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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취향 급소름주의) 여러분은 어떤가요?
게시물ID : panic_896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빅킹오징어
추천 : 32
조회수 : 4304회
댓글수 : 40개
등록시간 : 2016/07/30 19:47:02
저는 30대를 바라보는 청년입니다.

요즘 들어 세월이 흐를수록 산다는 것에 무게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무게를 버티고 버텨 살아남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무게를 못 이겨 짓눌리고 밟혀 사라지죠

나 하나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이 요즘 세상에는 이기적인 것이 아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거 같습니다.
 
저번 주에 2년간 다니던 회사에 권고사직을 요구 당했습니다.

요즘 들어 경기가 좋지 않아 이곳저곳 망하는 동일업계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고양이 앞 생쥐 마냥

불안에 떨었는데..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이건 뭐.. 부당한 회사의 처우에 반박조차 못하고 울다시피 사정했네요

이성을 잃고 30을 바라보는 나이에 질질 짜면서 이사님 바짓가랑이를 잡았을 땐 몰랐는데..

1년 2개월이라는 비정규직 생활을 벗어나 이제 정직원으로 일한 지 11개월 차..

아무래도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1년 미만 사원들 위주로 먼저 쳐낸 게 아닌가 싶네요

한 달 뒤면 퇴직금도 발생되겠다.. 여러모로 경력으로 따져도 쓸만한 거보단 가르칠게 많은

신입사원을 정리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는 더 모질어질 수 있을 테니까..

어느 선에서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매일 출근하는 줄만 아시는 칠순을 바라보는 홀 어머니와 하나뿐인 고3 미진이에게

차마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출근하는 척 하루하루 나와 이렇게 시간을 버티다 들어가는 것조차 현실을 부정하는 행위지만

이렇게까지 안 한다면 자존감이 뿔뿔이 흩어져 나 자신조차 사라질 것만 같아 겁이 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이태원 골목을 걷고 있는데..

웬 중년 남성 한 분이 박스를 깔고 주무시고 계시더라고요

정말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그분을 바라보았습니다.

깔끔한 정장을 입었다고 해도..

저와 저분이 다를 게 뭔가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보았더니

꼬깃꼬깃한 지폐 3장이 덩그러니 있더군요

호의를 베풀면 돌아온다 했는데.. 남에게 주기 정말 아까운 돈..

지금 제 자신에겐 전 재산과 다름없는 거금이지만..
차라리 배곯고 추운 데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이 분께 드리는 게 더욱 값지게 쓰일 것이라 생각하고

3만 원 모두 그분께 쥐어드리고 왔습니다.

분명 베푼 만큼 돌아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참.. 집으로 가기가 왜 이렇게 싫은지..

책임감과 부담감은 고개를 돌려보니 억울함과 원망으로 비치더군요

나이가 드셔서.. 몸이 편찮으셔서.. 내가 벌어다 주는 돈을 받아쓰기만 하시는 어머니..

고1 때부터 알바를 전전하며 스스로 공부했던 나와 달리 용돈 받아쓰며 친구들과 놀 거 다 놀고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미진이..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둘을 원망하고 있는 자신이 무서워집니다.
 
그렇게 정착 없이 길을 걷다 걷다 또 걷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강 다리 위에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한 사람.. 아니 여러 사람들 중 .. 내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신발이라도 남기자 싶어 벗어서 가지런히 놓고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걸 내려놨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모든 걸 잡고 있었네요..

어머니와 미진이 웃는 모습이 물기 가득 고인 눈물 망울 속에서 떠오르기에..

다짐을 다시 했습니다.

그래.. 오늘 난 착한 일도 했으니까..

당분간은 더 살아도 되지 않을까?

맞아.. 해보고 싶은 게 많았지...

이왕 이렇게 된 게 다 해보는 거야.

인생 뭐 있어?

가지런히 놓이었던 신발을 다시 신으니.. 새로 태어난 느낌이었습니다.

서둘러 집으로가 어머니께 말씀드리려고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도전해보겠다고

힘드셔서 믿고 기다려 달라고 말입니다.
 
차비도 없어 수십 킬로를 걸어가야 하지만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우연히 전자상가를 지날 때쯤 9시를 알리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오늘 오전에 발생된 끔찍한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

이제 막 마음 다잡았는데..

그래도 안됐네...
 
씁쓸한 마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네요.

골목기를 수놓는 화려한 조명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노란색 푯대가 보였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줄을 끊으며 자리에 엎드려 오열했죠.

인생이란 거.. 참으로 재미있는 거 같습니다..
 
 
 
[ 오늘 오전 11시경 노숙자 윤 모 씨는 예순여덞살 김 모 씨와 열 아홉살 최 모 양을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검찰에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붙잡고 ‘나흘을 굶었습니다. 국밥 한 그릇만 먹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애원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내가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서 줬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칼을 사서 강도 짓을 했다면, 내가 베푼 건 선일까요?
                                                                          - 소설가 이 외 수 -
출처 빅킹오징어 먹물 속 박테리아 손톱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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