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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후회 없는 선택
게시물ID : panic_980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윤인석
추천 : 69
조회수 : 4395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8/03/01 11: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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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피우는 사람은 티가 난다. 

스마트 폰을 잠금 설정하지 않아도, 같이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음식점에서 거침없이 소금을 집어주던 손길이 설탕과 소금 사이에서 잠시 주춤한 게 그러했고, 평소와 다르게 조합한 옷차림이 그러했고, 마주 바라보다가 허공을 훑는 시선이 그러했고, 마주 안았을 때 체온이 다른 것이 그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속을 간질이던 체취가 머리속 촉을 간질일 때 예나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나는 신중했다. 한번 정해지면 뒤돌아보지 않는 성격인 만큼 확실한 증거를 찾기로 했다.

'어디 흥신소 같은 곳에라도 연락해 봐야겠어.'

흥신소를 찾아보기로 한 순간이었다. 한 신사가 불쑥 나타나 예나 앞을 막아섰다.

"실례합니다."

앞을 막아선 사람은 길거리에 어울리지 않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검은색 연미복을 차려입고, 정장 모자와 지팡이까지 들고 있어서 신사외에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옆에는 똑같은 연미복 차림의 꼬마가 서 있었다.

"예? 저 말씀이세요?"

"혹시 해결사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괜찮으시면 차 한잔하시면서 상담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신사가 마침 바로 옆에 있는 전국 체인 카페를 가르치며 말했다.

"왜 제가 해결사를 찾는다고 생각하세요?"

"하하. 이 업계도 경쟁이 치열한 데다가 신사 숙녀 여러분들은 어두운 구석에 있는 사무실까지 오시는 걸 꺼리시는 경향이 있어서요. 가끔 얼굴에 수심이 보이는 분을을 보면 실례 불구하고 이렇게 여쭤보기도 한답니다. 찾아가는 서비스인 셈이지요. 어떠신가요? 관심 있으십니까?"

신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콧수염이 멋들러지게 휘었다.

"......그러죠."

예나는 잠시 고민하다 신사와 함께 카페에 들어갔다. 수상했지만 마침 흥신소를 찾아볼 생각을 하고 있었고, 구석진 공간이 아니라 대로변에 카페라는 점도 안심이 되었다. 정 이상하면 돌아 나오면 될 일이었다.

예나와 신사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꼬마는 조각 케이크 하나를 주문했다.

"저 아이는..."

"아. 우리 꼬마. 잔심부름 같은 걸 해주고는 한답니다. 인사드리렴."

"잘 부탁드립니다."

꼬마가 아랫배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 볼살이 통통한 귀여운 꼬마였다. 학교는 안 가니? 라고 물으려다 말을 삼켰다. 저런 귀여운 꼬마가 있다면 의심받지 않고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일을 부탁할지도 모르는데 유능하다면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복장이 특이하시네요. 흥신소 하시면 잠복 같은 것도 하시고 그래야 하지 않나요?"

잠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예나가 물었다.

"덕분에 이렇게 숙녀분과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점퍼 차림도 해봤습니다만 별로 효과가 좋지 않더군요. 위험해 보이거나 평범해 보이는 것보다야 이편이 효과적이죠."

예나가 다시 한번 신사의 차림새를 돌아보았다. 살랑대는 연미복 꼬리와 지팡이 끝에 장식된 은색 해골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냥 취향인 것 같은데.'

하지만 일만 잘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예나는 특이한 차림의 신사 일행과 커피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애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아요."

예나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하하. 마침 제가 그쪽 전문입니다. 여기 메뉴판을 봐주시겠습니까?"

신사의 말에 꼬마가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모를 메뉴판 하나를 예나에게 건네주었다. 해골 문양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검은색 메뉴판이었다. 

'취향이 맞네.'

예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메뉴판을 살펴 보았다.

***

1. 명명백백 明明白白 - 의심할 여지가 없이 분명하고 똑똑히 드러낸다.

애인이 바람 핀 증거를 찾아 드립니다.

2. 인과응보因果應報 -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

애인이 바람 핀 상대가 바람 나게 해드립니다.

3. 발본색원 拔本塞源- 폐해를 일으키는 근원을 제거한다.

애인이 바람 핀 상대를 제거해 드립니다.

