 쌌다. 물론 지금까지 어떠한 범죄 행위가 일어났다던가 하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으니 기분의 문제 외에는 별 다를 단점은 없다.


또각 또각


혜진의 하이힐 소리만이 한적한 길에 울려 퍼진다. 한 밤중이기에 어둡기만 한 거리와 골목을 걷는다는 것은 사실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다. 간혹가다 새벽까지 잠들지 않고 있는 집이라도 발견한다면 그 집에서 새어나오는 생활 속의 불빛에 그나마 마음을 녹일 수 있다. 그 외에는 주황 빛의 가로등 뿐이다. 환하고 밝은 빛깔의 가로등 불빛이 왜 이리 차갑게 느껴지는가. 집에 가면 기다리고 있을 따뜻한 방과 맛있는 야참, 그리고 포근한 이불이 기대될 뿐이니 아무래도 상관 없었지만.

특히나 여자라면 이런 늦은 시간에 걷는다는게 영 꺼려지는 일일 것이고, 혜진도 그러했다. 하지만 요즘같은 실업시대에 취직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인데다가, 사실 혜진 정도면 돈을 꽤 많이 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불평은 할 수 없었다. 그저 이 돈 많이 주는 회사에서 영혼까지 불살라 일해가며 얼마를 고생하고 내 남은 인생을 편히 보내자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미래의 안락함을 꿈꾸며 현재의 시간을 무겁게 짊어지고 살아가는 중이었다. 머지 않아 주말인데 주말에는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하나, 혹시나 주말인데도 지난번 처럼 출근을 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온갖 상념들을 상대하며 혜진은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머릿 속과는 다르게 거리는 매우 고요하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껏 고요한 와중이었을까.

혜진은 바로 눈치를 채고 주의를 기울였다.

어떤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까득 까드득 까득 까드득


전방에서 서서히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는 혜진이 걸음을 재촉함에 따라 점차 가까워왔다. 무언가를 갉고 있는 소리. 일상적인 소리가 아니니 왠지 경계를 하게 된다. 점차 소리가 가까워오고, 혜진은 한 담벼락 앞에 다다랐다. 소리는 담벼락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담은 혜진의 가슴께 정도밖에 오지 않는 작은 높이였지만, 그 너머는 온통 새까만지라 보이질 않아 무엇을 위한 담벼락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애시당초 이 곳에 집 같은게 있었던가.

그때 하얀 무언가가 벽 뒤에서 떠올랐다.


“흐… 흐끅…!!”


무언가의 희번득한 눈이었다.

벽 너머가 시커멓게 아무것도 안 보였었다. 갑자기 떠오른 것은 산발한 머리를 가진 여자의 얼굴. 혜진은 기겁을 하며 뒤로 나자빠져 반대편 벽에 몸을 기대었다.


“게흑!! 게흑!! 게흑!! 게흑!!”


마치 딸꾹질이라도 하는 것 처럼 간헐적으로 성대를 꺾는 듯한 소리를 내는 여자. 여자는 혜진을 보고 있었다. 공포라는 것이 이런 느낌이었나. 소스라치게 놀라 패닉을 일으키며 비명지르는 영화 속 내용과 다르게 공포는 눈치 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다가와 온 몸을 옥죄고 작은 숨 소리 하나 내지 못하게 자신에게 엉겨 붙어 휘감았다. 혜진은 눈이라도 깜빡이면 달려들지는 않을 까, 시선조차 돌리지 못했다.


“기힉!!! 기히히히힉!!!!”


여자는 자신의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 와중에도 까득거리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여자가 있는 벽 너머에서 계속해서 들려왔고, 오히려 더 심해진 느낌이 들었다.

아주 길고 마른 얼굴.

광대뼈가 아주 크고 턱과 목의 경계선은 없다시피 할 만큼 아래턱은 작다.

목은 두꺼웠고 툭 튀어나온 앞니는 뒤죽박죽 자라 있었고, 잘 들어맞지 않는 턱뼈 탓인지 침이 질질 흘러 아래 목까지 적신다.

