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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결> THE 숏다리코뿔소 박주호 [장편] 요녀
게시물ID : panic_981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라라J(가입:2016-01-31 방문:925)
추천 : 7
조회수 : 171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8/03/12 14: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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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도(지금의 경기, 충청일대) 봉춘골에선 백정 놈인 마 가(家)만큼 유명한 상놈이 없었다. 


마 가 놈이란 상놈은 봉춘골에서 불리는 이름이 많았는데,

널리 로는 마가, 마 씨, 마 도가, 마 백정 정도가 있었고,

가까이로는 망아지, 도박꾼, 술주정뱅이, 등신, 병신, 호구,상노무자식, 상노무 새끼가 있었다.

모르는 이라면, 마가가 백정이라 하대 받고 사는가 보구나… 싶을 수 있으나,정녕 그렇지는 않았다.


일대의 총각들은 마 가를 이르기에 어르신, 마 어른, 마 선생 이라 존칭하며 고개를 굽실거렸는데,

이것은 아주 요상스러운 일이었고, 대단스러운 일이었다.


그 중 가장 대단하다 여길만한 일은 지난달에 저질러졌다.


이것은 지난 달 봉춘골서 모르는 사람 없다는 양반인 박 대감댁의 장손, 

성곤 도련님께서 종것인 떡쇠를 끌고 봉춘골 어귀를 배회할 때의 일이다.


성곤 도련님라는 분께서는 몸이 장신이라 듬직하고, 어깨는 떡 벌어졌거니 박력이 있었으며,

타고난 양반댁 장손이라 눈에는 총명함이 그득한 분이셨고,

팔뚝은 무쇠도 꺾어버릴 듯 아주 그냥 딴딴하고 두툼한 것이 흉기와도 같았으며,

뒷모습은 산신령처럼 지식이 철철 넘쳐 현인도 그런 현인이 없어 뵈는 아주 남자 중 상남자였고 도령 중에서도 상도령같은 분이셨다.


그 성곤 도련님께서 봉춘골 개암나무 앞의 개울가 좁은 외길을 걸으시다가,

아니 글쎄 망아지 같은 마가 놈과 그 비좁은 길에서 얼씨구나 하고 떡하니 마주친 것이었다.

성곤 도련님은 마가 놈을 보더니, 아랫도리를 만지작거리다 들킨 놈처럼 주춤거리고

갈팡질팡 뒤가 마려운 미친 소 새끼 모냥 이리가지도 저리가지도 못해 쩔쩔맸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당황하던 성곤 도련님은 분주하게 하늘을 살피고,

아무도 몰래 스리슬쩍 주변을 살피고,

결국엔 떡쇠 놈의 뺨까지 갈기더니,

숨을 못 쉬는 것처럼 콧구멍을 발름거리고,발에 불똥을 떨군 것 마냥 동동 굴렀다고 한다.


그때 마가 놈은 길을 비켜나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는데,

마가 놈이 조아린 모가지 밑으로 성곤 도련님이 설설 개.새.끼처럼 기어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광경을 이상하다 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마가 놈과 떡쇠 놈은 주춤주춤 성곤 도련님을 경계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마가 놈도, 떡쇠 놈도 필시 성곤 도련님께서 미친 개에게 물려 실성을 하신 줄로만 생각이 되어서였다.

미친 개에게 물리면, 사람도 개.새.끼처럼 땅을 기고 멍멍 짖는다더니,

딱한 성곤 도련님도 그 꼴이 난 것인 줄만 아는 게,

차라리 멀쩡한 사람이 생각키엔 당연한 일이었다.


양반의 장손이 백정 놈 앞에 무릎을 꿇고 도포자락을 더럽힌다는 것은 가당키나 한 일이던가?


허나 성곤 도련님은 정녕 말짱했다.

그렇게 한참을 마가 놈 앞에 무릎을 꿇던 성곤 도련님은 마침내

번쩍 손을 하늘에 들었다가 땅에 철퍼덕 쏟아버리니,

아니나 다를까?

마가 놈에게 큰 절을 올려버렸다.

오라질 일이었다.


성곤 도련님의 절을 받은 마가 놈은 마가 놈이요, 절을 올린 성곤 도련님도 성곤 도련님이요,

제 주인 어른이 자기만도 못한 백정 놈에게 절을 올리는 것을 지켜본 떡쇠 놈도 떡쇠 놈이이요,

하늘이요, 땅이요, 강이요, 바다요, 어매요, 할매요, 이게 도대체 무슨 상스런 사단이랍디까,

하며 모두가 놀라 자빠졌다.


벼락이 칠 일이었다.


그건 천하의 이치와 양반 상놈의 이치를 무시하고 즈려밟는 이상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풍문은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산에서 산으로 퍼져나갔다.


이 사단을 믿는 천치는 별로 없었으나,

마가 놈과 성곤 도련님의 소문은 날로 번창했고,

마가 놈은 날로 유명세를 떨쳤다.


떡쇠 놈에게 이 사실 연유를 캐물으면 떡쇠 놈은 시름시름 앓는 모양으로 입을 때곤했다.


"아, 말도 말랑께……. 아, 꺼지랑께………."


마가가 어떤 백정 놈이던가.


마가는 남들 모르게 높은 학식을 쌓은 것도,

그렇다고 저기 먼 지방의 꺽정인지 깍정인지 하는 백정 놈마냥 기골이 장대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꾀가 많은 자도 아니었고,

지리산에 산다던 백발 산신령처럼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도,

쥐뿔 뭣도, 아니, 좆도 아니었다.


마가는 무식한 놈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무식했으며,

성깔은 더럽다 못해, 고약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다고 말해야

그나마 듣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개 같았으며,

평생을 씻는 법도 몰라 몸에선 고린내도 아주 상 고린내가 났고,

먹는 건 소, 돼지, 개처럼 소리내어 씹고,

한 입에 두 세 수저를 몽땅 밀어 넣고 먹어,

그 꼴을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딱 읊기에 천치 중의 천치처럼 먹었다, 일러야겠다.


심지어 마가는 한심하게도 백정인 주제에 고기 손질도 개판으로 했다.

쉽게 말해 마가 만큼 못난 백정은

세상천지를 뒤집어 탈탈 털어봐야 나올라야 나올 수가 없었다.


마가는 사실 서른이 되던 나이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반푼이 취급을 당하며 살았다. 


허나 그런 마가가 그 유명한 박 대감댁의 성곤 도령에게까지

큰 절을 받았다는 풍문이 도는 연유가 아주 뜬금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 연유라 하며는 다름 아닌 마가의 딸년 소진의 덕이었데, 

소진이란 년은 올 들어 혼기가 훌쩍 지난 스무 살의 여식으로, 

마가 놈과는 겉과 속을 달리 하는 아주 참한 년이었다.


소진이란 년은 그 몸태가 보통 년들과는 달라도 아주 다른 것이, 

그 옆구리 살부터 엉덩이를 타고 매끄르르 흐르는 허리와 골반이, 

물건을 빌려 표현하자면 절구통도 아주 옥으로 빚은 절구통만 같았다. 


봉춘골 저자거리로 소진이 년이 출몰하여 방뎅이를 살랑살랑 발걸음을 사뿐사뿐 내 딛을 때마다,

고을 청년, 노인 할 것 없이 넋을 놓고 그 옥절구를 구경하는 일대의 장관이 펼쳐지곤 하였다.

어디 그 뿐인가?

가련하게 구부러진 어깨와 남산만한 젖통은 심심하면 덩실덩실, 흔들흔들, 출렁출렁하니

그를 지켜보던 남근은 불끈불끈, 울컥울컥 아주 주체를 할 수가 없었더랬다.


그리하여 소진이란 년이 어디 우물물 곁에서 물이나 좀 기르려거든,

이 잡것들이 어디 정보통을 들쑤셨는지, 귀신처럼 소식을 듣고서는

동네 맹추들이란 맹추들이 모두 모여 보통은 일각, 많게는 이각이나 전부터 장사진을 치고, 우물가를 지켰다.


소진이란 년의 빼어남은 글로 표현키가 힘들었다.

붓으로 종이에 판을 박는다는 그림쟁이도 소진이란 년의 외모를 완벽히 구사하진 못하였다. 

사람들은 소진이란 년이 왜 그리도 절색인지 말로도 표현을 하지 못하였다.


글로도 설명치 못하고 붓으로도 그릴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 이유인 즉 따지고 보면 소진에게 미색이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 밝고 하얀 피부뿐이었다는 것이다.


아 까고 말하여, 방뎅이가 큰 것이야, 고을서는 최 가댁 종노릇을 하는 개똥이 년이 제일 가는 방뎅이였고,

젖가슴이 큰 것으로 치자면, 마을 건너 유곽의 기생 년 청월이만한 젖가슴이 없었다.

허나 남성들은 개똥이와 청월이 년에게는 눈길 한 번 주는 일이 없었다.

기묘한 일이었다. 

(청월이란 년에게는 가끔 눈독을 들이는 잡놈도 있기는 있었으나, 소진이란 년에 비하면 그건 개뿔도 아니었다.)


소진이 년을 그 아무리, 저 아무리 글 솜씨로 정성껏 주욱 풀어서 표현하려 해보아도, 

막상 생긴 것이 요사스럽고 괴랄맞게 생겨 먹은 년이라 묘사는커녕 엄두조차 불가하였다. 


소진이란 년의 눈은 큼지막해도 너무 괴상스레 큼지막한지라, 

무슨 산기슭서 사나흘 굶주렸던 고라니새끼 같았는데, 

그렁거리는 눈망울, 그것이 보통적인 놈년들의 것처럼 옆으로 찢어지지 않고 둥그렇고 매끄러운 것이 해괴하게 컸고, 

깜깜한 밤처럼 어두운 색이었으며, 바다처럼 수심이 깊어 보이는 게, 아무튼 이상했다. 


코는 오뚝해도 너무 기묘하고 절묘하리만치 오뚝해서 

저기 중국 놈들 땅의 황산인가 그 뭐시긴가 하는 높고 유명하다는 산처럼 과하게 높았고 곧았으며 

이상하게 낮볕을 받으면 반짝반짝 윤이 돌았다. 


입술은 더 가관이었다. 

백정 딸년이라 날고기를 먹고 다녔는지, 

마치 피 칠갑이라도 한 것처럼 사시사철 항시, 

본디 그리도 뻘건 빛을 내는 것처럼 다홍색인데, 

이 년이 고깃기름이 아주 입술에 배인 것 모냥치 입술기름이 좔좔좔좔, 줄줄줄줄 흘러, 요상해도, 아주 요상했다.


대갈통은 조막만한 년이, 어찌 이목구비가 저리도 괴상망측하게 생겼을꼬!

소진이 년이 어렸을 적부터 마가 놈은 자주 한탄을 했다.


허나 고을 남정네들은 그 말에 동하면서도, 그 시선은 그렇지 아니하였다. 

소진이란 년은 어디에서나 빼어나게 눈에 띄었는데, 

그 시초가 되어 고을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분명 이 판서 댁의 혼례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판서 대감에게는 고귀하신 아씨들이 자그마치 넷이나 되었는데, 

그 혼례날은 그 중 가장 곱다고 소문이 나있는 셋 째 따님 수정 아씨의 혼례였다. 

