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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를 위하여 ... BY 조성훈 (daedan1)
게시물ID : panic_976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라라J(가입:2016-01-31 방문:1002)
추천 : 32
조회수 : 308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8/01/11 08: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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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범죄를 위하여
 




                                              글쓴이 : 조성훈 (daedan1)
 




한만호는 식당에 홀로 앉아 독한 위스키를 벌써 석 잔 째나 한숨에 들이켜고 있었다. 

이미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에 식구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식구들이라고 해 봤자, 암으로 오늘 내일하는 병든 아버지와 정신박약아인 형, 
 
그리고 운전사와 일찍 죽은 어머니대신 자신과 형을 길러왔던 유모, 이렇게 다섯 식구들 뿐이었다.

재산이 수 백억에 달했던 부동산 재벌 한만석씨에게는 아들이 둘 뿐이었는데 장남인 한만준과 차남인 한만호가 바로 그들이었다.

어두운 조명 빛 아래에서 한만호는 눈에 불을 켜며 이를 갈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죽을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양반이라지만 노망이 든 것도 아니구. 
 
그 병신한테 재산의 절반을 떼어 주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말이야. 
 
그럴 수는 없어, 재산은 내가 전부 독차지 해야돼. 도대체 형이 할 줄 아는 게 뭐야.
 
 
옆에서 거들어 주지 않으면 제대로 밥도 먹을 줄 모르는 형이 아닌가. 
 
그런 그에게 수 백억을 뚝 떼어 주겠다니, 아버지의 정신이 올바르고서야 그런 결정을 내릴 리 없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만은 막아야해. 
 
재산은... 재산은 전부 내 차지가 돼야 해.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아아,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래...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썩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형이 사라져 주기만 하면 되지.

그가 죽기라도 한다면... 흐흐... 모든 재산은 자연적으로 내 것이 될 수 있을텐데.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들까.
 
 
아주 감쪽같이, 쥐도새도 모르게... 섣불리 일을 저질렀다간 의심받기 싶상일테고, 
 
결국은 완전범죄여야 한다는 말인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가만 있어보자...그래, 바로 그거야! 어째서 그 생각을 미처 못했지...)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한만호는 악마처럼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그의 눈이 살의로 번쩍이기 시작했다. 
 
 
* * * *


계속되는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떠보니 새벽 4시였다. 



"도대체 어느 놈이 이 시간에 전화질이야!"


조형사는 부스레한 눈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선배님, 저 박형사입니다. 사건이 터졌습니다. 지금 현장으로 오셔야 겠습니다"


박형사는 교육을 마치고 이제 막 들어온 신참내기 형사였다. 
 
 
"무슨 일인데 그래?"

"강도 살인사건입니다. 장소는 연희동 **번지입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검거했습니다. 지금 서에서 심문 중입니다"

"알았어, 곧 갈께"


조형사는 옷을 걸쳐 입으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빌어먹을, 실업자가 되도 좋으니 어디 범죄없는 세상 좀 없나. 
 
가진 놈은 하나라도 더 처먹겠다고 아귀다툼을 해대고, 없는 놈들은 먹고 살겠다고 살인을 밥 먹듯이 해대니...)
 
 
현장으로 도착해보니 벌써 기자들이 몰려와 후래쉬를 터뜨리고 있었다. 

사고가 있었던 집은 조형사가 평생을 벌어도 장만하지 못할 대저택이었다. 

박형사가 저만치서 걸어오더니 아는 체를 했다.


"오셨군요. 바로 저 곳입니다"


박형사의 안내로 안 방으로 들어섰을 때 방안은 이미 피비린내로 진동하고 있었다. 

칼이 꽂힌 시체의 가슴에 피가 검붉게 응고되어 있었다.


'매일 이런 장면만 보니 살이 빠지는 것도 당연하지'
 
 
혼자 뭐라 말하는 조형사의 중얼거림을 박형사가 들었는지 의아한 듯 질문했다.


"네? 방금 뭐라 했습니까?"

