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 사진이란 건 종종 이야기 듣지만,

풍경화에도 심령 현상이 일어나려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떠오른 일이 있다.

정년 퇴임하신 후, 할아버지는 유화를 그리시며 시간을 보내셨다.

그림은 인물화도 그리고, 풍경화도 그리고, 제사 장면을 그리는 등

딱히 한 종류만 계속 그리진 않으셨는지

여러 그림이 별채의 할아버지 작업장에 걸려 있었다.

(나랑 형의 어릴 때 모습도 그러져 있었다)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면 새로 그리신 그림을 종종 보여주곤 하셨는데

그 중에 한 폭의 풍경화가 어린 마음에도 왠지 무서웠다.

별 그림은 아니다. 산 속에 흐르는 작은 내가 그려진 풍경화였다.

나무 사이를 발목 정도까지 올 것 같은 얕은 냇물이 졸졸 흘러가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다만, 내가 무섭다고 느낀 부분은

할아버지가 그린 것치고는 좀 이상한 그림이라

풍경화를 그리실 때는 풍경만 그리시고 사람은 그리지 않으셨는데

그 풍경화만큼은 앞으로 흘러나오는 냇물 안쪽에 여자 한 명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었다.

일부러 그리신 거니까 할아버지가 아시는 분인가 생각했지만

왠지 여쭤보지는 못 하고 그저 무섭다고 생각하며 되도록 그 그림은 안 보려고 노력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또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을 때

문득 같이 있던 형한테 "그 강 그림에 나오는 여자 안 무서워?"라고 물었는데

형은 기억이 안 난다며 그 그림 한 번 보러 가보자고 했다.

별채로 가서 이 그림 말이야라고 형에게 알려줘도 "사람 같은 건 없는데?"라고 했다.

자세히 가리키는 건 내키지 않았지만 "여기 이 여자 말이야"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너 지금 나 무섭게 하려고 장난 치냐?"라고 형은 농담으로 치부했다.

오히려 형이 보이는데 일부러 무섭게 하려고 나한테 그러는 거라고 의심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 그 그림을 보러 가봤더니 여자가 안 보였다.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게 중 3 여름 방학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분명 아직 그림 속에 있엇다.

몇 번이나 봤기 때문에 어려서 잘못 본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뭐랄까.. 지금도 그때 그려진 여자를 떠올리면 살짝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