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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커텐 너머
게시물ID : panic_901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29
조회수 : 167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8/20 21:22:36
커텐 너머

중학생 시절 겪은 일인데, 그닥 무섭지는 않고 그냥 신기한 일입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에, 급성 맹장염으로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시험 기간이었기 때문에 언제인지 똑똑히 기억이 납니다.

새벽에 복통이 일어 구급차에 실려갔다가 바로 입원하고 수술 준비했습니다.
수술은 그 다음 날 하기로 하고, 우선 진통제를 먹은 후 병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병실은 6인실이었는데, 입원 환자는 저와 옆자리 사람 뿐이었습니다.
저녁에 일 마치고 오신 엄마가 갈아입을 옷과 이것저것 챙겨와주셨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60 정도 되어보이는 할머니가 병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아마 옆 자리 분을 병문안 오신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앞으로 일주일 정도 잘 부탁 드립니다"하고 인사했더니
그 분도 "젊으니 금방 건강해지겠죠. 저희야말로 잘 부탁 드립니다"라고 웃는데
정말 좋아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옆 자리 침대 커튼 안으로 들어가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시더니 돌아가셨습니다.
면회 시간이 지나서 엄마도 집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날 밤, 저는 다음 날 수술 때문에 약간 흥분되어 잠에 들지 못 했습니다.
그러자 옆 자리 커튼 안에서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 병실에 입원하는 사람은 오랜만이야. 몇 달 동안 혼자여서 정말 지루했거든.
 왜 온 거니?"
하고 묻는데 목소리로 유추하건대 아까 오신 할머니 남편분인 것 같았습니다.
상냥한 목소리였습니다.
"맹장염이에요. 오늘 아침에 갑자기 배가 아파서.. 시험 기간인데 큰일이에요"
라고 학교 이야기, 부활동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왠지 쓸쓸했기 때문에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하던 차였고,
할아버지 목소리가 너무 상냥해서 저도 모르게 줄줄 이야기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웃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셨는데
"젊음은 그 자체로도 멋진 거지.
 큰 병이 아니라 다행이잖니"
라고 했습니다.
저는 왠지 죄송스러웠지만 할아버지께도 왜 입원하셨는지 여쭤봤습니다.
"너무 여기저기 아파서 말이야.
 어디가 아프다는 것도 아니고, 수명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만족스럽지 뭐.
 아마 퇴원은 못 할 거야"
라고 하셨습니다.
내장 쪽 병이 병발했다며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갑자기 슬픈 마음이 들어서
그렇지 않아요, 제가 비록 먼저 퇴원해도 병문안도 올 거고, 분명 퇴원하실 수 있을 거에요"
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프고보니 얼마나 마음이 허한지를 조금이나마 느꼈기 때문에
기운 차리셨으면 하는 마음에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웃으며 저에게 감사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수술에 들어갔고
전신 마취를 했기 때문에 그날은 반나절 내내 잠든 채 지냈습니다.
눈을 떠보니 날이 저물어서 침대 옆에 아빠 엄마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일주일 정도 더 입원해서 보다가 상태가 괜찮으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옆의 할아버지 침대가 비어 있던 게 신경이 쓰여서
병실을 이동하셨나 생각하며 퇴원할 때 인사드리러 갈 생각을 했습니다.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아서 5일 정도 지나자 퇴원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제가 물건을 정리하는데, 그 할머니가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에 대해 여쭤보려고 했는데
할머니 눈에 맺힌 눈물을 보니 동요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그 사람이 편지를 썼구나. 늦게 건네줘서 미안하다"라며
저에게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편지 안에는
"마지막 밤에 혼자 보내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고맙구나.
 건강하게 잘 자라렴"
그런 내용이 삐뚤빼뚤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할아버지는 제가 수술한 날 오전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그대로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저는 울면서 "저도 그 날 밤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눠서 정말 안심할 수 있었어요.
많이 불안했는데, 상냥하게 말을 받아주셨거든요"
하고 할머니께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의아하단 표정으로
할아버지는 목에 종양이 생겨서 제거하다가 성대가 다치는 바람에
말은 물론이고 거의 아무 소리도 못 내셨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편지는 아마 돌아가시기 전날 밤 죽을 때를 깨닫고 쓰신 거 아닐까 생각하셨답니다.

지금도 그날 밤 할아버지와 대화 나누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대체 그건 무엇이었을까요.
신기한 것도 신기하지만, 그 상냥한 목소리는 결코 잊지 못 할 겁니다.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295434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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