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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유 선법수련자가 알려주는 초능력 풍수 등
게시물ID : panic_986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늘은이거로
추천 : 7
조회수 : 13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08 16: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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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시작해 볼게 일단 초능력에 관하여 써볼게.
 
일단 둔갑에 대해 알아보자
 

《손오공》이나《홍길동전》같은 소설을 보면 둔갑술이 자주 등장하지. 그리고 예전에 방영하는 [전설의 고향]을 보아도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어. 그런데 과연 이렇게 자신의 얼굴이나 신체를 다른 형상으로 탈바꿈 할 수 있는 것일까?
단언컨대, 전신을 기화시킬 수 있는 선도수련의 절정에 이른다면 이론상으로는 가능할거야. 더 이상 물질의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몸을 기화시킬 수 있다면 다른 형상으로 바꾸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지. 그러나 이런 경우는 불, 보살의 경지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도인이나 선신들로서는 불가능하지 않을 수 없지. 하물며 3~4천의 귀신, 신명들이야 말 할 필요도 없지.
그런데 보통 도인이나 선신들 사이에서도 둔갑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둔갑술로서 기화선(氣化仙)이나 불,보살들이 하는 둔갑과는 사뭇 다르지. 다시 말해, 일반적 둔갑은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닌 타인의 보는 눈을 바꾸는 것이야.
 

가령, 예전에 선도수련을 하는 60대의 어르신이 있었어. 몸은 깡마르고 얼굴은 매섭게 생긴데다가 성질마저 고약하였지. 그분은 슬하에 8남매를 두었는데, 어느 무당과 바람이 나는 바람에 전처와 이혼하게 되었어. 그런데 다시 동거에 들어간 무당을 수시로 폭행하는 바람에 무당은 제발 좀 자신 곁을 떠나라고 통사정을 하게 되었지. 그러나 그분은 달리 갈 곳이 없어 계속해서 무당 곁에 머물게 되었어. 일이 이렇게 되자 무당은 간절히 자신의 신에게 기도를 하였고 그 해답을 얻에 내었지. 무당은 이렇게 말했어. “계룡산에 지금 곧장 올라가면 신이 오른 한 처녀가 올라올 것인데, 선생님과 인연이 있으니 어서 가시지요.” 처녀란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수행자는 곧장 계룡산으로 갔고 그곳에서 과연 28살의 한 처녀를 보게 되었지. 그는 어떻게 구슬렀는지 자신의 자식들보다도 젊은 처녀를 산에서 데리고 내려와 새 장가를 들게 된 것이지. 그 노년의 남자를 아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어.
삼개월이 지난 후 마침내 시집온 여자는 주위 사람들의 결혼 사유에 대한 물음에 입을 열었지. 그 말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20대의 건장하고 잘생긴 청년이었는데, 요 며칠 전부터는 점점 깡마르고 나이든 할아버지로만 보인다’는 것이었어.
 

이것이 일반적으로 흔히 등장하는 둔갑의 경우이지. 즉, 노년의 선도 수련자는 십년이 넘게 산생활을 하였고, 특히 기문둔갑신장을 즐겨 찾았지. 그 공덕이 닿아 한 번의 둔갑술이 내려 젊은 아내를 얻게 된 것이야. 다시 말하면 본인의 얼굴과 몸을 변형시킨 것이 아닌, 둔갑신이 처녀에게 빙의되어 노년의 남자를 건장한 청년으로 보이게 하였던 것이지. 그리고 삼개월이 지난 후 효력이 상실되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벌써 정도 들었고 또한 임신까지 한 상태여서 어쩔 수 없게 된것이지. 이렇게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둔갑이란 본인의 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둔갑신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눈을 돌려놓는 것을 말하지.
 

