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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지구의 주인
게시물ID : panic_937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묻어가자
추천 : 13
조회수 : 1986회
댓글수 : 27개
등록시간 : 2017/05/30 07:40:24
 
 
 
 
 
 
 
 
 
 
인간은 언제나 지구의 주인이다
그러나 내가 언제나 인간인 것은 아니다
 
 
 
 
 
 
 
 
 
 
 
 
 
 
 
 
 
 
 
 
 
 
 
 
 
 
 
 
 
 
 
 
 
 
내가 이러려고 냉동인간이 된 것은 아니다.
난 미래의 과학기술을 누리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들은 생체실험을 하듯 내 몸 여기저기에 무언가를 꽂아놓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내 몸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날 살리려고 애쓴 놈들은 애초에 '인간'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다.
아니, '옛날 인간'에 대해서 말이다.
난 170만 년이나 지나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확실치는 않다. 120만 년이 지났다는 의견도 있고...)
거의 1년 가까이 내 몸은 만신창이였다.
나와 같이 냉동인간이 된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인간'들은 '옛날 인간'들에 대해 잘 몰랐으므로 일단 한 명 한 명씩 실험하듯
우리를 살리려고 애썼다.
다행히도 내 순번은 거의 마지막이었다.
200명 중에서 나 혼자 살았다는 사실만 놓고보면 그들이 우리를 다시 살리는 데
거의 무신경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들은 거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우리를 살리려고 했다.
왜냐고?
그들은 170만 년 전의 역사를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역사가 왜 끊어지게 되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나보다 더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역사가 끊어진 이유도 모르고, 그 전의 역사도 몰랐다.
그들은 풍화작용으로 거의 가루가 되어 붕괴된 건물들 따위에서
고대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만 겨우 유추할 수 있었다.
그건 우리가 약 4천 년 전의 고조선에 대해 유추하는 것보다도
훨씬 훨씬 훨씬 빈약한 정보에 지나지 않았다.
(4천 년과 170만 년의 차이를 생각해보라)
 
 
 
 
 
 
 
 
 
 
 
 
 
 
 
 
 
 
 
지금 생각해보면 방공호와 원자로가 탑재된 냉동 시설로 들어간 게 참 다행이다
지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언젠가부터 문명이 끊어졌고 역사가 사라졌다.
하지만 방공호와 원자로는 그 시련을 이겨냈다.
그래서 난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솔직히 내가 깨어날 쯤에는 영생의 기술이 만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은 맞았다.
인간은 영생을 누릴 수 있었다. (모든 인간이 그걸 누릴 순 없었다. 제도로 제한하고 있다.)
단지, 내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영생의 기술을 나에게 적용할 수 없을 뿐이었다.
젠장...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예를 들어서 '사과'그림을 보여주고
내가 [사과]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뽀사도뉴] 라고 말하는 식으로 언어를 배워야 하는데,
아예 '사과'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의자라든가)
내가 모르는 새로운 개념도 상당히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난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또한 그들도 나의 언어를 배웠다.
'한글'을 말이다. (당연히 난 한국인이다.)
그리고 난 한국사와 국어에 대해서 평균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꽤나 유익한 정보들을 알려줄 수 있었다.
한글을 알려주면서 그 당시 지구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글은 170만 년이 지난 지구에서도 가장 훌륭한 문자였다.
나는 '다론뜨 문자'가 왜 이렇게 배우기 어려운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 옆에 붙어 있는 통역관이 말해주길 '인간'들은 '다론뜨 문자'를 금방 익힐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다른 '인간'들과 얘기하며 알게 된 사실은 이 놈들은 정말로 머리가 좋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론뜨 문자'를 어렵다고 생각하질 않은 것이다.
통역관이 정리한 '한글 - 다론뜨 문자' 통역서를 보고
10분도 되지 않아 한글을 자유자재로 읽는 인간들을 보고 그들의 지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난 과학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정보를 말해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지구과학에서 세차 운동따위 말이다.
지구 자전축이 바뀌는 주기를 몇 개 조합하다보면
정확하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살던 당시의 지구가
어떤 각도로 태양을 공전하고 있었는지
내가 정확하게 기억해내지 못했기에 이와 관련해서는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나는 통역관에게 많은 정보들을 말해줬다.
근데 언어의 장벽도 있었고 그들로서는 아예 새로운 개념을 듣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재미가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나에게는 점점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이성이었다.
지구상에 오직 한 마리만 존재하는 개체를 상상해보라. 얼마나 외롭겠는가?
그게 바로 나다.
이 지구상에 여성이라곤 없다.
여성 비슷한 무언가가 있을 뿐이다.
나와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통역관은 젊은 여성이었는데 ('옛날 인간'으로 치자면 23세 여성 정도의 나이)
그녀가 인텔리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굉장한 미모를 겸비한 퀸카였다는 점은
나중에서야 알 수 있었다.
언젠가 그녀에게 '옛날 기준에서는 미인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기분 나빠했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약간 물고기 상이었다.
한국에 당시 '박명수'라는 코미디언이 있었는데 그가 약간 물고기 상이다. (참고로 박명수는 남자다)
하여튼 박명수를 닮은 통역관은 세심하고 친절하기는 했지만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유전적 외모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 외모가 지금 미의 기준에도 괜찮은 편인가 하고 물었는데
대답은 꽤나 부정적이었다 (젠장)
하지만 의외로 이런 외모를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게다가 나는 유명인사라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내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여자가 있는지가 문제였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여자는 정말로 정말로 다양했다.
샤온시를 처음 본 순간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였다.
예전 영화제에서 실물로 김태희를 본 적도 있고 (한국의 상징적 미녀 연예인)
심지어는 미란다 커도 멀리서 보고 그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미국의 미녀 모델)
샤온시는 정말. 정말. 말도 안 되게 예뻤다.
근데 샤온시는 지금 사회에서는 못 생긴 얼굴이라는 게 놀라웠다.
하여튼 우리는 곧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임신은 금지였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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