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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를 잊지 말아요
게시물ID : panic_904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쫄면사리추가
추천 : 16
조회수 : 146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9/01 15:15:09
살랑-
여자의 긴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자, 맞은편의 남자는 잊었던 기억을 애써 떠올려내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 그래, 맞아. 그 긴 생머리.”
 
대답없는 여자의 입술에 잠시 눈길을 던진 남자는 대답을 바라지 않는다는 듯,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
 
 “그 생머리에 반했지. 그래 맞아. 오늘처럼 바람 부는 날이었지 아마?
  생각해보면 드라마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지.
  앞서가던 여자는 손수건을 떨어트리고, 뒤쫓던 남자가 손수건을 주워든다… 크으…
  깜짝 놀라 뒤돌아보던 네 표정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아마 넌 모를거야. 크크.
  그리고 바람에 날리던 그 머리칼… 왜 여자들이 기를 쓰고 머리를 기르는 건지 그 때 깨달았다니까?
  남자 후리는 데 긴 생머리만한 게 또 있나 그래, 크크크.”
 
한번 더 후끈한 바람이 들이치자, 여자의 앙다문 입술 위로 머리칼 몇올이 스쳐 지나갔다. 추억에 잠긴 탓인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있던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넌 유난히 말이 없었지. 난 유난히 말이 많았고. 그러니 우리가 천생연분이라는 거 아니겠어?
  게임 얘기, 축구 얘기, 군대 얘기, 크크, 만취해서 나도 못 알아들는 말을 지껄일때도, 그래 맞아. 넌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어.
  심지어 너 몰래 클럽가서 만난 년과의 원나잇 후기까지! 크크크. 네 별명이 괜히 보살이 아냐. 그지?”
 
남자는 동의를 구하듯 여자를 한 번 슬쩍 쳐다본 후, 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말야. 보살도 빡돌면 무섭더만. 아주 지 동생년 일이라고 바락바락 악 쓰던거 생각하면 어우…
  야 내가 축제 때 술 먹여서 업고갔던 새내기 년이 네 동생일 줄 상상이나 했겠냐? 그리고 그 년이 먼저 들이댔거든?
  그러게 너는 개념없는 동생년이나 좀 챙길 것이지, 왜 축제 때까지 독서실에 틀어박혀서 지랄이냐고!
  아주 유난을 떨어요, 진짜!!
  그 일 때문에 학교에 소문나서 후배새끼들이 벌레 보듯 쳐다보던 것만 생각하면 진짜! 씨이발…”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짧은 한숨을 내뱉은 남자는 여자의 왼손으로 눈길을 돌렸다.
얇은 반지가 끼워진 약지의 첫째 마디가 왼쪽으로 살짝 굽어있다.
 
 “그 손가락도 그래. 넌 애가 왜 이렇게 미련하냐?
  사람이 말이야, 때리면 좀 잘 피하든가, 맞을 짓을 하질 말든가, 그것도 안되면 애초에 사람을 열받게 하질 말든가!
  그리 똑똑하신 의대 장학생께서 피임약은 왜 안 쳐드셨대?
  아오 나 또 갑자기 열받네?
  그리고 다쳤으면 병원을 가야할 것 아니야, 병신같이 꼬부라진 손가락이 자랑스럽기라도 하디?
  왜? 내가 볼 때마다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낄까 봐? 크큭, 크크크크크.”
 
남자는 한참 동안이나 발작적인 웃음을 토해내다 겨우 진정시킨 후,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는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여자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것 봐... 다 기억하잖아… 나 절대 너 안 잊어… 아니, 못 잊어… 평생 기억한다니까?
  내가 어떻게 널 잊어!! 안 잊는다고!! 안 잊겠다고!! 다 기억하겠다고!!!! 씨바알!!
  나한테 뭘 어쩌라고! 도대체 뭘 어쩌라고오-!!!!”
 
텅 빈 방에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절규를 끝으로, 남자는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살랑-
다시 한 번 여자의 길고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내내 미동조차 없던 여자의 입꼬리가 처음으로 살짝 올라갔다.
 
 

- 다음 소식입니다. 경기도 양주시 인근의 폐공장에서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지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A양과 M군이 발견된 경기도 양주시의 폐공장입니다. 지난 7월 15일 실종신고가 접수된 A양이 이곳에서 목을 매 사망한 채 발견되었으며, 같은 날 실종신고가 접수된 M군 역시 이곳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A양과 M군은 같은 A대학 의료학과에 재학하며 교제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실종 당일 A양이 의식불명 상태의 M군을 차에 실어 이동하는 모습이 CCTV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M군이 결박되어 있던 침대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생명유지를 위한 각종 장치와 약물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장치들은 발견 당시 M군의 몸에 연결되어 가동되고 있었으나 M군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며, 침대는 정확히 목을 맨 A양의 시신과 마주보는 위치에 세로로 세워진 채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정확한 사망시간은 부검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겠지만, 경찰에서는 정황상 A양은 실종 당일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M군은 발견 당일인 8월 30일 오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평소 A양이 M군과 불화가 잦았다는 친구들의 증언과 A양의 실습실에서 다량의 약물이 도난된 점 등을 바탕으로, 수사에..........
출처 우동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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