연지며 곤지며 화사하게 화장술로 얼굴을 꾸민 수정 아씨의 모습을 보기 위해 혼례에 모인 청년들은 한탄의 숨을 내쉬었다. 

그 날은 마침 소진이 년이 마가의 안사람 대신하여 고기를 퍼 나르기로 한 날이어서, 

아주 우연히도 어찌어찌하고 저찌저찌하여 미진아씨와 비슷한 장시에 있었다.

기이한 풍경이었다. 

고을에서 내로라하는 절색의 수정 아씨와 소진이 년.

그런데 웬일인가. 

옷은 때지고, 헤지고 비천한 백정 딸년이 수정 아씨 근처에 서서 버티는데, 

그 날 처음으로 소진이란 년의 몰골을 본 청년들은 수정 아씨라는 가슴 속 화살을 저 멀리 날려 보내고, 

소진이란 년의 뜨끈거리고 화끈거리는 불화살을 가슴에 맞아, 

모두가 하나 같이 순정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훨훨 타오르는 그 불은 저기 백두산에 불이 붙어 저기 제주도 한라봉까지 날개를 돋친 것 마냥 신나게 퍼져나가, 

아주 봉춘골 뭇 남성들의 마음을 홀라당 다 태워먹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해괴하게 큰 눈은 입으로 설명키엔 망측하나, 

기품이 절절 흘러넘쳐 소진이 년 바로 옆에 있던 수정 아씨에 견줘 보아도, 

압도적인 그 무언가를 느낄만큼 도도하고 영롱하게 보였고, 

꽃잎처럼 아련하고 봄바람처럼 따스해 보이는 입술은 글쎄 소문으로만 듣던 양귀비란 기생 년의 그 입술처럼 

색기가 좌르르르 흐르는 게 꼭 양귀비란 그 기생 년이 봉춘골에 환생한 것만 같이 황홀했다. 


거적 같은 옷차림은 오히려 뻔질거리며 슬쩍슬쩍 소진이 년의 은근한 속살을 보여줬고, 

그를 보는 남정네들은 환장을 하여, 혼례는 뒷전이 되고, 대감댁은 아수라장이 되어 난리였다. 


봉출골 남자들은 소진이란 년을 보는 눈알은 불알처럼 커져만 갔다.

제기를 만드는 장가란 놈은 실성한 것처럼 침까지 질질 흘렸다고도 하기도 하고 말기도 하고,

옆 마을서 잔치 밥 좀 얻어먹으러 온, 명가란 놈은 소진이란 년에게 보고 홀려 

가슴에 급질할 병이 솟아 그 자리서 졸도했다고 하기도 하고.

그랬다.

혼례날 남정네들은 입을 모아 마가에게 물었다.


"아, 자네. 딸년이 올해로 몇이던가?"


마가는 마른 하늘에 괜한 심술통을 부리며, 


"아! 그딴 건 뭐하러 물으쇼?" 하고 쏘아붙였다. 


마가 놈 성질 더러운 것이야, 

봉춘골 사람 저 옆 마을 사람 할 것 없이 개나 소나 다들 아는 것이었기에, 

그래서 대답해 줄 마음이 아주 없는 것 같았기에, 

청년들은 애가 타고 목이 타고 심장이 벌렁거려, 도저히 주체를 못했다. 


물음을 던진 청년의 뒤로 대감들이며 노인들까지 큰기침을 하며 천출의 한 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는 꼴이 아주 꼴 같았다. 

마가 놈은 시큰둥하게 뭐라 중얼거렸는데, 

그 말을 다른 상놈이 받아 큰소리로 되소리치니, 

청년들이고 대감들이고 노인들이고 눈을 크게 떴다.


"열 너이?!"


그 날 이후로 봉춘골서 최고로 유명한 여식은 소진이 년이 되었다. 

남정네들은 연유도 모른 채 소진이 년에게 깊이 빠졌다. 

그리고 유명한 사건이 하나 고을을 흔들었는데,

아 그것이!

아 글쎄 그것이!!!

(이 부분은 너무 야해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 자체 검열 삭제함을 알립니다.)

소진이 년이 계곡을 오르는 걸 본 청년들이 쥐떼처럼 그 뒤를 따랐는데,

(이 부분은 너무 오지게 야해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 자체 검열 삭제됨을 알립니다.)

소진이 년이 그 계곡서 멱을 감기 시작하는 데,

(이 부분은 너무 야해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 자체 검열 삭제함을 알립니다.)


풀 숲 사이로 소진이 년을 훔쳐보던 놈들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서 

다리가 바들바들 손은 부들부들, 대갈통은 흔들흔들, 아구통은 아달달달, 

귓구멍은 쫑긋쫑긋, 입술은 바짝바짝, 오줌보는 찰랑찰랑, 정신은 혼미혼미, 

낭심은 살랑살랑, 내심은 아청아청,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었다.

(이 부분은 너무 야해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 자체 검열 삭제함을 알립니다.)


아, 글쎄 그러고 나니 상놈 잡놈 할 것 없이 소진이 년에게 다들 혼을 빼앗긴 것 아니겠는가? 

그나마 정신 온전히 하려 발버둥을 치는 선비 놈들도, 

밤잠을 이루기 전엔 소진이 년의 뽀얀 얼굴을 떠올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탈이었다.

소진이란 년은 탈도탈도 아주 고얀 탈이었다. 

누구에게 탈이었냐면, 봉춘골 아낙네들에게 탈이었다. 

소진이란 년을 본 천치들이 봉춘골 아낙들을 문둥이 환자처럼 쳐다가도 안 보니, 그게 문제가 특별로 문제였다.



아낙들은 꾀를 냈다.

시간이 지나며 봉춘골서 산을 일곱 고개 넘어있는 장판마을이란 곳까지 소진이란 년의 뒷소문이 퍼졌는데, 

그것들은 대게 봉춘골 아낙들이 소진을 뒤에서 오물오물 씹고, 뜯고 

일부러 음해코자 널리 풍문용으로 지어낸 것들이었다.


소진을 시기한 아낙들, 

즉, 글 깨나 쓰고, 그림 좀 그린다는 년들과 방귀 깨나 뀐다는 년, 

성깔 한 번 더럽다는 년, 동네방네 입씨름만 하고 다닌다는 년, 오지랖 넓은 년,

손맛이 태양초처럼 맛있게 매운 년 등이 모두 한가슴 한뜻으로 모였다.


이렇게 모인 아낙들은 방을 만들어 밤늦게 천하대장군 옆구리에 못을 치는가 하면, 

나아가선 주막의 걸상에 못을 치기도 하고, 

포도청 지붕에 걸어 놓기도 하고,

우물물에 도배질을 하기도 하고,

넘의 집 장독을 깨부수기도 하고,

엄한 개.새.끼의 옆구리를 차기도 하고,

하여간 극성맞았다.


그 방에 쓰인 글귀와 그림의 내용이란 지저분하고 저질스럽고 치졸하기 짝이 없더랬다.

그를 열거해보자 하면,


소진이란 년이 봉춘골에 있는데, 

거두절미하고 일단 그 년은 아주 독사 같은 년이며, 

남의 서방 도둑질에 난봉질하는, 이골이 난 색골에, 

총각이란 총각들은 모두 홀려 양기를 쪽! 쪽! 빨아먹는 요부이자, 

할 줄 아는 일은 쥐뿔도 없는 맹추도 아주 상 맹추이고, 

힘도 쓸 줄 몰라, 바느질도 몰라, 뭣도 몰라 허구한 날 집구석에만 박혀있는 식충이 같은 년이고, 

그러니까 그 년 살갗이 기생년 마냥 희멀건한 것은

모두 밖에서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천성 탓임이 분명하고,

밥은 처먹기를 지 애비를 닮아 푸줏간서 키운다는 똥돼지보다 더 처먹는데, 

얼마나 처먹어 대면, 그 년의 옆에선 항시 고기가 썩는 지독한 냄새가 진동하고, 

뱃살이 기름처럼 흐르며 얼굴을 기름으로 온통 곰보가 나있는데, 

말은 한 마디로 할 줄 모르는 벙어리라 입을 항시 다물고 있는 통에 

그리하여 이가 온통 보름달마냥 누런 것이 

그 년이 웃을 때면 그렇게나 세상에나 만상에나 추잡해도 그렇게 추잡할 수가 없고, 

가끔 유별한 성깔이 돋칠 때면 살아있는 돼지나 쥐새끼들을 생으로 때려잡아설남니 

숨이 남아 색색거리는 것들을 생니로 뜯어 먹었고, 

이건 정년 비밀인데, 아무도 본 이는 없으나, 

남의 집 아기를 훔쳐다 솥에 팔팔 끓여 남몰래 먹고 있다는 소문도 있으며, 

그 년이 타고난 도박꾼인데, 걸핏하면 돈을 잃어서 잃은 돈 대신에 남정네들에게 허벅지를 벌렸다느니……….


소문은 끝이 날 생각이 없는 듯하였다. 

도저히 소문은 그칠 줄을 몰랐다.

소진이란 년은 풍문을 찍어내는 물레방아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위와 같이 소문은 소진이란 년 보다는 그 애비인 마가 놈을 빗대어 쓴 것이 많았고, 하나 같이 날조된 소문이었다. 

정말 심한 소문으로는 심지어 소진이란 년이 아주 봉춘골에는 없다는 소문도 돌았고, 

작년에 소뿔을 가지고 가랑이로 장난치다 뿔에 치여 죽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또 소진이란 년은 중국 고서 속에만 있는 년이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년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아낙들이 돌리고 뿌린 방에는 추신으로 그런 년은 

세상천지에 없으니 덜떨어진 남정네들아 정신 차리고 나를 좀 봐라! 하는 글도 있었다.


끝이 없는 소문은 소진이 년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으며 발목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정작 소진이란 년은 지 애비인 마가 놈 수발을 드는 것으로 하루가 나고 하루가 지는 불쌍한 년이었다. 


소진이 년의 애미는 일찍부터 몸이 성치 못한 터라

마가 놈이 더럽게 입은 옷을 빨고 널고 말리고 하는 것은 물론 소진이란 년의 몫이었으며, 

끼니야 당연히 딸년이 짓는 것이 옳았고, 

고기 손질을 못하는 애비를 대신하여 닭 새끼며 소, 개, 돼지 새끼를 손질하는 것도 소진의 몫,

애비의 노름빚을 탕감하려 동네를 뛰어다니며 굽실거리는 것도 소진의 몫, 

애비의 술값 외상의 독촉을 받으며 시달리는 것도 소진의 몫.


그러니까, 소진이란 년은 애비의 뒤도 닦아줘야 하고, 

자기 앞가림도 해야 하며, 입에 풀칠도 하고, 똥도 싸고, 

허리도 펴고, 하늘도 좀 올려다보아야하니, 소진이란 년은 바빠도 상 바쁜 년이었다.


웬 종일 밖을 쏘다니는 것이야 소진이란 년에겐 보통이었고, 

밤늦게 서야 돌아오는 일도 허다했는데, 

이는 사실, 놀랍게도 못나기로 유명한 마가 놈의 책략이었다.


