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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과 함께하는 무속신이야기
게시물ID : panic_986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늘은이거로(가입:2015-05-12 방문:345)
추천 : 11
조회수 : 25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12 16: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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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무속관련 질문이 많길래 무속신에 대해서나 알아볼게


... 예전에 드라마 도깨비가 한참 유행이었잖아? 그래서 도깨비에 대해서 설명이나 해볼까....


도깨비란 사람의 형상에 동물의 형상이 부분적으로 가미되어 괴상한 형상을 하고 있는 귀신으로, 비상한 힘과 괴상한 재주를 지녀 신비의 대상이 되어 왔지. 다음은 도깨비를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이야.
-제(김씨)가 14살 적에 우리 아버님하고 둘이서 외가집에 다녀 올 때의 일입니다. 그 때가 8월 보름이었는데 양곡고개를 넘고 있었지요. 그런데 잔뜩 취한 아버지께서 도중에 주무시는거에요. 저도 이상하게 졸음이 와서 옆에서 잠들었어요. 얼마 있다가 눈을 떴는데 옆에 아버지께서 안계시잖아요. 그래서 이리 저리 찾아 다녔는데, 산 중턱에서 아버지 이리 갔다 저리 갔가 하더라구요. 그 때 달이 훨하여 눈에 선하게 들어왔어요. 자세히 보니까 참나무를 꽉 부등켜 안고서 제자리에서 뺑뺑 돌기도 하고 몸을 들썩 거리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얼른 뛰어가서 “아버지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하니까, 깜짝 놀래시더니 “어?, 그래 어서 가자” 그러더라구요. 부리나케 고개를 내려와서 보니까 두루매기며 바지며 다 찢어지고, 집에 오셔서는 한 삼일을 앓으셨어요. 몸이 완케되신 후 여쭤봤더니, 그 때 아버님께서 자는데 앞에서 어떤 사람이 불러서 깼대요. 일어나니까 앞으로 길이 훤하게 행길처럼 뚤렸고 그 길로 곧장 가서는 어떤 친구하고 씨름을 하였대요. 아버님 말씀이 그게 바로 도깨비라더군요. (김종대《한국의 도깨비 연구》)


도깨비의 명칭 또한 다양하여, 지방에 따라 토째비(경북 월성), 돛재비(경남 거창), 도채비(제주 전남신안), 또깨비(전남 신안), 돛깨비(전남 함평) 등으로 불렸으며, 한자로는 독각귀(獨脚鬼) 또는 허주(虛主)라 하였어.
도깨비는 그 형태에 따라 여러 종류로 구분하기도 하지. 가령, 달걀 도깨비, 멍석 도깨비, 강아지 도깨비, 장수 도깨비, 등불 도깨비, 부지깽이 도깨비, 절구 도깨비, 기와 도깨비······등이 있어.
도깨비의 모습도 종류에 못지 않게 다양하지. 삼국시대 귀문와(鬼紋瓦)에 그려진 도깨비의 모습을 보면 눈은 툭 불거져 크게 부라리고 있으며 머리에는 뿔이 나 있어. 큰 입을 딱 벌리고 있으며 이빨은 날카롭고 길게 늘어져 있지. 몸에는 동물같이 털이 많고 손톱 발톱도 길지. 몸의 색은 푸른색, 흰 색, 누르고 흰색을 주로 띠고 있으며, 어떤 도깨비는 허리 윗 부분은 보이지 않고 하반신만 보인다고 해. 발은 옻칠한 것처럼 새까맣게 그을려 있는데, 이것은 오랫동안 습지(濕地)나 어두운 지하에 있어서 그렇다고 해. 그리고 독각귀(獨脚鬼)라는 명칭에서 알 듯, 어떤 도깨비는 다리가 하나 밖에 없다고도 하지. 그럼에도 이 도깨비는 씨름을 좋아해서 길가는 사람들을 세워 놓고 씨름을 걸곤 하는데, 절대로 지는 일이 없다고 해.


그런데 사실상 모든 도깨비가 이와 같이 괴상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인간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더욱 많아. 대체로 보통 키에 건장한 체구를 지녔으며, 손에는 흔히 몽둥이나 돌, 구슬 같은 것들을 들고 있지. 도깨비 방망이라 불리는 몽둥이는 전설에 나오듯 뾰족한 것들이 사방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야. 대개 오래된 나무 뿌리나 가지의 뭉친 부위의 것으로, 모양이 울퉁불퉁하여 괴팍하게 생겼어. 내가 도깨비응 본적은 없어도 방망이는 본적있거든. 그런데 방망이도 아니게 그냥 단순한 나무토막이더라고. 이들의 거처는 동굴, 오래된 우물, 옛 성터, 흉가, 산기슭 등이라 하는데,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음기가 강하게 서린 곳이면 도깨비가 있을 확률이 높아. 왜냐하면 보통의 귀신은 7대가 지나면서 윤회하거나 해체되거나 하는데, 도깨비는 묻힌 곳의 강한 음기에 의해 그 수명을 수 백 년 이상 존속할 수 있지.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그 곳의 지기와 공고히 어우러져 터주가 된 신이 바로 도깨비인 것이야. 그리고 이 터가 바로 도깨비 터로서 명당은 아니어도 준 명당에 해당하지. 즉, 도깨비는 터주의 일종으로, 그 터가 다른 터에 비하여 사뭇 다르다는 것이 그 차이이지.


귀신에 비하여 도깨비가 물질적 변화에 능통한 것도 바로 음기(陰氣)와 오랜 세월 동안 어우러져 있었기 때문이야.《해동잡록》에 보면 도깨비 장난에 관한 기록이 나와.
-창손이란 자는 30년이나 정승을 지낸 당대의 세도가였다. 그런데, 그의 나이 90이 되었을 때 어느 날 그의 집에 홀연히 요괴가 나타났다. 이 요괴는 대낮에 나타나 돌을 던지곤 하였다. 누구나, 도깨비의 장난으로 여겼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당대의 세도가가 도깨비 따위에 겁먹을 수야 있겠는가’ 하며 창손은 크게 격분하였다. 연이어, 도깨비가 자주 출현하는 지붕 위로 올라가 낡은 기와를 걷어 불에 모조리 태웠다. 그러자 도깨비 장난은 가라앉고 말았다.


도깨비는 부지깽이, 절구, 낡은 기와, 빗자루 등의 오래된 물건에 붙어 물질적 변화를 일으키지. 즉, 오래된 물건에 스민 음기를 이용하여 물질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야. 특히 여성의 월경이 이런 낡은 물건에 스며든 경우는 더욱 힘을 발휘한다고 해. 그러나 도깨비 터의 자체 기(氣)가 강한 경우는 이런 물건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도 물질 변화를 일으키지. 어떤 경우는 집채만한 바위가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마른 하늘에 돌 바람이 휘날리기도 해. 그렇지만 도깨비는 사람을 해꼬지 하는 귀신은 아니야. 오랜 기간 존속하며 지기(地氣)의 화신(化身)이 되었기에 그 성격이 어느 정도 원만해져 있어. 물론 아직 선신(仙神)의 경지에 이르진 못하여 노여움과 앙갚음 등의 성격이 남아 있지만 사람을 해꼬지 할 정도는 아니야. 단지 장난을 치거나 심하면 위협을 하는 정도에서 멈추지. 가령, 인(燐)으로 인해 생긴 불(도깨비 불)을 이용하여 길가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든지, 도깨비 터에 사람이 들어오면 그 심보를 고려하여 부자나 혹은 알거지가 되게 해. 흔히 흉가로 알려진 곳에 이런 도깨비 터가 많아. 터와 인연 있는 사람이 들어와야 길(吉)할 수 있는 터인 것이지. 다음은 [용재총화]에 나오는 도깨비 불에 관한 이야기야.