둔갑술의 귀재를 최근에 찾는다면 4차원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진 울프.G.메싱이지. 그는 1899년 9월 10일 러시아의 바르샤바에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러시아인이 아니라 유태계의 폴란드인이야. 그는 어릴적부터 타고난 초능력을 발휘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지. 그런데 종교나 신비주의를 지극히 혐오하던 스탈린이 메싱의 초능력을 허구로 증명하기 위해 그로 하여금 3일 내에 크레믈린 궁전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올 것을 명령하였어. 그러면 초능력을 인정하겠다는 것이었어. 크레믈린 궁전 안을 통과하여 스탈린의 방에 잠입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지. 수천 명의 비밀경찰이 밤낮으로 지키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그 자리에서 총살해버리거든. 그러나 메싱은 아랑곳하지 않고 크레믈린 궁전으로 발길을 옮겼어. 경비원이 다가오면 그는 “나는 베리아다, 나는 베리아야”하고 되풀이 하면서 점점 안으로 전진하였지. 베리아라면 비밀경찰 장관으로서 스탈린의 핵심 측근 중 한 사람이야. 그런데 사실 베리아와 메싱의 인상은 완전히 딴판이야. 그럼에도 그를 보는 모든 경비들은 베리아로 보고 통과를 허용한 것이지. 이렇게 해서 마침내 메싱은 스탈린의 집무실로 여유있게 들어왔어. 그를 본 스탈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메싱의 초능력을 인정함과 아울러 상으로 소련 내의 모든 지역에서 그의 안위를 보장해 주었지.
뭐 메싱 또한 자신의 얼굴을 탈바꿈한 것이 아닌, 상대방의 눈을 돌려 놓은 것이야. 이것이 둔갑이야. 단지 메싱의 둔갑술은 기문둔갑 계열의 신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강한 염력을 이용하였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 뿐이지.

이걸로 둔갑은 끝. 이다음에는 투시에 대해 설명할께.

신통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투시이지. 둔갑에 비해 투시를 한다는 사람들은 많은데, 과연 물질의 장벽을 뚫고 차단된 외부의 모습을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내가 투시를 한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 적이 있어. 이사람들은 실제로 방안에 앉아서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를 곧잘 맞추었지. 이들의 말에 의하면 고요히 앉아 입정하면 밖의 상황이 눈앞에 스크린처럼 펼쳐진다는 것이지. 그리고 이것이 벽을 뚫고 투시하여 생긴 것이라는 것이었어. 나는 이렇게 투시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벽을 뚫고, 산을 뚫어 보는 것은 고사하고 내 손안의 동전이 앞면인지 뒷면인지를 연속해서 맞출 것을 물어 보지. 만일 연속해서 맞춘다면 투시임을 인정해도 가할 것이지. 그러나 투시한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벽과 산은 뚫으면서도 손안의 동전은 맞추지 못해.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투시의 매체가 신이기 때문이야. 즉, 신이 사람에 빙의하여 차단된 외부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야. 그래서 외부의 화면도 실물같이 생생하기보다는 꿈속에서 보는 것과 같은 몽롱한 상태에 가깝게 되. 이렇게 신이 매체가 되어서는 손 안에 꼭 감춰놓은 동전의 앞뒷면을 연속해서 맞출 수는 없어. 가령, 무당의 집을 찾았을 때, 손님이 주머니에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지 신은 알아내지 못해. 가끔 맞추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돈을 챙길 적에 무녀의 신이 이를 목격하였거나 아니면 돈의 액수를 아는 손님의 조상신에게 물어 봐 알아내는 것이야. 그러나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는 주머니 속의 돈의 액수를 알아내지 못하게 되. 방밖의 일이야 신이 밖으로 나가 보고 방안의 무녀에게 화면으로 보여주면 알 수도 있겠지만, 주머니 속에 꼭 감춰놓은 돈이나, 손 안의 동전은 일반신의 공력으로써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것이야.
흔히 보는 투시란 이렇게 신이 매개가 되어 이루어지지. 실제의 투시를 하기 위해서는 임의로 보고 싶은 것을 뚫고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용기(用氣)의 경지에 올라야 가능할 것이야.
 

이걸로 투시는 끝. 다음에는 천안(천리안)에 대해 설명할게.
 