마가 놈은 천치였고 무식했으나, 

짐승만치 육감만은 날이 바짝 살아있는 놈인지라, 

소진이 년이 고을서 남정네들을 깨나 꿰고 다닌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빚쟁이가 마가 놈을 찾아와 빌려간 돈을 지금 당장 갚으시오! 호통을 치고, 

버티는 날이면 눈치 좋은 마가 놈은 그렇게 대답하곤 했다.


"내가 사흘 안에 딸년 소.진.이.를 통해 갚도록 할텐게! 

아! 우.리.소.진.이.가.직.접.댁.으.로. 찾아 갈 것인게! 그리 아쇼."


그렇게 떵떵 소리를 치면 마가를 아둔하다 뒤에서 호박씨를 까던 놈들도, 

마가의 꾀에 속아에 침을 꼴까닥 삼키며 고분고분 돌아 가버리곤 했다. 

마가는 막상 사흘이 지나면, 소진이를 보내기는 보내는데, 

갚을 돈은커녕 소진이 년의 끼니도 안 챙겨 보냈고, 

당부만 하나 달랑 던져주며, 또 어디론가 쏘다니기 일쑤였다.

그 당부라 함은


“당장은 갚을 수가 없으니, 보름이 지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일러라!” 였다.


몰매를 맞을까, 걱정스럽고, 죄송스러워, 어쩔 줄 몰라,

올가미에 걸린 산토끼마냥, 꽃사슴마냥, 

소진이 년이 절절매고 질질 짜고 빌고 또 비니, 

그런 소진이 년을 맞이한 빚쟁이들은 소진이 년이 그렁그렁 눈물 짖는 모습에 홀려 

그저 멍이나 때리며 소진이 년을 바라만 보았고, 

구슬피 우는 듯한 목소리에 넋을 잃어 차라리 혼절해 버리는 놈들도 허다했다. 

점차 지나며 빚쟁이들은 소진이 년이 유예를 구하러 올 때마다 

소진이 년을 집안으로 들이고, 방석을 깔아주고, 밥상을 내어주고, 

옷감을 내어주고, 가락지네, 노리개네, 간이네, 쓸개네 내줄 것은 다 줘가면서,


“그럼, 보름 뒤에 꼭 다시 오너라? 응? 꼭이니라? 응? 꼭? 응? 꼭? 응? 꼭꼭꼭?”


아주 신신당부를 하니, 소진이란 년은 어리둥절 하기도 짝이 없었다.


소진이란 년은 별달리 한 것이 없었다. 

눈만 껌뻑이고, 손을 잡으면 내어주고,물으면 끄덕이고, 또 물으면 대답을 한 것 밖에는.


빚쟁이들은 차라리 영영 마가놈이 빚을 갚지 않고, 

보름마다 소진이 년을 보내 줬으면, 생각했다. 


멍청한 마가 놈은 어찌된 영문인지 그런 쪽으론 도가 튼 상놈이었다. 

그러니 그 상곤 도령님께서 마가 놈에게 큰절을 올리고, 

그 다음부터도 마가 놈만 만나면 껌뻑 죽는 척 인사를 올린다는 풍문도, 

마가 놈은 험험! 큰기침만 했다는 풍문도, 아주 거짓이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즈음하니, 소진이란 년을 시기하는 아낙들은 분기탱천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빚쟁이들의 조강지처들에게는 소진이란 년이 죽일 년이 되고 말았다.



요녀2


하늘이라고 탱천한 분노를 막을 수가 있으랴.

아낙들은 멈추지 않고, 소진이란 년을 구박, 멸시, 조롱했다.

흘러흘러 소진이 년은 다시 아청법의 대죄를 피한 지금으로 돌아와 스무 살.


성곤 도련님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어느 깊은 밤.

달이 불길하게 봉춘골을 비추고 있었다.

잠잠하던 봉춘골의 달밤을 어떤 아낙네 비명이 가로질렀다.


"그 요망한 년을 찢어 발겨야뒤야!"


그 요망한 년이라 함은 당연 소진이었다.

어느 아낙의 비명이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봉춘골의 아낙들은 문살을 뚫고 귀에 꽂이는 그 애증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비명은 곡소리처럼 한스러웠다.

또 어찌 듣자면, 살쾡이의 울음처럼 섬뜩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표현보다 들어맞는 것은 없을 것이다.


'심금을 울리다.'


소진이 년을 찢어 발겨야 한다는 그 외침은 아낙들의 심금을 울렸다.

어떤 아낙은 그 외침을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

어떤 아낙은 별안간 화병이 도져, 얼굴이 핏덩이처럼 빨개졌다.

아낙들은 그 달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낙들의 가슴 속엔 메아리가 울렸다.


'소진이 년을 찢어 발겨야뒤야!'


봉춘골이 어디 한양 땅 만치 넓다던가?

소진이 년도 잠자리에 누워 그 목소리를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소진이 년은 다리를 끌어안고 울었다.


소진이 년은 맹추가 아니었다.

설사 맹추라 할지언정,

몇 해씩이나 동네 아낙들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을 눈치 못 챌리는 없었다.


소진은 억울했다.

당연지사였다.

이상한 소문이 자신의 뒤를 항시 쫓아 다녔다.

입에 담지도 못할 망측한 소문들은 방방곳곳 그림과 글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까막눈인 소진이 년도, 우물가에 붙은 그림을 자신과 비교하듯 보며 

뭐라 웅얼거리는 남들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빤히 알고 있었다.

또한 그 망측한 그림 속 처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판 다르게 그려 놓았지만)


언젠가부터는 빚을 받으러 다니는 길에는 꼭 빚쟁이들의 조강지처가 지키고 서서 껌뻑하면 소진이 년의 뺨을 후려쳤다.

그도 그럴 것이 소진이란 년이 자신의 금은품을 날름 받아 챙기고,

빚은 안 갚으니, 사실 소진이란 년에게도 그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짓은 아니었다.

허나 뺨맞은 마음이 어디 그리 고분고분 하랴.

뺨을 치는 마음을 아주 헤아리기엔 소진이란 년의 마음이 너무 여렸고 쓰렸다.

해서 소진이란 년이 눈물을 터트려 버리면, 글쎄, 조강지처와 빚쟁이간의 싸움이 벌어지니,

소진이란 년은 그 탓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며, 아주 살기가 싫어지곤 하였다.

소진이란 년의 가슴이 문들어지는 까닭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소진이 받아 온 가락지며 노리개는 모두 아비인 마가 놈이 노름질로 탕진을 해버렸다.

쉽게 말해 빚쟁이들 손에 도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소진의 눈동자엔 날이 갈수록 근심이 차올랐다.

마가 놈은 소진이 년을 보살 필 줄은 모르고 이용하기에만 바빴다.


소진은 아비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빚은 곱절로 높아가고, 원성은 들끓었다.

아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산을 날리기는 짓이 즐거운 듯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었다.

하지만 딸년으로서, 어찌 천륜을 저버리고, 하늘아래 발을 붙일 수가 있으리요.


소진을 달래 주는 것은 그저 밤마다 스스로 베갯잇을 적시는 일 뿐이었다.

소진은 영문도 모르며, 구슬피 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어찌 보면 소진은 맹추인지도 몰랐다.


끙끙, 가슴앓이를 하는 소진은 날로 가엽고 처량해져만 갔다.

얄궂게도 점점 지쳐만 가는 소진의 모습에 봉춘골 남정네들의 가슴을 더 후끈 불살랐다.

어찌하랴 비련에 잠겨 있는 여인만큼 매혹적인 것이 또 어디 있다더냐.

그 가녀린 여인네들을 보고 넘길 수가 없었더랬다.

남정네들은 본성적으로 야성적이라 하다 아니할 수 없으니.

이 또한 탈이었다.


하지만 요상했다.

뭔가 요상했다.

역시나 요상했다.

무엇이 요상했냐면, 소진이란 년에게 남정네들이 반하는 것 자체가 요상했다.


자고로 여인 중의 여인이라 하면,

살집이 두둑하게 붙어 아이 일고여덟은 낳고도 뒤탈 없을 만큼 듬직했어야 했는데,

소진이란 년이 어디 살집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있는 년이던가?


얼굴은 달덩이처럼 둥그~러니, 코는 조막만하고, 입술은 깨알만하고,눈은 바늘같은 게 미인이거늘, 

소진이란 년은 정 반대로만 생겨먹지 않던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남들도 모르니, 소진이란 년 본인은 오죽했을꼬.

소진은 강물에 비추는 자신의 몰골을 보며 저주를 퍼부었다.


소진이 년이 열여섯이 되던 해 부터는 마가 놈에게 재물을 던지며,

제발 딸 좀 주십사 하는 놈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 중에는 마가가 빚을 지고 있는 빚쟁이도 있었고,

나이 오십의 대감, 즉 쭈그렁 할아범도 있었고,

산을 예순 고개나 넘어서 온 타지인도 있었다.

바다를 건너온 코쟁이,

행성을 건너온...


마가 놈은 소진이 년 덕에 도가질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형편이 충분해졌다.

허나, 그 것은 밑이 빠진 독에 물을 들이 부어대는 격으로, 

마가 놈은 열 냥을 지고 나가면 백 냥 빚을 지고 오는 놈이었고, 

백 냥을 지고 나가면 천 냥 빚을 지고 오는 놈이었다.


그런 천둥벌거숭이 놈이라도, 그 딸년에 목이 멘 양반 댁 손들까지 마가를 없인 여기지 못하니, 

마가 놈의 사기는 하늘을 꿰뚫었다.


마가 놈은 빚을 갚을 생각조차 하지 아니하였다.

심지어는 빚쟁이들도 애초에 받을 생각을 아니하였다.

빚쟁이들은 마가에게 돈을 뭉텅이로 건네며 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소진이를 언제 보낼 생각인가?"


마가놈은 이제 도가 튼지라 그리 대답하곤 하였다.


"아! 때가 되면 가고, 아니면 말지!"


빚쟁이들은 소진이란 년이 방문을 하는 것만 기다리며 가슴을 새카맣게 태웠다.


마가 놈은 소진이 년만 있으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런 소진이 년이 자신의 목숨줄을 간당간당하게 당기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말이다.


마가 놈이 화를 입을 것은 누가 봐도 뻔했다.

아주 당연지사였다.

다만 그저 때가 아직임을 누구라도 알고 있었다.

만일 소진이 년이 오라질 병에라도 걸려 급사를 했다면,

소진이 년의 제삿날은 마가 놈의 제삿날과 겹칠 것이란 걸,

봉춘골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물론 소진이 년이 살아있다고 모두 해결 될 일은 아니었다.

마가 놈도 스스로 대충은 알고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야반도주를 할 짐보따리를 미리 싸두는 짓은 하지 아니 하였을 것이다.


허나 마가 놈은 마가 놈이라 천치는 천치여서

그 때가 성곤 도련님의 소문이 그의 아버님이신 박대감의 귀에 들어가는 날일 것이라곤 새까맣게 몰랐다.

메느리도 몰랐다.


