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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서열 #2
게시물ID : panic_975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12
조회수 : 79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8/01/03 20: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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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2
 

남학생들은 1교시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교실로 돌아왔다. 땅바닥이라도 구른 듯 교복은 먼지투성이에 찢어져 있었다. 그들은 나를 노려보았지만, 그 이상의 위협은 가하지 않았다. 수업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에게 신경이 쓰였지만, 정작 남학생 무리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괜히 건드렸다 귀찮게 되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수업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 뒷자리에 모여 자기들끼리 떠들었다. 그리고 가끔 쉬는 시간이 되면 담배 냄새를 풍기면서 교실로 돌아왔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챙겨 도망치듯 학교를 나왔다. 남학생 무리가 그런 내 모습을 비웃듯 욕을 했다. 학교 운동장을 중간쯤 가로질렀을 때쯤 남학생들이 학교에서 나왔다. 그들을 보자마자 가슴이 내려않는 느낌이 들었다. 발걸음을 빨리해 정문 쪽으로 걸었지만, 그들의 목표는 내가 아니었다. 남학생들은 나보다 작은 다른 남학생 하나를 때리며 웃고 있었다. 같은 반이었던 것 같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도망치듯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집안의 물건들을 꺼내 놓고 정리하고 있었다. 여동생은 나보다 빨리 집에 와 있었는데, 놀랍게도 친구들도 같이 있었다.
이것 봐라.”
여동생은 자기가 데려온 친구들에게 학용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침까지 울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학교는 잘 다녀왔니?”
엄마가 마당에서 우두커니 여동생을 보고 있는 내게 물었다.
, .”
설마 눈치를 챘나 싶어 엄마를 몰래 살펴보았지만, 엄마는 짐정리를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겠어.”
아빠가 포대자루를 들면서 말했다.
아유 그래도 모르죠. 애들이 얼마나 별난데.”
다행히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은 아직까지 나만 아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요전에 같이 만났던 선생님께 이야기 하고.”
, . 알겠어요.”
아침에 담임선생이 남학생 무리를 마구잡이로 두들겨 팬 것이 기억났다. 그것은 잘못을 계도한다는 느낌 보다, 일방적인 폭력에 가까웠다. 문득 아빠가 담임선생에게 비닐봉지를 건네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계속 마당에 서 있지 말고 들어와 쉬지 그러니.”
엄마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근데 여보, 우리 닭 먹이가 없는 것 같은데. 이것도 사야 하나?”
아빠의 말을 들은 엄마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숨이 넘어가게 깔깔 웃었다.
아이고 세상에 이 시골 천지에서 닭 모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어휴. 내 도시 사람이 시골 온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 봤어야 했는데.”
엄마는 아빠를 놀리는 건지 불만인지 모를 말을 한바탕 쏟아 내고 나서는 마루 한구석에 있던 마른 옥수수 찌꺼기를 한 움큼 쥐어 들었다. 닭장 문을 열고 마당에 마른 옥수수를 던지니 닭들이 몰려나와 몰려나왔다.
하나, , .”
총 열 마리의 닭이 있었다. 수컷이 한 마리에, 암컷이 아홉 마리였다. 일제히 몰려나온 닭들은 옥수수 주위를 맴돌았지만, 먹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 가방을 내려놓고 마루에 앉아 지켜보았다.
암탉들은 수탉이 올 때까지 주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루 가까이 오는 닭들에게 옥수수를 던져 주었지만, 쳐다보지도 않았다. 수탉이 옥수수 몇 개를 쪼아 먹고 자리를 뜨자 그제야 암탉 한, 두 마리가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나는 닭들을 유심히 관찰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오늘 새벽에 토끼장에서 봤던 닭들이 없었던 것이었다.
엄마, 여기 닭이 몇 마리 없는데?”
글쎄다. 우리도 그것까지 챙길 정신은 없어서.”
마루에서 일어나 토끼장에 가 봤지만, 1층은 덩그러니 비어 있을 뿐이었다.
시간 나면 닭장도 보수를 좀 해야겠어요.”
닭장을 살펴보던 엄마가 말했다.