4. 개과천선 改過遷善- 굳은 의지를 갖추고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 새사람이 된다.

애인이 다시 본인을 뜨겁게 사랑하게 해드립니다.

5. 풍비박산 風飛雹散 - 바람이 날리고 우박이 흩어진다.

애인을 제거해 드립니다.

6. 각자도생 各自圖生 - 제각기 살아 나갈 방도를 꾀한다.

애인과 헤어지게 해드립니다.

***

특이한 메뉴판을 살펴본 예나가 다시 신사를 바라보았다.

"아. 직접적으로 제거니 뭐니 입에 담기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사자성어로 말씀해 주시는 걸 훨씬 편해하시더군요."

시선을 느낀 신사가 말했다. 옆에 꼬마가 지당하신 말씀, 이라고 하는 것처럼 눈을 감고 고개를 끄떡였다. 어느새 입가에 케이크를 묻히고서 그러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비용은 어떻게 되죠?"

"이렇게 하시죠? 1번. 명명백백은 서비스로 해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명확한 증거를 드리면 나머지 메뉴 중에 숙녀분이 정말 원하시는 일을 반드시 저희에게 맡겨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신사가 눈에 한가득 기대를 담고 말했다. 꼬마도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예나를 바라보았다. 

'길거리에서 영업하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간절해 보이는 것도 그렇고... 생각보다 장사가 잘 안 되는 건가? 실력이 의심스러운걸... 하지만 서비스라...'

예나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잠시 뜸을 들였다. 꼬마가 침을 꿀꺽 삼켰다.

"증거를 찾아주시고, 비용이 제가 감당할 정도면 맡길게요."

예나가 말했다.

"크크크크.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증거를 찾아드리죠."

신사가 괴이하게 웃었다. 정중한 말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져 있었다. 음침하고 위험해 보였다.

신사가 테이블에 있던 휴지를 꺼내 물을 묻혔다. 그리고 물이 묻은 휴지를 뭉쳐서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시는... 헉!"

예나가 깜짝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신사가 닦은 부분 너머로 영상이 보였다. 마치 TV 화면 위에 그려 놓은 나무무늬 그림을 지우자 화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화면에는 예나의 애인이 예나의 친구와 벌거벗고 한참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높아지는 소리에 예나가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들리고,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크크크크."

신사가 괴소를 흘리며 테이블을 톡톡 두드릴 때마다 화면에 나오는 모습을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허공에서 푱푱 나타났다. 꼬마가 그 사진을 모아서 예나에게 전해 주었다. 꼬마도 아주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이걸로 증거는 충분하시죠?"

"......"

애인이 바람 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대상이 친구라는 것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었다. 그 배신감과 신사가 일으킨 괴상한 현상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예나가 신사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긴장된 시선으로 신사를 살폈다.

신사와 꼬마는 만찬을 앞두고 즐거워 하는 육식 동물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반짝였다.

'이건 위험해.'

민감한 예나의 감이 어느 때보다 맹렬히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바람 핀 애인도, 친구도, 이들의 정체도 지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도망가야 했다.

예나가 대꾸도 없이 재빨리 일어서서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화르르륵!

"꺅!"

예나 앞쪽으로 불의 벽이 일어났다. 불의 벽은 빠르게 번져 예나가 있던 테이블을 둥글게 감쌌다. 천장도 어두컴컴해졌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예 다른 공간에 온 것 같았다.

"이런. 이런. 저희에게 나머지 일을 맡긴다고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여전히 테이블에 앉은 신사가 말했다. 꼬마가 짐짓 예나가 앉았던 의자를 빼주는 시늉을 하며 앉기를 재촉했다.

"......대체 당신들은 뭐죠?"

예나가 둘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당한 대가를 받고 소원을 들어주는 선량한 악마입니다. 전 후회의 악마, 이 친구는 조수죠. 잘 부탁드립니다. 고객님."

신사와 꼬마가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느새 둘 다 연미복 꼬리 사이로 붉은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고 염소처럼 말린 뿔이 돋아나 있었다.

"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 될 때 맡긴다고 했어요."

"아.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저희는 한 푼의 돈도 받지 않고 해드릴 테니 비용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다른 걸 받죠. 영혼 같이 돈 들지 않는 것이요. 크크크크. 자 어서 앉으셔서 이야기를 마저 들으시죠."