-안부윤(安府尹)이 젊었을 때 하루는 머슴 한 명을 데리고 길을 가는데 멀리서 횃불이 왔다갔다 하여 마치 사냥놀이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불이 점차로 자신에게 다가오더니 주변을 계속해서 맴도는 것이다. 안부윤은 틀림없는 도깨비불이라 여기고 머슴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한 참을 달린 후 뒤를 돌아보니 도깨비 불을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한숨을 돌리자 바로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한 고개를 막 넘는데 다시 앞에서 본 도깨비 불이 나타나 겹겹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안부윤은 칼을 뽑아 들고 고함을 지르며 도깨비불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도깨비 불은 일시에 길가 숲으로 흩어지면서 기분 나쁜 박수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들렸다.


도깨비불이란 실제로 뜨거운 불이 아닌 일종의 신기루와 같은 환영이야. 무덤 주위나 땅속에 묻힌 발광물질을 이용하여 그것을 형상화시키고, 그 형상속으로 들어가 주변을 배회하며 길 가는 나그네를 놀라게 하는 것이지.
여하튼, 도깨비는 악귀(惡鬼)와는 달리 잔인성이 없어 인명(人命)을 앗아가지 않아. 대체로 사람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나 심보가 고약한 사람은 심한 장난으로 혼쭐을 내줘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 도깨비는 어리숙하고 고지식하며 장난이 심하나 그래도 은혜를 잊지 않는 성품을 지녀 친숙한 존재로 남아 있어. 즉, 두려움과 친근함이 어우러진 해학적인 존재라 할 것이야.


이걸로 도깨비에 대한 설명은 끝. 다음에는 조왕신에 대해 알아볼게


한 집안의 길흉화복을 주관한다는 부뚜막신이 있어. 달리 조왕신이라 하며 오래도록 민간의 신앙이 되어 왔지. 그런데 이 신은 중국 도교의 영향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보여지지. 전해 오는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아.
-부뚜막 신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음양으로 나뉘어 남신을 조왕야(王爺) 또는 조군(君), 여신을 조내내라 불렀다. 남신은 선의 두레박을 들고, 여신은 악의 두레박을 들고 있는데, 이들은 언제나 부뚜막 위에서 집안 일을 살피다가 착한 일을 하면 선의 두레박에, 악한 일을 하면 악의 두레박에 일일이 적어 넣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년이 되면 음력 섣달 스므사흗날 밤에 이 두개의 두레박을 가지고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님께 상세히 보고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따라 그 집안에 상벌을 내린다는 것이다.《 永尾龍造 》
이런 믿음 때문에 중국에서는 음력 섣달 스무 사흗날,「하늘에 가셔서 나쁜 일은 사뢰지 마옵시고 착한 일만 고해 주십시요」라는 문구를 외우며 성대히 제사를 지낸다고 해.


부뚜막신의 도움을 받았다는 일화도 전해 오고 있지.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의 일이다. 오늘날의 중국 하남성 지방에 음자방(陰子方)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노모를 정성껏 봉양하였고 여유가 있으면 주변 사람들도 성심껏 돕는 선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부뚜막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어느 날 늘상 하던 대로 제사를 지내는 데 갑자기 부뚜막 가운데에서 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몸에는 누런 색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자신이 공경하던 신의 형상을 보게 되자 음자방은 몹시 기뻐하며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누런 색의 양을 잡아 제사를 정성껏 올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음자방은 차츰 부자가 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군수의 재산에 못지 않을 만큼 불어나게 되었다. 그 뒤 음자방은 입버릇처럼 ‘내 자손들은 크게 번창하고 또한 크게 출세할 사람도 나올 것이야’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랬는데 과연 그로부터 3대 후에 음자방의 집안은 더욱 번창하여 자손들도 출세하게 되었다. 결국, 후작(侯爵)의 위치에 오른 자손만 4명에 군수가 된 자손은 수십 명에 이르렀다. 자손들은 모두 선조가 섬겼던 부뚜막신 덕분이라고 여기고 언제나 부뚜막신께 제사 지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수신기. 4권》


그렇다면 실제로 부뚜막신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단언컨대 부뚜막신은 도교에서 만들어 낸 허구야.
즉, 신화에서 보듯 부뚜막을 지키며 집안의 길흉화복을 주관하고, 선의 두레박과 악의 두레박을 가지고 상제께 고하는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아. 단지 옛적의 생활이란 것이 먹거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에, 특히 부엌을 중시하여 생긴 것이 부뚜막 신앙인 거야. 실제로 한 가정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신은 조상신이며, 이 중에서도 ‘업대감’이라 불리는 신이 맡고 있는데. 이 신을 부뚜막신에 빗댈 수는 있어. 그러나 설화에서 나오듯 부뚜막 만을 차지하고 부뚜막 만을 다스리는 그런 신은 아니야. 업대감은 집안의 풍요를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사실 신의 공력이란 것이 인간의 것보다 약한 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야. 그러나 사람이 부뚜막에다 신주를 모시며 나날이 정성을 드리면 사람의 정기를 받아 이 신의 공력이 늘어나기도 하지. 이 영력이 오르는 원리는 신이 신내림을 통해 빌붙어서 영력을 올리는 경우와 비슷해. 이런 경우는 실제로 영험을 보게도 되지. 그래서 부뚜막신을 섬기는 풍토가 오랜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러나 이런 정도의 효험 보다는 인간의 노력이 결국 길흉화복의 대부분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야.