가만히 앉아서 천리 밖의 광경을 보거나, 듣거나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소위 말하는 천안통(천리안)이나 천이통(천리이)은 대개가 신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게 되. 그런데 투시의 경우와 같이 신과 빙의된 상태가 아닌, 신을 임의로 부리는 경지야지 이것이 가능하게 되. 즉, 구궁진법을 펼치는 빠른 신을 보내 방안에서 천리 밖의 일을 보거나 듣는 신통력인 것이지. 그런즉 이런 법술을 지녔다면 빙의나 접신이 아닌 신인의 경지로 보아야 할 것이지. 그런데 어떤 경우는 신의 매개가 아닌 출신(유체이탈)으로써 천안과 천이를 득하는 수도 있어. 즉, 자신이 직접 출신하여 먼 거리까지 순식간에 가서 보고 듣는 것이지. 그러나 이것은 전자의 경우 같이 신을 부리는 것에 비해 다소 불편한 점이 있어. 왜냐하면 한 번 출신하고나면 대개가 공력의 소모가 지대하기 때문이야.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스스로의 영력이 커져서 저절로 보고 듣는 경우이지.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시야가 넓어지듯이 마음이 수양이 되어 우주의식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반야(지혜)의 눈과 귀는 점점 밝아지게 마련이야. 이렇게 되면 신을 구태여 부리지 않아도, 수고스럽게 출신하여 먼거리를 왕래하지 않아도 되. 가만히 앉아 굽어보면 저절로 보고 듣게 되는 것이지. 이 경지가 천안과 천이의 가장 바람직한 경지로 볼 수 있어.
 

이걸로 천안은 끝. 이다음에는 타심(심안)에 대해 설명할게

유체이탈하는 사람들이 보통 선계에 가보면 선인들이 바둑을 두는 광경을 목격한 일이 많아. 그런데 바둑돌도 없이 바둑판만 놓고 가끔씩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앉아만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어. 바둑돌이 없이 바둑을 두려면 상대방의 착지를 알아야 하는 것인바, 타심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지. 이분들은 이미 타심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선계의 도통신들이지.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간이 눈치로 타인의 심정을 15~25% 알 수 있다면 귀신은 보통 20~30% 알 수 있어. 인간에 비해 조금 더 타심력이 발달되었지만 오십보 백보일 따름이지. 그런즉 일반신의 힘을 이용해서는 소위 말하는 타심통은 불가능해. 타심통을 얻었다 함은 본인의 영적 경지가 적어도 7~8천은 되어야 가능해. 절대체인 10천에 다가갈수록 사물과 사물의 경계가 묘연해져 여타일체(予他一體)가 되어 타심통이 가능해지는 것이지.
이렇게 타심통은 높은 영적 경지에 오르면서 여타일체되어 오는 사사무애(事事無碍)한 법술이야. 그러나 사람 사회에서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지. 왜냐하면 생각이 들끓고 정리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간파된다면 인간 관계상 좋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야.
 

뭐 100여년 전 해월선생이 오랜 수행을 통하여 타심통을 득하였다는 일화가 전해 오고 있어. 그런데 그 후로 절친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나빠져 발길이 끊기게 되었다고 해. 해월선생 본인도 믿던 사람의 마음에서 엉뚱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즉 좋을 리가 없었으며, 상대방도 해월선생이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있다는 생각에 대면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이렇게 되고나니 사람 관계가 좋아 질 수가 없는 것이야. 일반 사람들은 본심은 그렇지 않더라도 가끔씩 망상이 일어나는 것인데, 이런 불순한 생각을 느꼈을 때 본심이 아님을 알지라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는 것이지. 해월선생은 이런 일이 있은 후 타심통을 아니 얻은 만 못하였다고 절실히 후회하였다고 해.
물론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기 위해 만들어진 일화일 것이겠지.
여하튼, 타심통이란 너와 나의 구별이 소멸되어 우리로 승화될 때 비로소 우러나오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참된 경지인 것이야.
 

이걸로 타심은 끝. 이다음에는 축지에 대해 설명해줄게
 

[후한서]에 보면 고려 사람들은 걷는 것을 달리듯 한다 했고, [풍속통(風俗通)]에는 조선사람들은 어찌나 날래고 잘 달리는지 사슴도 뒤쫓아가 잡는다고 하였어. [설문(說文)]이라는 중국의 고대문자 해설서에는 조선 땅은 동방 목(木)이기에 기가 세차게 동하여 잘 달릴 수 있다는 이유를 제시하기도 했지.
이렇게 날 듯이 달리는 것을 축지라 해. 축지법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중부양(空中浮揚)을 선행해야 하지. 공중에 뜨기 위해서는 중력을 차단해야만 가능한 것인데, 지구상의 모든 물체는 예외없이 중력의 지배를 받지. 그럼에도 공중에 떴다는 일화들이 적잖게 전해 내려오고 있어. 과연 어떤 원리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공중부양은 단순히 신의 힘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야. 기의 달인이 되어야만 가능하지. 운기(運氣)에 있어서 고도로 발달된 단전을 위 아래로 가르게 되면 순간적 내지 일시적으로 무중력 상태가 되. 이 때 중력의 차단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 경공이 가능해져. 그리고 좀 더 무중력의 상태를 지속하게 되면 공중부양이 이루어지게 되. 이렇게 공중부양이 되어야 소위 축지라 말하는 신족통을 구사할 수 있어.
 

