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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괴물
게시물ID : panic_915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eptunuse
추천 : 13
조회수 : 185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11/21 1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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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병원 진료실처럼 보이는 방의 커다란 책상에 앉아있던 남자는

 

슬쩍 눈을 돌려 건너편에 앉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열일곱살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는 그녀가 입은 환자복과 대비되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다면 상당히 귀여운 얼굴일 테지만 남자는 지금까지 한번도 소녀가 웃는 것을 본 것이 없었다.

 

남자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책상에 놓여있던 녹음기를 켠 뒤에 소녀에게 말을 건네었다.

 

“오늘 점심. 반찬이 불고기였지? 맛있었어?”

 

남자의 말에도 소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난 맛있게 먹었는데. 소영이는 어때?”

 

소영이라 불린 소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대답이 없었다.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곤 녹음이 잘 되고있는걸 확인한 뒤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난 지금 소영이를 도우려고 하는거야.

 

소영이가 이렇게 아무말도 안하고 있으면 내가 도와줄수가 없어.

 

소영이도 이제 이 답답한 곳에서 나가고 싶지?

 

학교도 다시 다니고, 친구들이랑도 만나고... 그러고 싶잖아.”

 

그 말에 소영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려면 내가 물어보는거 솔직하게 대답해 줘야해. 내말 이해하지?”

 

소영은 고민하는 듯 하다가 아주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남자는 옅게 미소를 짓고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날 소영이네 가족들에게 있었던 일. 이야기 해 줄 수 있을까?”

 

이미 질문을 알고있었던 소영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괴로운 기억인 듯 소영이가 입을 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어요. 동생은 아빠랑 같이 티비를 보고 있었구요.

 

전 제방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요.”

 

소영은 어렵게 그날밤 일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깜빡 잠이 들었었나봐요.

 

깨어보니 방안이 캄캄 했어요. 정전이라도 된 것 처럼요.

 

전 무서워져서 엄마를 찾아 거실로 나가려고 했죠.”

 

 

 

 

 

남자는 조용히 소영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바닥을 더듬으며 거실로 향했어요.

 

엄마를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어요. 전 무서워서 울음이 나올 것 같았죠.

 

간신히 거실로 기어 나오니까 그제야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때 더듬거리던 제 손에 뭔가 닿았어요.”

 

소영은 그때의 감촉이 생각나는 듯 작게 몸을 떨고 말을 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희미한 달빛으로 그게 무언지 간신히 볼 수 있었어요.

 

제가 만진 그건 잘려진 동생의 머리였어요.”

 

소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전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비명을 질렀어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울면서 엄마와 아빠를 찾았죠.

 

그리고 얼마 안가서 아빠를 발견했어요.

 

동생의 몸과 같이 소파에 앉아있는 머리가 없는 아빠를요.”

 

소영의 목소리는 심각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소영을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있는데 주방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어요.

 

전 엄마가 주방에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죠.

 

무서웠지만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갔어요. 거기엔...”

 

남자는 소영의 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괴물이 있었어요.”

 

 

 

소영은 목이 메이는 듯 침을 한번 삼키고는 이어서 말했다.

 

“괴물이 엄마목에 칼을 꽂아넣은 채 저를 보며 웃고 있었어요.

 

어두웠지만 귀까지 찢어진 입이랑 하나밖에 없는 커다란 눈은 볼 수 있었어요.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에요.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구요.

 

그 괴물은 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엄마의 목에 칼을 깊게 쑤셔 넣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비명을 지르자 엄마를 내팽개치고 무서운 속도로 제게 달려왔어요.

 

그 이후로는 생각이 안나요. 그게 제가 아는 전부에요.”

 

상당히 격양된 듯 보였지만 소영은 비교적 차분하게 말을 마쳤다.

 

“그래.... 이야기 해 줘서 고맙다.”

 

남자는 실망한 채로 녹음을 멈추고 테이프를 빼내었다.

 

그리곤 오늘의 날짜를 적어넣은 후 서랍을 열어 그 안에 테이프를 넣었다.

 

서랍안에 들어있는 테이프들에는 모두 오늘 녹음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영이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오늘도 달라진건 없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새 테이프를 넣은 남자는 소영에게 몇 번이고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었다.

 

“그런데말이야, 지금 소영이가 해준 그날 이야기. 사실과는 좀 달라.

 

소영이는 모르겠지만 지금 소영이의 정신이 조금 불안정하거든.

 

지금 소영이가 먹고있는 약도 그걸 고치기 위한 약이고.”

 

소영이는 어느새 눈물을 그치고 다시 처음과 같이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그날 일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어야 여기서 나갈 수 있어.”

 

 

 

 

하지만 소영의 입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남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소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날 밤 소영이가 봤다는 괴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

 

괴물은 소영이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상이야.

 

그걸 인정해야해.”

 

남자는 가만히 소영을 지켜보았다.

 

소영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그 모습에 남자는 한숨을 쉬며 손을 뻗어 녹음기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소영에게 말했다.

 

 

 

“다시 이야기 해 줄게. 그날 소영이네 집에 괴물은 없었어.

 

괴물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괴물이란건 다 소영이의 상상이 만들어낸 거야.

 

그날 소영이의 가족들을 죽인건 괴물이 아니라....”

 

소영의 몸이 다시 떨리는것을 보며 남자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소영이 너야.”

 

소영은 몸은 이제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현실을 인정해야해. 그날 가족들을 죽인건 괴물이 아니라 소영이 너야.

 

네가 칼을 들고 너희 엄마와 아빠, 동생을 잔인하게 죽인거라고.

 

정신착란 때문에 괴물이 한 짓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야.”

 

소영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진정제를 맞고 잠이든 소영을 확인한 남자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소영이의 상태는 처음과 비교하여 큰 변화가 없었다.

 

소영은 여전히 괴물들이 가족들을 죽였다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일주일 정도면 충분 할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2주가 훌쩍 지났다.

 

이제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환각제의 투여량을 늘려서라도 소영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거라 믿게 만들어야 했다.

 

단순히 경찰에 잡히지 않기 위한 대처치고는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순수한 어린 아이를 가족들을 살해한 정신이상자로 만드는 과정은 그자체로 매우 즐거웠다.

 

쉽게 말해 재미도 보고 자유도 보장받는 일인 것이다.

 

물론 예정보다 더 길어진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이제는 정말 서둘러야 했다.

 

 

 

남자는 병원처럼 꾸며진 자신의 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환각제 투여량 늘리고 좀 더 강하게 세뇌를 해보자.”

 

남자는 서랍을 열어 오늘 녹음된 테이프를 꺼내들었다.

 

소영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볼 생각에서였다.

 

서랍안에는 테이프 들과 함께 검은색 복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커다란 입이 귀까지 찢어진 외눈박이 괴물의 모습이 그려진 복면 이었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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