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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어느 작가의 인터뷰
게시물ID : panic_977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30
조회수 : 273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1/18 14: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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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많은 장서들이 늘어서 있는 방에 들어가자, 창가 쪽에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창호가 앉아 있었다. 최미나는 개인 서재라기보다 도서관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사서가 마음대로 책을 꽃아 놔서,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해서는 한참을 뒤져야 하는 그런 오래된 도서관이었다.
 
인터뷰는 오랜만이라 조금 떨리는군요. 게다가 처음 뵈는 분이기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창호가 말했다.
 
, 강 과장님이요? 건강이 안 좋으셔서 한동안 휴직 하셨어요.”
 
저런. 젊은 친구가.”
 
그러게요.”
 
젊다고 이야기 했지만, 강 과장의 나이는 오십이 넘었다. 어디 한군데 슬슬 이상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게다가 강 과장의 건강에 이창호가 나쁜 영향을 주었으면 주었지,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최미나는 입에서 쓴웃음이 나왔다.
 
이창호는 최미나가 근무하는 출판사의 유일한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전자책이 난무하는 시기에 아직까지 종이책만 고집하는 고지식한 작가였지만, 그의 두터운 독자들은 어떤 종류로든 그가 다시 글을 써주길 바랬다.
 
최미나는 미리 준비된 자리에 앉아, 오늘 인터뷰 할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이창호가 커피와 설탕을 가지고 와 그 앞에 앉았다.
 
커피는 설탕을 넣으시나요?”
 
최미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았다. 이창호는 그런 면에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까다로운 작가였다.
 
. 넣어 주세요.”
 
오늘의 목표는 그와의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이었다. 인터뷰 도중 신작에 대한 자그마한 실마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무사히 끝내는 것만으로도 최미나 입장에서는 감지덕지였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씁쓸한 맛과 함께 설탕의 단 맛이 아주 잠깐 느껴졌다. 사람들이 왜 커피를 마시는지 최미나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오늘 인터뷰 할 내용은 파일에 적힌 내용대로입니다.”
 
최미나가 건넨 파일을 이창호가 검토하듯 살펴보았다. 사실 최미나가 건넨 파일은 이창호가 출판사 쪽에 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을 싫어했고, 특히 인터뷰에 있어서만큼은 예상 밖 질문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마치 파일에 잘못된 점이라도 있는지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처럼, 이창호는 종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하여튼 까다로운 사람이라니까.’
 
최미나는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얼른 인터뷰를 마치고 싶은 생각이 커피를 마실 때마다 간절하게 들었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나 봐요?”
 
갑작스런 그의 말에 원래 마시려던 커피보다 많은 양의 커피가 목구멍 안으로 들어왔다. 사래가 들린 듯 기침을 하는 최미나에게 이창호가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저는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아요. 설탕을 넣으면 커피 본연의 맛을 잘 느낄 수 없으니까요.”
 
최미나는 손수건을 받으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인터뷰를 하기도 전에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는 않을까 걱정 되었다. 물론, 최악의 상황은 그가 기분이 나빠져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감사합니다.”
 
커피였었지요.”
 
, ?”
 
겨우 기침을 멈춘 최미나는 이창호의 갑작스러운 말에 다시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제가 쓴 첫 작품 말입니다.”
 
커피 공장의 그림자.”
 
맞아요, 잘 알고 계시는 군요.”
 
최미나는 자신이 들고 있던 파일을 살짝 넘겨보았다. 인터뷰의 첫 번째 질문은 최근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을 묻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최미나는 가방에서 녹음기를 꺼내서 켜고, 손수건을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 이창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 어떤 계기로 첫 작품을 쓰게 되셨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최미나는 파일에 적혀 있는 것과 다른 질문을 이창호에게 던졌다. 어차피 시작부터 꼬인 마당에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창호는 입을 열었다.
 
집 근처에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살았어요. 그들에게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죠.”
 
최미나는 인터뷰를 시작한 뒤 세 번째로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창호의 입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강력범죄와 연관된 자들이 많았어요. 맥주 한 두병만 쥐어주면 그런 이야기들을 하루 밤새도록이라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저는 매일같이 그들과 어울리면서 이야기들을 정리했어요.”
 
대단하시군요.”
 
