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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공포13 <소설6월10일>
게시물ID : panic_985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1
조회수 : 45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30 12: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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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고교동창인 학생운동 리더, 전투경찰 소대장 그리고 백골단
 
 

1980, 찬 바람이 눈과 함께 불어오기 시작하는 겨울 문턱, 여수의 어느 남자 고등학교
1학년 교실의 쉬는 시간이다. 이 학급의 반장인 이정훈이 급우들과 얘기 나누고 있는데 혼자만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 지금 전투경찰 소대장이 된 최성식이다. 김용수는 교실 뒤쪽에서 불량스러워 보이는 급우들과 동전 따먹기 일명 짤짤이를 하고 있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며 담임선생이 들어온다. 학생들이 부리나케 자기 자리에 앉는다. 담임선생과 함께 들어온 건장한 체격의 학생 3명이 보인다. 담임선생이 교탁 위에 올라서자 반장인 이정훈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경례!”
학생들이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를 한다. 담임선생이 자기 옆에 서 있는 학생들을 소개한다.
서울에서 전학 온 학생들이다. 아버지들이 우리 여수산업단지 공장장으로 발령받아 오셨다. 서울 애들한테 배울 게 많으니 다들 친하게 지내라!”
전학생들은 거만하게 고개만 까닥여 인사를 한다.
이날 이후로 서울에서 전학 온 학생들은 등하교도 자가용으로 하면서 이 학급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최성식은 의도적으로 전학생들과 어울리려 하지만 전학생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되려 전학생들은 반장 이정훈에게 다가가지만, 이정훈은 이들과 친해질 생각이 없다. 다음 수업은 체육 시간이라 학생들이 교실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는다. 그중에 가난한 학생 한 명이 입고 있는 찢어져 꿰맨 내복을 보고 전학생 한명이 빈정거린다.
! 거지새끼도 아니고 옷이 그게 뭐냐.”
친구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창피를 당한 가난한 학생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이 때, 이정훈이 나선다.
거지새끼라니? 친구한테 해서는 안 될 말이야.”
이정훈이 정색을 하고 말하자 전학생이 잠시 움찔했다가 불량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이보세요, 반장님~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자기 공부나 계속 잘하세요.”
전학생의 빈정거림에 이정훈의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이건 남의 일이 아니야, 우리 반 모두에 대한 일이야. 친구한테 사과해.”
못하겠다면?”
빨리 사과해!”
니가 지금 반장에 전교 1등이라고 이러는거 같은데…….”
이정훈이 전학생에게 거의 밀착하듯 다가가서 세게 말한다.
빨리 사과해!”
어쭈?! 이 새끼, 이러다 사람 치겠다?”
전학생 옆으로 서울에서 전학 온 나머지 2명이 합세한다. 마치 31로 이정훈을 때리겠다는 행동이다. 그 순간 김용수가 이들 사이를 가로막는다.
! 하지 마! 친구끼리
김용수가 전학생들을 막아서며 이정훈을 보호한다. 근육질의 깡이 있어 보이는 김용수의 등장에 전학생들이 주춤하며 물러선다. 그러다가 한마디 빈정거린다.
~ 이래서 광주 사태 때 여기도 확 쓸어버렸어야 했는데……. ! 나가서 햄버거나 먹자. 같이 갈 사람 나와.”
전학생들의 뒤를 최성식과 몇몇 학생들이 쫄래쫄래 쫓아나간다. 교실에 남아있는 학생들 얼굴이 굳어진다. 이정훈이 분노에 찬 눈빛으로 친구들을 둘러본다. 모두가 이정훈의 눈빛만 쳐다보고 있다. 특히 찢어진 내복을 입고 있던 학생은 자기 때문에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해서 미안함이 얼굴에 묻어난다.
손을 호주머니에 넣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매서운 날씨이지만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전학생들과 최성식 등이 축구공을 차고 있을 때 운동장 한쪽 구석 나무 벤치에 이정훈과 몇몇 학생들이 모여 있다. 거기에는 김용수도 있다. 이정훈의 비장하게 친구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우리가 해결하자.”