‘처가집과 변소는 멀면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어. 옛적에는 그만큼 변소의 위생이 떨어졌음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했지. 그런데 이런 불결한 변소에도 이 곳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고 믿어 왔어. 일명 측신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신화가 전해오고 있지.
-측신의 이름은 자고(紫姑)이며, 그녀는 중국 산동성의 내양현에서 태어났고 성은 하(何)씨요 이름은 미(媚)라 하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매우 총명한 아이였다. 또한 장성하면서 빼어난 미모에 의해 널리까지 그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마침내 산서성(山西省) 수양현(首陽縣)의 현지사(縣知事)라는 사람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현지사는 자고를 보기 위해 일부로 내양현까지 와서, 자고를 보자 첫눈에 반하여 자기의 첩으로 삼게 되었다. 자고는 아름다운 미모에 학문도 고루 갖추었기에 현지사는 그녀를 마치 손의 구슬처럼 귀하게 여겼다. 그리고 자고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총애하게 되었다. 그러자 현지사의 본처인 조부인(曺夫人)은 질투의 불길을 태우며 호시탐탐 해칠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마침내 정월 15일날 현지사가 외출하자 조부인은 그 틈을 타서 아무도 모르게 자고를 변소에서 죽여 버렸다. 이를 본 하늘의 신들은 자고를 불쌍히 여겨 변소의 신으로 삼았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자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변소라든지 돼지우리 등에 걸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集說全眞》

가령, 변소에 쓰는 쓰레기통에 비녀나 꽃을 단 나뭇가지를 꽂아 장식하지. 그리고 또 다른 은비녀 하나를 쓰레기통의 입구에 꽂고 변소 구멍의 옆에 놓아. 이것이 자고의 모습이라는 거야. 제사는 밤에 지내는데, 이 때는 제사상을 놓고 제사상 위에는 쌀을 뿌리지. 그리고 십세 이상의 여자 아이 둘을 시켜 쓰레기통으로 만든 신을 맞이하게 해. 모두 제단을 향하여 등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지. 두 여자 이이는 쓰레기통의 은비녀가 꽂혀 있는 쪽을 제사상 위에 뿌려져 있는 쌀알에 닿도록 꼭 누르지. 그러면 사람들이 “주인 양반은 외출하시고 조부인은 없습니다” 라고 말해. 이 때 기적과도 같이 쌀에 글씨가 써지기도 하고 쓰레기통이 고개를 끄떡이기도 한다는 것이야.


민가에는 매월 6일, 16일, 26일에는 변소의 신이 변소에 있는 날이라 하여 변소 갈 때 조심하라는 풍속도 있어. 그러나 사실상 모든 변소에 자고 신이 있는 것은 아니며 있을 수도 없는 것이야. 요즘이야 대다수의 집들이 아파트처럼 집안에 화장실이 있지만 예전 집들은 변소가 동떨어져 있었어. 그러니 밤에 볼일을 보게 될 때 무언가 두렵고 으시시한 느낌을 받게 되지. 여기서 ‘귀신’에 대한 얘기들이 만들어져 나오게 되고, 결국 ‘자고’와 같은 변소신이 등장하게 된 것이야.

물론 변소를 맡는 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야. 귀신이란 것이 습하고 음침한 곳을 좋아하는바 터주신의 허락을 받고 기거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러나 대부분은 터주가 집안 전체를 관장하는바, ‘변소에는 무조건 귀신이 있다’는 말은 정확한 것이 못되지. 또한 측신은 대체로 공력이 낮은 저급 귀신인바 그렇게 무서워 할 대상도 못되는 것이야. 어쨌든 이런 류의 얘기들은 어떤 곳에도 신이 있다는 옛 사람들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야.

이걸로 조왕신에 대한 설명은 끝. 다음에는 ...잠깐 눈 아파서 쉬었다가 할게


자 다음에는 삼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게

먼 옛날부터 자식을 점지하는 일은 삼신할머니가 주관한다고 믿어 왔지. 삼신할머니는 달리 산신(産神), 삼승할망이라고도 해. 자식을 낳으면 으레이 제일 먼저 삼신할머니에게 음식을 차려 고마움을 표시하지. 또한 자식을 얻지 못해도 영험한 기도터를 찾아 삼신할머니께 도움을 청하지. 어떤 이는 삼신할머니의 ‘삼신’이란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三神)을 뜻한다고도 말해. 그러나 선계의 높은 곳에 계시는 단군 할아버지께서 자식 점지하는 일을 일일이 맡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대부분 자식을 점지하는 일을 전적으로 맡고 계시는 삼신할머니라는 고유의 신이 있다고 믿지. 여기서 삼신의 ‘삼’은 곧 ‘삶’, 혹은 ‘태(胎)’란 뜻으로, 생명 탄생을 관장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그렇다면 실제로 삼신할머니라는 신이 존재하고 있을까? 삼신할머니의 전설을 들어보기로 하자.
-먼 옛날 동해의 용궁에 용왕의 딸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 딸이 자라면서 나쁜 짓을 자주 하게 되자 용왕은 결국 딸을 죽일 결심을 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딸을 살리고자 돌로 만든 함에 넣어 인간세계로 보냈다. 용왕의 딸은 인간 세상에서 삼신할머니가 되어 자식의 잉태를 맡게 되었다. 제일 먼저 자식이 없어 걱정하는 임부인을 잉태시켰다. 그런데 해산(解産)시키는 법을 몰라 곤경에 빠졌다. 그러자 이를 가엾게 여긴 하늘나라 임금이신 옥황상제께서 명진국의 따님아기를 보내 해산을 돕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두 처녀가 삼신할멈이 되니 서로 다투는 바람에 잉태와 출산의 혼란이 오게 되었다. 그래서 옥황상제께서 꽃가꾸기 내기를 하게 하여 여기서 이긴 명진국의 따님이 이승의 삼신할멈이 되었다. 그리고 내기에 진 용왕의 따님은 저승 세계의 구삼승할멈이 되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계(神界)에서 가장 바쁜 신이 삼신할머니일 거야. 하루에 태어나는 생명이 과연 몇인가? 일 분에 수백, 수천의 생명 점지를 해야 하니 얼마나 바쁘겠어!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로 삼신할머니 또한 무수히 많은 것으로 이해해야 할 거야. 사실 설화와 같이 삼신할머니라는 고유의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자식 점지와 출산, 그리고 양육에 관한 일은 조상신계에서 주관하지. 즉, 그 집안에 있는 제석불사할머니가 주로 자식 점지와 출산 및 양육에 관한 일을 맡고 계셔. 이 신(제석불사)이 수명이 다 되어 윤회할 신들을 가려 잉태케 하는 일을 한다 하여 삼신할머니라 부르게 된 것이야.
요컨대, ‘삼신할머니’라는 한명의 고유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집안 마다의 조상신계에 있는 ‘제석불사’라는 삼신할머니가 무수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야.