"아, 별 것 아니네. 그건 그렇고, 어디 상황 설명 좀 해보게"
 

"강도가 침입한 시간은 새벽 1시경이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범인 외에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죽어 있는 저 사람이 그 중 한 명입니다.
 
이름은 한만준, 나이는 서른 세 살. 
 
나머지 한 명은 사망자의 동생인 한만호라는사람입니다.
 
동생 한만호씨는 범인이 자신의 형을 칼로 찌르자 곧 달려들어 격투를 벌였습니다.
 
범인은 그 와중에 곧바로 이 집을 빠져 나와 도주하던 중 때마침 순찰을 돌던 경찰에 잡혔던 겁니다"
 
 
"음... 동생을 만나볼 수 있을까"


박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덕이며 잠시 어디로 사라지더니 곧 사람을 한 명 데리고 왔다. 

박형사는 그를 죽은 한만준의 동생인 한만호라고 소개했다.

그는 오랫동안 울었는지 눈 주위가 빨갛게 부어있었고, 아직도 비통한 얼굴로 울먹이고 있었다.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이번 사건은 저희로서도 유감입니다. 
 
사건의 도움을 위해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힘드시더라도 대답을 해 주십시오. 
 
정확히 범인이 침입한 시간이 몇 시 정도였습니까?"
 
 
"새벽 한 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가 한 시였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죠?"


조형사의 질문에 한만호는 눈을 치켜 올렸다.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요? 라고 반문하는 눈빛이었다.


"아, 별 뜻은 아니니 달리 오해는 마십시오. 그냥 형식적으로 드리는 질문입니다"
 

"자다가 인기척에 놀라 눈을 떠보니 괴한이 칼을 들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일어나니까 그는 곧바로 우리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서 시계를 얼핏 쳐다 보았죠. 그 때 시계가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그 후 범인이 금품을 요구했습니까?"


범인이 단순한 강도인지 아니면 원한에 의한 계획적인 범행인지를 알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렇습니다. 값나가는 것이 있으면 모두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안 그러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그 때 형님의 태도는 어땠습니까?"

"형님은 매우 불안해 했습니다. 그건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범인이 형님을 칼로 살해했을까요?"
 

"그건 저도 의외였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형님이 그만 신고를 하려고 수화기를 집어들자 그 놈이 달려들어 형을 그렇게... 흑흑...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형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이 죽는 줄로만 알고 나도 모르게 그 놈에게 달려들었던 것입니다.
 
흑흑... 제가 조금만 침착했더라면 형님이 그 지경까지 되지 않았을텐데... 흑흑흑..."


한만호는 복받쳐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는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뭐라 위로의 말을 드려야할지 모르겠군요..."


그렇게 말한 조형사는 박형사에게 한만호를 편안한 곳으로 옮겨드리라고 말한 뒤 시체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신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오른손에 수화기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복부와 어깨쪽에 한차례씩의 자상이 있었지만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아마도 칼이 깊숙히 박힌 심장에 있었을 것이다.

상처의 흔적으로 봐서 전문가의 솜씨는 아니었다.
 
전문가라면 이렇게까지 세 번에 걸쳐 칼을 쓰지는 않는다.

또한 상처부위가 이처럼 우악스럽지 않다. 

프로라면 단 한 번의 손놀림으로 대상을 즉사시키며 상처부위 역시 아주 예리하다. 

왜냐하면 체질적으로 그들은 피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번 사건은 계획적인 원한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우발적인 살인이 분명했다. 

조형사는 한만호의 집에서 나온 뒤 곧바로 박형사를 찾았다. 


"이봐, 박형사. 순찰 중이던 경찰이 범인을 검거했을 때의 시각은 몇 시쯤이라고 하던가?"

"2시 반이었다고 합니다. 가서 그들을 데리고 올까요?"
 
"아니야,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자신들의 순찰 시간이었으니 확실하겠지. 그런데 박형사, 좀 이상하지 않나?"
 
"뭘 말입니까?"


박형사는 의아한 눈으로 조형사를 바라보았다.


