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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공포 19 <소설6월10일>
게시물ID : panic_986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3
조회수 : 4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07 17: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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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강제징집 당한 조교
 
 

전두환이 805월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지 1년이 지났다. 조교가 학내 시위를 주동을 했던 때다. 서울대학교 중앙 도서관 앞, 본관 건물을 비롯해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사복형사들이 배치되어있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이 보이는 중앙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조용히 공부하고 있다. 이때 책상에 앉아있던 법학과 조교가 손목시계를 보고 가방에서 밧줄을 꺼내 주위를 살핀다. 그리고 그 밧줄을 도서관 라디에이터에 묶는다. 조교가 묶인 밧줄을 도서관 창밖으로 내려뜨린다. 그제야 공부하던 학생들이 교내 시위의 시작을 알아챈다. 도서관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유인물을 나눠준다. 조교는 밧줄에 매달려 창밖으로 내려가며 구호를 외친다.
광주학살 자행한 전두환 정권 물러가라!”
이것을 신호로 도서관 앞, 본관 건물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학생들이 후다닥 모여들어 스크럼을 짠다. 학생들이 구호를 다급히 외친다.
광주학살 자행한 전두환 정권 물러가라!”
훈련된 사복형사들이 스크럼을 짜는 학생들을 연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서관 4층에서 법학과 조교가 밧줄을 타고 매달려 있는데 그 밧줄을 사복형사들이 위에서 흔들고 있다. 자칫하면 떨어져 죽을 수도 있는데……. 시위대는 해산되고 밧줄에 매달려 있던 법학과 조교는 끌어 올려져 바로 체포된다.
이날 시위 주동으로 관악경찰서에 끌려간 법학과 조교는 다음 날 아침 군 수송 트럭에 태워져 군입대 신체검사도 없이 강원도에 있는 군부대 7사단으로 끌려갔다. 시력으로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조교인데 현역병으로 그 부대에 배치된 것이다. 7사단 군부대 내무반에 조교가 서 있다. 잠시 후 내무반 문이 열리며 대위 계급장을 단 군인이 들어온다. 조교의 신상명세서를 훑어본 대위가 조교에게 존댓말을 쓴다.
우리 서울대생은 사회에서 외쳤던 요구사항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조교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다
말이 없으면 요구사항 없는 거로 알고 지금부터 옷을 벗습니다. 빤스까지 다 벗습니다. 실시!”
팬티까지 벗으라는 대위의 명령에 조교가 멈칫한다. 그러자 대위가 워커발로 조교의 가슴을 걷어찬다. 조교가 뒤로 훌러덩 자빠져 내무반 문까지 밀려가는데 이때 끼고 있던 안경이 떨어지며 렌즈가 깨진다. 내무반 문이 열리며 또 다른 군인 한 명이 들어온다. 계급은 중사인데 조교를 때린 대위가 예의를 갖춘다. 보안대 소속 중사이기 때문이다.
아이고 우리 중대장님 근무의욕이 너무 넘치세요. 애들 살살 다뤄주세요. 다 나라의 기둥이 될 청년인데요.”
보안대 중사가 말리자 조교는 눈물까지 날 뻔했다. 안경이 벗겨진 조교의 눈에 보안대 중사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
서울대학교 교수식당에 앉아있는 김영철과 조교, 조교가 코에 걸려 있는 안경을 위로 올려 쓴다. 김영철이 밥을 먹으며 조교에게 궁금한 것을 또 묻는다.
조교님 때, 강집(강제징집) 가서 의문사로 처리된 사람도 많죠?”
김영철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조교가 과거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기 싫은지 이야기의 화제를 돌린다.
그나저나 정훈이는 잘 지내고 있지?”
김영철이 답변을 안 한다. 왜냐면 조직 선배의 근황을 굳이 누군가에게 알려줘서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김영철이 왜 대답을 안하는지 눈치챈 조교가 더 이상 묻지 않고 계속 말을 한다.
정훈이는 내가 복학했을 때 우리 과 1학년이었는데 누가 봐도 똑똑하고 정의감이 넘치는 후배였지.”
조교가 식사를 마치고 커피까지 한잔 사주면서 김영철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준다.
이게 뭐예요?”
밥값으로 써. 불법 과외로 번 돈이야.
고맙습니다. 다음에 꼭 갚겠습니다.”
안 갚아도 돼.”
아닙니다, 조교님, 꼭 갚을 날이 올 겁니다.”
김영철과 조교가 따듯한 햇살을 등 뒤로 받으며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1986년 가을에 열리는 서울 아시안게임 개최를 알리는 애드벌룬이 서울 시내 곳곳에 띄워져 있다. 종로3가 청계천 세운상가 구름다리 위에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이정훈이다. 누군가를 여기서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이정훈은 30분 전에 미리 도착해서 혹시라도 있을 미행까지 확인했다.
구름다리 계단을 힘겹게 올라오며 이정훈을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소아마비 학생이 있다. 청계천 시위를 주동할 학생이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심하게 전다. 둘이 만난 이곳을 구름다리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서는 저작권 허락 없이 불법으로 복제된 음반, 소위 말하는 빽판과 도색잡지 동영상 테이프 등을 팔고 있다.
나랑 같이 청계천 일대를 한 바퀴 돌면 좋겠지만 내가 워낙 디테일하게 택을 잘 짜고 아예 지도까지 그려놓은 관계로 사전답사는 생략할게.”
이정훈이 소아마비 시위 주동자를 배려한 것이다.
이번 가투는 일요일에 하자고.”
일요일?”
전경들이랑 사복 체포조 백골단들은 일요일은 휴일이야. 그렇지만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게릴라들이 공휴일 구정에 프랑스 정규군을 기습했듯이 우리도 짧고 굵직하게 치고 빠지는 거야.”
이정훈의 기상천외한 택 전술에 시위 주동자를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적들이 우리가 일요일 날 시위할 줄은 생각도 못 할 거야.
그렇지. 우리 투쟁에 휴일이 어디 있어, 여기 세운상가 건물을 연결한 공중보도를 구름다리라고 하는데 여기서 보면 종로 일대가 훤히 보여.”
이정훈이 설명하고 시위 주동자가 눈앞에 보이는 종로 거리를 보고 있다.
우리 주동께서는 여기 구름다리에 있다가 시간 맞춰 내려가서 종로3가 건널목에서 동을 뜨는 거야. 그리고 *전소들 배치없이 치고 빠질 거야. 그 대신 종로3가 일대를 유인물로 뒤덮을 거야. 아마도 시민들이 한여름에 눈 내리는 걸 볼 거야.”
 