그저 추임새를 맞춰줄 뿐인 대답이었지만, 최미나는 속으로 기뻐했다. 이대로만 가면 인터뷰를 정리하며 쓸 내용이 없어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커피 공장의 그림자는 그 중 한 명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어요.”
 
말을 마친 이창호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최미나는 그의 생각이 방해받지 않도록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려는 듯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러면 그 뒤의 작품들도 전부 그런 실화를 배경으로 하신 건가요?”
 
잘 이해하고 계시는 군요.”
 
이창호는 최미나의 잔에 커피를 조금 더 따라 주었다.
 
제 작품들 중에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작품은 없습니다.”
 
꽃동네, 지옥의 마리아. 전부 말씀이시죠?”
 
, 물론입니다.”
 
이창호는 똑같은 질문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최미나를 바라보았지만, 최미나로써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꽃동네는 지체장애 소녀가 같은 지체장애 소녀를 대상으로 각종 성적학대, 폭행, 살인을 저지른다는 내용이었고, 지옥의 마리아 역시 잔혹하기로 유명한 작품이었다. 작가의 상상이라면 모를까, 어디선가 실제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생각을 하니 오싹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용들은 실제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듣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창호는 최미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물론입니다. 다들 범죄에 대해서는 쉬쉬하고, 수사기록 역시 쉽게 볼 수 없지요. 그래도 찾다 보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법이라 하면요?”
 
, 그렇군요. 잠깐 이 내용은 녹음기를 꺼도 될까요? 나름 작가로서 영업 기밀이라서 말이죠.”
 
, .”
 
최미나는 녹음기를 끄는 척 하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창호에게는 미안했지만, 지금부터가 놓칠 수 없는 내용인 것 같았다.
최미나가 가방에 녹음기를 넣는 것을 확인 한 이창호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통 이런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자들은 물론, 그 가족들도 잘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주변인들에게서 정보를 많이 수집 합니다.”
 
주변인들요?”
 
. 사건을 조사했던 담당 경찰, 가까이서 그들을 봐 왔던 사람들. 그들에게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략적인 인물의 구성이 나오지요.”
 
인물의 구성이라.”
 
최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인물 구성만으로는 정확한 인과관계를 구성하는데 힘이 들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인물의 구성이 나오면.”
 
거기까지 말한 이창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냅니다.”
 
사람들을 찾아내다니, 그게 무슨?”
 
사람들을 찾아내서 재연을 시키는 거죠.”
 
재연이요?”
 
. 보다 생생한 이야기가 그려질 수 있도록 말이죠.”
 
하지만.”
 
이창호는 대답 대신 최미나의 잔에 커피를 채우고, 설탕을 넣었다.
 
재연 역시 쉽지는 않아요. 똑같은 상황, 똑같은 정보를 줘도 항상 다른 결과가 나오니까요. 물론 그 결과가 더 좋을 때도 있지만요.”
 
, 확실히 독특한 방법이네요. 다른 작가들은 생각하기 힘들 것 같아요.”
 
최미나는 빨리 인터뷰를 끝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창호는 자신의 이야기에 심취한 듯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방법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요? 재연 한 다음 뒤처리라든가, 트라우마 같은 건가요?”
 
이창호는 고개를 저었다.
 
바로 익숙해진다는 점이죠.”
 
익숙해진다고 하면.”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는 겁니다. 자위만 하던 소년이 여자를 품에 안고 더는 자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갈수록 더 강렬한 것을 추구하게 된다, 이 말이죠.”
 
최미나는 이제 인터뷰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쉽지 않은 인터뷰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최미나를 보며, 이창호는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실은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로 오랜만이지요.”
 
새 작품? 어디 또 좋은 희생양들을 찾으셨나 보죠?”
 
최미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 붙이고 방문을 열었다. 밖에 나가자마자 얼른 이 미친 작가를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게, 무슨.”
 
바로 뒤에서 이창호가 그녀를 껴안듯 허리를 감쌌다. 가방에서 녹음기를 꺼내 바닥에 집어 던진 이창호는 실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뇨. 이제 남들이 만든 이야기를 보기만 하는 건 질려서 말이죠.”
 
순간 가벼운 어지럼증과 함께 졸음이 몰려왔다. 확실히 쉬운 인터뷰가 되지는 않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최미나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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