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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공포02 <소설 6월10일>
게시물ID : panic_985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2
조회수 : 52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19 21: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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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2. 1983년 서울대학교 입학식
 

서울대학교 정문 교문 위로 <1983년도 입학식> 글자가 쓰여진 대형 현수막이 관악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꽃샘 추위에 사람들이 동동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는데 고급 외제 차량 한 대가 교문을 통과하고 있다. 거기엔 서울대 영문학과에 입학한 최지혜와 그의 부모가 타고 있다. 입학식이 끝나고 신입생들이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가족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처럼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의 웃음과 가족들의 즐거움이 사진기 셔터 소리와 함께 끊이지 않고 들려 온다. 그런데 아크로폴리스 광장 주변에는 누군가를 감시하는 눈동자들이 번뜩거리고 있다. 사복형사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관악산 매서운 바람이 아크로 폴리스 광장을 휩쓸고 지나갈 때 학생회관 건물에서 한 학생이 메가폰 사이렌을 울리며 천천히 걸어 나온다. 이게 신호인 양, 도서관 건물과 대학 본관 건물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이 유인물을 하늘 위로 힘차게 뿌리며 밖으로 뛰어 나온다. 갱지에 등사기로 인쇄된 반정부 내용이 담긴 유인물이다.
광주학살 진상규명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
메가폰을 통해 시위 주동자 학생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는 한순간에 시위주동자와 시위 학생들이 몰려와 구호를 함께 외친다. 입학 기념촬영을 하던 신입생과 가족들은 갑자기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깜짝 놀란다. 이런 시위대를 기다렸다는 듯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사전 배치되어 있던 사복형사들이 다가간다. 사복체포조들이 시위 주동자와 시위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하며 체포하기 시작한다. 연행되는 시위주동자를 지켜 보는 신입생과 가족들의 눈동자가 두려움에 커진다. 반정부 시위가 끝났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이 새끼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뭔 개지랄들이야.”
최지혜의 아버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유인물을 구둣발로 으깨듯이 짓밟으며 욕을 해댄다. 쌍소리를 해대는 아버지 옆에 최지혜가 서 있다. 최지혜는 방금 벌어진 상황이 너무나 무서워 손까지 벌벌 떨고 있다. 그 바로 옆에는 법학과에 입학한 이정훈이라는 학생이 여수에서 올라온 가족들과 함께 있다. 이정훈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유인물을 주워 읽으려 한다. 그걸 본 이정훈의 아버지가 유인물을 뺏아서 손으로 구겨버린다.
안 돼! 정훈아!”
이정훈의 어머니도 자기 아들을 보호하듯 양손을 잡는다. 가족들 모두가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서 있는데 이정훈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피식 웃는다.
엄마, 밥 먹으러 가요.”
그러자 어머니가 안심이 되는 듯 아들의 손을 놓아준다. 여수에서 고등학교 마친 이정훈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다. 수 많은 옥답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대기도 했는데 그 바람에 이정훈의 아버지는 제대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관악산을 등지고 서울대학교 정문으로 뚜벅뚜벅 걸어 내려가는 이정훈의 가족들, 그 옆을 고급 외제차가 속도를 내며 지나간다. 그 차 안에서 최지혜 아버지가 자기 딸에게 다짐을 받듯 언성을 높인다.
지혜야, 데모는 가난한 놈들이 사회에 불만을 품고 하는 거야, 너는 절대 데모하면 안 돼! 그 놈들은 빨갱이들이야, 빨갱이, 자기가 노력하면 돈을 벌고 잘 살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게으르고 무식한 놈들이 자기들도 뭐가 되어보겠다고 하는 짓거리야. 알겠지, 절대 데모하면 안 돼.”
아버지의 강요에 아까 벌어진 상황이 무서운 최지혜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한다.
우리 지혜는 똑똑해서 데모 같은 거 안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인자하게 말하자 아버지가 걱정이 되는지 한마디 더 한다.
지혜야, 너 초등학교 때 테레비에서 만화영화 보고 울던 거 기억하지?”
지혜가 아버지가 얘기가 뭔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한다.
파트라슈라는 개인지, 할아버지랑 손자가 키우던 개 이야기 있잖아?”
아아~ 프란다스의 개요.”
아버지의 얘기에 최지혜가 기억을 해낸다.
그 만화를 보면서 니가 울고 있어서 아빠가 그때 한 말 기억나?”
최지혜가 기억 안 난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개를 키우던 할아버지랑 손자가 돈이 없어서 쫓겨날 때 부자들이 많이 갖고 있는 빵을 나눠주면 안 쫓겨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니가 울었잖아?
맞아요. 그때 우리 지혜가 펑펑 울면서 빵을 같이 나눠 먹으면 좋을 텐데 했지요.”
아버지의 기억에 어머니가 기억을 더해준다. 어머니는 그런 딸이 대견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러나 아버지는 질책을 한다.
지혜야! 다 자기가 노력 안 해서 가난하게 사는 거다. 일을 열심히 하면 다 잘 사는 게 이 땅이다. 너처럼 나약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겠니?”
아버지의 얘기에 최지혜가 대답대신 입술을 살짝 깨문다.
 