이걸로 삼신에 대한 설명은 끝. 다음에는 서낭신에 대해 알아볼게

요즘도 시골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을 곳곳에 돌무더기를 쌓아 놓거나 오래된 고목에 오색의 천으로 장식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을 발견할 수 있어. 이것이 서낭신을 모시기 위한 제단으로, 지방에 따라 성황당(城隍堂), 할미당(전라남도), 천왕당(경상북도), 국사당(평안도) 등으로 불리지. 다음은 서낭신에 관한 설화야.
-병자호란 때 강화파의 대표격인 최명길에 관한 얘기다. 그가 소년 때였다. 안동부사로 있는 외숙을 뵙기 위해 문경 새재를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뒤에서 아주 어여쁜 처녀가 뒤를 바싹 따라오면서, “혼자 가기 무서우니 같이 갑시다”하는 것이다. 최명길은 얼떨결에 승락하고 동행하였지만 한편으론 여자의 정체가 궁금하여 이리 저리 살폈다. 그 처녀도 눈치를 채었는지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사람이 아니고 문경 새재의 서낭신이옵니다. 안동에 사는 모좌수가 서울을 갔다 오다가 성낭당 앞을 지나면서, 그 곳에 걸려 있는 치마를 훔쳐다가 제 딸년에게 주었지요. 이런 고약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좌수 딸년을 죽이러 가는 길인데 마침 이렇게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최명길은 속으로 놀랐으나 태연한 채 하며 말했다. “인명은 재천이라 하였는데, 그만한 일로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소?” 그 여자는 한참 동안 말없이 최명길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공은 보아하니 재상까지 오르실 몸이며, 특히 북방의 오랑캐가 쳐들어 왔을 때 큰 공을 세우실 것입니다. 허나 명나라는 망하고 오랑캐(청나라)가 흥할 것이니 부디 오랑캐와 화친하여 이 나라 사직을 보전하셔야 합니다. 오늘 좌수의 딸을 죽일 생각이었으나, 공의 체면을 봐서 경고만 할 것인즉, 공은 제가 시키는 대로 하여 저의 체면도 좀 세워 주십시오”하고는 어떻게 하라고 이른 후 사라졌다.최명길은 심상치 않은 일이라 여기고 안동에 도착하자마자 좌수의 집을 찾았다. 그랬더니 역시나 좌수의 딸이 급사하여 집안이 발끈 뒤집혀 있었다. 최명길은 주인을 뵙고 인사를 한 후 말했다.“댁의 따님을 살릴 수 있으니, 어서 저를 따님의 방으로 인도하시지요.”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최명길을 딸의 방으로 데려갔다. 문경새재에서 보았던 서낭신이 좌수 딸의 목을 조르고 있다가, 최명길을 보고는 얼른 일어서며 말했다. “이제야 오십니까?” 서낭신의 모습과 말소리는 최명길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최명길이 좌수에게 말하였다. “문경새재의 서낭당에서 가져온 치마를 빨리 불사르고, 깨끗한 음식으로 제사를 드리면 회생할 것이니, 염려마십시오.” 좌수가 최명길의 손을 붙들고 백배사례한 후, 그 말대로 치성을 드리니 딸이 감쪽같이 회생하였다. 그 후 최명길은 과연 벼슬이 올라 영의정이 되었고, 병자호란을 당해서는 치욕을 참고 화청정책(和淸政策)을 써서 국난을 수습했다. 이것이 그 때 서낭신과의 인연 때문이었다고 한다. (유증선《영남의 전설》)

서낭을 한자로는 성황(城隍)이라 하며, 이 신은 예로부터 가장 널리 믿어졌던 기복의 대상 중 하나이지. 이 신을 모시는 사당이 서울에 있으면 성황단(城隍壇)이라 하고, 각군에 있으면 성황사(城隍祠)라 하였어. 일설에는 서낭신은 인도에서 안남(安南)을 거쳐 남청(南淸)으로 왔고, 다시 이곳에서 점차 북상하여 조선에 들어왔다고도 해.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인도나 중국 류의 토지 신앙 이전부터 있어 온 우리겨레의 토속적 신앙으로 보아야 할 것이야.
그렇다면, 서낭에는 실제로 신이 거하고 있으며, 있다면 또한 그 신은 어떤 신일까?
신의 세계도 인간 세계와 같이 구역이 정해져 있어. 대체로 물의 흐름과 산맥의 흐름으로 그 경계를 정하고 있지. 가령 한강 이북은 삼각산에서 주관하고 이남은 관악산에서 주관하지. 이렇게 기를 갈라놓는 큰 물줄기나 산맥의 흐름을 타고 신계의 구역이 정해지는데, 이것은 큰 지역 구분이라 할 수 있어. 즉, 쉽게 말해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등에 해당하는 것이 명산이고, 그 지역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것이 ‘산황대신’, 부지사나 행정 관리에 해당하는 것이 ‘산왕대신’이야. 그렇다면 그 도에 속한 ‘시’나 ‘군’이 있게 되지. 이 ‘시’나 ‘군’에 해당하는 신계의 직책은 ‘토지대왕’ 혹은 ‘국사서낭’이라 해. 대관령에 있는 ‘국사서낭’이 바로 이것에 해당하지. 그리고, ‘군’ 보다 작은 마을에 해당하는 구분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서낭’이야.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관장하는 조그만 신당(神堂)인 것이지. 그렇기에 일반적인 서낭의 신은 4천의 신명이 주관하게 돼. 이 보다 한 층 높은 국사서낭의 책임자, 즉 서낭왕(토지왕)은 4천의 높은 곳이나 5천의 선계(仙界)에 이른 신이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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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낭보다 작은 구역의 신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터주신이야. 보통 하나의 터주신이 여러 채의 집들을 관장하고 있지. 그리고 집안 일을 직접적으로 관장하는 것은 조상 신계에서 하는데, 그 책임자를 불사할머니 혹은 불사대감이라고 하고, 총칭하여 불사대신이라 해. 가정에서 신주(神主)를 모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신주(神主)에 해당하는 것이 불사대신인 것이야.
요컨대, ‘서낭’이란 고갯마루, 한길 옆, 부락 입구, 사찰 입구 등 전국 도처에서 발견되는 보편화된 토속신앙으로,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믿어지고 있어. 그런데 간혹가다 서낭신의 공력이 약해 각종 귀신의 일을 제대로 처결하지 못하는 곳도 더러 있지. 어떤 경우는 아예 귀신이 차지하는 등 대체로 혼란하여 질서가 잡히지 않아. 물론 국사서낭 같이 전국적 규모의 서낭은 귀신문제를 처결함에 문제가 없지. 그래서 잡귀를 쳐내고 맺힌 고를 풀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무속인들이 국사서낭을 찾는 것이야


이걸로 서낭신에 대한 설명은 끝. 다음에는 장승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


나라마다 그 나라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풍물이 있게 마련이야. 일본의 상징은 부사산이고, 네팔의 상징은 설남(雪男)이고, 스코틀랜드의 상징은 가죽나팔 부는 나팔수이고, 네덜란드의 상징은 커다란 풍차이지. 우리나라는 노래로 친다면 아리랑이고, 유형의 물건으로 친다면 단연코 장승을 꼽을 수 있어. 이렇게 우리 민족의 전통 숨결이 물씬 배인 장승이 외래종교의 핍박을 받아 멸종 위기에 처해 있어.  장승중의 장승이며, 팔도 장승 중의 우두머리인 서울 장승백이의 장승마저 그 모습을 보기 어려우니 말이야. 굴러온 돌에 의해 박힌 돌이 빠진 형국인 것이지. 20여 년 전 쯤에 충북 청원의 새뜸이 마을에서 그 지역에 5백년 동안 내려온 장승제를 마지막으로 지낸일이 있었지. 대청댐에 의해 수몰되기 때문이야. 그 이후는 장승제를 보기가 어려워졌어.
장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 그 중 하나를 보자.


