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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눈
게시물ID : panic_889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
추천 : 29
조회수 : 2131회
댓글수 : 34개
등록시간 : 2016/07/01 18: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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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SNOW.png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다.
 
자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산길을 오르며 생각했다.

매년, 같은 날에 어느 곳을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언제나 그날은 춥고, 산길은 험하며, 때론 길이 끊기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매년 그곳을 가고 있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산길을 걸으며 떠올려본다.

나는 어렸을적 기억이 잘 없다.

하지만 무심히 나를 버리고 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기억에 선하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이유조차 모르지만
 
이젠 그 모습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곤 혼자 살았다.

아이들에겐 깜장놈이라며 괴롭힘 당했었고, 하루에 한끼도 먹기 힘들었다.
 
매일밤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살아왔다.
 
 
어느날 나는 너무나도 배고파 작물을 서리하러 밭에 간 적이 있었다.
 
밭을 파헤치다 허기에 지쳐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사람을 만난다.

새하얀 옷을 입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에게 밥을 해주셨다

그렇게 맛있는 밥은 살면서 처음 아니었을까.
 
집에서 나가는 나를 보고 할머니는 웃어주었다.
 
 
 
그 후에도 나는 그 엄나무 아래 작은 집에 자주 찾아갔다.

나는 언제나 허겁지겁 밥을 먹었고, 깜빡하고 잠들때도 많았다.

그리곤 할머니의 새하얀 품 속에서 눈을 뜨는 것이다.

할머니도 기분좋게 주무시고 계시면 어느새 나도 한 숨 더 자고 말아버린다.

그런 일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집에서 살게 되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아늑함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다른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과묵한 것이 아닌 말을 못하신다는 것.
 
그래서 어디에도 나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할머니가 좋았다.
 


때때로 할머니는 앉아서 조용히 창밖만을 보고있을 때가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뜬 새하얀 달만을 보고 계셨다.

그럴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옆에 조용히 기대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나를 끌어안고 주무시곤 했다.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살아갔다.
 


언제였을까.

어느날 흰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처음으로 본 눈은 새하얗고, 아름다웠다.

쌓인눈에 폴짝거린 모습을 본 할머니가 활짝 웃으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를 보며 더욱 폴짝거리며 장난을 쳤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보곤 손짓으로 부르셨다.

그리곤 나를 보고 쓰다듬어 주셨다.

할머니의 손길은 기분 좋았다.
 


할머니는 무언가 말하시려는 듯 입을 움직이셨다.
이윽고 할머니는 그저 웃으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전해졌다.
 
고맙다는 말이.
 
 

다음날 할머니는 일어나지 않으셨다.
 
나는 할머니가 오랜만에 오래 주무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게 아니었다.
 
할머니는 숨을 쉬지 않으셨다.
 
나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 거리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전화기를 쓰려트려도, 큰소리를 내도, 그누구도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할머니를 내버려두고 옆집으로 달려가 아저씨를 불렀을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할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이제 도착했다.

할머니와 나의 작은집은 그때와 변치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기를 오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할머니의 아들이 이 집을 헐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도 이젠 내가 무리다.

산길을 오르며 그렇게 느꼈다.

나도 마지막이라고.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봤다.

맛있는 밥을 먹었던 부엌간.
 
따뜻하게 하얀 할머니의 품에서 잠들었던 거실.

그때와 다름없이 삐걱이는 마루를 건너
 
할머니가 자주 앉아 계셨던 창을 건너

바보같이 뛰어놀았던 앞마당
 
짧은 오솔길을 건너 올라가면
 
할머니와 처음으로 만난 작은 밭.
 


그리고 할머니의 묘소에 도착했다.

나는 할머니의 묘소 앞에 앉았다.

나는 결국 할머니께 해드린게 없었다.

마지막까지도.

그저 이렇게 앉아있을뿐이다.
 
 

할머니의 묘소를 바라봤다.

작고 보잘것 없는 그모습에 나는 고개를 떨궜다.

나때문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난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다.
 


내가 사람이었다면.

그렇다면 할머니를 도울수 있었을텐데.

나는 할머니에게 감사를 받을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저 불운을 가져다 주는 검은 고양이일뿐이다.

고맙다는 마음 하나 전하지 못하는 배은망덕한 고양이일 뿐이다.

그저 그런 고양이일 뿐이다.


돌연 눈이내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그러나 촘촘하게 눈은 쌓여갔다.

나또한 쌓여갔다.

하지만 새하얀 눈은 따뜻했다.
 


마치 할머니의 품과 같이.

할머니가 내려주신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은 어느새 새하얗게 뒤덮였고

나도 더이상 검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왜일까.

서서히 눈이 감긴다.
 

지금이라면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이라면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것 같았다.

이번에는 할머니에게 꼭 전하자.

고맙다는 마음을.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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