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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반지 원정대
게시물ID : panic_981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젤넘버원(가입:2018-03-08 방문:83)
추천 : 16
조회수 : 174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3/12 15: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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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그덕 삐익- 삐익- 삐그덕 삐익- 삐익-

 

오늘도 자정을 넘기자 소리는 어김없이 들려왔다. 정말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다.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삼주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나는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딱 한 달만 쉬자고 마음먹었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가 힐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더 나은 목표를 위해 정신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침대에 늘어져 잠만 잤다. 정신을 차려보니 일주일이 지나있었다. 이후로 밤만 되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져 도저히 잠을 들 수가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보니 온갖 잡생각이 다 들었다.

 

편하고 돈 많이 주는 회사 다녔으면 좋겠다. 아님 장사나 할까? 근데 뭘 팔지? 가게 열려면 돈 많이 들텐데... 만수르한테 연락이나 해볼까?’

 

어느세 2주가 지났다. 나는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돈도 돈이고 앞으로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내 정신은 급격하게 피폐해 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자정만 넘기면 삐그덕 삐그덕 쇠 갈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에 그리 민감하지 않는 나지만 그 소리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거슬렸다. 멈췄다 싶으면 또 들리고 멈췄다 싶으면 또 들리고... 그렇게 밤새 삐그덕 소리는 나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내가 미쳤나 싶었다. 나의 내면 깊은 곳, 무의식이 삐그덕 거리는 내 인생을 경고하는 소리라 생각했다. 나는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로 했다.

 

답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소리가 들리자 나는 창밖을 보았다. 그곳에는 노인 한분이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안도했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하지만 밤새 들렸다 마는 그 쇳소리는 여전히 신경에 거슬렸다.

 

다음날 밤 나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자 미리 사 놓았던 기름통을 들고 나갔다. 먼저 양해를 구하고 바퀴부분에 기름칠을 하면 소리가 덜 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휠체어를 끄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인기척을 듣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곱창집 사장님이었다. 나는 골목길이 어두워 휠체어에 탄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고 휠체어를 타는 사람은 노인일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퇴근길, 역에서 나와 버스를 타기 전 나는 사장님의 가게에서 곱창을 포장해가곤 했다. 그리 잘 되는 가게는 아니었지만 사장님은 언제나 분주히 곱창을 볶고 계셨다.

 

하루종일... 선체로...

 

사장님은 나를 못 알아보셨다. 나는 휠체어를 굴리는 사장님을 잡아 세웠다.

 

사장님, 어떻게 되신거에요? 다치신거에요?’

 

‘...’

 

저 기억 안 나세요?’

 

사장님은 잠시 나를 멀뚱히 쳐다보시더니 휠체어를 굴리며 떠나셨다.

 

다음날 나는 오랜만에 집밖으로 나섰다. 버스를 타고 곱창집으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던 것이다.

 

어이, 오랜만이네. 오늘은 왠일로 낮에 오셨데?’

 

사장님은 나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하지만 정겨운 그 얼굴도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 밤마다 그렇게 휠체어를 끌고 돌아다니니 그럴만도 하지.

 

나는 일단 곱창을 주문했다. 그리고 곱창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어제 있었던 일을 슬쩍 꺼냈다.

 

...’

 

사장님이 탄식하셨다.

 

손님이 믿으실지 모르시겠지만 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드리지요.’

 

나는 사장님의 이야기의 귀 기울였다.

 

삼주 전쯤부터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꾸 꿈에 나오시더라고요. 꿈에서 하시는 말씀이 저승에서 어머님을 만났는데 아버지가 결혼반지를 잃어버리신 걸 알고는 노발대발 하셨다는 겁니다.’

 

나는 난데없는 저승 이야기에 당황했다. 사장님은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아버지께서 제게 반지를 찾는걸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도울 수 있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자정이 다 될 때 아버지가 살아생전 타시던 휠체어에 앉으라는거에요. 그리고 꿈에서 깼죠. 저는 아버님과의 약속대로 자정이 다 될 때 쯤 창고에 있던 아버님의 휠체어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침대에 누워있더랬죠.’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어머님이 그렇게 중하게 여기시는 걸 보니 귀한 반지인가 보군요.’

 

하이고~ 말도 마세요. 그놈의 반지 이야기는 어머니께 하도 들어서 귀에 붙을 정도에요. 어머니의 할머니가 물려주신 반지인데 그게 또 청나라 왕조의 반지라는 거 아닙니까.’

