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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돌아오는 눈
게시물ID : panic_901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34
조회수 : 196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8/21 21:31:10
돌아오는 눈

1월의 끝자락, 산지기 하루 씨는 산을 돌아보고 내려가고 있었다.
왼쪽의 계곡에서 매서운 북풍이 들어올린 가루눈이 불어왔다.
가볍게 부는 눈폭풍 같은 느낌의 "돌아오는 눈"이었다.
눈보라 너머로 사람 실루엣이 보였다.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계곡을 바라보고 있었다.
휘이잉하고 불어대는 바람 소리를 따라,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실루엣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상대방은 보이지 않았다.

다가가보니 그 실루엣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하라 씨였다.
"어~~이! 거기서 뭐~~~해?"
하루 씨가 말을 걸자, 하라 씨가 천천히 돌아보았다.
거친 얼굴이 약간 경직된 것 같이 보였다.
"……뭐야, 누군가 했네"
"사람을 보고 뭐야는 뭐냐. 그보다 누구랑 말하는 것 같던데"
"아, 좀… 쇼타와 이야기 좀 했어…"
"뭐?"

하루 씨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쇼타는 하라 씨의 외동아들인데
작년 봄에 일곱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소아암으로 죽었다.

쇼타가 죽은 후 하라 씨는 그닥 달라진 건 없었다.
원래부터 묵묵히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고,
모임 같은 곳에서도 무뚝뚝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예전 그대로였다.
비탄에 젖은 것 같은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쇼타 장례식 때는 고개 숙이고 우는 아내를 곁눈질로 보고,
늘어선 조문객은 마치 원수라도 보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하라 씨의 행동을 보고,
하루 씨의 마음 속에 작넌에 보인 행동들은 일부러 고집을 피운 거구나하고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런 행동을 함으로서 억지로 슬픔을 참고 있었던 거겠지.
그러고 9개월 정도 지난 오늘까지 그렇게 고집을 피운 것이었다..

"…길을 걷는데 말이야, 토방 쯤 오니까 누가 부르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그쪽을 보니까 쇼타가 서 있지 뭔가"

하루 씨는 아무 말 없이 하라 씨 말에 귀기울였다.
어느 틈엔가 바람이 그쳐, 산 주변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적막만이 감돌았다.

"쇼타 녀석이 '엄마 너무 괴롭히지 마세요'라지 뭔가.
 그야 나도 쇼타 때문에 그 사람 꽤나 잡았지.
 '언제까지 울 거야?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다!'라면서 소리치고 말이야"

그 일은 하루 씨도 아내를 통해 들은 바 있었다.
시골 아낙네들의 우물가 소문은 빠르니까.

"미안하긴 했지만 나도 멈출 수 없었어.
 그렇게 내 기운을 차리려고 한 거지.
 아니지, 어쩌면 현실에게서 눈을 돌리려고 한 걸 지도 몰라.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사이에 대화가 끊겼어":

하라 씨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계속 말했다. 평소와 달리 말이 많았다.

"그 녀석이 걱정되었다지 뭔가.
 오랜만에 만난 아이한테 잔소리 들을 줄이야.
 화도 나고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뭐랄까... 그런데 말이야.."

잠시 말을 머뭇거리더니 그대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멈춰섰다.

"..그런데 하루 씨, 뭐랄까.. 눈물이 멈추질 않는구만"

하늘을 보던 눈가에서 눈물이 펑펑 솟아나더니 뺨을 따라 흘러내리는가 했더니
하라 씨는 그대로 소리내며 울기 시작했다.
참고 또 참다가 고집을 피워 참던 하라 씨의 눈물은 쉬이 멈추지 않았고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커다란 눈물 방울이 눈 위에 토독토독 떨어져 구멍을 냈다.
그리고 길 너머에 소복히 쌓인 눈 위에 어린 아이의 발자국이 보였다.

다시 거세진 바람이 눈을 흩날리자, 그 발자국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하라 씨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깊이 새겨져 남을 것이다.
산을 내려간 하라 씨의 굳었던 얼굴은 요즘들어 많이 밝아졌다.

돌아오는 눈이, 시간을 조금 돌려줬던 걸 지도 모르겠다.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313159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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