* 전소들: 화염병을 던지는 전투 소조의 은어
전경과 무력 충돌 없이 유인물만 뿌리고 끝내자는 이정훈의 시위 전술에 시위 주동자가 한마디 한다.
정훈아, 너무 심심하게 끝나는 거 아냐?”
적들에게 이번엔 잽만 몇 방 날리자고. 그리고 이번 가투는 동이 잡힐 필요 없어. 동 뜨고 구호 외치고 짭새들 보인다 싶으면 택시 타고 학교로 돌아와.”
이정훈이 만 원짜리 한 장을 시위 주동자 손에 쥐어준다.
학생운동 이렇게만 하면 너무 편하고 쉬운데.”
그런 날도 있어야지.”
세운상가 건물 양쪽 끝에서는 종로지역 빈민가 주택들이 보인다. 비닐 루핑으로 지붕을 덮고 태풍에 지붕에 날아갈까 봐, 검은색 폐타이어가 여기저기 얹혀 있다. 전봇대 변압기에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전기줄이 좁은 골목으로 길게 뻗어있다. 가두시위 퇴로로는 아주 좋은 지역이다. 구름다리에 서 있는 이정훈과 시위 주동자에게 음란 동영상 비디오테이프를 파는 호객꾼이 다가온다.
형님들, 뭐 찾는 거 있어요? 신품으로 죽이는 테이프 나왔는데.”
담에 살게요.”
이정훈과 시위 주동자가 다른 데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가 포르노 테이프 사러 온 사람으로 보이나 봐?”
우리를 그렇게 봐주면 고맙지. 데모하러 온 사람으로 보면 곤란하잖아.”
구름다리 시멘트 바닥을 엄청나게 많은 양의 불법 복제 음반이 덮고 있다. 시위 주동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불법 복제 음반 한 장을 꺼내 본다. 이정훈이 그걸 보고
아는 노래야?”
한국에서는 대부분 노래가 금지되서 라이센스 음반으로는 못 나오는 그룹이야, 그런데 빽판은 원판을 그대로 프레싱해서 찍으니깐 모든 노래가 다 있는 거지, 한국 가요 음반에는 건전가요를 꼭 한 곡씩 넣어야 하는 게 공연윤리 심의 사항이고.”
시위 주동자의 해박한 음악 지식에 이정훈이 깜짝 놀란다.
오우, 동 뜨실 분이 요런 부르주아틱한 걸 다 아시네?”
어릴 때부터 몸이 불편해서 집에서 음악을 많이 들었어, 그래서 그런지 레코드판을 보면 옛날 추억이 떠올라.”
시위 주동자가 팝송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듯 들려오는 팝송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 저 노래 제목이 뭐야?”
영국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이라는 노래야.”
시위 주동자가 설명해준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 여기 구름다리 계단이 동 뜨는 사람에게 천국의 계단이 되어야 할 텐데.”
아멘!”
시위 주동자가 기독교 신자처럼 기도 자세를 취한다. 이번에는 이정훈과 시위 주동자가 세운상가 건물 내부로 들어간다.
동원될 애들은 여기 상가 안에 숨어 있다가 나갈 거야. 세운상가가 로켓 부품만 주면 다 조립해서 달나라에 로켓도 발사할 수 있데. 그 뿐만 아니라 지게 지는 아저씨들이 쉴 틈 없이 다니기 때문에 우리들이 숨어있기에 너무 좋아. 우리 애들이 빽판이나 야한 비디오테이프 사러 온 것처럼 서 있으면 되고.”
신나게 얘기하는 이정훈에게 시위 주동자가 궁금증을 표한다.
정훈아, 내가 궁금한게 여기 세운상가 내부는 영화에서 본 미국 교도소 건물 같아.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게. 거기다가 건물 지붕이 투명이라 조명이 없어도 내부가 훤한데?”
아주 좋은 질문이야. 여기가 바로 세계적인 건축가 김수근이 지은 거야.”
김수근? 대단한 건축가네.”
그런데 말이야.”
이정훈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왠지 김수근은 인간의 심리를 잘 아는 건축가 같아. 이 건물 안을 지난번 내가 처음 와서 답사할 때, 이상하게 소름이 끼치더라고. 뭐라 할까? 으음 …….”
법학과 정훈이가 건축학도 빠삭하네, 암튼 정훈이 덕분에 건축역사 잘 배우네.”
내가 아니라 전두환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지.”
 
* ‘대머리단어는 1980년대 파쇼정권의 전두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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