박 대감에게는 장손인 성곤이 백정 상것에게 큰 절을 올렸다는 소문이 충격이었다.

그것은 진실과 거짓의 여부를 떠나서의 일이었다.

박대감이 쌓아온 지체와 기강이 모두 무너지는 일이었다.


박대감은 소식을 들을 늦은 밤, 아들 성곤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자리에는 성곤의 어머니인 민씨 마님도 함께였다.


하늘엔 불길한 달그림자가 뒤덮여 있었다.

박대감은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야, 까고 진짜냐? 너 똑바로 말해? 너 이빨까다 걸리면, 진짜 뒈지게 맞어? 알았어, 몰랐어?"


대장부같은 성곤도, 박대감은 무서워했다.

박 대감의 성질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성곤은 대장부 같은 도령이었으나,박대감은 진짜 대장부였다.

전장서 검을 휘둘러 이만 군사를 혼자서 배었다고 하기도 하고,

곰을 맨손으로 때려잡으며, 뱀을 생으로 씹어 먹고,

심심하면 바위를 깨고, 한가하면 강을 두 쪽으로 가르며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 '소문'이 있는 대장부 중 대장부였다.


"사실이더냐?"


진중한 목소리로 박대감이 한 번을 더 묻자,

성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었다.

오금이 저리고 턱이 잠겨 말이 나오질 아니하였다.

그를 지켜보던 민씨 마님은 눈에 실핏줄이 터져버렸다.

이마에는 지렁이같은 핏줄이 살아 꿈틀거렸다.

박대감도 마찬가지였다.

민씨 마님은 울화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쳤다.


"그 요망한 년을 찢어 발겨야뒤야! 안 돼! 안 돼! 그 요망한 년을 찢어 발겨야 돼!!!! 안 돼!!!!!!!"


반은 실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씨 마님의 목청 높은 소리는 봉춘골 아낙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박대감을 이를 악물어 화를 삭였다만,눈에선 어스름한 달빛도 기죽어 줄행랑을 놓을 광체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 광체가 그리도 뻘건 빛을 내는 것이,

그 자리에 귀신이 있었다면, 성곤 도련님과 함께 오금을 지렸을 것이다.

허나, 박 대감 보다 더하면 더한 것이 민씨 마님이란 건 봉춘골 사람들이 모두 아는 일이었다.


박 대감 댁에선 횃불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종 것들을 모두 깨워 횃대를 들게 하고, 먼저 그 자리에 있던 떡쇠 놈에게 경을 쳤다.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린 죄였다.


모질게 얻어맞아 정신을 잃은 떡쇠 놈은 그대로 횃불의 먹이가 되었다.

광기는 그 때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누군가 나중 들어 말을 남겼다.

박 대감댁의 종 것 중 한 년의 말이었다.

종 것이란 년이 남긴 말 중 그런 것도 하나가 있더랬다.


"떡쇠 놈한테 횃대 불을 옮긴 것이 바로 큰 마님이라니까?

아주 눈에서 뻘건 핏물이 콸콸 쏟아지더라니까?

아니 그럼 참말이지, 그럼! 참말이지.

난중에 떡쇠 놈이 몸에 불이 붙어서 졸도에서 깨어나니까는

횃대로 내려쳐서 아주 모강지며 대갈통을 분질러 버리더라니까?

아! 참말이라니까? 아! 쯧, 그리고 참, 이보쇼! 비밀이요?"





요녀3


봉춘골로 뜨겁게 불덩이가 떠올랐다.

횃불이 수십 모이니 아닌 달밤에 불덩이도 그런 불덩이일 수가 없었다.


박 대감의 수십 종 것들과 종 것들이 퍼질러 놓은 아새끼들,

그를 필두로 민씨 마님이 박 대감 일가라 불릴만한 대 인파를 이끌어 횃대를 들었다.

그 광경은 저 멀리 야산의 도적 떼들이 보기엔 봉춘골서 해가 떴다고, 오해를 할 광경이었다.


그 요망한 년을 찢어 발겨야 한다는 곡소리에 가슴을 설레어 밤잠을 못 이루던 아낙들은

문살을 태워 삼킬 듯 뜨거운 그 불덩이가 지나는 것을 보았고, 느꼈다.

어른어른거리는 것도 아닌 것이 그 큰 불덩이가 집 앞을 지나면,

아낙들이야 워낙에 육감이란 것이 좋은지라, 올타꾸나! 무슨 사단이 났구나! 하며 마음이 들떴다.

못난 년들이었다.


개중에는 문을 나서 마주 다가오는 민씨 마님의 성난 얼굴을 본 아낙도 있었으며,

그 분노에 동참하듯 횃대를 들어 동참하는 아낙도 나왔다.

그 아낙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한 것이,그 진지함이 민씨 마님의 진중함에 뺨을 칠 아낙도 즐비했더랬다.

급하게 횃대를 챙기는 조강지처를 보며, 문득 소진에게 변이 난 것을 직감한 감 좋은 사내 녀석들도 있더랬다.

그 놈들은 버선발로 아낙들을 앞질러 냅다 달음질을 쳤다.

물론 마가 놈의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한 편으론 마가 놈의 집이라기 보단 소진이란 년의 품으로 달음질쳤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인가, 싶기도 하였다.


불덩이는 삽시간에 불어나며,

봉춘골에는 화마가 둥지를 튼 모양만치 때 아닌 대낮이 찾아들었다.

봉춘골 아낙들과 천치같은 사내들이 합세해 만들어 낸 걸작이라 하겠다.

그 선두의 민씨 마님은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대이동을 하는 인파의 가장 뒷줄에선 힘에 붙여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년놈도 있었다.

복장이 터질 지경이더랬다.


민씨 마님은 그 빠른 걸음 속에서도 결연하였는데,

그 바로 옆에 있던 종놈은 민씨 마님이 중얼대는 그 저주를 하염없이 들어야했다.

종놈은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으나, 횃대가 방해를 했다.

민씨 마님은 그리 말씀을 하셨다.


"그 요망한 년의 눈알을 날 것으로 씹을 것이야."


민씨의 인파와 섞이려 민씨 앞에서 이를 마중하던 아낙은 눈을 크게 떴다.

그 큰 불덩이를 마치 민씨가 짊어지고 있는 것만 같이 보여서 그랬더랬다.

민씨를 뒤따르는 아낙들은 모두 한가슴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 오라질 년을 찢어 발겨! 찢어 발겨, 이 썅!'


그 때 성곤은 민씨와는 다를 길로 소진이 년을 향해 달음쳤다.

성곤의 입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고,

손은 주체를 못하며 칠랑팔랑 하는 것이 정신줄을 놓아도, 한참을 논 것 마냥,

그러니까 실성한 팔푼이마냥 달렸는데,그 모양이 아주 필사적이더랬다.


성곤은 횃대 하나 들지 않았으나,

수풀과 농두렁, 밭두렁을 헤치며 거침없이 다음 발을 앞으로 퉁궜다.

참으로 표현키 아니꼬운 말이라 아니할 수가 없으나,

어쩌랴, 성곤의 가슴에는 애간장을 태우며 훨훨 피어오르는 저만의 횃대를 집혔으니,

그 횃대 앞에 발길이 어두우랴, 뚜렁길이 거슬리랴.

성곤은 헤엄치듯, 날아가듯, 소진이 년의 얼굴만을 떠올리며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다.

울렁울렁 눈물에 넘쳐 범벅이 된 성곤은 그리 달음치던 중 저기 멀리 소진이 년을 향해 외치곤 하였더랬다.


"우어어엉! 소지놔아! 소지! 컥! 컥컥. 나아아아아!"



등신 같았다.


그 때.

소진이 년은 숨을 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베갯잇은 첨벙첨벙 붕어새끼도 헤엄칠 만큼 수북하게 눈물이 고여 있더랬다.

다리를 한껏 끌어안은 소진이 년은 반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꺼이꺼이 우는 소리에 어미가 깨면 자초지종을 설명키 곤란해서였다.


허나 이미, 어미는 그 구슬픈 딸년의 울음을 모두 듣고 있었다.

어미는 몸이 성치 못하여, 자리를 지키는 것이 못내 미안할 따름이었다.

바깥양반이란 그 마가 새끼만 똑바로 된 개.새.끼였어도,

딸년이 저리도 밤마다 흐느끼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치를 떨렸다.

어미 또한 소진이 몰래 등을 돌려 눈물을 훔치지 아니할 수가 없으니,

이를 쌍쌍으로 논다, 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아뢰오.

또한 어미는 딸년의 곱곱절로 분통이 터진다고 아뢰오.


딸년이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던가.

여인이 사내를 사로잡는 것이 죄라면 죄던가.

그러하다면, 어디 시집이라도 보내 아주 잡것들의 연정을 끊어버리면 될 것을

마가 이 개쌍놈은 지 딸년을 돈 쏟아내는 도깨비 방망우인 줄로 아니.

그 사정도 모르고 아낙들은 딸년을 음해하기에만 바쁘니.

어미는 당장이라도 봉춘골 아낙들의 귀를 물어뜯고만 싶었다.

아낙들의 귀를 다 씹어 삼키고 나면 마가란 놈과 잡것들의 아랫도리도 씹어 삼기고 싶었다.

몸만 성했다면, 그 년놈들을 모조라 잡아다 탕을 끓어 뼈까지 씹어 먹었을 것이었다.

허나 그러면 그럴수록 어미는 자신의 나약함만을 골 깊이 세길 뿐이었으니.

딱해서 어찌할꼬.


소진이 년의 방에 문이 열렸다.

억척스럽게 열린 문 앞에는 씩씩쌕쌕 숨을 몰아쉬는 이가 있었으니,이는 이 사단을 만든 장본인 마가였다.


마가 놈은 늦도록 노름질로 주머니를 탈탈 비우고,

다시 빚을 얻어 유곽의 기생 년 허벅지를 만지작거리다 오던 참이었다.

술김에 흥얼거리며, 발은 갈지자로 비틀비틀 휘청휘청 앞으로 나간다기 보담

옆으로 쓸려 다닌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은 걸음을 하고 있었다.

마가는 자신이 거나하게 취했다고 생각했다.

왠고허니, 야밤에 등 뒤가 후끈후끈 타오를 듯 불덩이가 집혀진 것만 같고,

앞길의 달빛은 헛것인 듯, 햇볕처럼 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가는 그 훤한 불빛의 밤거리는 보며 그리 말하였다.


"허따, 씨부럴, 내가 취하긴 취해난갑네."


마가는 자신이 취해서 밤거리가 환한 것이 아니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등 뒤에서 어떤 아낙이 목청이 찢어지도록 자신을 불렀기 때문이다.


"마가 이놈!"


마가는 아낙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곤 숨이 막혔다.

거리를 꽉 메운 인파가 하나 같이 손에는 횃불을 지고서 성에 찬 듯 눈을 부라리는데,

아니 글쎄 그 선두에 있는 박 대감의 큰 마님이신 민씨가 눈에서 성홍을 핏물을 콸콸 쏟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대의 가짓수가 마가를 압도시켰다.

마가는 천치이나, 자신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마가는 쌩하고 뒤를 돌아 줄행랑을 쳤다.

