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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항아리
게시물ID : panic_980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젤넘버원
추천 : 16
조회수 : 20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3/08 15: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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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초등학교 3한년때 있었던 이야기다.

 

여름방학을 맞아 나와 우리 가족은 시골로 귀농하신 이모네 집에 놀러 갔다.

 

이모네 집은 80년된 오래된 집으로 이모네 부부는 그 집의 외향은 그대로 둔체 내부를

 

리모델링해 살고 계셨다. 어릴때부터 나를 끔찍히도 아껴주신 이모를 볼 생각을 하니 나는 기분이 들떴다.

 

이모네 집에 도착했을때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건 돌담으로 둘러쌓인 넓은 마당이었다.

 

나는 신나서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모와 집 안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마당을 마구 헤집으며 뛰어 돌아다니다가 구석에 놓인 항아리들을 보았다.

 

그 항아리중 하나는 얼마나 큰지 내가 들어가도 충분할 정도로 컸다.

 

안에 뭐가 있을까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작은 항아리들을 밟고 올라갔다.

 

가장 큰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보려는 순간, 나는 중심을 잃고 마당에 자빠졌다.

 

팔꿈치가 까져 피가 났다. 나는 큰소리로 울었다.

 

집안에 있던 엄마와 이모가 내 울음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아이고 이 피나는 것 좀 봐. 언니, 집에 빨간약 있어요?' 어머니가 내 팔뚝을 붙잡고 외쳤다.

 

이모가 급히 빨간약을 들고와 까진 내 팔꿈치에 발라주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과 이모, 이모부는 마당 정자에 앉아 이모부가 사오신 수박을 먹고있었다.

 

'우리 지석이 팔꿈치 까진건 좀 어떠니?' 이모가 물으셨다.

 

', 이모 이젠 안 아파요."

 

'근데 어쩌다 그랬어?'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나는 항아리 안에 무엇이 있나보려다가 넘어졌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시더니 말씀하셨다.

 

'다시는 그 항아리 근처에 가면 안 돼. 알겠지?'

 

너무나도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이모의 말에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알겠다고 약속했다.

 

그 날 밤이었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깼다. 화장실을 가는 길은 손님방에서 나와 거실을 거쳐야만 했다.

 

손님방에 나와 거실로 나온 나는 거실의 불을 키려는 순간 거실의 창문 넘어로 낮에 보았던 항아리를 보았다.

 

항아리는 가로등 불빛아래 기다란 그림자를 나를 향해 만들고있었다. 마치 내게 오라는 듯이.

 

나는 이모와 약속한 일은 까맣게 잊은체 항아리를 향해 밖으로 나섰다. 너무나도 고요했다.

 

한발자국 내밀때마다 내가 내는 발자국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점차 몸이 수그러졌다.

 

항아리에 거의다 가가왔을때쯤 나는 거의 엎드리고고 있었다. 엎드린 상태에서 본 항아리는

 

아침에 보았던 그 모습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그리고 역광을 맞은 그 모습은 거의 신성해 보일정도 였다.

 

나는 경외감을 느끼며 그 항아리를 얼마나 보고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렸다.

 

내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자 이모가 조용히 하란듯 검지를 입에 갖다댔다. 그리고는 천천히 항아리를 가리켰다.

 

내가 다시 항아리로 시선을 돌렸다. 항아리의 뚜껑이 아주 살짝 열려있었다. 심장이 요동질쳤다.

 

이모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이모의 얼굴이 내 옆에 딱 달라붙었다.

 

'지석이가 와서 부끄러운가봐.' 이모가 말씀하셨다.

 

나는 이모가 하시는 말씀을 알아들을수 없었다.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항아리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 봤다.

 

순간 나는 보았다. 살짝 열린 뚜껑 사이로 빛나는 두 점을. 그것은 눈이었다.

 

내 숨이 가파라졌다. 이모가 내 입을 이모의 손으로 감쌌다.

 

'너무 소리내지마 놀라서 도망갈수도 있으니까.'

