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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한국말을 하는 이유 (1/2)
게시물ID : panic_977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른이의꿈
추천 : 57
조회수 : 4508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8/01/14 0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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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have beef and fish ready. What would you like to have?”

“불고기 주세요.”

“아… 네.”

나의 대답에 한인 승무원이 놀란 표정으로 식사 쟁반을 건냈다.

“저… 그럼...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내가 무엇을 마실지 생각하며 뜸을 들이자 승무원이 다시 물었다.

“Would you… like to drink something?”

“맥주...… 아니… 물 주세요. 물.”


==
나의 이름은 Brian McNeil이다.


캐나다 알버타 주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고, 지금은 토론토에서 대학에 다닌다.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나는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가고 있다.

참고로 나는 한국어를 배운 적이 없다.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이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 전부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
7개월 전.

기말고사가 모두 끝나고 여름 방학이 시작했다.

아버지는 알버타 집으로 와서 농장일을 도와달라 했다.

하지만 나는 핑계를 대며 넉달간의 긴 방학기간 동안 한번도 알버타 집에 가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기 얼마전 친구들과 함께 토론토 교외의 작은 호수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첫날. 우리는 호숫가 백사장에 누워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오한과 함께 열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사온 해열제를 먹었는데도 열은 내려가지 않았고,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친구 하나가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911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나는 구급차 안에서 의식을 잃었다.


==
나는 뇌수막염으로 일주일 가까이 혼수상태로 있었다.

나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정신이 돌아온 첫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날 병문안을 왔던 친구 말로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며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마침 병원에 동양인 간호사 한명이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어렵게 진정시켰다고.

그 간호사에 따르면 나는 한국어로 집으로 보내달라고 무척 고집을 피웠고,

간호사가 한참을 설득하고 나서야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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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은 그 다음날 잠에서 깨었을 때 부터 시작한다.

내가 눈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그 중 한명이 나에게 말했다.

“Hello Mr. McNeil. I am Dr. Wilson. How do you feel?”

“Umm… not really good.”

나의 대답에 모두들 약간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동양인 간호사 한명이 내게 물었다.

“혹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구급차에서 대원과 이야기하다가...... Huh? What did I just say!?”

간호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제 저에게 집에 가야한다고 그랬는데, 기억 나세요?”

“No…”

“가능하면 한국말로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여기 의사들이 확인하고 싶어해요.”

“아... 기억나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하는 말이 한국말인가요?”

“맞아요.”

“제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나요?”

“병원에 입원한지 일주일 됐어요. 그런데 한국말 정말 잘하는데 어디서 배웠어요?”

“배운 적 없어요. 그런데... 제가 왜 한국말을 할 수 있는거죠?”

간호사는 주위의 의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의사들이 그 질문에 대답을 해주기 위해 여기 모여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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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내가 한국어를 할 수 있게 됐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병원에서 몇가지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퇴원할 즈음 신경정신과 의사가 상담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나는 거절했다.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게다가 상담치료를 받으면 아버지 이야기를 해야할 텐데 그러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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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이른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의 겨울은 알버타에 비해 많이 따뜻했다.

가방에서 얇은 외투를 꺼내 입고, 여권은 외투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인천공항에서 인천종합터미널.

그리고 인천종합터미널에서 철원행 버스에 올랐다.

병원에서 한인 간호사가 건낸 메모를 꺼냈다.

‘강원도 철원군 사요리 1762-8’

내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 가야한다던 집 주소다.

인터넷 지도 상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작은 주택이었다.

그런데 그 집에 도착하면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까?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사요리 마을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20시간을 비행기와 버스에 앉아있었던 셈이다.

무척 피곤했기에 숙소를 잡고 다음날 아침 그 주소지로 찾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마을에 도착하자 궁금해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택시를 돌려 간호사가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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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릴 때까지 많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사기꾼이라고 경찰을 부르지는 않을까?

미.친놈이라고 비웃지는 않을까?

비행기 삯만 1800불.

그래, 여행 온 셈 치면 되지.

그럼 어딜 구경하고 가야 여행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
중년의 남자가 문을 열었다.

그는 나만큼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구세…어………… 후…아..유?”

“저… 안녕하세요. 전 Brian McNeil이라고 합니다.”

그의 얼굴은 안도감과 당황함이 섞인 묘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어떻게 이 집을 찾아왔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뇌수막염으로 며칠간 의식을 잃었던 일.

의식을 찾은 후 갑자기 한국말을 하게 된 것.

그리고 어떻게 이 주소를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 했다.

다행히도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나에게 집으로 들어오라 했다.


==
그는 안쪽 방으로 들어가 그의 어머니를 불렀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거실로 나왔다.

노인은 말없이 나와 그녀의 아들을 번갈아 쳐다보자 아들이 말했다.

“한국말 잘 해요.”

노인은 문 앞의 내 캐리어 가방을 보고는 나에게 말했다.

“저녁식사는 하셨소?”

“아직.. 안먹었어요.”

“그럼 밥부터 먹고 이야기 합시다.”


==
노인은 주방으로 들어갔고 한참이 지나서야 아들과 함께 커다란 상을 차려 나왔다.