민씨는 안달하지 않고, 옆에 짚이는 아무 놈에게나 말했다.


"저 천하의 쌍놈, 다리를 분질러 내 앞에 끌고 오너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그림자가 밤을 갈랐다.

종 것들은 마가를 꼭 잡아야했다.

좀 전에 불에 휩싸여 죽은 떡쇠 놈이 머릿속에서 잊히질 않고 있었다.

만일 마가를 못 잡는다면, 민씨 마님은 자신들에게도 불을 놓을 게 자명한 사람만 같았다.

그 피를 쏟는 눈은 또 어떠한가.

마치 마귀와도 같은 모습이 아니던가.

종것들은 필사적이었다.

그것이 꼭 사내새끼만은 아니더랬다.

아낙들도 뒤를 따라 미친 듯이 내달렸다.


모두가 겁에 질려 있었다.

모두가 미쳐 있었다.

소진이 년을 찢어 죽일 집회의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민씨의 들끓는 화가 모두를 집어 삼켰다하여도 무리가 아닌 표현이리라.


마가는 집에 도착해, 얼른 미리 싸놓은 짐보따리를 챙겼다.

그동안 모아둔 재물이었다.

허나 역시도 마가는 마가라 천치는 천치여서,야반도주를 위한 짐 치고는 보따리가 너무 무거웠다.

소진이 년과 안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낑낑거리며 짐을 나르는데,

마당 앞으로 지옥불이 옮겨 붙는 듯, 점차 불똥이 하나둘, 솟기 시작했다.

불똥 속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야! 마가 이 새끼야. 도망치지를 말어! 우리가 다 죽게 생겼다니까는!"


마가는 그리 답했다.


"씨나락 까먹지 말고, 길 돌아서서 너그 마님 치마폭에 불이라도 놓으라니까는!

아, 저 년이 나를 죽일 게 뻔하다니까는?! 나 잡지 말어라. 아! 잡지말어!"


때마침 성곤이 당도했다.

성곤은 문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마가를 냅다 밀어버리고,소진이를 찾았다.


소진은 영문을 몰랐다.

눈물이 마를 새도 없이 남정네들이 쳐들어오기 시작했으니,당황을 해도 한참을 당황한 참이었다.

그것은 소진의 어미도 마찬가지였더랬다.

소진의 어미가 외쳤다.


"무슨 일이로 이 사단이요! 뭐요, 또!"


소진도 맹추는 아닌지라, 일이 보통일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비란 놈은 짐을 짊어진 채 숨을 헐떡였고,

고을 유명하신 성곤 도령이 방 안을 짚신바람으로 들이닥쳤으며,

죽네 사네 소리를 외치던 바깥의 횃불을 든 이들은 하나둘씩 모여 물밀 듯 점점 수를 불려갔다.

그리고 이내 점차 커지던 불은 하나의 거대한 불덩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초가산간에 불이 붙어 떠다니는 것만 같이, 어마어마하게 큰 불이었다.


소진은 그런 광경을 처음 보았다.

사실 봉춘골의 누구라도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 할 것이다.


성곤은 소진 앞까지 당도해 놓고도 몸이 얼어 가만 서있었다.

마가는 박 대감 종것들에게 망아지 새끼 마냥 질질 끌려갔고,

끌려가는 마가의 뒤로 민씨가 횃대를 든 채 성큼성큼 걸음을 디뎠다.

민씨는 문 앞에 성곤을 쳐다보지도 않고 손으로 치워버렸다.

민씨는 횃대를 방 안으로 밀어 넣고, 소진이란 년의 얼굴을 찾더니 곧 그리 말하였다.


"기어 나와라. 개 같은 년아."


그 엄중하고 섬뜩한 말을 들은 소진이 년의 어미는 소진의 목숨줄이 오락가락 하는 것을 느끼고 등골이 쭈뼛 섰다.


"마님! 마님! 어찌 된 영문이옵니까! 마님! 마님! 영문이라도 좀 알려주십시오!"


물론 민씨는 하찮은 도가의 처 따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소진은 자신이 목석이 된 줄로만 생각되었다.

민씨 마님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자신을 무언가에 홀리게 만든 것처럼 그렇게 몸은 굳어갔다.

밖에서 마가가 소리를 쳤다.


"대감! 대감 목숨만은 살려줍쇼. 예? 소진이를! 우리 소진이를 봐서라도!"


마가가 천하의 천치란 것이 거기서 나타났다.

그 자리는 소진이를 앞세울 자리가 아니었다.

민씨는 눈을 부라리며 마가에게로 다가섰다.


"이 놈의 양 다리를 바숴라. 내 이놈 앞에서 지 딸년 죽는 꼴을 꼭 뵈 줘야만 속이 풀리겠다."


민씨의 눈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두 눈이 온통 빨간 민씨의 모습은

그녀의 바깥양반인 박 대감마저도 오금이 지릴 판이었더랬다.


소진이 년이 맨발로 뛰쳐나왔다.

하얀 속곳 바람이었다.

속살이 뜨거운 불덩이에 비춰 훤히 드러났다.

물론 남정네들의 빛나는 눈빛이 그 모습을 더욱 환하게 비췄으리라.


소진이 년은 눈치를 볼 줄 아는 년이었다.

당장 누구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옳은 줄 알고 소진이 년은 민씨에게 급히 조아렸다.

무릎이 땅을 빻는 소리가 기세 좋았다.

소진의 두 눈에선 아직 마르지 않았던 눈물이 다시 봇물 터지 듯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아비를 살려주시어요. 제 목을 거두시고 아비는 살려주시어요, 하는 그 모습과

횃불의 빛을 받은 그렁그렁한 눈물, 양 손을 모아 썩썩 비는 그 고운 손

그리고 속이 훤히 비추는 속곳의 차림이 그 자리 남정네들 마음에 동정을 불렀다.


그 때 붙들려 있는 마가 놈의 다리를 냅다 걷어찬 이가 있었는데, 바로 박 대감이었다.

마가는 불시에 얻어맞은 다리를 보곤 기겁해 소리를 쳤다.

무인 중 무인이라 소문난 박 대감답게,한 번 발길질로 마가의 다리 한 쪽을 분질러 버린 것이다.

마가는 무너져 내렸고,

마가를 부여잡던 이들은 무너져 내리는 마가가 무거워 그저 땅바닥에 떨궜다.

어차피 부러진 다리로 어디 마당이라도 벗어날까 싶기도 해서였다.

다리가 성해도 그 많은 인파는 뚫을 수 없을 듯 했다.


마가는 땅에 붙어 곡을 시작했다.

자신이 절명할 것을 빤히 알았기 때문이다.


"마님 저 년을 찢어 죽이셔요!"

"마님 저 년 눈을 횃대로 지지셔요!"

"마님 저 년 허벅다리에 불을 놓으셔요!"

“마님 저 년 입술을 발로 짓이기셔요!”

“마님 저 년 젖가슴을 낫으로 도려내셔요!”

"마님 저녁 반찬은 뭐로 할까요!"

"마님 저는 오줌이 마려워요! 불장난은 하면 아니 되어요!"


민씨의 뒤로 목소리들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개소리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소진이 년을 죽여 버리란 소리였다.

민씨는 당연한 소리를 지껄이는 잡것들의 말을 무시하고 소진이 년만 내려다보았다.

과연 절색이나, 사람들 말대로 어찌하여 절색인지 설명이 안되는 년이었다.


이 년은 미인이 아니다. 

허나 이 년에겐 과연 무언가가 있구나, 하고 민씨는 감탄을 하였다.

그것은 칭찬에 가까운 감탄이었으나, 소진이란 년의 목숨을 부지해 주기엔 부족했다.


민씨가 횃대를 소진이 년의 뺨에 가져다 붙이려던 때였다.

성곤 도령이 기겁을 하며 방에서 튀어나왔다.

성곤을 방언을 터트리며 소진이 년을 감싸 안았다.

그를 지켜본 민씨는 차분했다.

아니, 냉엄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비켜라, 네 놈도 불 맛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거든."


박 대감이 몰래 다가와 민씨에게 속삭였다.


"여보, 그럴 건 없잖아요. 소진이 년을 죽이진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여보?"


민씨는 기가차서 박 대감을 돌아보더니,박 대감의 이마 짝을 냅다 갈겼다.

봉춘골이 떠나가라 할 만큼의 시원한 '짝!' 소리가 퍼졌다.

그를 지켜보던 봉춘골 사람들은 모두 망부석이 되었다.

천하의 무인을 휘갈기는 여인이라니, 장군감도 그런 대장군감이 없으리라.

민씨가 박 대감을 나무랐다.


"이 씨발새끼가… 어따대고."


박 대감이 말하였다.

거진 울먹이고 있었다.


"아! 여보, 애들 앞에선 안 때리기로 약속 했잖아요?

아, 여보! 저도 제 신분적 위치란 게 있잖아요!

우리 저번에 이걸로 이야기했었죠?

원래 안사람이 바깥 사람을 때리는 게 아니래요!

제 친구들도 그랬어요! 그러니까요! 이제 앞으로는 제발 좀 애들 앞에서!…"


민씨는 짜증이 나서 박 대감에게 "닥처라 좀. 병신아." 하고 만류를 했다.

그리곤 성곤을 걷어 차버리며, 다시 횃대를 소진이 년에게 가져다 불을 놓으려는데,

다시 성곤이 득달같이 소진이 년을 감싸고 나섰다.


"네 놈이 실성을 했구나. 천것은 감싸 안으려 들면서, 어미의 말은 바람소리인냥 흘려버리니."


성곤은 몸을 비 맞은 개처럼 떨었다.

너무나 떨어대는 그 모습을 보며, 차라리 일부러 떨어도 저리는 못 떨겠다싶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허나 민씨의 광기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기에, 모두들 숨을 죽이고만 있었다.

횃불이 사부작사부작 타오르는 소리와 귀뚜라미만 초롱초롱 우는 그 침묵을 성곤이 깨트렸다.

아주 대담하기도 짝이 없는 소리였다.


"소진이는 제 아이를 가졌습니다. 어머니! 이 뱃속에 제 아이가 들었습니다. 정녕입니다!"


뻥이었다.

뻥이었으나, 모두가 놀라 일대가 술렁였다.

웅성웅성 개미 같은 목소리는 점점 그 키를 키워갔다.

민씨는 냉담했다. 

저 하늘의 처량한 달빛도 민씨만큼 냉랭해 보일 수는 없었다.


"백정 새끼가 품은 건, 아이라 할 수 없다. 그건 버러지다.“


민씨는 아랑곳 않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천출의 아이를 손주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성곤은 나름 지혜를 짜본 일이었으나, 의미가 없었다.


민씨는 다시 성곤을 걷어 찼다.

성곤이 굴러 떨어진 곳은 다리가 부러져 절절거리는 마가 놈의 옆이었다.

좀 전까지 소진이 년을 죽여줍쇼, 응원하던 아낙들도,

뭔가가 아주 크게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소진이 년은 미워 죽겠으나, 아직도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그를 보는 아낙 중 가슴이 아려오는 년도 있었다.