 

청나라 왕조의 반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 값어치가 꽤나 나갈 거 같았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잠재우며 말했다.

 

아버님은 어쩌다 그런 귀한 물건을 잃어버리셨답니까?’

 

친구들이랑 술 먹고 돌아오다가 잃어버리셨다나 뭐라나. 저도 기억하는 게 다음날 일어나시더니 반지를 찾아 온 동네를 돌아다니셨죠. 날씨도 추운데 팔십 다 되가는 양반이 하루 종일밖에 있으니 몸이 견디겠어요? 결국 급성폐렴으로 돌아가셨죠. 그게 벌써 일 년 전 이야기에요.’

 

사장님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놈의 반지가 뭐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귀한 반지를 밖에 흘렸으면 벌써 누가 집어가고도 남지 않았겠어요?’

 

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서 빵빠레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청나라 왕조의 반지! 어쩌면 이것이 내 지겹고도 지겨운 인생을 바꿔줄지도 모른다. 그동안 그리 맘고생을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며 나는 곧바로 안정된 노후를 즐기는 내 미래를 보았다. 걱정도 없고 근심도 없이 시냇물같이 흘러가는 내 노후를... 대박이야!

 

자정을 넘기자 어김없이 들려오는 쇳소리에 나는 조용히 문밖을 나섰다. 나는 머리끝에서 발까지 시꺼먼 옷을 입고 거리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곱창집 사장님을 몰래 따라다녔다.

 

이상타... 분명 이근처일텐데... 이상타...’

 

사장님은 전봇대나 건물의 뒤편을 살피며 계속 중얼거렸다. 내 추측으로 보건데 술에 취해 전봇대나 건물 뒤편에 노상방뇨를 하다 반지를 흘렸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반지를 찾아 떠난 원정은 동이 막 트기 시작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반지는 찾지 못했지만 수확은 있었다. 노상방뇨를 할 만한 곳을 뒤져볼 것 그리고 동선이었다.

 

해가 뜨고 가게들이 문이 열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거금을 들여 금속탐지기를 사왔다. 밤새 동네를 돌아다니고 저멀리 금속탐지기까지 사러 다녀왔건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또렷했다. 나는 침대에 누운지 2시간 만에 잠에 깨 금속탐지기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평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뒤져보니 동네 곳곳에서 별에 별것들이 다 나왔다. 10원짜리 동전부터 500원짜리까지... 4시간만에 만원이 조금 넘게 동전을 주웠다. 게다가 공사장 근처에는 쓰다 남은 동 파이프나 구리, 철사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모아서 근처 고물상에 파니 생각보다 수입이 짭잘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낮에는 동전이나 고물들을 찾으며 돌아다녔고 밤에는 사장님을 몰래 따라 다닌 지 3달이 지났다. 수입은 생각보다 괜찮았으므로 나는 집세와 생활비의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루는 매일같이 자정만 넘기면 들리던 쇳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왜지? 사장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다음날 나는 곱창집을 찾았다. 가게 문은 닫혀있었다.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어느 날 보니 곱창집은 떡볶이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퀭한 눈으로 한동안 곱창집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사장님은 반지를 찾으신 걸까? 반지를 팔고 어디 좋은데 가서 평온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걸까? 알 길이 없었다.

 

돌아가는 길, 은행에 들러 그날 팔아치운 고물들 대신 받은 돈을 입금했다. 통장을 확인하니 이대로만 간다면 큰 돈은 아니지만 먹고 살 정도는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어느세 40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이자 나는 아예 고물상을 차렸고 폐타이어나 기타 잡동사니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회사도 차렸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그동안 결혼도 하고 떡두꺼비 같은 애들도 생겼다. 아내는 작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애들은 결혼해 각자의 길을 떠났다. 나는 그토록 꿈꾸던 안정된 노후를 이루었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는 아주 오랫동안 메꿔지지 않던 빈자리가 나를 계속 괴롭혔다.

 

자정이 지났다. 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커멓게 차려입고 한손에는 금속탐지기를 들고 밖으로 향했다. 허리는 쑤시고 무릎은 삐그덕 거렸다. 하지만 밖으로 나오니 환한 보름달이 내 새로운 여정을 밝혀주었다.

 

사장님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후기-


얼마전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처남이 만수르와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못들은 척했으나 속으로 '나도...' 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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