"아까 한만호는 범인의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을 때 무심코 시계를 보았다고 말했었네"

"그랬죠"
 
"보통 사람이라면 그 순간에 시계를 볼 겨를이 있었을까. 더군다나 범인이 자신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는데..."
 
"글세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죠"

"상황에 따라 다르다니?"

"가령, 시계의 위치가 그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응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든가... 정면쪽으로 말이죠"

"아니, 그렇지 않아. 시계의 위치는 한만호가 등지고 있는 뒷쪽에 걸려 있네"

"..."

"그리고 또 이상한 것이 있어"

"그건 또 뭡니까?"
 

"이렇게 큰 집에 사람이 달랑 둘만 있었다는게 이상하군. 
 
그래서 자네가 수고 좀 해줘야겠어. 한만호의 식구들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 좀 해주게. 
 
죽은 한만준에 대해서도 말이야. 난 그럼 서에 가서 범인을 만나 보겠네"
 

"알겠습니다"


물론 그것은 별다른 생각을 갖고 박형사에게 지시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예의 그 육감이라는 것이 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사건 자체가 현장범을 검거한 것이니만큼 자신을 크게 애 먹일 성질의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이미 현장에 있는 증거확보와 범인의 자백, 그리고 구속영장만 청구하면 사건을 곧 종결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잡혀온 범인은 의외로 조무래기였다. 
 
전과는 3범이었지만 이제껏 고작 가전제품이나 슬쩍 했던 좀도둑이었다. 
 
아무래도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는 위인은 못되었다. 
 
범인과의 조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물음.

왜 그 집을 털 생각을 했는가?

답.

부잣집이었기 때문이었다. 큰 집을 터는 것은 당연하잖는가.


물음.

처음부터 그 집을 털고자 계획했었나?

답.

우연찮게 신문광고를 보고 알았다. 

조그만 광고였는데 광고내용은 휴가를 떠나니 집을 봐줄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급액도 상당히 많았고, 그런 것을 광고까지 낼 정도라면 상당히 부잣집인 줄 알았다. 

휴가를 떠난다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래서 빈 집인 줄로 알았다. 


물음.

어째서 한만준을 죽였는가?

답.
 
경찰에 신고를 하려 했기 때문이다.


물음.

의도적인 살인이었나?

답.
 
그렇지 않다. 맹세컨데 죽일 생각은 없었다. 겁만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멍청한 작자가 전화를 하려고 했다. 순간 너무 당황해 일을 저질렀다. 

이제까지 그런 일은 없었는데 그 날은 정말 재수가 없었다.


물음.

그 후에 어떻게 해서 한만준과 격투를 벌였는가.

답.

솔직히 말해 그 때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옷에 피가 범벅이 되었다. 

그 때 뒤에서 그가 나를 덮친 것이다.
 
나는 어서 빨리 그 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를 밀치고 그 집에서 도망친 것이다.


물음

당신이 그 집에 들어간 시간은 새벽 1시였다. 

그리고 검거된 시간이 2시 반, 도대체 한 시간 반 동안 그 집에서 뭘했나?

답.
 
나 역시도 왜 그 일을 빨리 끝내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아, 이름이 한만호인가? 
 
그 한만호라는 작자가 나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금고를 한 삼십 분 가량 돌리는가 싶더니 끝내는 자기의 아버지 밖에는 금고번호를 모르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둥, 
 
패물이 어디있는지 찾아봐야 한다느니, 나중에는 나를 자수시키려 횡설수설 말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이미 나는 그 때부터 화가 몹시 나 있었다. 

그때 그 작자가 전화를 걸려고 수화기를 들은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물음

당신이 한만준을 죽인 것을 인정하는가?

답. 
.
.
.
.
.
인정한다. 



여기에서 조형사가 의문이 나는 것은 범인이 신문광고를 보고 한만호의 집을 털고자 마음먹었다는 것과 
 
범인이 든 직후 한시간 반 동안의 한만호의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광고내용이 어떤 것인가하고 최근의 신문을 모조리 뒤져 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자그마한 광고였는데 무려 일주일간에 걸쳐 종합지의 신문마다 모조리 게재되어 있었다.