사실 아낙들은 소진이 년과 살갑게 지내 본 일이 없었기에,

막상 소진이 년의 가엾은 꼴을 접하니 참한 년도 저리 참한 년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년, 그 횃불로 그 이상 우리 딸 희롱하려 하면, 내가 너를 튀겨 죽인다. 이 년."


모두들 입이 떡 벌어졌다.

소진의 어미였다.


저 곳에서 머리가 산발이 여인이 바들바들 떨며 문지방을 넘으니,

그것이 또 민씨를 제외한 또 하나의 마귀처럼 보였다.


땅이 울리는 듯하였다.

천둥이 치듯 세상이 요동치는 기운도 돌았다.

두 여인이 눈을 마주하고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민씨의 입가는 씰룩씰룩 경련을 일으켰고,

소진의 어미는 점차 똑바로 자세를 잡아갔다.

양반 댁 규수와 백정 잡년이 서로를 똑바로 응시했다.

천하가 울렸다.


덜그럭 덜그럭.


봉춘골 사람들은 실로 땅이 울리는 미미한 진동을 느꼈다.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다.

두 여인의 마귀 같은 기운이 세상을 뒤흔드는 것만 같았다.

소리는 점차 커져만 갔다.


덜그럭 덜그럭, 달그락 달그락.

덜그럭 덜그럭, 달그락 달그락.

덜그럭 덜그럭, 달그락 달그락.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소리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민씨를 포함하여 모두가 천둥 같이 말발굽을 울리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도 횃대가 떠다니고 있었다.

바람을 거스르며 힘차게 불을 뿜는 횃대가 대충 보아도 열은 넘을 듯하였다.

누군가 말했다.


"도깨비다!"


그것이 무엇이던가, 정녕 도깨비불이라도 되더란 말인가?

그렇지 않았다.


말발굽 소리는 마가네 집에서 멈추었다.

자그마치 열다섯의 사내가 말에 올라있었다.

말에 오른 사내들은 봉춘골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인파로 속으로 말을 몰았다.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길을 텄다.

선두에 있던 사내가 호령을 했다.


"소진이란 년이 어디에 있느냐!"


소진은 손을 들어 자신을 표시했다.

사내는 횃대를 들어 소진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곤 다시 소리쳤다.


"네 년이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봉춘골 일대에 색을 뿌리고 다닌다는 소진이렸다?"


소진이 대답하였다.


"그렇사옵니다."


사내는 가슴에서 종이 짝을 꺼내 펼쳤다.

방이었다.


그것은 봉춘골 아낙들이 공을 들여 만들어낸 방이었다.

소진이란 년의 유언비어가 그득하게 실린 그 방을 사내는 똑바로 펼쳐 소진이 년에게 보였다.

그리곤 여남은 여장의 방을 소진이 년에게 던지며 호령했다.


"네 이년! 오라를 받으라!"




요녀4


봉춘골에 핀 불꽃이 파도처럼 술렁이기 시작했다.

말 위에 오른 무인은 봉춘골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네 년의 행실이 고을로는 색을 뿌리고 나아가 전국의 풍기를 문란케 하여,

그 입소문이 장안에 떠들썩하니! 조정의 대신들도 네 년의 망측함이 진노하시고

네 년의 목을 가져오라 엄명을 내리셨다! 필시 네년도 네년의 죄를 모르진 아니할터!

네 년은 본보기를 삼아 한양에서 팔다리를 찢고 목을 잘라 성문 앞에 걸어

타인의 귀감으로 삼을지니, 죄인 소진은 네 년의 죄를 깨닫고 오라를 받으라."


무인의 말이 떨어지자, 그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말에서 날아올랐다.

하늘을 나는 그들은 쓸데없이 공중제비 일곱바퀴 반을 돌아 소진이 년의 앞으로 착지했다.

그들은 오라줄로 소진이 년을 칭칭 휘감았다.

찰나와 같은 순간이었다.


그들의 신기와 같은 무술에 사람들은 넋이 나가 침을 꼴딱 삼켰다.

그들이 하나같이 한 자루씩 차고 있는 대검도 봉춘골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칼을 찬 무인들이라하면 봉춘골에서는 쉬 볼 수 있는 자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씨는 괘씸한 소진이 년을 이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해서 민씨는 박 대감의 옆구리를 찌르며 일렀다.


"야, 뭐해? 뭐라고 말 좀 해봐! 우리 꺼라고."


민씨의 것이었다.


소진이를 찢어 죽이는 즐거움은 당연 민씨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민씨는 생각했다. 

허나 소진이 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오라에 감겨 무인들 어깨에 들춰 업혔다. 

민씨에 눈엔 소진이 년이 도망을 치는 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대론 소진이 년이 끌려가는 것이 자명했다.

강물을 거스를 수야 없으나, 민씨는 억지라도 부려 소진이 년을 잡고 싶어졌다. 

이렇게 자신의 손을 떠나보내고 나면 복장이 터져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소진이 년은 필시 민씨의 손에 찢겨 죽어야했다.


박 대감은 큰기침을 하곤 폼을 재며 무인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에게 다가섰다. 

무인은 박 대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박 대감은 험험! 아! 험~험~! 하고 억지로 큰기침을 뱉었다. 무인이 마지못해 물었다.


"무슨 연유로 제 관심을 청하시지요."


관심? 청이라? 건방진 놈. 

박 대감의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박 대감은 감히 자신에게 청이라는 말을 쓰는 새파란 놈이 거슬렸으나, 지금은 역정을 낼 때가 아니었다. 

민씨가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다. 

저러다 화병으로 경을 칠 일이었다. 

박 대감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자신도 무인이었다. 

박 대감은 새파란 놈을 처음 봤으나, 그를 설득할 수 있으리란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다.

박 대감이 물었다.


"자네, 어디 도장 출신인고? 

한양성이라면 그 똥강아지 같은 국춘 장군은 안녕하신가? 내 그와 아주 친분이 깊네만."


무인은 그제서야 박 대감을 내려다 봤다.

무인의 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위용이 빛났다. 

그 위용 또한 새파란 빛을 띠었다.

무인이 말했다.


"대감. 대감이 뉘신지, 소인 선견지명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대감께선 입이 험하다는 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춘 장군을 욕보이신 대감의 목을 지금 잘라도 골백번을 잘라야 하나,

지금은 소인 대감의 목을 칠 생각이 없으니,

그를 그간 쌓으신 덕으로 여기시어,

앞으로는 평생 그 입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 대감은 귓불이 빨게졌다.

박 대감에게 면전에서 무안을 준 것을 못 참은 건, 민씨였다.

민씨는 득달 같이 달려들어 무인을 쏴붙였다.


"야 개.새.끼야! 너 뭔데 으른한테 말 그따우로 찍찍하냐? 

말에서 안 내려와? 싸가지 없는 노무, 이! 아주 상노무새끼."


박 대감은 그런 민씨를 살살 만류하며 무인을 타일렀다.


"그러지들 말고, 이보게 자네. 

우리가 그렇지 않아도 지금 저 소진이 년을 튀겨죽일까, 찢어 죽일까, 고민을 하고 있던 참이오. 

저 년이 하도 극성 맞는 년이니, 봉춘골 사람들이라고 그 사실을 영영 참고만 있었겠소? 

지금 모여든 사람들은 좀 보시오. 모두 소진이 년에게 경을 치려고 모인 것이외다. 

그러니 이만 발길을 돌려 상부에는 소진이란 년이 이미 죽고 없었다고 보고하는 게 어떻겠소?"


무인은 박 대감보고 피식했다. 

분명히 비웃음이었다. 

박 대감의 마지막 자존심이 꿈틀하려는 찰나, 무인은 소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더 이상 박 대감을 상대할 마음이 없어진 것이었다.


“어명이오. 이 이상 내게 수작을 걸 생각이라면, 내 독단으로 역모의 죄를 물어 목을 밸 터이니, 함구하시오.”


무인의 말은 봉춘골에 핀 불꽃을 흔들었다. 

어명이란 태풍이 거셌기 때문이다.

아낙과 남정네들의 당황은 웅성임이 되어 소란을 만들었다.


“어명이랴.”

“어명이 누구요?”

“어부 친구 아니오?”

“어부 친구는! 어명이면 임금이란 소리지 이 답답아!”


새파란 무인의 눈에선 봉춘골 사람들 횃대의 붉은 불꽃이 파란빛을 띠며 타올랐다. 


새파란 무인은 긴장이 되어 손에 땀이 찼다.

그는 말이 없었으나, 속으로는 소진이란 년의 몰골을 처음으로 마주하니, 가슴이 떨리고, 허리에 힘이 빠졌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으나, 

정녕으론 박 대감과의 대화중에도 두 번이나 낙마를 할 것만 같았다. 


소진이란 년이 거의 벌거벗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흰 속곳 사이로 살갗이 슬쩍 비춰 보이고 있었다.

무인은 침을 삼켰다.


그의 부하들은 당연하다는 듯 새파란 무인의 말안장에 소진이란 년을 엎어 줄을 매었는데, 

그러자 소진이란 년의 팔뚝 살이 무인의 엉덩살을 슬슬 문지르는 꼴이 되었다. 

새파란 무인은 잠시나마 소진이란 년을 품고 딴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한양이 아니라 저기 남의 바다로 소진이란 년을 빼돌려 떠나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줏대 없는 놈이었다.


“대감! 대감 저 놈의 목을 부러트려, 소진이를 못 잡아가게 해주시오! 대감!”


무인은 소리치는 여인을 돌아보았다. 

마귀처럼 산발인 여인이 목을 끓이는 듯 계속하여 자신을 죽이라 명하고 있었다. 

소진의 어미였다. 


무인은 살기를 느끼고 급하게 박 대감도 돌아봤다. 

박 대감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 때 퍼드득하고 바람을 가르는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새파란 무인을 팔을 휘둘러 소리를 물리쳤다.

횃불이었다.

무인이 고갤 돌리자, 그곳엔 성곤이 씩씩거리며 서있었다.

성곤이 말했다.


“어명이고 뭣이고, 네놈들, 내 목을 치기 전엔 소진이 못 가져간다. 

찢어 죽이려거든, 나부터 찢어발기고 가야 할 것이야.”


성곤과 새파란 무인은 서로를 한참 응시했다. 

새파란 무인의 곁으로 또 다른 무인이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새파란 무인은 그에게 그리 전했다.


“내 손으로 하겠다.”


새파란 무인은 말에서 내렸다. 

깃털처럼 몸짓이 가벼웠다.

잔상을 흘리듯 성곤에게 다가선 새파란 무인이 물었다.


“그대, 자가 어찌 되는가?”

“성곤이오. 박 성곤.”


박 대감이 소리쳤다.


“뭣 하는 게요!”


새파란 무인의 표정이 결연해지더니, 

그의 주위로 백지장 같이 넓고 하얀 기운이 날카롭게 뻗어 나왔다. 

유유한 곡선을 그리는 그 하얀 빛은 새파란 무인의 검이 달빛을 튕겨 발하는 것이었다.

박 대감의 눈이 달덩이처럼 커졌다.

성곤의 몸이 조각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파란 무인은 그 찰나 같은 순간 열두 번이나 칼을 휘둘렀다.