검은 침이 흐르고 눈꺼풀은 마치 없는 것 처럼 보일 정도로 뒤집혀 눈이 튀어나올 것 같다.


까득 까득 까득 까득 까득 까득 까득 까득


여자의 머리가 벽을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로로 십 미터는 훌쩍 넘을 것 같은 길이의 벽을 따라 빠른 속도로 오간다.

좌측으로 흘러갔다 우측으로 흘러갔다.

혜진은 뭔가에 홀리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았다.


그것은 계속해서 이동하면서도 혜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벽 너머의 여자가 누구인지, 이 곳은 누가 사는 집인지 알 턱이 없었다.

대체 왜 까득 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가.

그때, 여자가 멈춰서 자신의 아래를 보았다.

여자가 나직이 말한다.


“부러졌다.”


그 알 수 없는 여자의 목소리는 동굴 저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울리고 낮았다.

멀고 먼 환풍구 끝에서 들리는 듯한 그 알 수 없는 목소리와 함께, 까득거리는 소리가 멎었다.


혜진은 여자가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린 틈을 타,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공포를 떨치고 뛰쳐나갔다.

막상 달리기 시작하자 혜진은 멈출줄을 몰랐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이지 않은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쉽게 내달렸다. 머지않아 집에 도착한 혜진은 그대로 자신의 집 문을 걸어 잠그고 경찰서에 신고했다.




그날은 씻는둥 마는둥 하고 이불 속에 들어가 뭔가 먹을 생각도 못 한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그래도 피로함을 이길 수 없었는지 늦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었나보다.

집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었으니까.

혜진은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나가 체인이 걸려있는 상태로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제 밤에 괴한이 있다고 신고하셨었죠? 경찰입니다.”


훤칠한 키에 경찰 제복을 입은 두 남녀가 서 있었다.

혜진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체인을 풀은 채 경찰들을 맞이했다.


“그 여자는 찾았나요?”

“아, 그게. 아무리 살펴봐도 선생님께서 신고한 현장에는 집이 없었거든요?”

“집이 없다… 니요…?”


혜진은 몇 번이나 자신이 말한 장소를 이야기 했지만 그 곳은 집이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 뿐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던 혜진은 두 경찰들의 차를 타고 자신이 그 괴상한 여자를 보았던 사건현장까지 동행했다.

제정신이 아닌 것이 틀림 없었던 미친 여자.

아직도 희번뜩 거리는 눈과, 기괴하게 작은 아래턱을 쩌억 벌리고서 검은 침을 질질 흘려대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벽을 따라 좌우로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던 그 모습도. 경찰차를 타고 이동하며 소름 돋는 기억에 대한 상념을 쏟아내는 혜진.

경찰의 인도에 따라 차에서 내린 혜진은 순간 호흡이 멎었다.



어젯 밤 보았던 낯이 익던 벽.

이 곳에 집이 있었던가 하고 자신을 의심하게 했던 장소.

그녀는 왜 기억을 하지 못했을까.

분명 그 곳에는 혜진의 기억처럼 집 이란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높고 까마득한 축대였다.

혜진의 가슴께 정도 오는 벽 너머를 내려다보니,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고 그 아래에는 십오 미터 족히 될 법한 높이의 낭떠러지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조그마한 실개천이 흐르고 있을 뿐.




혜진은 뭔가에 홀린 듯, 그 축대의 아래에 흐르는 실개천까지 경찰들을 끌고 내려갔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축대의 벽은 더욱 높았고 가팔랐다.


“이만하면 안심이 되셨나요? 저 위에 길을 지나가고 계시다가 벽 너머에 누군가를 보셨다고 했는데, 확인이 끝나셨겠지만 거긴 사람이 있을 수가 없어요. 이 높은데를 어떻게 올라간답니까?”


그때 옆의 여자경찰이 남자경찰의 말을 자르고 이야기한다.

무언가를 본 것인데, 이미 혜진도 그걸 보고 있었다.