광고의 내용은 이러했다.


- 휴가로 인해 부득이 집을 비움. 그동안 집을 봐줄 분 구함. 하루 일당 십만원. 주소와 연락처는...


광고를 들여다 본 조형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마치 언제 쯤 집을 비울테니 그 때 와서 내 집의 물건을 털어가쇼 하고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군. 
 
아무리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도 그렇지 광고를 이런 식으로 내다니...
 
그리고 하루 일하는 대가치곤 일당이 너무 많잖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느덧 박형사가 그의 곁으로 와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아, 자네 왔군. 방금 연희동 강도 살해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네. 그래, 알아 본 일은 잘 되었나?"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요, 뭘. 그 집에 살고 있는 식구들은 모두 다섯이었는데 

그 중 운전사와 유모가 집주인인 한만석씨를 따라 요양차 경기도 인근의 별장으로 갔었다고 합니다.
 
한만석씨는 위암으로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집에는 그 둘 밖에 남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저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알고 보니 죽은 한만준은 정박아였답니다"
 

"뭐라구?"
 

"정신박약아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사고가 있던 당일에 더 흥분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온전치 못한 정신상태에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을 테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런 상태의 한만준을 놔두고 유모까지 한만석씨를 꼭 따라가야했을까?"
 

"동생인 한만호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는군요. 
 
아버님의 건강이 더 중요하니까 가서 아버님을 돌보라구요. 형은 자신이 돌보겠다고 말했답니다"
 

"한만호의 평소 행동은 어떠했는가. 평소에도 가족들을 그렇게 끔찍히 위했는가?"

"그런 셈이죠"

"그런 셈이라니?"
 

"이건 이웃 사람들의 말인데 과거에는 그런 망나니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람이 변해서 식구들에게 아주 잘했답니다. 
 
아버지에게 효도는 물론 정박아인 형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답니다. 
 
그건 유모도 동감하는 사실입니다"
 
 
"유모는 뭐라고 말하던가?"
 

"이웃 사람들이 말한 그대로 입니다. 
 
거기에다 예전에 없이 자신의 월급은 물론 보너스까지 듬뿍 올려줬다고 합니다"
 

"호오, 그래? 아무튼 형이 죽었으니 그많은 재산을 혼자서 전부 상속받겠군"


조형사가 그 말을 하자 박형사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설래설래 가로 저었다.


"선배님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생각입니다. 
 
범인이 안 잡혔다면 모를까 이 사건은 너무도 확실히 드러나있지 않습니까. 
 
범인이 스스로 자기가 죽였다고 자백까지 한 마당인데..."
 

"알고있네. 괜히 형사라는 알량한 직업 때문에 그냥 한번 해본 소리라구"


그로부터 며칠 후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한만호와의 대면이 있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다. 




물음.

죽은 형과는 평소 각 방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날은 어째서 한 방에 같이 있었는가?

답.

알다시피 형은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가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물음.

사건이 일어나기 전 지난 며칠 동안 광고를 게재하였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답.

아버지의 건강으로 부득이 집을 비워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집이 워낙 컸기 때문에 다부진 사람이 필요했다.



물음.

그렇다면 그때 식구들과 어째서 같이 휴가를 떠나지 않았는가?

답.

형 때문이었다. 형은 그 당시 외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누군가 돌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물음.

유모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답.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 유모에게는 정부가 있었다. 
 
그게 못 미더웠다. 

상대적으로 형에게 소홀히 하지않을까 염려됐다. 
 
또한 형은 아버지외에 나에겐 단 하나 밖에 없는 핏줄이다.


물음.

결과적으로 당신이 게재했던 광고가 강도를 유발했다고는 생각치 않나?

답.

나를 의심하는 건가?



물음.

그렇지 않다. 그냥 개인적인 질문일 뿐이다. 

답.
 
그렇다면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않겠다. 
 
