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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랑하는 그녀를 죽이던 날
게시물ID : panic_956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할매검
추천 : 12
조회수 : 197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9/30 0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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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사랑해요.. 사랑해요 .."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앞에 누워 시퍼런 칼을 든 내 오른손을 양손으로 꽉 붙잡으며 그녀가 계속 말하고 있다.


그 칼은 천천히, 하지만 지속적으로 그녀의 목을 향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과다출혈로 그녀는 내가 그자리를 떠나기도 전에 죽게 되겠지.


상관없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오늘 죽일 것이다.






" 가엾은 연인을 죽인 OOO씨는 평소에 주민들로 부터 평범한 청년으로 보였다고 하며 핸드폰 메시지를 분석한 결과 평소 심각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 거래처에도 욕설을 하며.... "


- 가명 : 김모씨 " 아니, 그 청년이 그럴줄은 아무도 몰랐지.. 효자였는데, 효자 "


"이처럼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자 여성 단체는 남성 살인범에 대한 형량을 강화하라는 주장도 .. "





시끄러운 기자들의 소리와 눈이 부신 카메라의 플래시들 사이에 서니,


그 빛들보다 선명하게 그녀와 처음만난 날이 떠오르고, 그 소란스러움보다 크게 울리던 그녀의 첫마디가 생각난다.


 " 배 안고프세요 ? 저 빵이 좀 있는데, 소시지빵 좋아하세요 ? "


겨우 구한 2인실에 어머니와 함께 와서 어머니를 침대에 눕혀드리고, 그러느라 어느덧 점심때조차 훌쩍 넘었음을 몰랐을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슬쩍 보니 그녀 역시 어머니처럼 보이는 분과 있었고, 이 병원에 많은 시간 있으면서 간호사 말고는 내 또래를 보지 못했던 나에게 그녀는 뭔가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고생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하얀 피부와 큰 눈, 화장을 하지 않은 수수한 모습속 더욱 빛이 나던 순수함과 한편으론 고결한 아우라를 느끼면서 알게 모르게 눈치챘던 그녀의 강인한 심성.


어쩌면 그날부터 난 그녀를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날부터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친족이라곤 어머니밖에 없던 나는 어머니가 간암 말기라는 말에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의 병간호를 도맡았다.


교도소를 들락달락 했던 아버지, 그 탓에 나름 좋은 공부머리를 가졌음에도 아예 고등학교때 부터 그림쟁이, 글쟁이라는 프리랜서의 길을 택할수 밖에 없던 나, 


하지만 그처럼 살아날 구멍은 있듯 랩탑과 태블릿만 챙겨서 다닌다면 어디서든 틈틈히 일할수 있어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하늘은 어쩌면 나라는 캐릭터를 골라서 하드코어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현질조차 할수 없는 형편이었으니.


이런 배경 탓에 결혼이라는 문제를 떠나 나란 사람의 씨앗 자체에 커다란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그녀는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깨우치게 해주었다.


평범한 집안, 평범한 가정, 내가 죽도록 원하고 바랬던 것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그것에 전혀 고마움을 느끼지 않지만, 그녀는 그녀가 그런 가정에서 자란것에 언제나 영혼을 담아 감사하고 있음이 보였다.


5년전 건축현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본인 과실로 인정되어 한푼도 받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에 그녀의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하고 건축현장으로 가 1인시위를 하셨지만, 얻은 것은 비참하게도 폐암 뿐이셨다 한다.


지금도 비록 초기이지만 어머니를 보살피고자 무리해서 2인실을 얻었다는 그녀.



자연스럽게 그녀와 하루가 멀다하고 있게되었고, 치료를 받으시는 어머니들은 거의 주무시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그녀와 나누는 대화는 하루중 가장 즐겁고 알찬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내 생각이상으로 밝고, 박식했으며, 굳은 심지를 보완하는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를 물었을때 파울로 코엘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연금술사라고 답했다.


참 우습다.


그녀는 놀랍도록 나와 닮아있었다.


다소 어두웠던 나의 성격조차 그녀를 사랑하며 조금씩 밝아지는 듯 했다.






입원한지 3개월 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예견했던 일이라 생각하고 담담할 것이라.. 몇달을 스스로 생각했건만


그냥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일주일을 울기만 했고, 먹지도 못하였다.


그녀가 찾아와 나를 간호해주지 않았다면 정말 나 역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우리는 같이 살게 되었다.


어머니와 내가 살던 전세집의 계약이 아직 반년은 남아있었다.


하루의 절반은 어머니가 생을 마쳤던 병실로 가, 그녀와 같이 그녀의 어머니와 수다를 떨고, 전세집으로 둘이 같이 와서 자는 시간은 어느 연인들처럼 보냈다.


나의 아픈 마음은 그렇게 치료되는 듯 했다.


하지만 어느날 부터 그녀는 내 핸드폰에 손대기 시작했다.


그냥 메시지를 보는 것이라면 괜찮았다.


내 거래처라고 할수 있는 광고회사들의 고위직들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 내가 그새끼들에게 먹여준 돈이 얼마인데...


이런일이 반복되자 나는 그녀에게 문자로 화를 내곤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에서 일을 하는 시간동안 말이다.


하지만 갈등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절정은 그녀가 어울리지도 않게 술에 취해 들어온 날이었다.


"뭐야 , 어디서  술을 마신거야 ? "


"헤헤,, 그냥, 그냥.. "


그녀는 이미 얘기 할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할수는 있었다.


" 자기야 "


" 뭐야 갑자기 ? "


그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자기야라는 말에 당황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 다음 이야기에 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 울 엄마, 이식 받으면 살수 있데. 나 이식 해주려고. "


" 어,, 그래 ? "


"근데, 울 엄마 사실 위암이야. "


망치를 얻어맞은듯 했다. 위는 한개밖에 없는 것 아니었나.


"자기야, 사랑해."


"뭐야 갑자기... "


"이 정도 위 이식은 .. 살아있을때 못해.. 그리고 내가 상담한 선생님이 부른 가격도 나 첨 만져보는 돈이더라. 이런식으로 하면 불법이라나... "


가면 갈수록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술취해 지껄이는 헛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그녀는 갈수록 또렷하게 이야기 했다.


"자살하면.. 보험금이 안 나온데.... 오빠.. 나를 죽여줘. 나 죽으면,, 간신히 엄마가 살아... "


.... 어쩌면 그 순간의 적막은 내 인생에서 가장 못잊을 조용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미 나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그녀만이 삶의 이유였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진심이야 ?"


"응, 돈으로 죽음을 미룰 수 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않은 거잖아."


연금술사의 명대사였다. 그 의미는 지독하게도 반대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이미 나의 경력은 단절된지 오래..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방법이 무엇인지만 끝없이 골몰하던 나에게


어쩌면 그녀는 나의 인생에 있어 평생 고민하던 문제를 알렉산더가 매듭을 푼 방법처럼 해결해 주었던 것이다.





나는 결심 하였다.


그녀 역시 나의 눈동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 사랑해. 정말 사랑해.. "


왜 이렇게 눈물이 흐르는 걸까...


" 사랑해요.. 사랑해요 .."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앞에 누워 시퍼런 칼을 든 내 오른손을 양손으로 꽉 붙잡으며 그녀가 계속 말하고 있다.


그 칼은 천천히, 하지만 지속적으로 그녀의 목을 향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과다출혈로 그녀는 내가 그자리를 떠나기도 전에 죽게 되겠지.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 역시 그럴 것이라 믿는다..


"사랑해. 하늘에서 다시 만나자."

출처 my 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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