축지에는 풍축(風縮)과 비보(飛步)로 나뉘게 되. 비보란 경공술이 어느 정도 가능한 사람에 있어서 거름 걸이가 달리는 속도보다도 빠른 것을 말해. 구한말에 왕실의 재정을 담당했던 이용익(李容翊) 대감이 그 주인공이지. 민비의 친정조카인 민영익이 전주에서 한양까지 500리 길을 당일로 달려 편지를 전한다는 비보의 사나이를 민비에게 꺼내자, 민비는 이에 흥미를 느껴 출발 시간이 적힌 봉서를 전주에서 서울로 가지고 오라고 했지. 그런데 이용익이 전주에서 봉서를 가지고 출발한지 정확히 12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한 것이었어.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불과 10시간 만에 주파를 했다는 놀라운 기록이 되지.
풍축이란 지기(地氣)를 이용하여 한 걸음에 목적지에 달하는 법으로 실로 기의 달인이어야 가능하지. 가령, 지기 가 서린 장소를 택하여 먼저 그 곳의 기운을 힘껏 단전에 빨아들이고. 그런 후 단전을 갈라 무중력의 상태를 만들어 인체부양을 하지. 그리고 모았던 지기를 힘껏 방출하며 동시에 목적지의 지기를 가능한 강하고 길게 빨아들이는 거야. 이렇게 공중부양 상태에서 기를 밀고 댕기는 가운데 상당히 빠른 속도로 나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곧 신족(神足)이지. 영계에서는 5천 이상의 선신만 되어도 누구나 쉽게 구사하며, 여기에 더하여 구궁진법까지 펼쳐 지기를 이용하지 않고도 천기의 흐름을 타고 운행할 수 있어. 그러나 육신의 몸을 지니고서 이런 법을 구사하기란 실로 기의 달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 만일 7~8천의 경지에 오르면 축지를 넘어 차원과 차원을 넘다드는 공간이동의 법술까지 활용하게 되. 그야말로 이동수단에 있어서는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지.

이걸로 축지는 끝. 다음에는 글문에 대해 설명해줄게.
 

다들 주문은 아는데 글문은 모르더라. 내가 한자를 나누어서 설명한 몇몇ㅁㅁ있지? 그게 글문이야. 글문이 뭐 신통력이냐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상당히 유용해. 아무리 모르는 외국어도 뜻을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고. 이것을 응용하면 부적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도 있어. 게다가 이 글문을 연습하는 방법은 간단해 글자를 미세하게 분류하여 그 뜻을 파악하는 것이지.
예를 들어
有(있을유) = 부수 月(달월) + 又(오른손우)
이지. 여기서 오른손으로 달을 가리키다 라는 말이 되지. 여기서 달은 '있지만' 결국 손으로 잡을수는 없다는 점에서 '없다고'도 할 수 있지. 여기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실존의 허망함인 붕도의 공사상을 파악하는 거지.
뭐 글문을 수련하는 것은 이렇게 하면되.
뭐 꼭 한자가 아니어도 되. 이것이 어느정도 되면 부적의 의미도 바로 파악이 가능해.

뭐 예전에 성왕리에 방영된었던 [묘기대행진]을 보면 간간이 암기의 달인들이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하였지. 칠판에 가득 써 놓은 숫자를 잠깐 동안에 외는 놀라운 기억력과, 몇 십년 후의 달력을 즉석에서 맞추는 계산력을 선보이지. 전화번호 하나도 외우지 못해 일일이 수첩을 뒤적거리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엽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지. 잠자는 예언가로 널리 알려진 에드가 케이시는 어렸을 적에 책의 겉표지에 손만 대어도 그 내용을 술술 외웠다고 해. 대개의 사람들은 이런 능력을 일러 ‘글문통’이라고 말하기도 해. 그러나 이런 류의 능력은 선도에서 말하는 글문통하고는 거리가 있어.
 