개인적인 질문에 응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피해자이다.



물음. 

그렇게 생각했다면 사과하겠다. 끝으로 범인에게 해 줄 말이 있는가?

답.

없다. 



* * * *


그로부터 며칠 지나서 범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곧바로 재판을 위한 심리과정이 진행됐다. 

이제 그에게는 사형이냐, 무기징역이냐 하는 문제만이 남아있었다.

또한 그와 동시에 연희동 강도 살해 사건은 이미 종결되어 있었다.

그래도 조형사는 어쩐지 영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마치 씹히지 않는 모래를 억지로 삼켜 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드디어 사건의 재판이 있던 날이었다. 
 
조형사는 그가 관할했던 살인사건의 재판에 대해서는 언제나 참관을 했다. 
 
일종의 수도자적인 마음이었다.

죄야 어찌됐든 자신으로 말미암아 한 인간이 그동안 누려왔던 자유가 박탈당할 시점에 있었던 것이다.

판사가 형을 언도하고 봉을 세차게 세 번 내리칠 때마다 마치 그의 가슴에 못을 박는 아픔을 언제나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항상 범죄를 다룰 때 그런 아픔을 되새기면서, 
 
그 사람이 가진 자건 못 가진 자건 한 치의 편중도 없이 사건을 공정히 대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되새기곤 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는가. 
 
똑같은 인간이 그와 다를 것이 없는 또 다른 인간에게 벌을 내린다는 것이... 


도대체 벌을 언도하는 사람은 그런 권한을 누구에게서 부여받은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자신에 대해서는 티끌만치의 죄가 없는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때마침 재판장에는 한만호도 와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얼마전에 암으로 죽었다는 것과 조형사의 생각대로 그가 부친의 재산을 모조리 상속받았다는 얘기를 
 
최근에 박형사의 말을 듣고 알고 있었다.

예상한대로 재판의 결과는 세 번의 전과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는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 때 조형사는 씨익 웃고 있는 한만호의 얼굴을 순간적으로 보았다. 

물론 자신의 형을 죽인 범인의 말로가 죽음으로 확정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지금의 그 미소속에는 어떤 섬뜩한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재판장을 나온 한만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간 조형사는 그가 승용차에 오르자 자신도 끌고온 승용차에 올라탔다. 
 
달리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냥 재판이 언도됐을 당시의 그의 기분이 어떠했는지 알고 싶어 그에게 말을 걸려고 하던 참에 기회를 놓친 것 뿐이었다.

한만호의 차는 도심을 가르고 어느덧 성당앞에 도착했다.
 
그는 조용히 차에서 내려 성당안으로 들어갔다.

조형사도 그가 아직은 눈치채지 못하게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한만호는 성당 안에서 중간 정도쯤에 자리해 앉더니 이윽고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조형사는 그의 기도가 방해되지 않도록 살짝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잠시후에 그는 고개를 들고 조형사를 확인하자 흠씬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따라올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그런데 천주교 신자이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신자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조형사님은 왜 날 따라 오셨습니까?"


조형사는 한만호의 기도가 사형을 언도받은 범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죽은 그의 형을 위한 기도인 줄만 생각했다.


"신자도 아니신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니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람을 잘못 보다니요?"
 

"저는 이 사건의 범인을 내심 한만호 당신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저의 심증입니다만. 

솔직히 지금까지도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군요"


조형사의 말에 한만호는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쩨서 내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정황이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완벽하게 들어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 짜여진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말이죠"
 

"예를 들면?"


한만호는 아직도 미소를 풀지 않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보자 조형사는 자신도 모르게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흥분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당신이 신문광고를 내면서부터라고 말해야 옳겠죠.
 
그 광고의 내용은 누가 봐도 내 집을 털어가쇼 하고 의도적으로 선전하는 것 처럼 보였으니까 말입니다. 
 
또한 사건 당일 교묘히 식구들을 다른 곳으로 빼돌린 사실만 해도 그렇죠.

아무래도 식구들의 눈을 피해야하는 말 못할 이유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으니 말씀이오.

