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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히교 님
게시물ID : panic_892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28
조회수 : 1402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7/16 21:01:34
히교 님

지금은 접었지만, 우리 외가는 시마네현에서 양계장을 했습니다.
매년 여름 방학이 되면 엄마와 누나, 동생, 저 이렇게 넷이서 놀러가곤 했습니다.
아빠는 휴가를 받을 수 없어서 매년 혼자 집에 남겨지셨지요.
외가는 시마네현의 오치라는 군에 있었는데,
좋게 말하자면 자연으로 가득찬 일본의 옛 풍경이 넘실대는 곳이고,
한 마디로 깡촌입니다.
외가에서 한 일주일 정도 머무르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한테 들러붙어 신나게 놀았습니다.
시골이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두 분 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고 잠도 일찍 잡니다.
새벽 4시에는 일어나셔서 새벽 첫닭이 울기 전에 양계장에 모이를 주시고
똥도 치우고, 계란을 걷고, 부화기 안도 들여다보며 일을 하시는 한편
밭일까지 하시다가 오후 5시 쯤 되면 저녁 식사를 하시고
전녁 7시 경에는 맥주 한 잔으로 반주하시면서 졸기 시작합니다.
자연히 우리도 저녁 8시에는 잠자리에 들게 되는데 눕는다고 졸릴 리 만무하지요.
이불 안에서 그날 강에서 놀았던 일이나, 내일 뭐하고 놀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잠이 오기는 커녕 말똥말똥해져서 좀체 잘 수가 없었습니다.
밤 중에 새카만 천장의 들보를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담고 있자니,
우리가 자던 거실 옆,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방의 장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복도를 삐걱삐걱 걷는 소리가 났고, 현관을 열고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약간 졸리기 시작해 멍하니 있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뻐꾸기 시계가 뻐꾹뻐꾹 12번 울어서
아아 벌써 이런 시각이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5분 정도 지나 또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샌들을 벗고 복도를 삐걱삐걱 걷더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외할아버지 아니면 외할머니가 닭이나 밭을 살피러 가셨겠지 싶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고
절 빼고 다들 아침 식사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어제 일은 잠이 덜 깬 상태였으니 꿈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또 잠을 이루지 못 하고 있었더니
똑같이 밤 중에 누군가가 나갔다가 조금 있다가 들어오는 겁니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아무래도 그 누군가는 매일 11시 30분에 나가서, 자정이 지난 12시 5분에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낮에 누나나 남동생에게 물어봤지만 둘 다 전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건 뭐든 궁금할 나이였거든요.
저는 누가 뭘 하는 건지 꼭 보고 싶어졌습니다.

5일째 되던 날, 낮 동안 최대한 얌전히 놀면서 체력을 비축해두고 졸리지 않도록 한 뒤
그 누군가의 뒤를 밟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 해 힘들었지만
안 자려고 마음 먹으니 이게 또 이번에는 잠을 이길 수 없어서
하마터면 잠들 뻔 했지만 기척이 느껴져서 겨우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그 기척이 현관을 나가길 기다렸다가, 저도 현관을 다가가 샌들을 신고 나갔더니
외할아버지가 본가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부화실로 들어가셨습니다.

부화실은 닭이 낳은 계란을 부화길로 따뜻하게 해서 부화시킨 후
태어난 병아리를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키우는 전용 건물이었는데
원래 부화소라고 부르는 게 정식이지만, 외할아버지가 부화실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도 몰래 외할아버지 뒤를 따라 들어가보니 안에 불이 꺼져 있고
부화기 안에서 새어나오는 꼬마 전구의 희미한 붉은 빛만이 보였습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외할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부화기를 들여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계란 중 세 개를 꺼내시더니,
갑자기 양철 쓰레기통 안에 집어 던지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뭐하세요?"하고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저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쓰러질 듯 하셨지만
소리친 사람이 저라는 걸 깨달으시고는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뭐야, 너였냐. 사람 놀래키고 그러냐"하고 쓴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저는 한 번 더 "뭐하세요?"히고 여쭤봤더니
외할아버지는 "안 좋은 걸 골라내고 있는 거야"라고 하시더니 또 부화기 안을 들여다보셨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부화하기 전의 계란을 솎아낸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에
"안 좋은 병아리가 있어요?"하고 여쭤봤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암만. 솎아내지 않으면 큰일 나지"라고 하시고는
부화기 안에서 또 계란을 하나 꺼내셨습니다.
저는 계란을 자세히 살펴보려 들여다봤는데,
외할아버지가 당황하시더니 "이거 보면 못 쓴다. 눈 망가져"라고 하시더니
재빨리 양철 쓰레기통 안에 계란을 집어던지셨습니다.
제가 본 계란에는 안에서 병아리가 쪼았는지 크게 금이 가 있었고,
머지 않아 병아리가 태어날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쓰레기통 안에서 엉망진창으로 터져 있을 게 뻔했기 때문에 그 안을 볼 생각이 안 들었지만
외할아버지는 제 눈을 가리시려는 듯 재빨리 뚜껑을 덮으셨습니다.

그때 쓰레기통 뚜껑에 흰 종이 같은 게 붙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게 뭘까 생각하는데 외할아버지가 손목시계를 보시더니
"자정이 넘었구만. 오늘은 이걸로 끝이다. 아가, 돌아가서 자자"고 하시더니
금세 부화실에서 나가려 하셨습니다.
저는 밤에 이런 어두컴컴한 곳에 혼자 남아있기 싫었기 때문에 재빨리 따라 나갔습니다.
그때 부화실 문 옆에 장난감 같은 게 보였던 것 같은데
졸리기도 했고, 무섭기도 해서 내일 볼 심산으로
외할아버지와 본가로 돌아가 그날 밤은 외할아버지 이불 안에서 같이 잠들었습니다.

