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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공포 07 <소설 6월10일>
게시물ID : panic_985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2
조회수 : 5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24 08: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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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교통체증을 이용한 시위전술 <>을 짜다
 

서울 시내 중심가, 퇴계로5가에는 중부 세무서가 있고 바로 옆에는 아스토리아 호텔이 있다. 그 곳에 군부대가 주둔해 있는데 수도경비사령부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은 대한극장인데 바로 옆으로 애완견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저녁 7시 퇴근 무렵이라 직장인들이 건물에서 우르르 나오고 있다. 근처 인쇄소 공장은 퇴근시간에도 쉬지 않고 인쇄기계가 돌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 틈에 이정훈과 그의 동료가 보인다. 내일 있을 대한극장 앞 거리시위를 주동할 학생이다.
한국에서 제일 큰 극장인 대한극장 앞 도로는 시위하기 좋은 장소야, 거기다가 세운상가로 연결되는 진양상가가 바로 길 건너편에 있어서 학생들이 도망가기도 좋고.”
이정훈이 대한극장 외벽에 걸려있는 겨울 나그네영화 간판을 보면서 시위 주동자에게 말을 건넨다. 시위 주동자는 대한극장 길 건너편에 있는 극동극장을 쳐다보며 되받아 말한다.
길 건너 저쪽 골목 안에 극장이 있는데 대한극장에서 영화 상영이 종료되면 바로 저기 극동극장으로 넘어가, 2류 극장으로……
오우, 그런 거 까지 어떻게 알고 있었어?“
정훈아, 극장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대한극장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척하면서 이정훈과 시위주동자가 주위를 둘러본다.
시위가 발생하면 저쪽 지하차도 너머 명동 쪽에 대기 중인 전경버스가 이동해 올 거야.”
명동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대략 몇 분이나 걸릴까?”
이게 이번 시위의 묘미야.”
묘미?”
이정훈의 묘미라는 단어에 시위 주동자는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보통은 닭장차가 5분 내로 도착할 텐데 퇴근시간 러시아워에 걸리면 15분도 더 걸리더라고 봐야지. 내가 어제 퇴근시간에 맞춰 여기까지 버스로 한 정거장 오는데 15분이 걸렸어.”
너 진짜 실사구시의 실학자 같다.”
이정훈의 꼼꼼한 시위전술 에 시위 주동자가 혀를 내두른다.
그래서 말이야, 시위 동 뜨는 시간을 퇴근시간에 맞추자. 그리고 내가 대한극장 상영 시간표를 보니깐 730분에 영화가 있더라고, 그 시간 바로 10분 전 칠백이십(720)에 동이 뜨는거야, 그러면 영화 보러온 사람들과 시위대가 합쳐져서 검문검색 피하기도 쉬울 거야.”
시위 전술을 치밀하게 펼치는 이정훈을 시위 주동자가 이젠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렇다면 시위를 15분 이상 할 수 있다는 얘기네?”
시위 주동자가 만족한 듯 이정훈의 어깨를 툭 치며 다음 말을 한다.
내가 *피를 뿌리면서 동을 뜨는 건 어떨까?”
누가 들으면 드라큘라 백작인 줄 알겠어, 피를 뿌리다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야.”
 

* 피를 뿌리며 동을 뜨다 : (페이퍼, 유인물을 의미), 동이 뜨다 (시위 주동을 하다)
 

둘이 대화를 끝내고 시위 주동자가 대한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간판을 쳐다보며 말한다.
정훈아, 겨울 나그네 관객 수가 20만 명이라는데 우리도 봤으면 30만은 됐을 거야.”
우와! 우리 주동자께서 별걸 다 알고 있어요. 당분간 사회랑 격리될 텐데..... 영화 볼까?”
이정훈의 제안에 시위주동자가 긍정도 부정도 아닌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이정훈이 티켓을 끊으러 갔다가 바로 돌아온다.
겨울 나그네 전석 매진이래.”
잘됐어. 영화는 무슨……. 그래서 저 길 건너편 극동극장이 장사가 되는 거야.”
그러네, 일류 극장인 대한극장에 영화 보러 왔다가 표가 매진이면 뭐든 봐야하기 때문에 이류인 극동극장에서 다른 영화를 보는 거구나
정답! 정훈이 니 겨울 나그네 보고 나한테 꼭 스토리 얘기해주라?”
글쎄, 그런 일이 있을까? 근데 영화에 대해 왜 이렇게 잘 알어?”
사실 내가 어릴 때 꿈이 영화감독이었어.”
시위 주동자가 자기 꿈을 말한다.
우와, 이래서 영화에 대해 빠삭했구먼, 근데 경제학 전공생이 영화 만들면 딱딱하지 않을까? 암튼 *빵에 가면 책 볼 일, 많으니 영화 관련 책도 지혜한테 많이 넣어주라고 할게.”
 