쥐약도 좀 쳐야겠고. 온 천지에 구멍투성이네.”
그리고 도시에서 얌전히 자란 양반이 이런 거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다시 아빠에 대한 불평을 털어 놓았다. 아빠는 안쪽에 있어서 엄마의 불평을 듣지 못했다.
토끼장을 확인하고 다시 마루로 돌아오던 나는 닭장 안쪽 끝에 조용히 앉아 있는 두 마리의 닭을 볼 수 있었다. 어제 보았던 닭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한 마리는 수탉이었다.
, 여기 있네요. 두 마리.”
마루에서 옥수수를 한가득 쥐고 내려왔다. 앞에 조금씩 뿌려주자, 머뭇머뭇하던 닭들이 다가와 옥수수를 먹기 시작했다. 먹는 방법은 어제와 똑같았다. 발을 절뚝이는 닭이 아파 보이는 다른 닭에게 먹이를 가져다주었다. 방금 전 수탉과는 다른 행동에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뒤에서 푸드덕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암탉들의 대장 노릇을 하던 수탉이 우리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먹이를 먹고 있던 두 마리의 닭을 사정없이 부리로 내려찍기 시작했다.
수탉의 날카로운 부리에 쪼인 닭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녔지만, 좁은 닭장 안에서 숨을 곳은 없었다.
하이고 이놈, 성격도 더럽다. 누가 수탉 아니랄까봐.”
닭장 근처에 있던 엄마가 달려와서 부지깽이로 수탉을 쫓아냈다. 틈이 있을 때마다 다시 부리로 쪼려고 했지만, 엄마의 부지깽이는 수탉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할 것들 같구만, 와 괴롭히노.”
엄마가 그렇게 한참을 떼어 놓은 다음에야, 수탉은 겨우 진정이 되었다. 부리에 쪼인 닭들은 머리와 날개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불안한 눈빛이 다른 닭들의 움직임을 움찔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얼른 밥이나 먹자. 들어와라.”
, . 알겠어요.”
나는 몇 번이고 닭장을 들여다 본 다음 방 안으로 들어갔다.
험난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무난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첫 날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무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큰 무리 없이 나를 받아 주었다. 남학생 무리의 대장은 영식이었다. 첫날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던 것도 영식이었고, 항상 주도해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도 영식이었다.
영식이는 학교의 무법자였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가 누구든 서슴없이 때렸고, 집요하리만큼 독하게 괴롭혔다.
하지만 그런 영식이라고 해서 반의 모든 아이들을 괴롭혔던 것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서, 소위 말하는 조금 사는 집의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공식같이 정해져 있었다. 내가 먼저 그들을 건드리지 않는 이상, 그들 또한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약하고 가난한 아이들은 영식이의 노림수가 되었다. 영식이는 항상 그런 아이들에게서 돈과 물건을 빼앗았는데, 그것마저 없는 아이들은 철저하게 폭력으로 응징했다.
그런 면에서 윤남이는 영식이 패거리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윤남이는 동생 한 명과 할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첫 등교한 날 영식이 패거리가 때리던 것도 윤남이었다.
윤남이는 모든 사람의 눈에서 벗어나 있었다. 반 아이들은 물론, 선생들조차 관심을 주지 않았다. 윤남이 자신도 사람들의 그런 시선을 잘 알고 있었는지, 쉽게 주위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윤남이가 유일하게 같이 다니는 사람은 여동생인 윤희였다. 내 동생과 같은 중학생이었던 윤희를 윤남이는 끔찍이 아꼈다. 윤희는 하교하기 전 영식이 일당에게 괴롭힘 당하는 윤남이를 나무 뒤에 숨어서 괴로운 듯 지켜보곤 했다. 영식이는 그런 자매를 가끔 야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지만, 그 이상 손대는 일은 없었다.
약간의 적응기간을 거친 우리는 어느덧 비안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더 이상 냄새 올라오는 푸세식 화장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순돌이를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서울과 달리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진 우리는 매일같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았다.