이튿 날, 오전 내내 남동생과 곤충 잡기를 하다가
돌아와서 이른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딘가가 이상했습니다.
아, 맞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같이 계시네.
잘 생각해보니 그때까지 외할아버지와 같이 점심을 먹은 기억이 없었습니다.
오전 11시 30분 정도부터 외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날은 마을 모임이 있으시다며 아침 일찍 나가시고
11시에 술이 취해서 돌아오셨기 때문에 같이 식사를 하셨던 겁니다.
외할아버지는 쌀밥에 찬 보리차를 부어서 말아드셨는데,
중간에 식탁에 엎드려서 주무셨습니다.
우리는 깨우면 안 될 것 같아 조용히 식사를 마친 후 밖으로 놀러나갔습니다.
나오고보니 어젯밤에 흘끔 봤던 부화실의 장난감 같은 게 떠올라서
동생과 둘이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장난감이 아니었습니다.
페인트로 자색 칠을 한 손거울이었습니다.
점토로 만든 작은 소 모양. 플라스틱의 싸구려 조화.
어젯밤엔 얼핏보기에 여러 색이 섞인 게 장난감으로 보였던 겁니다.
그런데 이걸 또 어디에 쓰는 건지 당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외할아버지가 어젯밤에 계란을 버리던 쓰레기통을 보았습니다.
어젯밤엔 어두워서 잘 안 보였지만, 밝은 곳에서 보니 그 쓰레기통 뚜껑에
옛날 글씨처럼 마구 휘갈긴 것 같은 글자가 쓰인 낡은 종이가 붙어있었습니다.

"앗, 깨고 나왔다!... 어, 뭐야... 저거...."
부화기를 보던 동생이, 계란을 깨고 나온 걸 본 듯 합니다.
저는 갓 부화한 병아리가 보고 싶어서 부화기 문을 열어보았습니다.
그 안에 병아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아리?는 다른 병아리와는 어딘가 달랐습니다.
자세히보니 다른 병아리와 다르게 전혀 떨질 않았습니다.
삐약삐약하고 지저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눈이, 눈이 사람 눈 같았습니다.
그것은 부화기 선반에서 탁하고 땅으로 떨어지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착착 걸어나갔습니다.
저는 그 이상한 광경에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부화실을 나가 서쪽으로 걸어가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서야 몸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남동생을 보니, 침을 뚝뚝 흘리며 눈은 초점이 없었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않는 겁니다.

제가 큰 소리고 몇 번이나 동생 이름을 불렀더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숨을 헐떡이며 한달음에 오셨습니다.
"아이고! 봤더냐?!"
저는 외할아버지 표정이 무서워서 "못 봤어"라고 답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제 눈을 똑바로 보시면서
"봤잖냐. 어디로 가든?"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물으셨습니다.
"저쪽"하고 저는 서쪽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외할아버지는 문 옆에 있던 점토로 된 소 모양과 조화를 가지고
제가 가리킨 쪽으로 달려가셨습니다.
외할머니는 동생 이름을 몇 번 부르셨지만 동생은 침만 흘리고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히교 님과 눈이 마주쳤구나.."
외할머니가 슬퍼하며 말하셨습니다.
"안 돌아와요?"
나는 동생을 바라보는 외할머니를 보며 어린 마음에도 심상찮음을 느끼고 여쭤보았습니다.
"아니다.. 아가, 저기 있는 빨간 칠된 거울 좀 이리 주렴"
거울 면이 붉게 칠해진 손거울을 건네드리자 외할머니는
"너는 보면 안 돼. 엄마한테 가 있으렴"하고 부화실 밖으로 쫓아내셨습니다.
저는 엄마와 누나에게 가긴 했는데, 엄마에게 뭐라해야할지 몰라서
아무 말 없이 엄마에게 안겨있었더니 동생과 할머니가 돌아왔습니다.
저는 걸어오는 동생을 보며 아아, 멀쩡하잖아. 다행이다하며 안심하다가
동생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말을 걸어보니 동생이 맞긴 했습니다.
같이 부화실에 간 것, 어제 일, 그제 일까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딘가가 이상했습니다.
엄마도 동생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나 봅니다.
외할머니에게 "엄마, 설마.."하고 말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엄마가 동생을 껴안고 엉엉 우셨습니다.
동생은 어리둥절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누나는 동생을 이상한 눈으로 보다가 엄마가 우는 걸 보더니 같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지나자, 외할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글렀어.. 놓쳤어"
그렇게 말하시더니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할멈, 누군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2, 3일 안 걸릴 게야. 상복 꺼내서 말려둬"
그렇게 말하시더니 외할아버지가 동생을 껴안으시고
"미안하구나.. 이 할배가 자는 바람에... 정말로 미안하다"
외할아버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사과하셨습니다.
동생은 "왜 그래요? 할아버지, 아파"하고 말했습니다.
그 목소리와 행동거지는 분명 우리 동생이 맞지만, 그건 동생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외할아버지가 말하셨습니다.
"햇님이 가장 높이 떴을 때와, 가장 깊은 밤에 태어난 병아리는 제 역할이 있단다.
 그래서 죽여야 하는 게야"
"밤에 태어난 병아리도 '히교 님'이 돼요?"하고 제가 여쭤봤습니다.
"누가.. 아아, 할멈이 말해주더냐?
 아니야. 밤에 태어난 건 더 무서운 거야"
그렇게 말씀하시곤 외할아버지는 부화실을 쳐다보셨습니다.
그때 이야기는 이게 끝입니다.

지금도 매년마다 시마네로 가고 있습니다.
남동생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옛날의 제 동생이 어떤 아이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후 20년이나 가족으로 같이 살았으니, 이제 그냥 가족인 셈이지요.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390604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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