* : 교도소라는 은어
 

고맙다. 정훈이는 뭐가 되고 싶었어?”
나는 말이야, 사실 고등학교 때 밀레 같은 화가가 되고 싶었어.”
그 꿈을 미뤄뒀네?”
그렇지 않아, 나는 시위장소 택을 짜면서 그림도 잘 그리고 있어. 미룬 게 아니라 지금 그 꿈을 실현하고 있는 거야.”
아이고! 부러워 죽겠다~~”
시위 주동자가 깔깔거리며 웃다가 사거리에서 교통 정리를 하고 있는 수도경비 사령부 소속 헌병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나저나 저 군인은 어떻게 하지?”
뭘 어떡해?”
가투가 벌어지면 쟤가 신고하지 않을까?”
당연히 하겠지. 그렇다고 저 안에 있는 수도경비 사령부 군인들이 출동하면 그때는 혁명이겠지? 그러니깐 쟤들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이정훈이 시위주동자의 자취방이 있는 봉천동 달동네로 함께 올라가고 있다. 집 근처에 슈퍼마켓이 보인다. 이정훈이 시위 주동자에게 묻는다.
내일 아침밥은?”
없는데.”
! 자취하는 애가 어떻게 밥이 없냐? 당분간 사제 밥 못 먹을 테니깐.....”
이정훈이 슈퍼마켓에서 꽁치 통조림이랑 포장 김치를 사고 있을 때, 슈퍼마켓 안에 있는 TV에서 KBS 유머 1번지 코미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코너에서 개그맨 김형곤이 잘 돼야 될 텐데라는 유행어를 구사하고 있다. 대머리 전두환을 기업 회장에 빗댄 시사 풍자 코미디다. 슈퍼마켓 주인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같이 보고 있다. 이정훈과 시위주동자도 TV를 보다가 김형곤이 잘돼야 될텐데 하면서 대머리 전두환을 연상케하는 행동을 하자 둘이 동시에 낄낄거리며 웃는다. 그러다가 이정훈과 시위 주동자가 서로를 보고 웃음을 멈췄다가 다시 웃음을 터뜨린다.
같은 시간, 이정훈의 서클 동료인 최지혜의 집, 마당에는 연못까지 있다. 평창동에 있는 부유한 주택이다. 거실에서 최지혜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TV를 보다가 김형곤의 개그에 어머니가 웃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니,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저런 딴따라 새끼까지 대통령 흉내를 내고 지랄이야.”
아버지가 TV를 향해 벌컥 화를 내자 어머니가 웃음을 멈추고 말한다.
그냥 웃자고 하는 건데요.”
이게 지금 웃자고 하는 거야?! 오냐 오냐 하면 애를 망친다고 나라에서 이렇게 봐주니깐 학생 노무 새끼들 데모질이 더 극렬해지고 저런 놈들까지 대통령을 갖고 노는 거잖아?!”
아버지가 핏대를 세우고 있을 때 개 짖는 소리가 마당에서 난다. 최지혜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같이 저녁 한 지가 오래됐다?”
뼈있는 아버지 물음에 최지혜가 우물쭈물하자, 어머니가 대신 답변해준다.
지혜가 이제 4학년이라 취직 준비하느라 그렇죠. 밥은 먹었어?”
네에.”
지혜야, 아빠가 미국 수출 건으로 미국 영사랑 엊그제 점심을 먹었는데 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직원을 뽑는다더라. 거기 어떠니? 아빠가 힘쓰면 될 거 같은데?”
글쎄요? 고민해볼게요
최지혜가 답변을 흐리고 2층 계단으로 올라가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커다란 대형 책꽂이가 방 한구석에 있다. 거기에는 수 많은 책들이 꽂혀있다. 최지혜가 가방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쉰다.
미 대사관이라…….”
다음날, 저녁시간 대한극장 매표소 앞에 관람객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겨울 나그네영화를 보러온 사람들이다. 영화 관람이 목적인 사람들은 표정이 밝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오늘 거리시위를 하러 온 학생들은 애써 영화 홍보 전단을 읽는 척하며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보고 있다. 이정훈이 짜놓은 가두시위 전술에 따라 칠백이십(720)에 동이 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매표소 바로 옆쪽에 오늘 시위 주동자가 있다. 시위 주동자가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하는데 40대 중반의 남자가 다가온다. 혹시 이 사람 사복경찰 아닐까? 하고 시위 주동자가 긴장한다. 다가온 남자가 시위 주동자에게 은밀하게 얘기한다. 그런데 시위 주동자가 긴장해서 이 남자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저한테 뭐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암표 필요하냐고? 오늘 겨울 나그네 전석 매진이야. 표없어.”