성곤의 피가 저 하늘의 달도 적실 듯 높이 솟구쳤다.

박 대감의 괴성이 무인을 덮쳐왔다.

민씨의 비명은 소진이 년 대신에 밤하늘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봉춘골의 분노가 소진에게서 새파란 무인에 넘어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새파란 무인을 향해 횃대가 날아들었다.

소진이 끌려가는 게 못마땅하던 봉춘골 남정네들이었다.

무인이 횃대를 쳐내자, 횃대는 소진이 년의 초가 지붕위로 올라가 불을 놓았다.


그 뒤로는 말 한 마리가 새파란 무인에게 무섭게 날아들었다.

박 대감이 집어 던진 것이었다.

새파란 무인은 차마 피하지 못하고, 말에게 칼을 휘둘렀다.

다시 하얀 광체가 뿜어 나오며 말이 여덟 등분이 났다.


여덟으로 조각이 난 말이 쏟아져 내리며 새파란 무인이 시야를 되찾자,

그 앞으로 박 대감의 양 손에 다른 무인들이 들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박 대감의 옆으로 이미 열넷 중 열의 무인들이 나뒹굴었다.


소진이 년의 초가지붕에 불이 붙으며 삽시간에 봉춘골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장 물을 길러 불의 활로를 끊어야 했다.

봉춘골의 횃불들은 저마다 흩어지며, 불을 끄기 위해 분주했고,

이를 틈타 죽은 척 잠잠하던 마가 놈이 소진이 년이 매달린 말에 달려 들었다.

마가 놈은 대롱거리는 다리의 고통을 무시한 채 필사적으로 말에 올랐다.


그 모습을 박 대감도 새파란 무인도 모두 지켜보고 있었으나,

둘 중 누구도 선뜻 마가에게 손을 댈 생각을 못했다.

먼저 틈을 보이는 자는 목이 꺾일 판이었다.

소진이 년의 초가지붕에서 붙은 불이 슬그머니 옆집으로 달라붙기 시작하였다.


민씨는 성곤의 두 동강이 난 얼굴을 주워 담으려 흙바닥을 뒤적였고,

그 순간 마가는 말에 올라 타 말의 고삐를 휘둘렀다.

소진이 올라있는 말은 담장을 뛰어 넘어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요녀5


마가와 소진이 년이 오른 말은 질풍과도 같았다.

새파란 검사의 말이었다.

단연 가장 달음질이 뛰어나고, 체력도 우수한 말로서,

지금 마가 놈이 그 말을 타고 달아난다면, 제 아무리 새파란 검사라 해도, 마가를 붙잡을 수는 없을 듯하였다.


새파란 검사가 아니라, 설령 귀신이 쫓아온들,

그 바람처럼 달리는 말의 꼬랑지조차 닿을 수 있을꼬.


허나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고 하니,이 천치 같은 마가 놈이 평생 말을 처음 타봤다는 것이었다.


마가 놈이 부러진 다리로 말에 오르는 것조차 천지신명이 도우신 일이라 할 수 있더랬다.

새파란 무사가 타던 말은 가장 달음질이 뛰어난 만큼 난폭하게 달리는 놈으로,

다른 보통의 말에 비해 근 수가 4,50은 너끈히 넘는 육중한 놈이더랬다.

어떤 이는 새파란 무사의 말을 보고는 그리 묻는 이도 있었다.


“그 놈이 말이요? 황소요?”


새파란 무사의 말이 땅을 구를 때마다 주변에 지진이 이는 것 같았다.

돌멩이들은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었으며, 흙먼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말굽이 땅을 박찰 때는 천둥이 치는 것처럼 무지막지한 굉음이 주변을 울렸다.


그 철덩이 같은 육중한 몸이 흔들릴 때마다 마가는 부러진 다리가 뒤틀리고 흔들렸다.

마가 놈은 다리가 엉켜갈 적마다 어린아이처럼 비명을 질렀는데,그게 그럴 법도 하였다.


마가의 부러진 다리는 뼈가 분리되어 살이 늘어져갔다.

날이 선 뼈가 속살을 찌르는 것은 당연하였고,

힘줄이며 핏줄이며 늘어지는 살들은 마가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그 고통에 마가는 당장이라도 까무러칠 만큼 눈앞이 컴컴해지기 일쑤였다.

마가는 고삐를 쥐고, 안간힘으로 낙마하지 않도록 버텼으나,

차라리, 태풍으로 요동치는 파도 위를 걷는 것이 더 수월했을 것이었다.

마가는 봉춘골 입구의 천하대장군 앞까지도 당도하지 못하였다.


마가는 봉춘골 입구 전에 있는 숲길에서 말허리에 튕겨져 하늘을 날았다.

마가는 필시 허벅지로 말을 꼭 쥐고 있어야했으나,

당장은 다리가 부러져있었고,

안장에 발을 올리는 기본조차도 몰랐으며,

심지어는 얼떨결에 고삐까지 놓아버렸다.

밀려오는 고통 탓에 힘을 잃었던 것이었다.


새파란 무사의 말은 마가를 하늘 높이 튕겨냈다.

수직으로 번쩍 날아오른 마가는 순식간에 머리부터 곤두박질 쳤는데,

그 것이 마가의 마지막이 되었다.


새파란 무사의 말이 뒷발로 마가의 턱주가리를 때린 것이다.

그 일로, 마가의 뺨으로 길게 말발굽 모양이 남았는데,

그 발굽 모양이 박히는 찰나 마가의 모가지는 세 번을 급회전하였다.

흙바닥에 쏟아진 마가의 몸은 눈꼽만치도 움직이질 않았다.


소진이란 년은 말 엉덩이 즈음에 묶여 신음하고 있었다.

봉춘골을 붉게 피어오르고 있고,

시커먼 밤하늘은 더 시커먼 연기에 휩싸이고 있더랬다.


소진이란 년은 뒤로 멀어져가는 봉춘골을 보며 절로 눈물이 흘렀는데,

그것은 봉춘골을 떠나는 홀가분함 때문도 아니요,

그동안의 설움이 터져나온 것도 아니요,

마가의 죽음이 애통해서도 아니었다.


소진은 말이 달릴 적마다 늑골이 부서질 듯 아팠다.

산처럼 솟아있는 말의 등뼈는 소진이를 고문이라도 하는 냥, 

소진의 갈비뼈를 찌르고 비볐는데,

그 통증을 이루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아니할 수가 없다.

갈려 본 사람이 아니라면 그 고통을 어찌 이해할꼬.

털썩일 적마다 배를 얻어맞는 기분이 드는 것도 그랬다.

소진이란 년은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소진이 년은 속으로 차라리 숨이 끊어진다면, 마음이라도 편하리라고 생각했다.

수십 차례나 등뼈에 배때기를 얻어맞은 소진은 고통 속에 혼절을 하고 말았다.


고삐를 잡아 줄 사람 없는 말은 정처 없이 내달렸다.

그것은 마치 봉춘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던 소진의 뒷모습과도 닮아있더랬다.


붉게 물든 밤하늘이 피에 물들어 그리 뻘건지,

봉춘골을 집어 삼키는 불덩이에 물들어 그리 뻘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 소진이란 년의 수배령이 떨어졌는데, 그 수배지가 가관이더랬다.

수도 없는 사람들이 소진이 년을 봤지만,

수배지에 그려진 얼굴을 보고 소진이 년과 닮았다하는 사람은 없었다.

소진이란 년의 설명은 쓰고 고쳐지고, 쓰고 고쳐지길 하다 지쳐, 한 줄로 요약이 되었다.


-소진이란 년은 눈빛만으로 남정네를 홀림.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수배지였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특징을 콕 짚어낼 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수배지의 그 한 줄은 전국적으로 파란을 불렀다.

이곳저곳에서 소진이란 년을 보았다는 낭설이 돌았다.

그 낭설을 듣게 된 봉춘골 사람들은 소진이란 년이 대단한 년은 대단한 년이라 입을 모았다.

그럴 법도 했다.


낭설은 소진이란 허깨비를 만들어 전국을 홀렸는데,덕분에 애꿎은 아낙들이 피를 보아야했다.


소진이란 년의 허깨비 덕에 피를 본 아낙들은 대체로 특징이 진했다.

그 중에는 한 날, 한 시, 다섯 남자의 구애를 받았다는 아낙,

웬 남자와 간통질을 했다는 아낙,

장례가 유망하다 일컬어지던 기방의 최고 미인,

고기 손질을 잘 한다고 소문이 난 여성 도가들

도박판을 전전하는 아낙들,

얼굴이 곰보인 아낙들,

그리고 피부가 백옥처럼 하얗다는 처녀들이었다.

이는 대부분이 봉춘골 아낙들이 만들어낸 소진이 년의 소문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시간이 흘러 낭설이 널리 퍼지니,

소진이란 년은 마을 하나를 전부 태워 삼킨 악녀 중의 악녀로 이름이 높아졌고,

어명을 무시한 채 달아난 괘씸한 년의 상징이 되었으며,

불행을 낳는 씨가 된다고 하여 ‘소진’ 이란 자(字)조차 멀리 해야한다는 미신까지 생기게 되었다.


전국의 소진이란 처자들은 목숨을 구하려 모두 이름을 바꾸었고,

설사 헛갈려 불리게 되어 봉변을 당할까,

이름 두 글자에 ‘소’ 자와 ‘진’ 자만 들어가도, 불안을 느끼는 여식이 생기더랬다.


그렇게 소진이란 년은 전국 모든 땅에 존재하는 동시에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년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소진을 일컬어

요녀

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


해가 심드렁하게 떠있는 초여름.


기골이 장대한 남성이 허리에 끈을 매고 산길을 걸었다.

허리에 걸린 끈은 중년의 여인의 허리에 가 감겨있었는데,

그 여인의 가슴에는 백자 항아리가 소중히 안겨있더랬다.


백자의 항아리에는 成坤 (성곤) 이란 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남녀의 옆을 지날 적마다, 코가 문드러지는 악취를 느껴야했다.


기골이 장대한 남성의 자는 지광.

한 때는 그의 주변의 기운이 온통 푸르다하여, 청검(淸儉) 이라 이름이 높던 자였다.


그의 끈에 매달려 걷는 중년은 민씨라 하나,

지광이란 사내도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정확히는 알진 못하였다.


그들이 오르는 산은 이름도 없는 야산과도 같은 곳이었으나,

지광과 중년의 여인이 그곳을 오르는 이유는 연유는 저자거리의 풍문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지광이 민씨를 끌고 저자의 주막에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 옆에 앉아있던 웬 상놈이 큰 소리로 떠들었다.



“아, 내 말이 그렇다니까는? 약초 뜯는 장가 말이여. 

내가 엄니 좀 얻어다 드릴라고, 그 놈 사는 산골에 잠깐 다녀오는데, 

으따~ 야, 말도 말어라? 아니, 그러니께 말여. 그 장가 놈이 아니 시상에나 저상에나 말이다. 