처음 먹어보는 여러가지 한국 음식들이 생각보다 입맛에 맞았다.

밥을 먹으며 나는 노인에게 지난 여름 내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노인은 밥상 맞은편에 앉아 간간히 아들이 채워주는 소주잔을 기울였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노인이 물었다.

“그래, 그 일이 언제인지 기억은 나고?”

“올해 8월 18일이에요.”

노인은 그녀의 아들을 향해 물었다.

“내가 병원 실려간게 그쯤이냐?”

“아마. 그럴꺼에요. 어머니.”

“허허, 신기한 일이네.”

그리고 노인은 여름에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광복절이 지난 어느날 노인은 정오가 넘도록 일어나지 않았단다.

흔들어 깨워도 의식이 없자 아들은 119를 불러 노인을 병원으로 옮겼고,

노인은 병원에서 꼬박 이틀을 자고 일어났다고 했다.

“그렇게 이틀 밤낮을 자는 동안 신기한 꿈을 꿨어. 이집 안방에 누워있었는데 저승사자가 이제 때가 되었으니 가자는 거야. 아... 미국 학생, 저승사자가 누군지는 알아?”

“네. 알아요.”

“저승사자가 가자는데 어쩔 수 없었지. 그래서 따라나섰어. 한참 저승사자를 따라가다 보니까 앞에 커다란 대문이 보이는 거야. 저게 저승 들어가는 문이구나 싶더라고. 대문 앞에서 미국 사람이 한명 있었는데, 우리가 가니까 저승사자를 불러다가 둘이서 소곤소곤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야.”

노인은 잔에 남은 소주를 들이켰다.

“그러고는 저승사자가 나한테 이승에 아직 갚지 않은 빚이 있다는 거야. 시간을 좀 더 줄테니 그 빚을 갚고 오라고. 그리고는 나한테 집으로 돌아가라 했어. 나는 지금까지 온 길도 멀고 하니 그냥 저승으로 가자고 했지. 그랬더니 저승사자가 안된다며 혼자 가버리는 거야.”

노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길을 알아야 집으로 올꺼 아냐. 여기 저기 길을 물어도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어. 한참을 헤매다가 어떤 여자를 만났지. 그 여자가 친절하게 내 주소도 물어보고 내가 알려준 주소를 종이에 적더니, 자기가 집에 꼭 보내줄테니 저기 보이는 침대에 누워있으라고 하기에 그리로 가 누웠지. 그리고는 잠이 깼어.”

노인은 소주를 잔에 가득 채워 입안에 털어 넣었다.


==
노인은 내가 있던 병실의 모양새와 한인 간호사의 인상착의에 대해 물어보았다.

노인은 그날 자신의 영혼이 나의 몸에 들어왔다고 믿는 듯 했다.

나는 노인의 이야기를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내가 갑자기 한국말을 하는 것도 믿을 수 없지만,

노인의 영혼이 나의 몸에 들어왔다는 건 더 믿기 어려웠다.

그래도 어느 정도 궁금증은 풀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배가 불러오자 밀린 잠이 쏟아졌다.

노인이 말했다.

“미국 학생, 많이 피곤하구먼.”

노인은 그녀의 아들에게 말했다.

“작은 방에 이부자리 준비해줘라.”

나는 모텔에서 자고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 했다.

하지만 노인은 나를 잘 대접해 보내야 자기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고집을 부렸다.


==
다음날 노인 모자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며 나는 노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님, 어제 꿈 이야기에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꿈에 저승사자가 말한 빚이 뭔지 얘기해주실 수 있어요?”

“글쎄… 내가 80 평생 살아오면서 누구한테 빚지고 살지 않았는데. 아마 6.25 전쟁 때를 말하는 것 같아.”

노인은 기억을 더듬는 듯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전쟁통에 어머니 아버지 잃고, 10살 짜리 계집애가 할 수 있는게 없었어. 거렁뱅이 마냥 구걸하고 다니면서 겨우 목숨줄 붙들고 있었지. 한번은 며칠을 굶다가 길에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 눈을 뜨니까 미군들이랑 같이 있더라구. 아마도 미군들이 길에 쓰러진 나를 봤는데 아직 숨이 붙어있으니까 데려갔을테지.”

노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얼마 안되서 군인들은 떠났어. 떠날 때 미군 한명이 주변에 고아원을 찾아 나를 거기에 맡기고 갔지. 아마도 저승사자 말은 그때 미군들이 내 목숨을 살려줬으니 그 빚을 갚고 오라는 것 같아. 허허.”

노인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자신의 목걸이를 풀러 나에게 내밀었다.

작은 십자가 목걸이었다.

“그 미군이 나를 고아원에서 맡기고 떠날 때 준 목걸이야. 자기 목에서 풀러주면서 영어로 뭐라 했는데 무슨 말인이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이유도 모르고 받았어. 이제 자네가 미국으로 도로 가져가면 되겠구먼.”

“네? 중요한 물건인데 제가 가져가면 안되죠. 그리고 저는 캐나다에서 왔어요. 미국에는 가본 적도 없구요.”

나는 사양했지만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저승 문턱에서 퇴짜를 맞은게 그 목걸이 때문이라며 제발 가져가라는 노인의 부탁을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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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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