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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줄
게시물ID : panic_900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
추천 : 10
조회수 : 101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8/15 01:27:33
줄을 그었다.
 
처음이었다.
 
새빨간 한 줄.

 
그와 나에게 한 줄.

 
그는 수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그었다.

 
내가 그에게 깊게 그은 그 한 줄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새겨진 그 한 줄이 인생의 주홍글씨가 되어 영원히 따라올 것을 몰랐을 뿐.




 
또 줄을 그었다.
이번엔 그녀와 나에게 새빨간 두 줄.

 
이런 나를 받아준 그녀에게 두 줄을 새기고 말았다.
 
붉은 그 두 줄을 보았다.

 
처음엔 행복했고.
 
다음엔 안타까웠고.
마지막엔 절망했다.

 
나는 그 두 줄을 새길 자격이 없다.
그것을 알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속을 두 줄로 찍찍 그었다.
 
절망이란 글자를.

 
그녀에게 새긴 두 줄을 위해서
 
나는 두 줄로 그었다.


 
또 줄을 그었다.

 
세줄. 그녀와 그와 나에게.

 
명패에 쓴 그녀의 이름을.
아직 세상 빛조차 보지 못한 그의 이름을.
 
검은 마카로 세줄. 그었다.

 
검은 양복을 입고, 흰장갑을 끼고 그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씻었다.
태연하게 아무도 없는 작은 집의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TV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
 
이곳에 없는 그녀는 TV속에 있었다.


 
그녀가 남긴 반찬에
 
그녀가 사온 식기에
 
그녀와 함께 앉았던 식탁에.
이제서야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내 마음속에도 세줄 그었다.
 
용서라는 마음에 세줄 그었다.

 

또 줄을 그었다.
새빨간 줄을.

 
눈앞에 있는 악마는 웃고 있었고

 
나는 한 줄, 두 줄, 세 줄.
수십 줄, 수백 줄.

 
더 이상 악마가 웃지 못할 정도까지.
죽지 않을 정도까지 아슬아슬하게.

 
눈물을 흘리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행복했던 것 같다.

 
분명 그녀는 이런 모습을 원하진 않았겠지.
생각하며 그었다.

 
악마가 울었고
나는 웃었다.

 
형체가 사라질때까지 긋고 또 그었다.
끝없이.
 
 
 
 

 
줄을 그었다.

 
처음이었다.
 
마지막이었다.

 
새빨간 한 줄.
 
나에게 한 줄.
 
마지막 한 줄.


 
이 붉게 피어오르는 줄을 잡고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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