- 옛날 어느 한 임금이 김대감과 장대감의 앞날을 내어다보는 식견을 시험코자 질문을 했다. 친오누이를 깊은 산속에 가두어 살게 하면 피가 섞이겠는지, 아니면 오누이의 법도를 지키겠는 지에 대한 질문이다. 김대감은 천지음양의 진리를 앞세워 피가 섞인다고 내다 보았고, 장대감은 인간이 그같이 금수같을 수는 없다고 인륜을 내세웠다. 임금은 이를 확인코자 실제로 오누이를 격리시킨 다음 몇 년 후 찾아가 보게 했더니 아들 딸 낳고 화기애애하게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김대감이 등용되고 장대감은 버림받아 초야에서 살다 한을 품고 죽었다. 이 장대감의 한을 달래주고자 장승이 탄생했다는 애기이다.
그러나 장승은 한낱 한을 풀어주고자 생긴 것으로 보여지지는 않아. 농경사회의 기본 취락 단위인 촌락 공동체의 지경신앙으로 마을 입구에서 병이나, 흉 등 불행한 요소를 막아주는 정신적 수문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야. 그런데 실제로 오래묵은 장승에는 신령스런 기운이 감돌고 있어. 지역이나 터를 지키는 수호신이 기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야. 간혹 잡령이 빙의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제대로 절차를 갖추어 세운다면 그럴 염려는 없지. 따라서 마을이나 가택의 수호신으로서 장승을 세우는 일은 적극 장려할 만한 미풍양속일 것이야.


자.... 일단 산신(산궁)에 대해 설명해 줄게


산신의 주된 소관은 지기(地氣)를 관장하는 일이야. 대개 산신을 무속신들의 일을 관장하며 천신과 지신의 연결을 돕는 신령으로 이해하나, 원래의 소임은 명당과 같은 지기가 서린 곳을 관장하는 일이지. 산황대신은 선계에 거하다가 지기에 관련된 일이 발생했을 때 산신국사 등을 보내어 일을 처결하지. 그러나 인간사에는 대체로 무관심하여 관여하는 일이 적어. 이는 영(靈)과 육(肉)의 경계선을 상호 침범할 수 없는 우주의 법도 때문이야. 즉, 물질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게 되면, 그 능력에 비례하여 물질계의 참여가 힘들어지는 것이지. 그렇기에 명산의 산신 정도 되면 인간사에는 그다지 관여하지 않게 돼. 그러나 지기는 곧 상계(象界)의 요소도 되기에 지기에 관계된 인사에는 산신의 참여가 가능하지. 실로 풍수의 ‘소주길흉론(所主吉凶論)’이 이런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이야.

가령, ‘3대에 걸쳐 음덕을 쌓아야 자오향(子午向)을 얻는다’, ‘명당에는 각각 주인이 있으니 덕이 없는 자는 얻을 수 없다’는 말들이 곧 산신이 지기를 관장한다는 설과 부합하는 것이지. 다시 말해, 덕이 없는 자가 명당으로 치고 들어오면 혈이나 방향을 틀어 지기가 남용되는 것을 막는다든지, 아니면 아예 접근을 못하게 나침을 흔들어 위장하는 수도 있어.


불교를 배타하는 어떤 산신은 절이 명당에 들어서면 법당의 불상을 마당으로 팽개쳐 버리는 수도 있지. 처음에는 다시 불상을 법당에 모셔 놓지만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적당한 구실을 붙이고 포기하고 말아. 가령, ‘사리를 모셔 놔서 부처님을 모실 필요가 없다’라든지, 아니면 ‘나한들의 기운이 많이 미치는 곳이어서 부처님을 모실 수가 없다’라는 식의 합리화를 하지만 괴이한 변론이 아닐 수 없어.


여하튼, 이런 일들은 모두 산신이 지기를 관장하면서 비롯되는 일이야. 그러나 인간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산신도 명당을 수호하기는 힘들어. 왜냐하면 기운의 강도가 자연파가 첫째요, 인간의 염파(念波)가 둘째요, 그 다음이 신의 영파(靈波)이기 때문이야. 그러므로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계속해서 버티면, 이 곳이 영계가 아닌 형계인지라 산신도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것이지. 가령, 공적으로 명당을 군사기지로 만든다고 하였을 때, 영기가 서린 땅을 포기하고프겠는가 마는 산신도 어쩔 수 없게 돼.

실제로 계룡산 상봉에 군사기지를 만들 때 산신의 노여움을 사서 몇 사람이 목숨을 잃고 말았어.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치자 결국은 인간의 의지대로 군사기지가 들어서게 되었지.

요컨대, 산신은 지기를 관장하는 선계의 신이야. 따라서 지기에 관련된 일, 가령 음택이나 양택을 쓰는 경우는 산신께 예를 갖추는 것이 마땅하지. 또한 그곳의 지기를 사욕으로 이용할 생각을 해서도 안돼. 사욕이 있은 즉 절대로 산신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쓴다고 할 지라도 핵을 빗나가 무용하게 될 것이야. 오히려 지나친 욕심만 키우는 꼴이 되어 마음씀에 인색함이 많으리니, 결국 득보다는 실함이 클 것이야.

이걸로 산신(산궁)에 대한 설명은 끝. 이 다음에는 용신(용궁)에 대해 설명해줄게

고려 왕씨는 바다 용신의 후예여서 왕씨들에게는 반드시 겨드랑이 밑에 용비늘이 있다고 할 정도로 용신에 대한 숭배는 대단하였지. 다음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용신에 관한 설화야.
-신라33대 성덕왕 때에 바다의 용이 관리의 아내를 납치한 일이 있었다. 순정공이라는 자는 강릉의 태수가 되어 부임하는 도중 임해정에서 쉬며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다에서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순정공은 놀라고 안타까워서 발을 굴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때 한 노인이 “옛 말에 여러 사람의 말은 쇠라도 녹인다 했으니 이제 바다의 용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하여 순정공은 이 말을 따라 마을 사람들을 모아 강 언덕을 지팡이로 치며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랬더니 용이 다시 나와 부인을 돌려주었다. 공이 바다에 들어갔던 일을 묻자 부인이 대답하기를,“칠보 궁전에 음식은 맛있고 향기로우며 연기나 불은 인간이 사용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했다. 더군다나 부인이 입고 있던 옷에서 나는 이상한 향기도 세상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다. 《三國遺事.水路婦人》

용도 용궁도 형계의 물질적 존재가 아닌 상계에 존재하고 있어. 또한 용은 영물이어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납치하는 짓은 하지 않아. 그래도 만일 수로부인이 용에게 납치되어 바닷속 용궁으로 들어갔다면 몇 분이 채 안되어 익사하고 말 것이야. 그런즉 이상의 설화는 실제로 일어날 수는 없는 것이지. 만일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비슷한 상황을 추정한다면 다음과 같이 구상할 수 있을 거야.
- 순정공 일행이 해변의 길을 따라 강릉으로 가는 도중 절세미인이었던 수로부인이 갑자기 까무러쳤고 이는 용궁의 한 장난기 많은 용왕대신이 용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수로부인의 영혼을 데려왔기 때문이다. 원인도 없이 갑자기 수로부인이 쓰러지자 사람들은 이 곳은 용궁이 관장하는 땅이니 다른 잡신의 소행이라 볼 수 없는바 분명 용의 짓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을 가급적 많이 모아 다같이 위협적인 주문을 부르며 수로부인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였고, 이 요구에 부응하여 수로부인은 깨어날 수 있었다.
뭐 이런식 으로 말이야.