그리고 범인이 방으로 들어왔을 때의 당신의 행동은 미심쩍은 데가 있소.
 
그 급박한 상황에서는 제 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라도 일부러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지는 못하오. 
 
그런데 당신은, 그것도 당신의 등 뒤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쳐다 보았었단 말이오.
 
그건 도저히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행동이오"


조형사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가 어떤 표정 변화를 보일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침묵이야말로 범죄자에게 있어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인 것이다. 
 
하지만 한만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웃고 있었다. 
 
마치 조형사의 말이 아주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또요?"
 

"그 다음은 최근에 달라진 당신의 일련의 행동이오. 
 
알고 있기로는 과거 당신의 성격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리 좋은 평판을 듣지 못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당신의 행동이 바뀌기 시작했단 말이오. 
 
그것은 범죄자가 범행을 바로 앞두고 써 먹는 가장 흔한 방법이기도 하오. 
 
그래야만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을테니 말이오"


그러자 그는 컬컬하고 웃어 재꼈다. 
 
그의 웃음이 성당 안에서 울려 퍼졌다.


"역시 형사 뺏지는 아무나 달아 주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아주 날카로운 추리였소.
 
하지만 당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소.
 
그렇다면 그에 대한 증거는 뭐요? 
 
분명히 형을 찔러 죽인 것은 그 강도였잖소. 
 
그처럼 증거가 명백한데 어째서 당신은 내가 형을 죽였다고 말하는 거요?"
 

"그게 나로서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요. 도저히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오"


그러면서 조형사는 호흡을 크게 가다듬으며 한만호에게 말했다.


"어떻소. 이 쯤에서 나에게 말해주지 않겠소. 
 
어차피 사건은 종결되었고, 범인의 대한 형이 확정된 마당이오. 
 
당신을 구속할만한 어떠한 법적인 조항도 이미 모든 생명력을 잃었소. 
 
다만 나는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오"


그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려는 듯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조형사는 비통한 심정으로 그의 웃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소? 그렇다면 내 말해드리지. 
 
이건 어디까지나 승리자에 대한 나의 아량이오. 
 
설마 내 말이 다 끝나면 '당신의 말은 모두 녹음이 되어있소' 라고 말하지는 않겠지.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증거로 쓰기에는 불충분할 거요.
 
이미 사건은 명백하니 사람들이 그것을 믿어 줄 리는 없고, 
 
또한 애당초 내가 형을 죽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니 간단히 부인하면 그만일테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신은 내 편이라는 것이오"


그러면서 한만호는 옷깃을 여미더니 자못 진지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종의 승리감에 대한 자신감으로 도취되어 있었다.


"내가 조금 전에 했던 기도는 죽은 형을 위한 것도, 
 
그렇다고 나를 대신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그 강도를 위한 것도 아닌 순수하게 신을 위한 기도였소.
 
왜냐하면 신은 나의 간절한 기도를 감격스럽게도 끝내 들어주셨기 때문이오. 
 
신은 나를 선택했고 그러므로 나는 그로부터 축복을 받았소.
 
 
물론 형을 죽인 것은 바로 나요. 
 
그리고 그 강도는 내 행위를 대신 해준 대리인에 불과했소.
 
나는 형을 죽일 수 밖에 없었소. 
 
왜냐하면 나에게 돌아올 재산의 반을 형에게 떼어줘야 할 형편에 있었으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아버지의 중대한 실수였소.

아버지가 그런 결정만 내리지 않았던들 형은 언제나 세 살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자신의 명을 이어갔을 거요.

어떻소, 그쯤하면 형을 죽여야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질 않겠소? 
 
하지만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소. 생각해 보구료.
 
 내 손으로 직접 형을 죽이는 멍청한 방법을 쓸 수야 없질 않겠소. 
 
그래서 신문광고를 낼 생각을 했지.
 
 
누군가 날 대신해서 형을 죽여줄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미끼였소. 
 
그래서 광고를 통해 우리집이 부자이며, 조만간 휴가로 인해 집을 비울 예정이라는 간접 광고를 했던거요.
 
