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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공포 06 <소설 6월10일>
게시물ID : panic_985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2
조회수 : 49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23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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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위를 주도하는 자 VS 시위를 진압하는 자
 

신촌로터리 근처, 사람들이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 오신 날, 스승의 날 등 기념할 날들이 많은 5월이기에, 선물을 사러 신촌 로터리에 있는 백화점이나 시장을 찾아 오기 때문이다. 노근하게 낮잠을 자기 딱 좋은 날씨, 전투경찰 버스 한 대가 신촌 로터리 한가운데가 자기 집 안방인 듯 퍼질러 있다. 그 옆에는 페퍼포그 가스 차량이 동반자로 서 있다.
신촌 로터리 고층 빌딩 옥상에서 누군가 이 지역 일대를 살피고 있다. 그의 손에는 망원경까지 들려있다. 말끔한 양복차림에 누가 봐도 대기업 엘리트 사원의 모습이다. 이정훈이다. 운동화에 캐쥬얼 복장 차림이면 무조건 검문하는 전투경찰들의 검문검색을 피하고자 이정훈이 정장차림의 회사원으로 변장했다. 가두시위 전술 을 짜기 위해 여기에 왔다. 시위 장소를 사전 답사하기 위해서다. A4 용지를 꺼내 신촌 로터리 약도를 그리고 있다. 검은색 모나미 볼펜으로 그리는 약도이지만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신촌지역을 유심히 지켜보며 이정훈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법학과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친구 중에 법전을 읽으면 책 내용이 사진기로 찍은 것처럼 머리 속으로 들어온다는 애들이 있다. 그것처럼 내게는 시위할 지역이 사진처럼 촬영되어 내 머릿속에 기억된다
옥상에서 내려온 이정훈이 신촌 로터리 일대를 느긋하게 걸으며 주위를 살펴본다.
“*동은 여기 목마 레코드 숍 앞에서 뜨고 *PC는 그레이스 백화점 쪽에서 들고 나오고 *CC는 길 건너편 시장에 숨어 있다가…….”
 

* : 주동
* PC(Placard) : 현수막 (플래카드 스펠링 고쳤음)
* CC(Combat Cell) : 전투소조
 

이정훈이 벌어질 가두시위 장면을 혼자 상상하며 걸어간다. 대학교 교내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달리 가두시위는 그 목적이 다르다. 전두환 정권의 반민중적 작태를 시민들에게 폭로하기 위해 학생들은 유인물을 전달하고 선전·선동을 한다. 그런 선전,선동 과정에서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이정훈이 택을 짜는 것이다.
이번 시위 퇴로는 서강대 방향으로 정했다. 전투경찰이 최루탄을 쏘고 사복 체포조들이 시위대를 연행하기 위해 달려올 때 쯤, 시위대는 해산해야 한다. 불필요하게 그들과 정면충돌해서 쓸데없는 희생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그 도망치는 방향 퇴로를 서강대 쪽으로 정해놓은 것이다. 거리 시위에 있어 중요한 건 퇴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면 진압하는 자들이나 시위하는 학생들 양방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주동자가 시위를 시작할 목마 레코드숍 안을 이정훈이 마지막 점검하듯 둘러본다. 레코드숍 매장은 넓어서 시위 주동자와 시위 주동자를 보호할 학생들이 함께 있기에도 편하다. 레코드판이나 카세트 테이프를 고르는 척 손님으로 위장하면 전경들의 검문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레코드숍 밖으로 설치된 스피커에서 가수 정수라의 ! 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작금의 조국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가사이지만 이정훈의 얼굴엔 어떤 표정 변화도 없다. 혹시라도 있을 검문에 자칫 흐트러진 모습이 발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정훈이 신촌역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 대각선 방향으로 나온다. 검문하는 전투경찰들이 21조로 서 있었지만, 구두까지 광을 내서 걷고 있는 이정훈은 무사통과다. 그리고 우산 속이라는 디스코텍 앞에 걸음을 멈춘다. 아직 낮 시간이라 영업을 하지 않아 출입구가 닫혀있다. 이정훈은 한번도 디스코텍에 가보지 않았다. 이정훈이 우산 속이라는 조명이 설치된 간판을 보면서 입술을 살짝 움직여 우산 속이라는 단어를 외운다.
신촌 로터리 시위지역 답사를 끝내고 버스를 타려는데 이정훈의 눈에 로터리 한복판에 배치된 전투경찰 버스 앞에서 누군가에게 야단맞고 있는 전투경찰의 모습이 보인다. 상관인 듯한 사람이 부하 전투경찰한테 뭐라고 야단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정훈이 다가온 버스에 몸을 싣는다.
 