용이란 동양권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신령스런 동물이야. 다른 어떤 상징물보다도 용은 조화와 신비가 감도는 신태(神態)로 말미암아 사람들로부터 많은 경외와 존경을 받아왔지. 수천년 동안 동양에서는 가뭄을 당했을 때는 으레 용을 향해 비를 기원했으며, 수재나 화재로부터 교량이나 가옥의 안전한 보존을 위하여 건축물에 용을 장식하곤 했어. 남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용봉정상(龍鳳呈祥)이라 하고, 자식의 출세를 소망하는 부모의 간절한 뜻을 망자성룡(望子成龍)이라 하는데, 이런 글귀에서도 용이 상징하는 바를 조금을 엿볼 수 있지. 용은 기운이 충만하여 거침이 없고, 형태가 아름다우면서도 야수와 같은 날카로움을 지니며, 힘차게 구름속으로 솟구치는가하면 천길 물속을 휘도는, 실로 신운(神韻)이 감도는 무소경외(無所驚畏)한 영물인 것이지. 그렇기에 수천년 동안이나 동양 문화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야.
광아익조(壙雅翼條)에 보면 용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
“머리는 낙타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 입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에는 여의주가 있고, 목 아래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다.”


용의 유래를 대강 살펴보면, 어떤 이는 뱀에서 파생된 것이라 하고, 혹자는 도마뱀, 악어, 말, 그리고 돼지나 구름에 이르기까지 그 그원을 두고 있지. 근래에 들어서는 용과 토템의 관계를 따져 서로 다른 토템을 믿는 씨족들이 합병함에 따라 용의 형상이 부득이하게 이루어졌다는 그럴듯한 이론이 나오기도 했어. 여하튼 인자견인(仁者見仁)이요 지자견지(智者見智)가 아닐 수 없지.


그렇다면 용을 타고 다니며 수기를 관장한다는 용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용궁은 바닷속에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가 보는 바닷물 속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공간에 형성되어 있어. 이를 관장하는 최고의 신을 용황대신이라 부르고, 이 밑에서 부분적인 바다를 관장하는 신을 용왕대신이라 해. 이들은 용이 아닌 인간의 형상을 한 선계의 도통신들로서, 용황대신은 주로 6~7천, 용왕대신은 5~6천에 거하고 있지. 산황대신이 지기를 관장하듯, 용황대신은 수기를 관장하는 일을 맡고 있는 신이야. 그래서 깊은 산속일지라도 물이 있는 곳은 용신의 지배를 받게 되지. 무속인들이 산속의 계곡이나 샘물에서 용왕기도를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야.

요컨대 용황대신(용왕대신)은 산황대신이 지기를 관장하듯 수기를 관장하여 천지조화를 주관하고, 나아가 인간의 삶을 원만하게 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선계의 신령이야.


사실 저승이라 말하는 신계는 인간계에 접해 있기에 힘들게 또 다른 공간을 조성할 필요가 없어. 그냥 인간들에게 눌러 붙어서 살아도 그만이야. 하지만 그렇게 사는 신들은 대부분이 퇴락한 귀신들이지. 물질적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탁하고 칙칙한 저급 영혼들이기에 그렇게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야. 제대로 된 영혼이라면 그 속성이 물질과 달라 자연스레 인간계와 거리를 두게 돼. 영력 4천의 신명들만 봐도 대부분 산속을 찾아 자신들만의 거처를 잡게 되지. 영력이 더 높아져 신선이 되면 아예 새로운 4차원 공간에서 살아가게 되니깐 말이야.

그런데 대문 밖이 저승이라고, 이놈의 저승이 인간계에 너무 들러붙어 있어서 생겨나는 말썽이 예삿일이 아니야. 세상사 복잡다단하여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데 귀신들까지 붙어서 골치를 썩인다면 얼마나 짜증이 솟겠어!.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인간 전문가들이 생겨났으니 그들이 곧 무당이며 박수지. 그리고 이들 무속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는 저승의 조직이 곧 서낭과 산궁, 그리고 용궁이란 것이지. 선계의 신선들이 국사서낭신이나 산황대신, 용황대신의 직함을 맡아서 무속을 지원사격하여 세상의 귀신문제를 덜어주는 것이야. 저승사자란 것도 이런 차원에서 생겨난 것이야. 귀신들을 인간세계에서 걸러내는 작업을 수행하는 전문가들인데, 이 일이 말처럼 그리 녹록한 게 아니야. 귀신들이 인간의 몸속에 숨어버리기라도 하면 제 아무리 재주 좋은 저승사자라 해도 찾기도 힘들뿐더러 만일에 찾더라도 쉽게 빼낼 수가 없는 것이야.


그러다보니 몸속에 든 귀신을 빼내기 위해서는 힘을 뭉쳐야 하고, 그래서 결성된 것이 푸닥거리라는 굿판인 것이지. 무당과 박수들이 여러 명 모인데다가 그에 딸린 무속신들이 가담하고, 어쩌다 산궁에서 출장 나온 저승사자들까지 관여하는 것이야. 이렇게 한 세트가 되어 몸에 박힌 귀신을 어르고 달래고 별의 별 짓을 다해 빼내는 것이지. 이도저도 안 될 때는 서낭이나 용궁의 측면적인 지원도 받게 돼. 이처럼 귀신들을 인간세계로부터 분리하는 작업은 인간의 문명이 발아한 이래로 지금껏 이어져 내려오는 일종의 전통 같은 것이야. 이것이 이토록 오랜 세월동안 되풀이 되는 까닭은 그만큼 인간 죽은 것 중에 대부분이 귀신이 되는 소치이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귀신을 잡아 서낭이나 산궁··· 등에 가둔들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귀신들에 밀려 늘 허둥댈 수밖에 없는 것이야.

엎친 데 덮친다고 이상야릇한 종교들까지 생겨나서 아예 귀신들을 신도들에게 철썩철썩 붙여대고 있으니 더더욱 귀신문제란 요원해지는 것이지. 물론 종교란 것은 귀신을 잘 붙여대야 신도도 불고 돈도 불어 흥하는 것이지만 이게 세상을 단단히 망쳐놓으니 그것이 또 문제인 것이야.

자 이걸로 용신에 대한 설명은 끝. 이다음에는 칠성에 대해 설명해 줄게


칠성은 원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무병장수와 영화를 기원하는 대상이야. 무속에 있어서 칠성신은 산황대신, 용황대신과 함께 3대 선신에 속하지. 전국 어디에서나 칠성신을 모신 칠성각(칠성당)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칠성신앙이 민간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야.