 

그때였다. 뚜껑사이로 뭔가 자그만한게 나오려하고 있었다. 이모는 얼마나 집중해서 보시는지 숨도 안 쉬시는거 같았다.

 

그리고 나는 확실이 보았다. 뚜껑사이로 나오는 건 아주 조그만 손이었다. 작고 창백한 손. 그 손이 잠시 꼬물락 거리더니

 

우리에게 뭔가를 바라는 듯 활짝 폈다. 나는 이모가 조심히 다가가 그 손에 뭔가를 쥐어주는 걸 봤다. 이모의 등에 가려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항아리쪽에서 뭔가를 게걸스럽게 해치워 먹는 소리를 들었다

이어 소리가 멈추자 이모가 내게 다가왔다.

 

'오늘 일은 절대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됀다. 특히 이모부한테는 절대. 알겠지?'

 

두손으로 내 양볼을 감싼 이모의 손에서 뭔가 생선같은 비리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모는 굉장히 슬퍼 보이셨다. 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들어가서 자자.'

 

나는 집으로 들어가는 이모를 따라가며 고개돌려 항아리를 보았다. 항아리는 여전히 열려있었으며 아까 보았던 어둠속 두 빛나는 점은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내 다시 잠들었다.

 

다음날 서울로 떠날 채비를 하며 나는 어제 겪었던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엄머니를 거들어 짐 챙기시는 이모를 계속 보았으나 못 본척 하시는건지 이모는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시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말씀하셨다.

 

'여보, 우리도 지석이 다 크면 귀농이나 할까?'

 

'어휴, 당신 성격에 외롭지 않겠어요?'

 

아버지가 너털너털 웃으셨다. 그때 항상 궁금했으나 물어볼 기회를 놓쳤던게 생각났다.

 

'엄마, 이모네는 왜 애가 없어?'

 

두분다 아무말이 없으셨다.

 

그때는 두분다 침묵하시던 이유를 몰랐지만 얼마전에 어머니를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모에게는 자식이 있었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시던 이모는 이모의 첫 아기를 끔찍하게도 아끼셨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죽었다. 비좁은 소파사이에 무리하게 들어갔다가 질식사 했다. 이모는 아기가 죽는동안 옆집손님과 수다를 떨고 계셨다고한다. 이모는 심한 자책감에 우울증에 시달리셨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일년에 한번씩 꼭 이모와 이모부를 찾아뵙는다. 그리고 나는 이모와 약속한 대로 한번도 그날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때 집에 도착하고서 그때 일은 새까맣게 까먹었었다고 말하는게 정확하다.

 

아니면 내면의 깊은곳에서 잊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기억은 아니니까.

 

그리고 올해 새해를 맞아 이모네를 방문했다. 이모는 오랜만에 찾아온 조카를 위해 요리를 하고 계셨다.

 

'지석아 마당 항아리에서 간장 한 컵만 떠다다오. 아래에서 세번째다.'

 

이모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컵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예전의 그 항아리는 그자리 그대로였다. 내가 커서 그런가? 항아리는 매년 작아진듯했고 이제는 내 배꼽 언저리를 밑돌았다.

 

아래에서 세번째... 나는 항아리 뚜껑을 열고 간장 한컵을 따랐다. 옆에서는 그 항아리가 뚜껑을 열어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속삭임을 무시하고 집 안으로 향했다. 이모께서는 나를 주시하고 계셨다. 매년 내가 마당으로 나가실때면 그러셨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열어볼 생각이 없다. 어머니한테서 이모가 아이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거 같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호기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내 표정의 변화를 읽었는지 나를 지켜보던 이모의 표정도 환해졌다. 그 날 정말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이모와 이모부도 매년 이렇게 찾아와서 고맙다고 하시고 나도 이모, 이모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라고 말했다.

 

이모께서 눈물을 훔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래, 고맙다. 너도 오래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거라.'

 

그렇다 나는 더 이상 항아리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관심이 없다.

 

그 날 내가 본 것이 무었이었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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