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오컬트학] 대나무 숲
게시물ID : panic_888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17
조회수 : 12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6/27 20:40:51
대나무 숲

초등학교 때 있었던 기억이다.

내가 자란 마을에는 예전에 숲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숲은 조금 특이한 숲이라서
숲 안에 들어가서 중간 쯤 가면 어느 부분이 경계가 되어 갑자기 대나무숲이 나온다.
그 대나무 숲 앞에는 철조망으로 울책을 쳐 두어서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숲은 그렇게 큰 건 아니었지만,
반대쪽이 마침 강이 구비치는 부분을 따라 나 있기 때문에
반대 강기슭에서 보면 대나무숲의 '등' 부분을 볼 수 있었다.

강과 대나무 숲 사이에는 꽤 높은 콘크리트 벽으로 막아둬서
대나무 숲 안으로 들어가려면 숲을 통해서 들어가, 철조망을 넘어야만 했다.

당시에 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친구들과 비밀 기지를 만들어서 놀기도 하고
강을 따라 탐험도 하면서 놀곤 했다.

어느 날 그 대나무 숲 안에 뭐가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차피 초등학생 남자애들 생각이란 뻔해서,
"1억엔이 묻혀 있다" "야한 책이 있다" 뭐 그정도였다.
그래도 우리는 괜시리 두근거리며 상상을 부풀리곤 했다.

지금까지도 대나무 숲 이야기는 많이 나눴지만
"철조망 너머는 위험하니 들어가서는 안 된다"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아니, 그렇게 어른들이 말하니까 지킨 것 뿐이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니까 호기심이 더 강해졌다.

우리는 결국, 그 대나무 숲 안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일요일, 같은 반 애들끼리 모였다.
다섯 명의 초딩들이 처음으로 맛보는 긴장감에 들떠 있었다.
숲의 입구에 서 있던 우리는 누가 앞장 설까에 대해 다퉜다.
결국 가위바위보로 내가 지는 바람에 내가 앞장 서게 되었다.
숲 안은 몇 번이나 들어가본 적이 있어서 괜찮았다.
친구들이 오래된 낙엽과 나뭇가지가 섞여 있는 땅을 밟는 소리가 뒤따라 왔다.

"으악!"
제일 뒤에서 오던 겁쟁이 T가 갑자기 소리쳤다!
"뭐!?"
"왜, 왜 그래?!"
다들 움찔했다.
벌레가 목 언저리에 떨어졌다고 했다.
"아 놀래키지 마!"
T는 모두에게 야유를 샀다.
이래저래 철조망까지 다가갔다.

대나무 숲이 더욱 어둡게 보였다.
한낮인데도 저 높이 자라난 대나무가 태양을 가로막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려 잎사귀가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무섭네..."
내 뒤에 있던 M이 말했다.
"야, 하지마"
"쫄았냐?"
다들 센 척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가보기로 하고
철조망이 망가진 부분을 찾아서 발로 구멍을 넓혔다.
일단 내가 먼저 철조망을 기어서 넘어갔다.
다들 우물쭈물하며 기어서 넘어왔다.
"이쪽"에 와보니 더 어두웠다. 기분 탓인지 조금 한기가 들었다.

무슨 일 있으면 튀기로 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설마 이 정도로 스산할 줄은 몰랐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대나무 숲의 녹색 투성이였다.
두터운 대나무와 새로 자란 얇은 대나무. 큰 대나무와 중간에 잘린 대나무.
발 아래에 죽순이 보였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아..."
T가 말했다.
이상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끝없이 들리는 잎사귀 스치는 소리는 고요했다.
좀 더 나아가보니 대나무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는 게 보였다.
"저기! 뭐가 있을 것 같아!"
A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들 빛이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푸른 대나무 사이에서, 노란 빛이 새어나와서 굉장히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어째서 노란 빛이 새어나왔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대나무 사이를 지나자, 반경 5m정도되는 공간이 나왔고,
잘 보니 그 부분만 대나무가 말라 죽어서 노랗게 변해 있었다.
그 마른 잎사귀에 빛이 반사되어 노란 빛이 새어나온 것이었다.
그 "광장"에는 거대한 개미지옥이 사는 것 같은 깔대기 구멍이 두 개 있었고
꽤 낡은 망가진 차가 한 대 놓여 있었다.
"이거 뭐지?"
다들 그 광경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M이 "야, 이 구멍 웃기지 않냐?"라더니
깔대기 모양 구멍에 재빨리 다가갔다.
나머지는 뒤를 따라 가서 안을 들여다 봤지만 아무 것도 없었고
마침 우리 초등학생 키와 비슷한 깊이의 구멍이 있을 뿐이었다.
"에이~ 암 것도 없잖아!"
M이 그렇게 말하더니 구멍의 경사면을 따라서 빙글빙글 뛰어 구멍 바닥까지 갔다.
다들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폐차를 발로 차기도 하고
구멍 안에서 장난치던 중 갑자기 일어난 일이다.

"뭐하는 짓이야 이 놈들!!"

갑자기 어른이 호통 치는 소리에 우리는 뒤도 보지 않고 도망쳤다.

나는 도망치기 직전에 똑똑히 봤다.

"광장" 반대편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남자가
엄청나게 험악하게 노려보는 게
마치 이웃집 개구장이를 혼내는 호랑이 영감 같았다.
소리치던 그 남자 얼굴은 뿌옇게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낡은 갈색 기모노를 입고 있던 건 뚜렷하게 봤다.

다들 죽을 동 살동 도망쳤다.
중간에 T가 우는 바람에 나도 눈물이 났다.
일단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들 숲 입구까지 도착했을 때는 땀투성이에 숨이 차올라서
숨이 막혀서 쓰러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나는 몸이 떨리는 게 멈추지 않았다.
순간적인 그 사건 사이에, 무서운 것을 몇 가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소리치기 직전에,
폐차의 트렁크 틈새에서 트렁크 안 한가득 부적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아저씨를 봤을 때 뒤에 희미하게 폐가가 보였다.
하지만 거의 무너져서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았을 터인 그 아저씨 얼굴이 이상하게 똑똑히 기억났다.

그 남자의 눈이 하나 뿐이었다.
얼굴 중간에 딱 하나.

그때 일을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게 지금도 후회된다.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28025062.html#more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