신사였던 악마가 말했다.

"......서비스를 해주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이게 진짜인지 어떻게 믿죠? 환영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불을 벽과 의자를 번갈아 보던 예나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예나가 가르킨 화면에서 애인과 친구가 알몸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껴안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익숙해 보였다.

"실시간이니까 전화라도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예나가 말없이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화면 너머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안 받아?"

친구가 말했다.

"예나네. 어휴. 지겨워. 이따가 다시 하지 뭐. 자기랑 있는 시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예나의 애인이었던 남자가 스마트 폰 화면을 슬쩍 보고 스마트 폰을 저만치 던져 버렸다.

"그래. 그럼. 그런데 대체 언제 헤어질 거야?"

"곧 헤어져야지. 그런데 그럼 애들 있을 때 너랑 만나기 좀 뭐해지는데 괜찮아?"

"후후. 나야 자기만 있으면 되지. 다 꺼지라 그래!"

"아유. 이 이쁜이. 어디 그사이 얼마나 더 예뻐졌는지 볼까?"

"꺅! 간지러워."

다시 불붙는 둘을 보며 예나가 통화 종료를 눌렀다. 하는 행동과 말투과 애인과 친구가 분명해 보였다.

예나는 분노로 아랫배가 뜨거워 짐을 느꼈다. 그게 둘의 배신 자체 때문인지, 악마와 엮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향은 확실했다.

-톡

악마가 테이블을 한번 두드리자 화면이 사라지고 다시 평범한 테이블이 되었다.

"서비스는 확실히 해드렸습니다. 저희는 계약을 명확히 준수하니 그 점에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크크. 게다가 무조건 영혼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니 진정하시고 이야기를 더 들어보시죠?"

"...그러죠."

예나가 말했다.

"크크. 침착한 태도가 좋군요. 아주 숙녀 다워요. 사실 저희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방금 계약은 완전하지 않지요. 대가가 영혼인지 모르고 계약을 했다는 거 인정합니다. 비둘기 날개 달린 녀석들도 불완전 계약이다 함정계약이다 영 시끄러웠지요. 그래서 이제는 저희도 한 500년 전부터는 이 계약이 가계약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진짜 계약을 말씀드리죠. 일단 저희에게 일을 맡기기로 하신 것은 분명하니 메뉴판에 있는 2번부터 6번까지 중에 한 가지를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그리고 영혼을 가져가는 건가요?"

"후후. 아니요. 저는 후회의 악마입니다. 지금 선택을 하시고 앞으로 살아 있는 동안 그 선택을 후회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습니다. 대신 잠깐이라도 후회를 하면 영혼을 가져가겠습니다. 아까와 달리 규칙이 명확한 승부지요. 예시를 보여 드리죠."

악마가 다시 테이블을 휴지로 닦았다. 이번에 나타난 화면에는 낯선 남성이 보였다. 남자는 처참하게 죽은 여자 시체를 보고 있었다.

"아니야. 이 정도까지를 바란 건 아니었어. 헉!"

남자의 눈앞에 꼬마 악마가 불쑥 나타나서 가슴 속에 양손을 박아넣었다. 퍽! 꼬마 악마가 한 손에는 심장을 한 손에는 빛나는 무언가를 들고 히죽 웃었다.

거기서 화면이 끊기고 다른 화면으로 전환 되었다.

"X새끼. 그렇게 잘 나간다고? 차라리 그때...꺅!"

다음

"그게 아니야. 어차피 넌 딴 남자가 좋은데 악마 때문에 억지로 날 좋아하고 있는 거야. 인형이랑 같이 사는 것 같아. 차라리 혼자...컥!"

다음.

"그놈이 바람피운 정도로 자살을 해? 그러면서 나를 버리고 바람을 피웠단 말이야? 바보야. 네가 그러면 내가 죽인 것 같잖아. 흑흑. 헉! 뭐야! 으아아악!"

"에휴. 내 젊었을 적에 그 놈을 놓치지 않았지만 지금 이렇게 살지는...으악!"

다음. 다음. 다음. 다음.....

-톡

악마가 테이블을 두드려 화면을 테이블로 되돌렸다.