이정훈의 제안에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정훈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인다. 이정훈이 공책에 볼펜으로 여수 시내 중심가 약도를 그린다. 인쇄된 지도만큼 정교하게 그리면서 설명을 한다.
서울 놈들이 잘 가는 곳이 시내 뉴욕제과점이야, 제과점에서 나오면 담배를 피려고 골목 안으로 들어갈 거야. 우리는 길 건너편 당구장에서 이걸 보고 있을거야. 그리고 함께 움직이자고
이정훈 얘기가 끝나자 김용수가 약간 겁을 먹으며 묻는다.
우리 얼굴을 당연히 알 텐데?”
걱정 마, 겨울이라 해가 일찍 떨어질 거고 우리는 다 교련복으로 갈아입는 거야, 교련복에 있는 명찰이랑 학교 마크 다 떼고 민방위 훈련할 때 쓰던 마스크 있지? 다들 갖고 와.”
이정훈의 추가 설명에 친구들 표정이 조금 안심스러워진다. 계속해서 이정훈이 지시를 한다.
골목 안에 다섯 명이 미리 숨어있고 골목 밖에서 내가 들어가면서 신호할게. 그러면 골목 안과 밖에서 동시에 그놈들을 공격하는 거야.”
이정훈과 작전을 짜던 친구들이 고개를 들어 축구하는 전학생들을 쳐다본다. 전학생들이 세상 걱정 없이 축구를 하고 있고 그들 옆에서 최성식이 공만 잡았다 하면 열심히 전학생들에게 패스하고 있다.
성식이는 어떻게 하지?”
저런 놈들과 어울리면 똑같은 놈이야.”
이정훈이 담담하게 거사의 결론을 내린다.
이날, 학교 수업이 끝나고 이정훈이 여수 시내 중심가를 걸어가고 있다. 뉴욕제과점을 중심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삼거리 초입에 파출소가 있지만, 뉴욕제과점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거사 이후 파출소 방향으로만 도망가지 않으면 된다..
그렇다면 도주로는 파출소 반대쪽이야.’
이정훈이 퇴로를 정하고 뉴욕제과점 길 건너편 건물 2층 당구장으로 올라간다. 당구장에는 교복을 입고 당구를 치는 학생들도 있다. 이정훈이 마치 당구 치러온 친구를 찾듯이 당구장 내부도 살펴보고 창밖으로 길 건너편을 유심히 보며 혼자 생각한다.
골목이 꺾여 있어 골목 안에서 싸움이 벌어져도 사람들이 볼 수 없다. 싸우기 아주 적당한 곳이야.’
그날 저녁, 여수 시내 변두리 판잣집, 김용수가 살고 있는 곳이다.. 여러세대가 화장실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판자촌 단칸방에서 김용수가 교련복의 명찰과 학교 마크를 바늘로 떼고 있다. 그리고 흰색 마스크를 교련복 주머니에 넣는다. 방 한쪽 벽면에는 아버지 영정사진이 보인다. 그 밑에 싸인펜으로 김용수가 쓴 하면 된다.라는 문구가 부착되어 있다. 김용수가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책상에 엎드려 코를 골며 잔다.
자정이 넘은 시간, 김용수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온다. 머리에 이고 있던 빨간 고무대야를 힘들게 내려놓고 행상의 하루를 마친다. 무릎 관절이 결리는지 손으로 주무르며 방문을 연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들을 어머니가 깨운다.
용수야! 편하게 자! 어여 자!”
김용수가 비몽사몽 간에 일어난다.
어머니 왔어요? 날도 추운데 빨리 들어오시지…….”
그려 알았어. 여기 누워
어머니가 이불을 펴자마자 김용수가 쓰러지듯 눕는다. 어머니가 방바닥에 있는 교련복 명찰을 발견한다. 명찰이 떨어진 줄 알고 아들의 교련복에 바느질로 다시 부착해준다. 그리고 교련복을 아들 가방 사이에 넣어준다.
그다음 날, 학교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희희덕거리며 떠들고 있는 전학생들, 그 옆에 최성식이 보인다. 김용수는 긴장된 얼굴로 그들을 슬쩍슬쩍 쳐다보는데 이정훈은 무표정으로 책만 보고 있다.