서울대학교 입학식을 마친 신입생 가족들이 신림 사거리에서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고 있다. 이정훈 가족들은 엄청나게 많은 가게 간판들 그리고 쉴새없이 오고가는 사람들 틈에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오늘 정훈이 입학식 기념으로 엄마가 점심 살게.”
이정훈의 어머니가 앞서 걸으며 식당을 찾는데 신림 사거리에 정차해 있는 전투경찰 버스를 발견한다. 버스 유리창마다 철망을 씌워놓은 전투경찰 버스 앞뒤에서 전투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경계를 서고 있다. 이정훈이 그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자 어머니가 그의 손을 스르르 잡아 당긴다.
중국집으로 이정훈의 가족들이 들어갔다. 이정훈 가족들이 자리잡은 옆 테이블에는 의예과에 입학한 학생의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말투로 보아 경상도에서 올라온 학생이다.
창식아, 전공은 뭘 할 낀데?”
아버지의 물음에 경상도에서 올라온 의예과 신입생이 바로 답한다.
외과요.”
와아?”
그냥 수술을 잘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 외과 의사 좋다. 아버지가 농사짓다가 어디 찢어지면 잘 좀 꿰매 줘야 한데이
아버지의 농담에 가족들이 화목하게 웃는다. 경상도 신입생 어머니가 자신은 고기를 먹지 않고 아들 밥 위에 계속 고기를 올려놓는다.
엄마도 좀 먹어요.”
나는 배부르다. 우리 아들 먹는 거만 봐도.”
그런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이정훈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세상 어머니들 마음은 다 똑같은 거 같다. 의학과 신입생의 외모는 자기 아버지를 닮아 농사꾼이다. 거기다 손이 두툼해서 벼는 잘 베겠는데 수술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정훈이 그런 장난기 어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의예과 학생 아버지의 목소리가 진지해진다.
창식아, 아버지가 너한테 신신당부할 게 있다
경상도 신입생의 아버지가 잠시 말을 멈추고 소주 한 잔을 들이킨다.
아까 데모하다가 끌려가는 학생 봤지, 그 뭔 꼴이냐?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다. 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의사가 돼서 그 좋은 기술로 가난한 사람도 공짜로 치료해주는 게 세상을 바꾸는 거다. 아버지 말 알겠제?”
아버지,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의예과는 공부가 할 게 너무 많아서 데모할 시간도 없대요.”
그런 아들이 대견스러운지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소주잔을 건넨다.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하는 기다. 니도 이제 대학생이 됐으니 한잔 받아라.”
아버지가 따라준 소주를 아들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술잔을 비운다.
 
* 1980년대 '대머리' 단어는 파쇼정권의 전두환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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