 
그리고 속으로 기도를 했소. 
 
제발이지 집에 강도가 들기를... 
 
그렇지 않으면 나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그런데 말이오. 신은 정말로 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거요. 
 
나의 소원대로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날 강도가 들이닥쳤으니까 말이오.
 
나는 그 때 시계를 바라보았소. 
 
시간은 새벽 한 시였소. 
 
우리 집이 있는 동네는 부촌이었기 때문에 경찰들이 정기적으로 순찰을 한다는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었소.
 
 
그 시각이 바로 새벽 두 시반이라는 것 또한 사전에 미리 알아 뒀더랬소. 
 
나는 이미 범행을 결행하기에 앞서 모든 준비를 세웠던 것인데 
 
범인이 현장에서 붙잡혀야지 더욱 확실하다는 생각은 나의 시나리오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콘티였던 것이오.
 
그런데 그 강도는 시간을 너무 앞당겨 왔던 것이오. 
 
그래서 나는 그 순찰시간이 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했소.
 
 
내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자 영문을 모르는 나의 구세주는 몹시 화가 나 매우 흥분하기 시작했소. 
 
그렇게 뜻하지 않았던 상황조차도 나에게 점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소.
 
그리고 경찰들이 순찰을 돌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나는 강도가 눈치채지 못하게 힐끗 벽시계를 쳐다보았소.
 
시간은 2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소.
 
 
나는 드디어 내가 그동안 형과 철저히 연습해 왔던 그 히든 카드를 써 먹어야 할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소...
 
아참, 당신의 이해를 돕기위해서 그 연습에 대한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겠군"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끔찍한 반복교육이었소. 
 
그에 대한 어려움은 따로 설명하지 않겠소. 
 
하지만 교육의 효과는 정말이지 만족할 만한 것이었소.
 
형은 그야말로 개나 돌고래처럼 나에게 길들여졌소.
 
그러기 위해선 적당히 당근과 채찍을 이용했지. 때로는 몽둥이로, 때로는 먹을 것으로... 
 
당신도 알다시피 정박아를 교육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을거요.
 
 
하지만 내가 물려 받을 수 백억의 재산에 비한다면야 그런 수고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소.
 
 
물론 그 일은 은밀하게 진행해야 했소. 
 
저능아인 형을 교육을 시킨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유모의 눈을 피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소.
 
 
어차피 아버지와 운전사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해도 
 
망할 놈의 할망구가 한시도 형의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으니 그게 문제였소.
 
유모를 집 밖으로 내 돌리기 위해 돈도 많이 들이고 놈팽이까지 하나 붙여 주느라 적잖이 투자를 해야 했소.
 
 
자, 그렇다면 내가 형에게 어떤 훈련을 시켰는지 궁금하지 않소.
 
당신은 영리한 편이니 이미 어느 정도 예측은 하고 있으리라 짐작되오만, 
 
그래도 나의 자랑스런 결실에 대해 직접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바라오.
 
 
형은 말을 할 수도, 말을 알아 듣지도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훈련은 모두 행동으로 이루어져야만 했소. 
 
다시 말해서 내가 엄지와 약지로 전화거는 시늉을 하면 
 
형이 내 행동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전화를 걸 수 있게끔 훈련을 시켰던 것이오.
 
 
아까도 말했지만 그것은 수 만번에 걸친 반복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했소. 
 
그 일을 하다가 중간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소.
 
똑같은 일을 매일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그처럼 큰 벌인 줄 몰랐소. 
 
마침내 석 달이 지나고서야 내 계획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소.

그 뒤로는 내가 전화거는 시늉만 하면 형은 잘 훈련된 개마냥 신속히 전화기로 향했소. 
 
그러면 그 때마다 나는 형에게 상으로 음식을 제공해주곤 했던 것이요.
 
형의 임무는 단지 그 뿐,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수화기를 들고 있는 것 밖에 없었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내 완전범죄의 계획을 완성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직감했소.
 