학교수업이 다 끝나고 이정훈과 학생들이 당구장 건물 2층에서 길 건너편 뉴욕제과점 출입구를 바라보고 있다. 눈발이 날린다. 그걸 보고 김용수가 자그마한 소리로 말한다.
눈 온다.”
잘됐다. 눈발이 시야를 가릴 거야. 그러면 우리가 누군지 더 모를 거야.”
이정훈이 내리는 눈에 손을 갖다대며 말한다.
하늘도 악당들을 무찌르라고 우리를 돕는구나.”
김용수가 맞장구를 친다.
드디어 전학생 3명이 제과점에서 나온다. 그 뒤에 최성식이 보인다.
다들 교련복으로 갈아입어.”
이정훈의 명령에 친구들이 교복을 벗고 교련복으로 갈아입는다. 다들 명찰을 떼었는데 김용수 교련복에만 명찰이 붙어있다. 어머니가 어제 밤에 다시 부착한 것이다. 다들 긴장해서 김용수 교련복에 있는 명찰을 확인할 틈이 없다.
마스크 쓰고
이정훈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며 짧게 말한다.
나가자!”
이 한마디에 학생들이 신문지로 포장한 뭔가를 두 개씩 들고 이정훈의 뒤를 따라 내려간다.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이정훈이 길을 건너가면서 신문지 포장지를 뜯자 그 안에는 다 타버린 연탄이 보인다. 골목 안에서 전학생들이 담배를 피고 있는데 최성식은 담배도 피지 않고 있다.
, 너도 펴.”
전학생 하나가 최성식에게 담배를 내밀자 최성식이 양손을 저으며 거절한다.
됐어. 나는 괜찮아.”
, 새끼 쫌스럽게 담배도 안 피면서 왜 우릴 쫓아다녀.”
전학생의 힐책에 최성식이 뭐라 할 말이 없어 쭈뼛쭈뼛하고 있을 때 골목 밖에서 누군가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어둠 속에서 거세게 내리는 눈발에 섞인 힘찬 소리다.
들어갑니다!”
이정훈이 보내는 신호에 골목 안에 미리 숨어있던 친구들 다섯 명이 긴장한다. 전학생과 최성식은 이게 뭔 소리지?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골목 안에 있던 학생들이 연탄재를 전학생과 최성식에게 던진다. 날아온 연탄재들이 정확하게 4명의 등을 강타한다. 전학생들과 최성식의 몸이 휘청거린다. 골목 안으로 들어온 이정훈이 친구를 거지새끼라고 말한 전학생의 얼굴을 향해 연탄을 던진다. 제대로 맞는다. 그 전학생은 바닥에 고꾸라진다. 양쪽에서 날아오는 연탄재를 맞은 전학생들과 최성식은 고개를 처박고 있고, 시야를 가리는 함박눈과 연탄재로 골목 안이 뿌옇게 변한다.
, 이제 그만!”
이정훈의 지시에 모두가 골목 밖으로 동시에 뛰어나간다. 이 순간, 이정훈에게 연탄재를 정통으로 맞아 쓰러졌던 전학생이 고개를 들어 한 명의 교련복에 부착된 명찰을 본다. 김용수라는 글자가 새겨진 명찰이다.
이정훈의 계획했던 대로 파출소 반대 방향으로 다들 뛰기 시작한다. 이정훈이 안심할 수 있는 거리에 도달하자 뛰는 속도를 줄이며 멈추고 마스크를 벗는다. 그러자 친구들도 마스크를 벗는다. 내리는 눈이 얼굴에 시원하게 와 닿는다. 이제 긴장감도 없고 얼굴에는 통쾌함이 번져나간다. 그러다가 이정훈이 걸음을 멈추고 김용수의 이름을 부른다.
용수야.”
김용수도 걸음을 멈춘다. 이정훈의 시선이 김용수 왼쪽 가슴으로 향한다. 김용수가 손으로 자기 왼쪽 가슴을 만져보고 화들짝 놀란다. 떼어낸 줄 알았던 명찰이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붙어있는 것이다. 모두의 얼굴에 근심이 저녁 어둠처럼 짙게 깔린다. 눈발이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쏟아붓는다.
 
* ‘대머리단어는 1980년대 파쇼정권의 전두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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