몇 년 전에 글문통을 했다는 노인이 있었어. 노인은 평생을 농사만 지으며 사신 분인데, 자식들을 다 공부시켜 자립시키고는 평생의 숙원인 한자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했어. 늘 한자를 많이 아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전혀 틈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는 것이지. 그래서 그는 평생의 숙원을 풀기 위해 동네 뒷산 토굴로 5천자가 수록된 자전을 가지고 들어갔어. 그는 5천자를 다 외우기 전에는 결코 토굴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선언했지. 자식들은 만류했지만 그는 결코 듣지 않았어. 이렇게 꼬박 1년을 보냈지. 하지만 선천적으로 암기력이 떨어지고 또한 노쇠할 대로 노쇠하여 몇 백 글자를 외우는 것도 힘겨웠지. 그래도 그는 죽을 때까지 계속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어. 이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뒷산의 산신은 감명을 받아 계룡산 문필봉의 산왕대신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산왕대신은 글문도사를 보내 붓 한자루를 노인에게 선물하게 했지. 노인은 생전 처음보는 도사 할아버지로부터 붓을 받는 꿈을 꾸고 깨어났어.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모르는 글자가 없었지. 토굴로 가져온 5천자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어떤 글자도 다 통한 것이지. 지금은 쓰지 않는 고대의 한자를 물어봐도 척척 답을 하였다고 해. 그런데 뜻을 물어 보면 알지 못했어. 자음에 대해서만 통한 것이었지. 그래도 노인은 평생의 숙원을 풀었다고 내심 기뻐하였다고 해.

이상의 노인과 같이 모든 글자의 음을 다 알 수 있고, 케이시와 같이 손만 대어도 책의 내용을 다 아는 것은 특이한 능력임에는 틀림없어. 하지만 선도에서 말하는 글문통은 아니야. 글문통이란 글자나 내용을 통달한다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이치를 정확히 꿰뚫는 지혜를 말해. 마치 유교에서 최상으로 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경지에 빗댈 수 있어. 한자에 보면 본다는 뜻으로 목(目)자와 견(見)자가 있어. 그런데 이 두 글자는 차이가 있지. 목(目)이란 가만히 고정되서 보는 것이야. 반면에 견(見)자를 보면 목(目) 밑에 ‘걷는 사람인(儿)자’가 있지. 즉, 걸어가면서 보는 것이 견(見)이지. 견(見)은 한 쪽만 보는 것이 아니고 걸어다니면서 사방팔방을 두루 살피는 것이야. 사물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는 것이야. 이렇게 되면 자연히 이치에 달통하게 되고, 이치에 달통하게 되면 글로 옮겼을 때 자연히 명문이 되는 것이지. 문체만 화려하고 수많은 지식을 늘어놓았다고 명문이 되는 것은 아니야. 바로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이치가 전제된 글문이라야 명문이며, 이런 능력을 일러 글문통이라 하는 것이야.
 

이걸로 글문은 끝. 다음에 소개할 것은 풍수지리야

예로부터 도공부는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찰지리(下察地理)라 하였는데, ‘하찰지리’를 연구하는 학문을 일러 풍수지리(風水地理)라 해. 여기서 ‘풍수’의 어원은 곧 기(氣)의 이합집산(離合集散)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풍(風)’과 ‘수(水)’를 취하여 ‘풍수’라 지칭한 것이지. 일반적으로 ‘풍수’의 의미를 ‘장풍득수(藏風得水)’의 개념에서 찾고 있는데, 사실상 ‘풍수’에 쓰인 ‘풍(風)’자는 ‘장풍득수’의 ‘바람’을 나타내는 ‘풍(風)’자와는 그 의미가 사뭇 달라. 풍수의 정의는 곽박이 지은《금낭경》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연유하고 있어.
"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에 닿으면 머무른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기를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기가 돌아다니다가 멈추게 하고자 했으니, 여기서 풍수라 하게 되었다.
經曰. 氣乘風則散 界水則止 古人聚之使不散 行之使有止 故謂之風水 "