“저기… 저기 보세요….”

“뭐? 뭐 어디.”


남자경찰도 머지않아 말문이 막혔다.

그 곳에는 무수히 많은 긁은 자국들이 벽을 메우고 가득했던 것이다.

축대의 맨 아래 벽에는 다섯줄로 쭉쭉 그어진 자국들이 온통 뒤덮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손톱자국과 흡사했다.

혜진은 그러다 한 켠의 자국을 주시했다.

검은 액체가 한줄로 쩌억 그어진 부분.

손톱으로 연신 벽을 긁다 손톱이 빠져 피가 긁는 방향대로 그어진 듯한 형상.

여자도 분명 부러졌다며 아래를 내려다 봤었다.


손톱 자국은 이렇게 아래에 있는데, 그녀를 바라보며 좌우로 이동하던 머리는 그녀 바로 앞에 있었다.

벽을 긁으며 무언가를 하려던 몸은 이렇게나 먼 아래에서 버둥댔는데, 어떻게 머리가 저 위 벽 너머의 혜진을 바라보며 움직일 수 있었을까.




혜진은 경찰들의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고, 회사에 이야기 해 쉬겠다고 이야기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 너머에서 직장 상사의 높은 언성의 말들이 흘러나왔지만 무시하고 그냥 종료버튼을 눌러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혜진이 그날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알지 못하는 것의 공포는 그 어떤 무서운 형상의 생물보다도 존재감이 크다.

그렇다고 그 형상이 무섭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혜진은 실내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채 씻지 못한 채 지샜던 어젯밤 때문에라도 제대로 씻고 제대로 하루 쉬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욕을 먹을 거 억울할 일 없이 쉬겠다고, 그리고 어제 일은 바로 잊어 버리자고.

욕실에 들어선 혜진은 바로 더운 물을 욕조에 받으며 샤워를 했다.

몸을 대충 씻어낸 혜진은 바로 더운 물이 가득 증기를 피워내는 욕조에 몸을 담갔다.

사르르르 녹는 몸이 혜진의 긴장감을 덜어준다.



그때, 혜진의 발치에서 무언가 떠올라 혜진의 눈 앞까지 둥둥 뜬 채로 흘러왔다.



매우 거칠고 샛노란 손톱이었다.



통째로 뽑힌 듯 길고 마른 손톱.

혜진은 어떻게 도망쳐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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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치여살다보니 븅신사바가 끝나는 날 저녁이나 되서야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아무래도 높은 점수를 얻기에는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참여에 의의가 있으니 이렇게 뒤늦게나마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븅신사바가 벌써 3차에 접어 들었는데, 개최될 때마다 공포게시판에 좋은 글들이 넘쳐나니 한 없이 행복한 기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서운 글이라는게 내가 당장 보고싶다고 해서 새로운 글이 올라와주는건 아니잖아요?


정말 보고싶어도 새 글이 없으면 공포게시판을 버릇처럼 확인하면서도 금방 발길을 돌리기도 하고 ㅎㅎ

여튼 많은 분들의 재능과 노력으로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코스믹호러를 지향합니다.


여지껏 썼던 글들도 주제가 거의 코스믹호러였었는데 국내에는 아직 채 발도 떨어지지 않은 장르인지라 생소해 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직업이 글작가도 아닌데다 잘 쓰지도 못하니 그런 탓도 크겠지만요.

반대로 내가 프로도 아닌데 내가 좋아하는거 쓰면 안되나? 싶으니까 자유로운 면도 있어 좋기도 합니다.


미지의 공포 하면 코스믹호러니까.


여튼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다는건 제 글을 다 읽어주셨다는 의미이니 정말 한없이 감사합니다 ㅎㅎ

븅신사바 마지막 날인데 저처럼 좋은 시간들 보내신거겠죠?


그럼 저는 이만 사족을 줄일게요, 모두 행복한 하루 되세요!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소녀상을 지킬 것입니다.]
[꿈과 희망이 넘치는 공포 게시판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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