 
자. 그렇다면 다시 그 사건이 있었던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야 하겠군요.
 
 
시간을 확인한 나는 그 강도의 행동를 예의 주시했소. 
 
그가 잠시 한눈을 팔기라도 한다면 나는 그 행위를 실전으로 옮길 생각이었소.
 
 
그 순간 범인은 잠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소.

나는 이 때다 싶었소. 그래서 나는 재빨리 형을 바라보았소. 
 
아무 생각도 없는 형은 멍청히 앞만 바라보고 있다가 내가 엄지와 약지로 전화거는 시늉을 하자 
 
마치 주인의 휘파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개처럼 후다닥 전화기쪽으로 가서 수화기를 집어 올렸소.
 
아아, 당신은 그때의 나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거요. 
 
등줄기에서 뇌를 타고 전해 오는 짜릿한 전율, 그것이 바로 카타르시스가 아니고 뭐겠소.
 
 
순간 당황한 강도가 형에게 달려들어 수화기를 빼앗으려 했지만 힘만큼은 장사인 형을 당해내지 못했소. 
 
형은 있는 힘을 다해 수화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소. 
 
그러자 당황한 강도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칼을 들어 형의 온 몸을 난자하기 시작했던 거요.
 
 
그 뒤로부터 나는 약간의 연극를 해야 했소. 
 
범행의 완벽을 기하기 위해 나는 강도에게 달려들어야 했소.
 
그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르는구료.
 
하지만 다행히도 칼은 형의 가슴속에서 꼭 박혀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 몸에 칼이 박히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소.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문득 시계를 보니 2시 반을 가리키고 있자 나는 그에게서 빠져 나왔으며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집 밖으로 도주를 했던 것이오.
 
아마도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었던 자의적인 행동이 아니었나 싶소.

얼마후 그는 내 계획대로 붙잡힌 신세가 되었으니까.
 
그 후 강도가 나간 뒤 나는 형의 곁으로 다가가 그를 유심히 내려다 보았소. 
 
만약 그가 살아있기라도 한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소. 
 
그래서 나는 확실히 해두자는 생각으로 형의 가슴에 꽂힌 칼을 
 
지문이 묻지 않도록 옷으로 싸서 움켜쥔 후 다시금 몇 번 들쑤셔 놓았소.
 
 
그리고 나는 그가 다시 살아날 가망성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자 그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울어대기 시작했소. 
 
나는 울면서 속으로 죽은 형에게 약간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면 그 것이 형에게는 잘 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소. 
 
생각을 해보시오.
 
도대체 평생을 세 살 어린아이의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이 형에게는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소. 
 
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다음의 일을 항상 머릿속으로 그려왔기 때문에 당신들의 질문에 당황해하지 않을 수 있었소.
 
하지만 조형사, 당신이 질문했던 그 벽시계 질문만큼은 나도 미처 생각치 못했던 거라 무척 당황했더랬소. 
 
당신같은 예리한 형사가 있다는 것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르오. 
 
자, 이제 내 얘기는 여기서 끝이 났소. 
 
이만하면 이젠 당신의 궁금증이 해결되었을 거요. 그렇지 않소, 조형사?"



조형사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몸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심한 질책을 가했다. 


'어째서... 어째서 나는 눈으로 보이는 현상의 외관만을 좆고 있었던 것일까. 
 
왜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신뢰하고 맹신하며 마음속에 있는 진짜 실체를 바라보는 것에 그토록 인색했던 것일까...'


조형사가 머리를 땅에 숙이고 말없이 앉아 있자 한만호는 쓰윽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나는 먼저 실례해야겠소. 그럼 이만..."


조형사의 등 뒤에서 그의 구둣소리가 뚜벅뚜벅하고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조형사의 뇌를 마구 들쑤셔 놓는 것 같아 조형사는 양 손으로 자신의 귀를 틀어 막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조형사가 고개를 들어 교회의 연단을 바라보았을 때 십자가에 걸려 있는 예수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출처
천리안... 조성훈 (daeda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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