부모님은 그런 우리를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았지만, 미국에 가면 이것도 못할 생활이라며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호기심이 많은 동생은 집에 있는 닭들에게도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주었다. 대장노릇을 하는 수탉은 장식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고, 다리가 아픈 수탉은 봉구, 봉구가 돌보는 암탉은 봉자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여동생은 봉구와 봉자가 남매라고 했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동생이 닭들을 전부다 좋아했던데 반해, 나는 장식이를 싫어했다. 괜히 이름이 비슷한 영식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장식이는 닭장 안의 폭군이었다. 모든 암컷들을 거느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좋은 것은 항상 먼저 차지했다. 다른 닭들 역시 장식이에게 함부로 덤비지 않았고, 장식이도 자기 눈에 벗어나지 않는 이상 닭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단지 예외가 있다면 봉구와 봉자였다. 장식이는 봉구와 봉자를 수시로 못살게 굴었다. 장식이가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댈 때마다 봉구와 봉자의 몸에서는 피가 흐르고 살점이 뜯겨 나갔다. 봉구는 언제나 봉자를 지키려는 듯 장식이에게 대들었지만, 덩치부터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몇 번이고 부지깽이를 들고 장식이를 쫓아냈지만, 그때뿐이었다. 내가 장식이를 쫓아낼 때마다 봉구는 처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에서 윤남이를 떠올렸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얼마 뒤 조용하던 학교에 자그마한 소동이 일어났다. 우리가 비안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고, 중간고사가 있기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날도 영식이 패거리는 윤남이를 괴롭혔다. 아무렇지 않게 발로 차고, 얼굴을 때리고 침을 뱉은 다음 조롱의 말을 늘어놓았다. 윤남이는 쓰러진 채 아무렇지 않게 묵묵히 참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한바탕 푸닥거리를 끝내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 영식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조금 달랐다. 근처에서 오빠가 맞고 있는 것을 지켜보던 윤희 앞에 다가간 것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영식이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은 평소에 없었던 행동이었고, 해서는 안 될 최후의 보루였다.
영식이는 마치 윤남이가 보라는 듯 윤희의 헐렁한 교복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윤희의 가슴을 몇 번 주물럭거린 뒤 큰 소리로 이년 브라자 차고 있네, 그렇게 소리쳤다.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상황에 윤희는 눈물을 흘리며 풀썩 주저앉았다. 입에서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주저앉은 다리 사이에서 지린내와 함께 노란 오줌이 새어 나왔다.
, 으아아아아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윤남이가 교단에 꽂혀 있던 삽을 빼들어 영식이를 내려쳤다. 갑작스럽게 삽에 얻어맞은 영식이는 몸의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얼굴을 감쌌지만, 윤남이는 영식이를 죽이려는 듯 삽으로 얼굴을 때렸다. 영식이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이빨이 깨졌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교무실에서 선생들이 뛰쳐나왔다. 제일 먼저 뛰쳐나온 담임선생은 윤남이와 영식이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삽을 내려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윤남이가 말을 듣지 않자 발로 찬 다음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피투성이가 된 영식이가 일어나 윤남이를 때렸고, 다른 선생들이 달라붙어 영식이를 떼어냈다. 그리고 주변에 몰려 있던 학생들을 몰아냈다.
 

집으로 돌아가자 동생이 울고 있었다. 첫 등교하던 날 교복이 크다고 운 뒤로 처음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동생 앞에는 작은 닭이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봉자였다.
평소에도 병 때문에 골골대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몸에는 커다란 이빨자국이 나 있었고, 그 아래로 진흙이 튀어 더러워진 피가 날개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순돌이를 보았다.
순돌이는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채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그르렁, 그르렁 소리를 내며 닭들을 보고 있었다. 평소 조용하던 순돌이는 어디가고 없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엄마를 보고 짖던 광기어린 모습만 남아 있었다.
나는 봉구를 찾았지만, 봉구는 닭장 안에도, 토끼장 안에도 없었다.
아빠는 아직 야성이 남아있는 동물들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동생을 위로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날 저녁으로 준비한 닭국을 버리고 다른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동생은 마당 한구석에 봉자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저녁이 되어 동생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 엄마와 아빠는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덥다는 이유로 마루 앞 평상에 나와 누워 있었다.