- *** -
 

, 이 새끼들아! 뻗치기, 이따위로 할 거야?”
전투경찰 기동타격대 소대장 최성식이 신촌로터리 한복판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전투경찰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다. 지난번 치안본부 시위진압 특별 강의 때 답변을 잘해서 강사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소대장이다. 최성식이 말한 뻗치기란 전투경찰 버스 앞뒤로 방패를 들고 서 있는 경계근무 형태를 말하는 거다. 일명 뻗치기 근무다.
니들이 지금 신촌에 구경나온 관광객이야? 여긴 운동권 새끼들과 전쟁이 벌어지는 전쟁터야. 전쟁터! 그런데 뻗치기를 하면서 졸고 있어?”
최성식이 들고 있던 지휘 막대기로 바로 앞의 전경 헬밋을 내리치려다가 주위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고 참는다. 분을 삭히지 못한 최성식이 전투경찰 버스 안으로 올라간다. 그러자 버스 안에 있던 전투경찰들이 긴장하며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똑바로 앉는다. 최성식이 버스 통로에 서서 일장훈시를 한다.
똑바로 들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부 극렬좌경 학생들은 대통령을 우리의 손으로 직접 뽑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한국에서는 때 이른 위험한 발상이다.”
최성식이 자기 얘기를 잘 경청하는지 대원들 얼굴을 하나하나 표독스럽게 살펴보고 말을 이어간다.
특히 분단 상황에서 북한의 대남 전략 정책에 동조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를 극도로 혼란스럽게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거리에서 데모를 하는거다. 특히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린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도 모자를 판에, 빨갱이 새끼들이 거리까지 나와서 데모질을 해대고 있다. 이런데도 우리의 정신 상태가 썩었다. 군기가 완전히 빠져있다. 내가 한 바퀴 돌고 올 때까지 부동자세로 서 있어. 실시!”
전경들이 후다닥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한다. 최성식이 한 손에는 무전기를 들고 사복 체포조 2명을 대동하고 신촌 일대를 점검한다. 이들이 지나가자 시민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준다. 걷던 최성식의 발걸음이 멈춘다. 멈춘 곳은 신촌 로터리 일대가 잘 보이는 어느 건물 앞 이다. 이 건물이 방금 이정훈이 올라갔던 곳이다. 이 빌딩 옥상에서 최성식도 이정훈처럼 망원경을 꺼내 신촌일대를 살펴보고 있다.
시위대가 숨어있을 만한 골목은바로 저기 시장 골목통이야.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장은 운동권 새끼들이 숨어있기에 최적의 장소이지.”
최성식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혼자 말하고 있다.
이 새끼들이 숨어있을 만한 장소에 우리 병력이 미리 배치되어 사전검문으로 이들을 체포해야 한다. 그리고 반정부 구호가 적힌 현수막은 주로 고가도로나 육교 난간에 펼치는데그렇지, 저기 현수막 걸기 딱 좋은 육교가 있네.”
최성식이 정답을 발견한 듯 혼자 히죽거리며 옆에 있는 사복 체포조에게 한마디 덧붙인다.
여기 신촌은 오거리여서 시위대가 도망칠 곳이 너무 많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소대장님 그러면 처음부터 우리가 아예 오거리를 다 막아 버리죠?”
아냐, 아냐 그건 안 돼. 전면봉쇄가 최선은 아니야. 진압의 원칙은 퇴로야. 퇴로를 막아버리면 우리나 학생 놈들이나 싸움이 커져. 쥐도 수세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퇴로 한 곳은 열어줘야 해.”
최성식의 진압에 대한 탁월한 설명에 사복 체포조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건물에서 내려온 최성식이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목마 레코드숍바깥에 있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정수라의 ! 대한민국노래를 들은 것이다. 여기가 시위 주동자가 나올 곳이다. 목마 레코드숍 앞에서 아! 대한민국 노래를 다 듣고 최성식이 감탄을 한다.
정말 감동적인 노래 가사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라는 노래 가사에 심취한 최성식이 가사를 흥얼거린다 최성식이 신촌 지하철역 계단으로 내려간다. 시위 전술 택을 짜는 이정훈의 행보와 똑같은 코스다. 최성식이 옆에 있는 사복체포조에게 자기 얘기가 맞는지 물어본다
지하철역은 나오는 곳이 뻔해서 검문하기가 너무 좋다. 하지만 이건 반대로 생각하면 운동권 애들이 지하철로는 이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버스로 집결하면 우리의 배치상황을 보고 정류장에 내리지 않고 그냥 통과할 수도 있지만, 지하철은 밖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혼자 묻고 대답하는 최성식에게 사복체포조들이 뭐라 뾰족이 할 말이 없다. 최성식이 지하철역을 나와 우산 속이라는 디스코텍 간판을 보고 그 앞에 멈춰 선다.
어떤 새끼들은 데모하느라 정신없고 어떤 새끼들은 노느라 정신없고 참으로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는지…….”
대낮이라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디스코텍 정문을 최성식이 괜히 혼자 흥분해서 노려보고 있다.
 
 
* ‘대머리단어는 1980년대 파쇼정권의 전두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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