시위주동자에게 다가온 사람은 형사가 아니라 암표상이었다. 극도의 긴장감이 풀리고 시위주동자 얼굴에 미소까지 번진다.
아저씨, 오늘은 필요 없을 거 같네요. 다음에 꼭 사서 볼게요.”
시위 주동자가 암표상에게 말을 끝내고 점퍼 안에 감춰놨던 유인물을 하늘 높이 힘차게 뿌린다. 시위 시작을 알리는 거다. 어두워지려는 하늘에서 유인물이 꽃잎처럼 휘날린다. 암표상은 지금 이게 무슨 행위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뿌려진 유인물이 땅바닥에 닿기 전에 시위 주동자가 구호를 외친다.
광주학살 자행한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
720분 시간에 맞춰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며 스크럼을 짜기 시작한다. 대한극장 양쪽 차선의 차량통행을 각목 든 남학생들이 막아선다. 시위 주동자가 시민들을 향해 메가폰으로 전두환 정권의 반민중성에 대해 선전·선동을 한다.
애국시민 여러분! 전두환 정권은 805월 광주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런 전두환이가 내년 87년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고 다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합니다. 이런 살인마 정권에게 우리의 삶을 다시 맡겨야 하겠습니까?!”
열변을 토해내는 시위 주동자의 사자후에 시민들의 반응이 나타난다. 박수를 쳐주는 시민들, 유인물을 열심히 읽고 있는 시민들이 시위 주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정훈의 예상대로 시위대가 양쪽 차로를 막자, 교통체증이 더 심해지면서 15분이 지났는데도 전투경찰 버스가 대한극장 쪽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사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헌병이 시위 상황을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다. 시위 주동자가 손을 내어 뻗어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를 외치자 몇몇 시민들은 함께 손을 들어 구호를 따라 외친다. 마침내 명동 쪽에서 전투경찰 수송버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위 주동자를 보호하는 학생들이 전경 버스가 나타난 걸 시위 주동자에게 알려준다.
, 애국시민 여러분! 우리 함께 힘을 모아 전두환 정권을 타도하고 평등한 세상을 건설합시다.감사합니다
시위 주동자가 다급히 말을 마치자 남학생들이 화염병에 불을 붙이고 다가오는 전투경찰 버스를 향해 먼저 화염병을 던진다. 수십 개의 화염병이 날아가 도로 바닥을 금세 불바다로 만든다. 전투경찰들이 최루탄을 아직 발사하지 않았지만 시위 주동자가 시위대에게 해산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시위대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사복 체포조가 시위대에 뛰어들면 쫓기듯이 도망치던 예전 시위 형태와 달리 이번 시위는 교통체증을 이용하여 장시간 동안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이날, 시위 주동자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잡히지 않았다.
 

 

* ‘대머리단어는 1980년대 파쇼정권의 전두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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