웬일로 여자를 끼고 살고 있더라니까는? 아, 내말이 그렇다는 거야녀!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더냐고? 그렇잖어? 눈도 멀어가지고, 앞도 안 보이는게 글쎄, 그런 여자를 어서 주워왔는지, 

내가 알게 뭐여! 아니 근데, 그 장가 놈 안사람이 나한테 물 한사발을 대접하는데 글쎄………”


지광은 큰 소리로 떠드는 상놈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호들갑을 떠는 놈의 목소리가 거슬려서가 아니었다.


“가슴이 막 벌렁거리더라니까는? 아야? 으메? 증말로! 

그냥 허연 손목이랑 뒷모습만 잠깐 봤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벌렁벌렁~ 한게, 아따 희안터라니까는?”



요녀야. 요녀.




요녀6 



산속의 초가지붕이 외로워라 하고 서있더랬다.

소진을 외로운 초가지붕을 벗삼아, 그 주변을 심심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날이 어두웠다.

소진은 하늘을 바라봤다.

소진은 이런 하늘을 본 적이 있었던가, 하고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참이다.


하늘은 보기 드물만큼 어두침침했다.

먹구름이 자욱하게 하늘을 가린 것이,

그렇다고 비는 쏟아낼 생각 없는 것 같고,

새벽 닭이 운지는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그럼에도 하늘은 밤처럼 어두웠다.

소진에게는 그 하늘의 침침함이 불길하기 짝이 없더랬다.


“비가 오려는 모양이오.”


소진의 곁에 있던 약초꾼 장가가 말했다.

소진이 그를 돌아보자, 장가는 눈을 감고 약초를 손질 중이었다.

소진은 장가란 사람이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약초꾼 장가는 천하의 봉사로 봉사도 그런 봉사가 없다 하였다.

그래서 어떤 마을이들은 약초꾼 장가를 장봉사라고도 부르더랬다.


지금 소진의 눈앞에 있는 장가는 눈을 감고 약초를 더듬더듬 하나하나 찾아가며,

손질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여간 불편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소진이 장가를 처음 만났을 때, 장가는 두 눈을 퍼렇게 뜨고 있었고,

앞을 잘 보는 것은 물론, 소문처럼 봉사이긴 커녕,

안개 속에서도 약초를 캐고, 밤길에도 산삼을 찾았으며,

심지어 날이 좋은 날에는 스무 고개 밖에 있는 개미도 보인다고 말할 정도였다.

장가는 소진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부터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당신이 소문의 요녀가 맞소?”


장가는 그렇게 물었다. 

소진이 이제 막 다시 걷기 시작할 무렵의 일이었다.

소진은 걷기는 걸으나, 긴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었으며,

몸이 성치 못해, 장봉사가 지어주는 약초 우린 물로 연명을 하고 있더랬다.

소진은 목소리도 온전치 못하여, 대답대신 끄덕끄덕 고갯짓을 하였다.

장가가 보기에 그것은 그저 시름시름 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더랬다.

장가는 다시 한 번 소진을 다그치더니, 소진이 소문의 요녀가 맞다는 것을 인정하자,

주먹을 불끈죄고 얼굴에 핏대를 세우더니, 불쑥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본 소진은 장가에 의해 자신이 곧 고발당할 운명이라 믿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허나 장가는 이후로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뜨지 않는 장가가 답답스럽던 소진이 장가에게 연유를 묻자, 장가는 그리 답하였다.


“나는 원래 봉사이기로 유명한 놈이오.”


소진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장가를 장봉사로 알고있는 이들은 장가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다니는 꼴이 더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으나, 

소진이 그것까지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장가는 소진의 정체를 알게 되고, 억장이 무너졌더랬다.


장가는 원래 봉사가 맞았다. 

허나 태어날 때부터 봉사는 아니었고,

그가 눈을 잃게 된 것은 전쟁 중에 있던 일인데,

그 것은 어찌보면 천운이요, 따로 보면 개팔자라 할 수 있겠다.

장가는 그것이 천신이 도왔더니…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나,

때로는 차라리 봉사로 사느니 남들과 같이 그날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봉사로서의 삶이 개팔자란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장가가 눈이 멀던 날.

장가가 속해있던 군은 전선에서 벗어난 강변의 마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었는데,

마을이 아주 고즈넉하고 평화롭더랬다.

전쟁의 여파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몸을 피했는지,

마을은 텅텅 비어있어서, 군인들의 휴식처로써 안성맞춤이었기에

그곳이 사실은 적군의 함정터였다는 것을 간파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지쳐있던 탓이었다.

그 마을의 우물물에는 대량의 독이 풀려있었는데, 

당연히도 군인들은 그 물을 너도나도 흠뻑마셨고, 장가 또한 그 물을 마셨더랬다.

전멸이었다.


장가를 제외한 모두가 사흘을 못 넘기고 죽어버렸다.

장가 또한 몸에 서서히 도는 독기를 느꼈으나,

장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에 올랐다.

장가는 어려부터 산세에 익숙했고,

장가의 할애비가 약초꾼이었기에 약초에 대하여 아주 무지하지는 아니하더랬다.

그러나 장가는 자신이 당한 독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독에 유용하다는 풀을 뜯어 모두 생으로 씹었는데,

덕분에 장가는 목숨은 건졌으나, 눈이 멀어버리고 말았다.


전쟁은 장가가 없는 곳에서도 치열했고,

장가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쓸곳 없는 봉사 군인이 되느니,

독약을 마시고 죽어버렸다는 것으로 자신의 군인으로서의 생이 마감되길 원해서였다.


전쟁이 끝났다는 소문이 들려와도 장가는 나라에 돌아가지 않았다. 

장가는 눈이 멀어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약초의 손질 정도였다. 


장가는 약방에 들어가 약초꾼이 되었는데, 

그 시간이 길어지자, 

눈을 감고도 산길을 다닐 만큼 감이 날카로워졌고, 

냄새만으로도 약초를 찾아내고 골라낼 만큼 후각이 발달했더랬다. 

장가는 자신을 거둬준 약초꾼이 먼저 세상을 등지고도 그 마을에 눌러 붙었고, 

사람들은 장가를 장봉사라 이르며, 가깝게 지냈다.


마을 사람들은 장가가 사실 군인이었으며, 

그 군인들 중에서도 검명이 가장 높다던 국춘 장군이란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장가는 장봉사로서의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봉사로서의 삶이 끝난 것은 웬 여인이 장가의 집 앞으로 찾아들었을 때였는데, 

그 여인은 황소처럼 커다란 말에 포박을 당한 채 올라있었다.

그날 밤,

장가는 집 밖의 낌새가 이상스러워 잠에서 깨었다. 

밤길이나 낮길이나 컴컴한 길인 것은 매한가지인 장가는 더듬더듬 밖을 나서며


“뉘십니까?”


하고 물었으나, 밖은 말발굽이 풀썩이는 소리가 들릴 뿐, 그저 조용하더랬다. 

장가는 눈대신 귀를 내밀고 밖을 들었다. 

주변은 벌레들 울음소리만 들려오고 한참 밤이슬이 쏟아져서 콧잔등이 금방 축축해졌다.


그 잠잠한 틈 사이로, 여인의 신음이 들려왔다. 

아주 희미한 그 소리를 귀가 밝은 장가는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신음소리에 다가간 장가가 소리가 난 주변을 더듬거리다, 

만져진 그 무언가에 의해 눈이 번쩍떴다.


장가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장가는 무언가를 손에 댄 이후 씻은 듯이 눈 앞이 맑아졌다.

장가는 옥황상제가 도왔을 이 기적을 목전에,

자신에게 기적을 전해 준 ‘손에 닿은 무언가’를 돌아보았고,

그 ‘손에 닿았던 자리’엔 웬 여인이 있더랬다.

정확히는 여인의...


갑자기 눈이 뜨인 장가는 여인이 올라있는 그 황소 같은 말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 말은 자신이 타고 전장을 누비던 말이었는데,

독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을 때, 그 말은 온데간데 없었더랬다.

기이한 일이었다.


말이 주인을 찾아왔다니.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그것이 첫 째로 기인한 일이었고, 

장가가 말에 다가가자,그 집채만한 말이 너털너털 무너지더니,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 일이 둘 째로 기이한 일이었다.


장가는 이미 숨을 거둬버린 말보다는

기적처럼 눈을 뜨게 해 준 여인의 포박을 풀어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정신을 잃은 여인은 개미같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앓는 소릴 냈으며,

얇은 옷가지 사이로 비추는 속살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장가는 당황스러웠다.

이 전에도 장가는 여인과 비슷한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가슴께부터 허벅지까지 생긴 멍도 멍이지만,여인을 며칠을 굶주린 자처럼 홀죽했다.

전장에서 아사하는 사람들을 익히봐온 장가는

여인이 얼마나 끼니를 못 챙겼는지부터 헤아렸고,

급하게 여인을 방에 들인 뒤,

원래는 대감댁에 팔기로 약조했던 산삼을 꺼내어 맑은 물에 우려냈다.


장가는 산삼을 우리며, 연유는 모르겠으나,

그 여인이 자신의 눈을 뜨게해준 은인만 같았다.


실로 그 여인의 몸에 손이 닿으며, 눈이 뜨인 것이니 그것이 아주 연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장가는 여인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보살폈고,

여인이 다시 눈을 뜨기까지는 보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여인이 마침 눈을 떴을 때, 장가는 여인의 곁을 지키던 중이었다.

여인을 눈을 떴으나, 아직 몸이 성치 않은지, 꿈쩍도 없이 눈만 꿈뻑이더랬다.

그 다음부터는 고난이었다.


여인은 장가가 산삼 우려낸 물을 건네도 마시지 않고,

닭을 잡아 건네도 뿌리쳤으며,

소를 잡아 올려도 입을 꾹 틀어막고 벌릴 생각을 안 했다.

여인은 장가가 먹을 것을 건낼 적마다,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지속해 말했으며, 그 말이라 함은


“이제 그만 죽게 내버려 두셔요.”


였으나, 장가는 고개를 내젓고 억지로라도 여인의 입에

산삼우린 물과 닭, 소, 돼지 고기를 물리고, 씹히고, 삼키게 하였다.


말에 매달려 자신에게까지 온 연유며,

그 딱한 사정을 모르는 바이나, 적어도 장가는 은인을 죽게 내버리 둘 수는 없었다.


힘이 연약한 여인은 평소 같아도 뿌리칠 수 없는 장가의 횡포 같은 힘을 거부할 수 없었다.

점차 기력이 돌아오게 된 여인은 자신이 자신의 뜻대로 죽지도 못할 운명인 것을 받아 들였다.

죽기를 포기한 여인이 이제 슬슬 스스로 걸음을 디딜 수 있게 되자,

그때서야 장가는 여인의 이름을 들을 수가 있었더랬다.


“소진이라고 하여요.” 


출처

웃대... 박주호 (숏다리코뿔소)

http://huv.kr/fear67226
http://huv.kr/fear67236
http://huv.kr/fear67241
http://huv.kr/fear67294
http://huv.kr/fear67363
http://huv.kr/fear67466

오유 ... 숏다리코뿔소

http://todayhumor.com/?panic_52466
http://todayhumor.com/?panic_52506
http://todayhumor.com/?panic_52563
http://todayhumor.com/?panic_52717
http://todayhumor.com/?panic_53010
http://todayhumor.com/?panic_5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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