순돌이 저거 위험해서 원. 그렇다고 형님이 기르던 개를 마음대로 팔아 버릴 수도 없고.”
아빠가 걱정스러운 듯 이야기 했다.
순돌이가 문제가 아니라, 저기 저 수탉이 문제죠. 수탉이.”
그건 또 왜?”
처음 듣는 이야기에 아빠는 엄마 쪽으로 돌아누웠다.
아이고, 부담스럽게 또 얼굴은 와 들이밀고 그래요.”
, . 사람 말하는 거 하고는.”
엄마는 혼자 재미있다는 듯 웃다가, 소리를 낮추었다. 동생이 깨어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다시 말을 했다.
오늘 낮에 얼마나 순돌이 약을 올렸는데요, 저게.”
오늘 낮에?”
그럼요. 가만히 자는데 콕콕 쪼아 대지를 않나, 밥을 빼앗아 먹지를 않나, 그러니까 순돌이가 약이 바짝 오르죠.”
아니, 그거랑 오늘 저 작은 닭 물어 죽인 건 상관이 없잖아.”
어휴, 이 답답한 양반.”
엄마는 답답하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약을 바짝 올려놨으니까, 옆에 가까이 오는 놈 걸려만 봐라 하고 콱 물어 죽인 거잖아요.”
아빠는 여전히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순돌이 저걸 어떻게 하던가 해야겠어. 성아가 좋다고 매일 가서 저렇게 만져 대는데, 혹시라도 물면 어떻게 해?”
그럴 거면, 저기 저 수탉도 그냥 팔아버려요.”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오늘 저 작은 닭을 얼마나 못살게 굴었으면, 개 있는 데로 도망가다 물려 죽은 거잖아요. 처음 봤을 때부터 성질 더러운 건 알아 봤지만 아휴, 저렇게 더러울 줄이야.”
동생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어차피 성아 때문에 저 닭들 잡지도 못해, 먹지도 못하는데 그냥 이참에 다 정리해 버려요.”
아빠는 조금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안 돼. 형님 곧 내려오실 텐데 뭘. 오시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아주버님 곧 내려 오셔요?”
엄마의 목소리에 순간 기쁜 듯한 느낌이 돌았다.
몰라. 애들 듣겠다. 잠이나 자.”
엄마가 보챘지만,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했다.
고개를 돌려 눕자 동생이 마당 한구석에 만들어 준 봉자의 무덤이 보였다. 문득 낮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무덤 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온 몸을 파고들었다.
몸을 일으켜 세워 무덤을 다시 바라봤다. 무덤 뒤에는 아까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닭이 한 마리 서 있었다.
봉자였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봉자만 바라보았다. 봉자는 공허한 눈으로 순돌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평상에서 일어나 눈을 비볐다. 봉자가 무덤 뒤에서 한 발자국 걸어 나왔다. 하얀 달빛아래 봉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다리.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날개.
봉자가 아니라 봉구였다.
하아.”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어두운 나머지 봉자와 봉구를 헷갈린 것이었다.
하루 종일 보이지 않던 봉구가 어디서 모습을 나타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봉구는 입에 새하얀 좁쌀 같은 것을 물고 있었다. 무덤에서 몸을 드러낸 봉구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순돌이 집으로 걸어갔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봉구는 순돌이 밥그릇에 하얀 좁쌀 같은 것을 톡 하고 집어넣고 다시 무덤 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다시 입에 똑같은 좁쌀을 물고 나타났다.
봉구는 몇 번을 그렇게 왔다 갔다 한 뒤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봉구가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무언가 잘못 된 것이라도 본 것 같은 음습한 기분이 들었다. 시원하던 시월의 바람이 쌀쌀한 겨울바람이 된 것 같았다.
방에 들어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다음 날 우리를 깨운 것은 엄마의 비명소리였다.
아이고,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래요?”
엄마의 비명소리를 듣고 뛰쳐나간 우리는 쓰러져 있는 순돌이를 볼 수 있었다.
순돌이는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을 그대로 뜬 채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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