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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더이상 반짝이지 않는다.
게시물ID : panic_928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
추천 : 15
조회수 : 125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3/14 18: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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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손을 높게 들었다.


다만 내던질 수는 없었다.


20개월이 남은 할부가 내 손을 내렸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에 괴로웠다.


양복따위는 내일부터 쓸모없다고 말해야 하는것이 괴로웠다.


아니, 그 말을 듣고 조금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웃고 말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 보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공원 벤치에 앉았다.


낮 3시에.


이제 곧 30인데.


쓴 웃음만이 나온다.



보도블럭을 바라보며 동질감을 느끼고 있을 때


저 앞에서 떠드는 소리가 내 시선을 끌었다.


꼬마 애들이 흙장난을 치고 있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외쳤다.


‘나는 나중에 커서 대통령이 될거야!’


따라서 다른 아이가 외쳤다.


‘나는 나중에 의사가 되서 사람들을 도울거야!’


어떤 아이는 외쳤다.


‘나는 나중에 예쁜 옷 입고 노래하는 가수가 될거야!’



하하하.


조금 웃었다.


대통령?


의사?


가수?



대통령이든 의사든 가수든 차피 말도 안 돼.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구나.



대통령 되려면


공부는 기본이지.


학력은 기본이니까.


석박사 정도 따주고.


정치판 들어가려고 죽어라 마시고 죽어라 접대하고.


겨우 들어간 정치판은 쓰레기 처리장 같이 더러운 곳이겠지만.


그런 쓰레기 같은 정치판에서 주목을 끌고


국민에게 지지받아야 하고.


굳이 지지 안 받아도


돈 많고 가족 좋고 인맥 좋고 1번이면 되겠지만.



의사도 공부가 기본이지.


중학교 때 부터 죽어라 해서


고등학교도 자사고나 명문고 같은 데 들어가고.


거기서도 죽어라 해서


서울 가야지.


서울에서도 죽어라 해서


학사 따고.


석사, 박사 따러 대학원 가서.


죽어라 하고, 죽어라 마시고, 죽어라 죽어라 하면


안 죽으면 의사가 될까.



가수는 우선 얼굴이 예뻐야지.


얼굴이 안되면 성형부터 해야겠지.


실력이 좋아도 얼굴이 안되면 봐주지 않을테니까.


재능도 필요하지.


목소리도 좋아야하지.


그렇다고 메이저 데뷔 되는 것도 아니고.


죽어라 굴러야지.


저 아래부터 올라오려면.


뭐 대부분은 열정 갖고, 꿈 갖고 굴렀지만


결국 잊혀지고,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아서


거기서 끝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다


이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참, 수치 스럽다.


쓰레기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분명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나도 꿈이 있었다.



나도 대통령이, 의사가 되고 싶었다.


연예인도 되고 싶었고, 프로게이머도 되고 싶었고


화가가 되고 싶었고,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많은 것이 되고 싶었다.


많은 꿈을 품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내 품은 점점 줄어들었다.


반짝이는 저 꿈 보다 새까만 현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돈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버스 탈 돈이 없어 수시간을 걷고


밥 먹을 돈이 없어 수돗가에서 배를 채우고


고등학교 학비가 없어서 담임에게 찾아가고


수학여행 갈 돈도 없어서 가족이 아프다고 거짓말 하고


대학생이 되면서 학비를 위해 빚을 지고


알바를 뛰고 뛰고.



친구는 든든한 것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모두가 친구였던 시절은 잠시.


모두가 파벌을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교실을 갈랐다.


서로서로 경계가 겹칠 때 마다 견제했고


그 경계 안에서도 계급이 있었다.


상위층에게 하위층은 끌려다니고


아무리 그 파벌이 쓰래기 같은 그룹이라 할지라도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나오질 못하는.


그리고 이어지는 경쟁 경쟁 경쟁.


옆에서 웃고 떠드는 친구는 결국 경쟁자일 뿐이다.


자칭 친구들은 서서히 멀어져만 가고


순수히 즐거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사랑은 잔혹한 것이다.


순수하게 아름다운 시간은 잠시일 뿐.


사랑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다.


돈도 시간도 헌신도 필요하다.


그 모두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두려워


나는 누구도 사랑하지 못한다.



꿈은 더이상 반짝이지 않는다.


더이상 꿈꾸지 않는다.


더이상 반짝이지 않는다.


눈을 감아도 아름답게 빛나던 그 꿈은 이제 없다.


눈을 감으면 어둠 뿐이다.


무언가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무언가가 될 수도 없다.



깊은 한숨을 쉰다.


이내 나는 벌써 해가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도 이미 없다.


붉게 붉게 지는 노을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기억났다.


나는 이 곳에 온 적이 있었다.



저 멀리서 한 아이가 뛰어왔다.


그 아이를 알고 있다.


그건 나였으니까.


20년전의.



“나는 나중에 커서 훌륭한 소설가가 될 거야!”



너는 될 수 없어.


재능도 빽도 아무것도 없어.


가족은 계속 널 믿어주지만


너가 널 믿지 못할거야.


결국 20대 다 지나고 나서 정신차리게 되겠지.


여러군데 짤리고 짤리고


그제서야 눈이 멀었었다는 것을 깨닫겠지.



“나는 매일매일이 즐거워!”



매일매일은 고통일 뿐이야.


오늘 아픈 몸은 내일도 아프겠지.


오늘 흘린 눈물은 내일도 흘리겠지.


오늘 씹은 손톱은 내일도 씹겠지.


오늘 본 부모님의 주름은 내일 더 깊어지겠지.


오늘 보이지 않은 희망은 내일도 보이지 않겠지.


내일이 있다는 것은 고통일 뿐이야.



“나는 행복해!”



나는 불행해.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해주는 사람도 없어.


진정한 친구는 놓쳤고, 가짜 친구들은 떠났어.


저금한 돈 보다 갚아야 할 돈이 더 많아.


더이상 꿈을 꾸지 않아.


아니 꿈을 꾸지 못해.


더이상 꿈을 꾸기엔 늦었어.



“나는 훌륭한 어른이 될 거야!”



훌륭한 어른은 없어.


다들 지치고 지쳐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다만 살아갈 뿐이야.


어른은 즐겁지 않아.


잃어버릴 뿐이야.


돈이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내 자신마저.



그 아이는, 나는 웃고 있다.


천진난만하게.



“그만해…”



나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더이상 바라볼 수 없었다.


너무나도 반짝였기에.


잃어버린, 더는 찾을 수 없을 반짝임이 그곳에 있었기에.



눈을 떴다.


이미 밖은 깜깜한 밤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반짝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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