칠성신앙은 수명장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어. 제갈공명이 자신의 수명을 연장코자 칠성신께 제를 올리는 장면은 이러한 사실을 잘 뒷바침 하고 있지. 다음은《계서야담》에 나오는 칠성과 수명의 관계를 보여주는 설화야.
-북창 정렴의 친구 한 명이 병이 위독하여 약을 백방으로 써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북창이 신이(神異)한 사람임을 알고 찾아와 살릴 방도를 물었다. 북창이 그 친구는 명이 다하여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북창이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소문을 들은 바가 있어, 살릴 방도를 가르쳐 달라고 집요하게 애걸하였다. 북창은 그 부친의 정을 차마 뿌리칠 수 없어 말했다. “제 수명을 감하여 공의 아들에게 줄 수밖에 없습니다. 공은 내일 밤 삼경이 지난 뒤에 홀로 남산 꼭대기로 올라가 보십시오. 그 곳에는 붉은 옷을 입은 노인과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마주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 앞에 가서 아드님의 수명을 늘려 달라고 애걸해 보십시오. 비록 노하여 쫓더라도 물러나지 마시고, 막대기로 때리더라도 물러나지 마시고 성심으로 빌면 무슨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북창의 말대로 남산에 가보니 과연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곧바로 그 앞에 엎드려 울면서 아들의 수명을 빌었다. 두 사람은 놀라 말했다. “우리가 어찌 공의 아들의 명이 길고 짧음을 알겠소? 어서 돌아가시오. 아버지는 듣지 않고 막구가내로 애걸하니, 옆에 있던 사람이 노하여,“이 사람, 정말 미쳤군”하면서 막대기로 매섭게 때렸다. 그래도 조금도 꼼짝 않고 엎드려 빌었다. 얼마 후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웃으면서, “이는 틀림없이 북창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북창의 수명을 10년 감하여 이 사람의 아들에게 보태 주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하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도 좋다고 하였다. 조금 있다가 검은 옷을 입은 중이 소매 속에서 단자를 꺼내어 붉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주니,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붓을 들어 거기에 글자를 쓰고, “공의 아들은 지금부터 10년을 더 살 것이오. 돌아가 북창을 만나거든 다시는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남두성군(南斗星君)이시고, 검은 옷을 입은 분은 북두성군(北斗星君)이였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자 아들의 병은 나았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에 죽었다. 북창은 30여 세에 죽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수명이 칠성신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칠성을 다스리는 신을 칠원성군이라 하는데, 이 분들은 주로 공기(空氣)를 다스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여기서의 공기는 우리가 호흡하는 대기 중의 원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흩어져 있는 기운을 가리키지. 가령, 산황대신은 대지속의 토기(土氣)를, 용황대신은 물속의 수기(水氣)를 다스리는 것과 같이, 칠원성군은 대기 중의 기운을 다스리지. 칠원성군이 이렇게 공기를 다스리게 된 데에는 오태성(五太星)과 북두칠성의 12기운이 북극성의 축을 따라 지상에 내린 12지기에 그 원인이 있어. 우리는 12지기를 동물에 빗대어 추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별과 별이 주고 받는 기운이 그 모체인 것이지.

요즘 단전호흡이라는 것이 대단히 유행하고 있는데, 사실 기를 잡는 단전수련에 있어서는 필히 7주기를 택해야 해. 우리 화랑도 선법도 마찬가지이고. 대개가 10주기에 맞춰 수련을 하는데, 이래서는 큰 효력을 기대할 수 없어. 지구상의 기운, 특히 대기 상의 기운은 북두칠성의 영향을 받아 7주기로 흐르며, 이것을 관장하는 일을 칠성 부근에 존재하는 신계에서 주관하기 때문이야. 다시 말해, 정식으로 단전수련에 임할때 은연 중에 7주기의 흐름을 받게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칠원성군의 가피를 입기도 해. 단군신화에 나오는 삼칠(三七)일 공부 또한 이런 사실을 반영해 주는 것이며, 석가 세존께서 득도하신 후 칠칠(七七)일 동안 법열에 젖어 선정에 잠기신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지. 실제로《팔리성전.율장》을 보면, 부처님께서도 최초의 7일간은 보리수 아래 앉아서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즐겼으며(自受法樂), 계속해서 7일씩 일곱 번에 걸쳐 아자파라나무 무칠린나무 등에서 깨달음을 즐겼다고 해. 왜 7주기가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정(精)의 형성에 있어. 정(精)이 형성되어야 기가 외부로 새지 않고 모일 수 있지. 즉, 정(精)이 아랫배에 자리해야 축기(蓄氣)가 되어 단전이 조성될 수 있는 것이야. 그런데 이 정(精)이란 것이 기운과 기운이 교차하는 가운데 비교적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그래서 옛 성현들이 7주기를 택하였던 것이야.

여하튼 칠성은 정기(精氣)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그리고 정기는 인간의 성명(性命)에 영향을 주지. 성명(性命)은 곧 인간의 수명과도 관련이 있는바, 여기서 칠성과 수명과의 연관이 이루어진 것이야. 다시 말해, 칠성신이 인간의 수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아니나, 칠성의 기운과 인체의 기운이 어느 정도의 관련이 있어 그런 추측이 나온 것이지. 그렇다고 제갈공명이 시도한 수명연장의 의식이 미신적 행위만은 아니야. 공명은 칠성신의 도움을 받아 흩어지는 정기를 공고히 하여 자신의 수명을 조금이나마 늘리려 했던 것이야.

요컨대 칠성신이 인간의 수명에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나, 기를 잡는 기공 류의 수련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관련이 있는 것이 사실이야.


자 이걸로 칠성에 대한 설명은 끝. 다음에는 백마신장에 대해 알아볼게

무속에서 약방의 감초와도 같이 등장하는 신 가운데 하나가 백마신장이야. 흔히 소거백마신장(素車白馬神將)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전해내려오는 유래가 있어 .
-중국의 후한시대 명제 10년에 인도의 승려인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명제의 간청으로 불상과 경전을 하얀말이 이끄는 수레에 싣고 낙양성으로 오게 된다. 이를 크게 기뻐한 명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 낙양성의 서옹문 밖에다 정사를 짓고 이름을 백마사(白馬祠)라 불렀다. 여기서 ‘백마’라는 이미지가 세상에 부각되게 되었고, 백마는 곧 불상과 경전을 보호하는 호법개념으로 확대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점차로 호법을 하는 신장으로 전의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백마신장이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신계를 보면 호법을 담당하는 신장들이 종종 백마를 즐겨 타지. 이것은 악귀나 잡귀들의 칙칙하고 탁한 기운과 대비하는 효과도 있고, 순결무구한 법을 수호한다는 ‘백색’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한 것으로 보여. 어쨌든 백마신장은 호법신장의 개념을 띄고 여러 차원에 걸쳐 존재하지. 즉, 백마신장이란 하나의 특정 신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작게는 무당의 수호에서부터 불법이나 도법의 수호를 담당하는 신장 전체를 가리키지.


