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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재능을 주는 열매
게시물ID : panic_976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24
조회수 : 2706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8/01/13 01: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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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먹으면 재능이 생기는 열매가 있대.”
 
처음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새로운 사기 수법이 생긴 것 정도의 가벼운 반응을 보였다. 내용이 어린아이도 속이기 힘들 정도로 과장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먹었더니 한 번 본 것을 다 외울 수 있게 되었어요.”
 
운동신경이 좋아졌어요. 덕분에 동네 야구시합에서 처음으로 홈런을 쳤어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간간히 열매의 효능을 알리는 글이 올라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매의 생김새, 구하는 법 등을 알려주는 글도 올라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겠어?”
 
정치, 경제, 스포츠, 연예 등 사람들에게는 열매보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훨씬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브라질과 친선경기에서 승리한 것이었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수비수가 혼자서 일곱 골을 넣는 활약을 펼친 결과였다.
 
국제축구연맹의 도핑 검사 등 여러 가지 조사, 분석이 잇따랐지만, 특별한 문제점은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국가의 영웅이 된 어린 수비수에게 열광했다. 매체들은 연일 분석 기사를 쏟아냈지만, 그런 활약이 가능했던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모두 허황된 추측만 내놓았다. 선수 역시 평소 훈련을 열심히 했다는 상투적인 답변만 할 뿐, 다른 어떤 빈틈도 주지 않았다.
 
사진이 올라온 것은 그러한 열기가 식어갈 때쯤이었다. 핸드폰으로 멀리서 찍은 것 같은 조악한 사진에는 수비수가 무언가를 먹으며 걸어가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이거 혹시 먹으면 재능이 생기는 열매 아냐?”
 
누군가가 무심결에 던진 댓글 하나에 죽어가던 관심의 불길이 다시 타올랐다. 사람들은 인터넷 기록을 뒤지고 뒤져, 열매를 찾기 시작했다.
곧이어 무서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후기가 인터넷에 쏟아졌다.
 
물속에서 숨을 쉬지 않고 30분을 버틸 수 있게 됐어요.”
 
공중에 떠 있을 수 있게 되었어요.”
 
백 미터를 9초에 뛸 수 잇게 되었어요.”
 
주로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후기들이 많았지만, 부정적인 반응이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내용들도 있었다.
 
먹었더니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됐어요.”
 
청각이 너무 예민해 지는 바람에 잠을 못 자겠어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미신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인터넷의 일부 사이트를 중심으로 열매에 대한 내용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열매에 대한 분석을 했으며, 신인류로 가는 길인 것 마냥 열매를 찬양했다.
열매는 어느새 화폐의 가치를 띠기 시작했다. 몇 안 되는 종류였지만, 적게는 몇 천원에서부터 많게는 몇 십 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격에 판매되었다.
 
주류 매체는 이러한 열매 열풍에 대해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논조의 기사를 냈다. 열매의 효능이라는 것 자체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부작용 역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사들은 사람들의 열풍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한 케이블 티비에서 열매에 관한 특집 방송을 한 뒤부터 열매 신드롬은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다.
 
백만 원이 넘는 열매가 나오나 싶더니, 곧 다음 날 이백 만원이 되었다. 이백만원짜리 열매는 다음날 사백 만원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만 원을 넘기게 되었다.
 
열매 하나에 천만 원이 넘자 사람들은 어느새 처음 열매를 구매하는 목적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온갖 사기꾼, 투기꾼이 열매 신드롬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을 노려, 새로운 열매를 마구 유통시켜 돈을 벌었다. 새로운 열매가 나올 때마다, 기존 열매의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인터넷에서 강하게 자리 잡을 때마다 열매는 하루에도 수 백 번씩 널뛰기하듯 가격을 바꿨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열매의 가격을 들여다보며 부침을 거듭했다. 한강에 가던 도중 열매 값이 올라 다시 돌아왔다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기 발견 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앞으로는 국가에서 열매를 통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에서 각종 대책을 발표 했지만, 열매 신드롬은 가을날 들풀처럼 더욱 번져 나갔다.
 
정부에서 열매를 독점 하려는 음모다!”
 
이미 열매로 이득을 본 사람들이 얼만데, 이제 와서 규제라니 말이 되느냐?”
 
열매 거래가 전면 금지되고, 적발될 시 법에 의해 처벌을 받았지만 사람들은 열매가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 언론, 정부가 혼재되어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난상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열매 신드롬의 촉매가 되었던 축구선수가 죽었다는 소식이 사람들에게 찾아들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운동선수들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열매 때문에 죽은 것이라는 괴담이 돌기 시작했다.
 
부검 했는데, 장기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고 하던데.”
 
평소에도 조금 이상한 태도를 많이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이거 열매가 가진 부작용 때문은 아니겠지?”
 
효능에 대한 실체만큼, 부작용에 대한 실체 또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한 번 들불처럼 일어난 의혹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여태 미신처럼 여겨지던 부작용에, 열매를 먹은 사람들은 매일 불안에 떨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매일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했다.
 
실제인지 가짜인지 모를 부작용의 합성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열매의 부작용에 대한 방송이 나온 뒤부터는 회사와 관공서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던 열매 신드롬은 그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말았다. 몇 천 만원이 넘는 가격대에 거래되던 열매가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렇게 국가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신드롬은 겨우 끝났지만, 사람들은 그 뒤로도 한참동안 안정을 찾지 못했다.
 
이번에는 한강으로 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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