말하자면, 바람을 잠재워 지기를 보호하고 물을 얻어 생기를 머물러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풍수라 명칭하게 되었다는 것이지. 즉, ‘장풍득수’가 풍수의 관건으로, 물과 바람이 풍수를 보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거야. 그러나 이것은 중국식 풍수이지 결코 우리식의 풍수는 아니야. ‘풍수’의 ‘풍(風)’자는 바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야. ‘풍(風)’은 곧 용(龍)으로 상징되는 산맥의 흐름을 타고 기의 집산이 이루어지는 형국을 상징하는 거야. 산맥(龍)은 마치 바람 부는 것과 같이 꿈틀거리고 출렁이며, 이에 호응하여 기운의 맺히고 흩어짐도 결정되지. 이러한 현상을 취해 이름한 것이 ‘풍’인 것이야. 그리고 ‘풍’은 다시 대풍(大風)과 소풍(小風)으로 나뉘는데, 대풍은 산과 산이 이어지는 큰 등성이를 말하고, 소풍은 산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요동하는 작은 등성이를 말해. 따라서 ‘풍’이란 지세의 대국을 결정하는 산(龍)이 대풍과 소풍으로 꿈틀거리며 기를 모으고 흐트리는 상을 취한 명칭이야.
‘풍’이 형성되면 자연히 계곡이 생기고 여기에는 ‘물’의 흐름이 있게 마련이야. 이 ‘물’이란 것은 수기의 화현으로서 기를 모으는 응고의 성질과 흐트러트리는 자동성(自動性)이 내재하고 있지. 그렇기에 물의 자동성을 피하고 응고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물을 득하는 것이 기를 얻는 첩경이야. 그런즉 ‘풍수’라 하면 기의 이합집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두 가지 요소인 산맥의 요동(風)과 수(水)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두 글자를 취해서 이름한 것이 되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세간의 통설대로 ‘장풍득수’라는 이론에 기준을 두어 ‘풍수’의 ‘풍’을 ‘바람’이라고 해석하여서는 안되. ‘풍수’란 곧 생기와 진기를 얻기 위한 것으로, 그 연구의 대상은 곧 ‘산’과 ‘물’이며, 이것을 근간으로 살펴 기가 맺혀 있는 장소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야. 바람을 가둔다는 것(藏風)은 제대로 된 장소를 잡게 되면 덩달아 이루어지는, ‘산’과 ‘물’의 부수적인 것에 불과해. 물론, 방법상에 있어서 바람이 멎는 곳을 살펴 명당을 찾아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역시 기를 찾는 근간은 ‘산’과 ‘물’인 것이야. 이 ‘산’과 ‘물’을 원래대로 이름 짓는다면 ‘산수(山水)’가 되겠지만, 이렇게 명명해서는 단순히 외형적 경치를 풍기는 명칭밖에 될 수 없어. 그래서 산의 내면적 성품, 즉 기의 움직임을 딴 ‘풍’이란 글자를 써서 ‘풍수’라 하게 된 것이야.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상계(비물질계)를 논한 ‘풍수’와 형계(물질계)를 논한 ‘산수(山水)’가 잘 구분되어 이름 가치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야.
 

풍수는 현세에 이르기까지 흉화(凶禍)를 막고 길복(吉福)을 얻기 위한 법술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야. 물론 풍수가 길흉화복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풍수보다는 사람 본인의 마음씀에 좌우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해. 천하명당에 양택(陽宅)을 정하거나 천하명당에 음택(陰宅)을 쓴다 하여도, 마음 씀씀이를 잘못하면 덕을 보기는 고사하고 패가망신하기 십상이지. 지나친 길흉화복론은 ‘반풍수가 집안 망친다’는 옛말에서 알 수 있듯,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는 어떤 술수에 치중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그런즉, 이는 ‘道(心)’를 멀리하고 ‘술(術)’에 편중된, 즉 사도(邪道)에 의해 오용된 것인바 그 끝이 좋을 리가 만무하지. 옛말에 ‘삼정승 사귀려 하지 말고 제 마음씀에 주의하라’고 했듯이 명당을 얻어 흉화를 막고 길복을 얻으려 하지 말고 제 마음 바로 하기에 힘쓰는 것이 ‘길복’을 얻는 상책인 것이야.
풍수는 원래 수련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 생겨난 것이야. 도가의 수련이란 곧 기(氣)를 잡아 신(神)을 통하는 ‘단전수련’에서 출발하지. 따라서 수련의 기본 단계를 이수한 후 더 정진하기 위해서는 필히 정기가 서린 곳을 찾아가 지기를 이용해야 해. 이렇게 수련의 진전을 위해 정기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풍수’이지. 그런즉 우매하게 ‘풍수’를 배워 길복을 얻으려 하지 말고 철학적 탐구의 대상이나 수련을 돕기 위한 법술로서 익히는 것이 합당할 것이야.
 

