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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정원] 05. 피노키오
게시물ID : panic_908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
추천 : 6
조회수 : 5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9/26 20: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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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팔목을 보았다.

89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모습은 끔찍했다.

끔찍했다.

-----------

처음으로 죽인 사람은 아버지였다.

어머니를 죽이려는 듯 칼을 빼드는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찔렀다.

부들부들 떨다 죽어버린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는 울었다.

나는 웃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 거짓말로 흐지부지 지나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우리들의 삶은 전보다 훨씬 행복해졌다.

그저 그 사람을 죽였을 뿐인데.

이렇게나 행복해지다니.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난 내 거짓말의 힘을 믿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사랑하는 사람도 얻고, 사랑하는 아이들도 얻었다.

그런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

다만 무언가 부족했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의 사진에서였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붉게 피어오르던 그 꽃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그것이다.

그래서 죽였다.

수십 명을.

수십 개의 꽃들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모든 일은 용의주도하게 계획했다.

다만 나는 너무 많은 꽃을 피게 했다.
 

그래서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재판을 받게 되었다.

다만, 나는 결코 잡히지 않았다.

나의 거짓말은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개 해 주었다.

나는 목격자라는 증인을 범인으로 만들었다.
 

 
그가 울부짖으며 항변했지만 나는 거짓말을 계속했다.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원래대로의 인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게 될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날 밤 분명 나는 집에서 잠을 잤을 텐데.

나는 이상한 정원에서 눈을 떴다.

그곳은 온통 새하얗게 눈부셨다.
 

 
그곳엔 회색빛으로 빛나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곤 한마디 했다.

나는 실패했다고.
 

그리고 그는 총을 겨누었다.

내 머리를 향해.

나는 아찔해졌다.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는 이대로 죽는 편이 좋다고 말하며 10초를 세기 시작했다.
 

10..

9..

8..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고민했다.

다만 살고 싶었다.
 

7..

6..

5..
 

그에게 어떻게 말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는 무엇을 말했지?

그는 무엇을 하는 것이지?

 
 
4..

3..

2..

 
 
그가 누군지 중요하진 않다.

지금은 내 거짓말을 믿어보자.

 
 
1..

 
 
그리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살아서 그 실패를 만회하겠다고.

그러자 그는 웃었다.
 

그리고 총구를 내렸다.

살았다.
 

 
그렇게 안도한 순간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 숫자가 사라질 때 나는 실패를 씻고 죽을 수 있다고.

죽을 수 있다?

다만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가 나에게 총을 쏘았다.
 

격통과 함께 오른쪽 손목이 날아갔다.


그리고 끔찍하게 소리지르는 내 목소리와 함께

나는 눈을 떴다.


아무 일도 없었다.

다만 내 오른쪽 손목에 선명하게 5라는 숫자가 새겨져있었을 뿐이었다.

내 거짓말이 나를 살렸다.

역시, 믿을 것은 이 말솜씨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날이었을까.

자던 도중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이 뜨였다.

그리고 강도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칼을 들고 달려들었고 나는 맞서 싸웠다.

다만 체급에서 밀려버렸다.

그는 내 목을 향해 칼을 찔렀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칼이 튕겨졌다.

허둥지둥 거리는 그 강도를 보고 칼을 집어 찔렀다.
 

그리고 붉게 꽃이 피었다.
 

 
그제서야 그의 말이 이해가 갔다.

이 숫자가 있다면 나는 죽지 않는 것이다.

그는 천사였을 것이다.
 

 
영생을 얻은 것이다.

나는 그 날부터 방탕하게 살았다.

또 사람을 죽이곤 했다.

정말 내 맘대로 살았다.
 

 
그리고 거짓말로 모든 것을 속이며 살아갔다.

 
 
그리고 이십 년이 흘렀다.

문득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갈 뻔 했다.

아내가 같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그리고 이변을 깨달았다.

변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늙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내 손목이 거울에 보였을 때

나는 굳어버렸다.
 

오른쪽 손목에 10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이것이 저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어떤 짓을 해도 숫자는 줄지 않았다.

기부를 해도.

누군가를 도와줘도.

착한 일을 해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만 갔다.

거짓말과 함께 내가 불로하는 것은 어떻게든 무마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늙어만 갔다.

그리고 어머니가 죽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웃으셨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살아난 날엔 어머니는 울었지만.

죽는 날엔 어머니가 웃으셨다.
 

그리고 난 그 웃음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슴을 쳤다.

그래도 마음에 비수처럼 박힌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울고 또 울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리고 눈물로 덮힌 얼굴을 닦으러 화징실에 갔을때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손목의 숫자가 99로 줄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숫자를 줄이는 방법을.
 

그리고 나는 숨이 탁 막혔다.

구역질이 나왔다.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
 

 
일부로 죽기 직전의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거짓말로 그들을 사로잡았고, 거짓말로 그들과 긴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한 명씩 죽기 시작했다.

기대감에 찬 마음으로 장례식을 갔다.
 

 
다만 숫자는 줄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죽었을 때,

내 손목의 숫자는 여전히 99 였다.
 

나는 그래도 끝없이 만났다.
 

 
다만 시간은 흘러만 갔다.

아내가 죽었다.

마지막에 내 얼굴을 바라보며 그 시절이 언제나 기억난다며 웃었다.

그리고 죽었다.
 

찢어지는 격통을 느꼈다.

죽어버리고 싶었다.

나이프를 들고 손목을 찔렀다.

나이프는 튕겨나가고 그 곳에 남은 것은 98이라는 숫자 뿐이였다.
 

그리고 아들이 죽고.

딸이 죽고.

손자들이 죽고.

 
그동안 수없이 자살을 시도했다.
 

다만 죽지 못했다.

그 동안 만든 수천명의 친구들이 죽어도

팔목에 새겨진 숫자는 줄지 않았다.
 

결국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거짓말로 만난 사람들은

거짓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손목의 89를 바라보고 있다.
 

끔찍하다.

끔찍하다.

수천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는 숫자는 끔찍했다.
 
 

나는 걸었다.

이젠 진심을 말하는 법을 잊는 난

그것이 의미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이미 희미해진 그들을 찾기 위해

걷는다.


저 앞에 한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긴 코를 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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