"충분히 이해가 되셨나요? 참 쉽죠?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럼 후회할 일도 없죠. 다만 인간은 어중간한 생물이라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더군요.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야 하는데 말이죠. 우리 숙녀분께서는 어떨까 자못 궁금해지는 군요. 평생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시면 됩니다. 크크크."

"가계약이라고 했죠? 제가 아무것도 선택 안 한다면요?"

예나가 물었다.

"영혼이 뺏길 일은 없지요. 하지만 저희에게 한가지는 반드시 맡긴다고 하셨으니까 선택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여기서요. 크크크."

악마가 좌우로 두 팔을 펼쳐 보였다. 불의 벽이 여전히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

예나는 잠시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조건이었다. 인생 전체로 봐서도 큰 사건이었다. 선택하고 평생 한 번도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예시로 나온 화면 중에는 70은 되어보이는 할머니도 있었다.

예나는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을 스스로 물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여기서 무사히 살아 나가는 것. 나머지는 다 둘째 문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을 선택을 해야 했다.

예나는 다시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

1. 명명백백 明明白白 - 의심할 여지가 없이 분명하고 똑똑히 드러낸다.

애인이 바람 핀 증거를 찾아 드립니다.

2. 인과응보因果應報 -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

애인이 바람 핀 상대가 바람 나게 해드립니다.

3. 발본색원 拔本塞源- 폐해를 일으키는 근원을 제거한다.

애인이 바람 핀 상대를 제거해 드립니다.

4. 개과천선 改過遷善- 굳은 의지를 갖추고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 새사람이 된다.

애인이 다시 본인을 뜨겁게 사랑하게 해드립니다.

5. 풍비박산 風飛雹散 - 바람이 날리고 우박이 흩어진다.

애인을 제거해 드립니다.

6. 각자도생 各自圖生 - 제각기 살아 나갈 방도를 꾀한다.

애인과 헤어지게 해드립니다.

***

일단 2번 인과응보와 4번 개과천선은 제외다.

친구가 바람 난다고 해서 애인에게 충분한 벌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바람 핀 애인과 다시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논외다. 1초도 안 돼서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예나는 3번과 5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악마에게 맡겨 둘 중 한명이 죽는다면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실제로 악마가 보여준 화면에서 많은 사람이 3번과 5번을 선택하고도 후회해서 영혼을 뺏겼다.

"평생 후회하지 않을 선택..."

예나가 중얼거렸다.

"고르셨습니까?"

악마가 물었다.

"네. 6번. 각자도생으로 하죠. 깔끔하게 헤어지게 해주세요."

"네. 후회 없는 선택이 되셨길 바랍니다."

-딱!

악마가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냈다.

-띠링

그러자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그래.

애인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그 위로는 예나가 보내지도 않은 '헤어지자.'라는 메시지가 이미 보내져 있었다. 참 쉬운 결말이었다.

주위를 감싸던 불길이 사그라들고 유황 냄새도 씻은 듯 사려졌다. 어두운 하늘이 밝아지면서 주위로 카페의 정경과 소음이 들렸다. 악마들의 꼬리와 뿔도 사라졌다.

"이제 가면 되나요?"

"네. 부디 후회 없는 선택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고객님."

"걱정 마시죠."

예나는 둘을 흘겨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마가 깊게 허리를 숙여 정중히 배웅했다.

"이번엔 얼마나 걸릴까요?"

꼬마 악마가 말했다. 멀어져 가는 예나를 보며 군침을 삼키는 게 몹시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아니야. 망했어. 오늘은 첫 손님부터 영 운이 안 좋네."

"네? 아무 벌도 안 주고 후회 안 할 수 있을까요? 한 성질 해 보이던데요. 성인군자도 아니고."

꼬마 악마가 놀라 물었다.

"너 같은 경우야."

"아....."

꼬마 악마가 그제야 고개를 끄떡였다. 아쉬운지 입맛을 쩝쩝 다셨다.

"나중에 조수로 스카웃 제의를 해봐야겠어. 유능한 조수야 많으면 좋지. 크크."

"아쉽지만 후배가 생기는 것도 좋죠. 오랜만에 옛날 생각나네요."

꼬마 악마가 말했다. 200년 전 꼬마 악마도 악마의 고객이었다. 

그때 남의 손에 그 둘의 처리를 맡겼다면 꼬마 악마도 분명히 후회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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