이걸로 풍수지리는 끝. 그 다음에 설명할 것은 관상이야
 

사람의 몸에 실린 몸주로서의 몸신, 즉 ‘나’라고 하는 정신의 주체를 파악하는 법술이 ‘관상법(觀相法)’이야. 아래는 관상에 얽힌 한 일화야.
-옛날에 관상술에 뛰어난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고을의 현감님은 관상을 보아하니 틀림없이 중의 아들일거야”라고 하였다. 이 소식이 현감에게 전해지자 벼락같이 화를 내며 관상가를 잡아들였다. 현감은 어엿한 양반을 중의 아들이라 헛소문을 퍼뜨린 죄는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그 때 관청이 떠들썩하여 현감의 어머니가 무슨일인가 싶어 담너머에서 엿들어보니 바로 이러한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판결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들을 조용히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얘야,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모른 체할 수 없어 내 사실대로 이야기 하마. 내가 젊었을 적에 아이를 낳지 못한지라 절에 가 공을 들이게 되었단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그 절에 있던 중(신돈)의 간책에 말려들어 그만 너를 갖게 되었단다. 그 중의 자식이 지금 한 둘이 아니란다. 그러니 그 사람을 용서해 주어라” 얼마 후 현감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그 관상가를 석방하였다. (손진태 저《조선민담집》)
 
그런데 과연 현감의 얼굴만 보고 중의 아들이란 것을 알 수 있는 것일까? 세간의 관상서들을 보면 조목조목 상당히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그러나 상(비물질)을 다루는 관상학을 일일이 물질적 구조로써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사실 관상학에서 매우 길하다는 얼굴 구조를 한 사람도 실제로는 흉악한 경우가 있으며, 흉한 얼굴 구조를 지닌 사람도 실제로는 선량한 경우가 적지 않아. 가령, TV「이야기속으로」라는 다큐멘타리에 한번은 얼굴이 흉악하게 생겨 곤경에 처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던 한 시민의 이야기가 나왔지. 얼굴을 보니 흉악범이 따로 없었어. 그러나 실제로는 법 없이도 살만한 선한 사람이야. 또한 악역만 맏는 흉폭하게 생긴 배우들 또한 다른 사람과 다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지. 그리고 정치인이나 기업가들 중에 관상술에서 말하는 귀복(貴福)한 상을 지닌 사람이 적잖게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더러움이 들끓는 경우도 종종 있지. 이렇게 얼굴 구조만을 가지고 사람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어. 더군다나 현감의 얼굴 구조만을 보고 중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일화에 나온 관상가는 자신의 영(靈)으로 현감의 얼굴에 스민 정기(얼)를 살펴 파악했던 것이야.
 

요컨대 사람의 신체에는 그 사람이 지닌 정기(精氣)가 은연중에 배여 있어. 이 중 얼굴 부위는 더욱 그래. 얼굴이란 ‘얼+굴’이고, 여기서 ‘굴’이란 ‘굴레’, ‘틀가지’를 말해. 즉, 얼을 감싸고 있는 틀가지가 얼굴이라는 거야. 따라서 관상이란 틀가지 속의 ‘얼’을 살피는 것이지. 물론 ‘얼’의 상태가 은연중에 틀가지로 배이는 수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야. 따라서 관상이란 틀가지인 형상에 드러난 기운을 살피되, 얼굴 구석구석에 드리워진 상(얼)을 포착하여 신(神)을 파악하는 데 주안을 두어야 해.

이걸로 초능력에 대한 것은 끝. 조금 쉬었다가 귀신에 대한 해부 3를 해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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