이걸로 백마신장에 대한 얘기는 끝. 이다음에는 오방신장(진짜 무당에게는 다 붙어있는 신장)에 대해 알아볼게


오방신장이란 무속에서 신내림을 한 무당의 경우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신장이야. 다시 말해 무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오방신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무업이란 대개가 귀신과 소통하고 잡귀를 떼어 복락을 얻게 하는 일이야. 그러다보면 온갖 잡신과 부딪쳐야 하고, 여기서 나쁜 살이나 액운을 무당이 받게끔 마련이지. 이런 액살을 사방에서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신이 바로 오방신장이야.
오방신장은 중앙을 맡고 있는 황궁신장(黃帝)과 동방을 맡고 있는 청궁신장(靑帝), 서방을 맡고 있는 백궁신장(白帝), 북방을 맡고 있는 흑방신장(黑帝), 남방을 맡고 있는 적궁신장(赤帝)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들은 모두 조상계열의 신명들중 무관을 뽑아 구성되어 있지. 따라서 무당이 모시는 오방신장은 저마다 모두 다른 신명들인 것이야.
그외의 무속의 신으로 조상신들을 관리하는 우두머리격인 불사대신, 작두로써 악귀를 혼내주는 작두신장, 별상 등의 신들이 있어.

자 이걸로 오방신장에 대한 얘기는 끝. 이 다음에는 태상노군에 대해 알아볼게

노자(老子)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이며 자(字)는 백양(伯陽)이라고 해. 그는 오늘의 하남성(河南省) 녹읍현(鹿邑縣)에서 태어났다고 하지. 노자의 어머니는 떨어지는 커다란 별을 가슴에 받아 노자를 잉태하였다고 하며, 성을 이씨라고 한 것은 오얏나무 아래에서 노자를 낳았기 때문이라고 해. 혹자는 노자가 태어나면서 그 옆에 우뚝 서 있는 오얏나무를 가리켰기 때문이라고도 하지.

어떤 설에 의하면 72년 동안이나 모태 중에 있다가 어머니의 왼쪽 갈비뼈 밑으로 통해서 태어났다고 해. 그래서 태어났을 때 이미 백발이 성성하여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는 것이지. 실로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예수의 탄생설화 못지 않아. 또한 그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아홉 걸음을 걷고 나서는 “하늘 위나 땅 아래에나 오직 도만이 홀로 존귀하도다(天上地下 唯道獨尊)”라고 말했다는 주장도 있지. 이 또한 불교와의 경쟁 관계 속에서 석가모니 탄생설화를 모방한 설화임에 틀림없어.

노자는 당시 도서관의 관리로 일했었어. 일설에 따르면, 공자가 노자를 찾아와 자문을 구한 일이 있다고 해. 그리고 돌아가서는 제자들에게, “새가 잘 날고, 물고기가 잘 헤엄치고, 들짐승이 잘 달린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이다. 달리는 것은 덫으로, 헤엄치는 것은 그물로, 나는 것은 화살로 각각 잡을 수 있지만 바람이나 구름을 타고 하늘 위를 오르내리는 용(龍)은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노자는 바로 용과 같은 인물인지라 나로서는 그의 경지를 결코 헤아릴 수가 없다” 라고 말하였다는 것이야. 이 또한 유가(儒家)와의 우위를 주장하기 위한 허설(許說)일 가능성이 높아.

주나라가 쇠퇴하자 노자는 관리직을 버리고 서쪽으로 떠났어. 함곡관(函谷關)을 지날 때에 관수(關守)였던 윤희(尹喜)라는 자가 노자의 학식을 알아보고 가르침을 간곡히 청하였지. 이에 노자는 한 권의 책을 남겼는데 이것이《도덕경(道德經)》이야. 그 후 노자는 서쪽으로 사라지고 그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해.


이런 노자가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지위가 높아졌고, 나중에는 태상로군(太上老君)으로 신격화되었지. 그 모습도 변형되어 신장이 구척(九尺)에 황색의 피부, 그리고 코는 새의 부리 같고 눈썹은 오촌(五寸)이며 귀는 칠촌(七寸)이라고 소문이 퍼졌지. 팔괘가 옷에 그려져 있고 몸에는 오색의 구름이 휘감고 있으며 거북이 침대에서 잔다고 해. 사는 곳은 금전옥당(金殿玉堂)이며 이곳에 오르는 계단은 백은(白銀)으로 되어 있고 전후좌우는 다수의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지키고 있다고 하지. 그리고 혹자는 노자를 옥황상제의 아버지라고도 하고, 혹자는 옥황상제 다음가는 지위에 올랐다고도 해.

그렇다면 실제로 노자는 선계(仙界)에서 옥상원성(玉上元聖=옥황상제) 버금가는 지위를 누리고 있을까?
단언컨대 노자는 무수한 선계의 도통신 가운데 하나이지 어떤 특별한 존재는 아니야. 따라서 옥상원성 버금가는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야. 단지 인간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도학(道學)과 도교(道敎) 제파(諸派)의 시조라는 점에서 구별이 있을 뿐이지. 그는 생전의 사상과 같이 인간사에 관여하는 법이 극히 없어. 게다가 선계의 일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그저 천지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고 있을 따름이지. 이렇게 도와 더불어 초연히 존재하는 노자를 인간들이 지위를 부여하고 신격화시킨 것이야. 수행자들 사이에 몇 사람의 하나 꼴은 태상로군을 찾지만 이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야. 노자는 인간사에도 선계의 일에도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을······ 그런즉 견식 있는 자라면 노자를 찾아 한 가닥의 신통력을 얻을 생각을 하지 말고 노자의 무위자연관을 본받으려고 힘써야 할 것이야.

이걸로 태상노군에 대한 설명은 끝. 이다음에는 말 나온 김에 옥상원성, 즉, 세간에는 불교의 비로자나불이나 도교의 원시천존, 더 유명하게 알려진 이름으로는 옥황상제에 대해 알아볼게


... 옥상원성은 흔히 옥황상제로 알려져 있는데, 도교나 무속에서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지. 가령,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이라고도 하는데, 그 뜻은 천상에서 가장 높은 구천의 최고위에 거하시면서 그 원력이 온 우주에 두루미치는 천존이라는 뜻이야. 간단히 줄여서 천존대왕, 천주, 옥제, 상제, 천존, 천제, 원시천존,…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지.

이 가운데 그래도 적절한 명칭을 꼽는다면 옥황상제, 또는 옥상원성이지. 옥황상제에서 ‘옥(玉)’자를 쓰는 이유는 이러하지. 옥이란 최고가는 구슬로 완전히 희지는 않고 그렇다고 탁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현묘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지. 실제 옥으로 장식했다는 뜻이 아니라 현묘한 기운에 뒤덮혀 있다는 뜻을 취한 것이야. 그리고 황(皇)이란 ‘백(白) + 왕(王)’으로, 여기서 백(白)이란 밝다라는 뜻이지. 즉, 밝은 임금을 말하지. 진리에 밝은 임금이야. 정리하면 현묘한 기운이 찬연한 세계에 계신 밝은 임금이란 뜻이지.

그런데 옥황이란 개념이 선계에서는 옥황상제가 계시는 천상의 궁궐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어. 그래서 옥황상제라 하면 옥황이라는 천상궁궐에 계시는 상제란 뜻이 되어 의미가 다소 협소해지게 되지. 따라서 가장 적절한 표현은 本主로서 ‘옥상원성’이야. 현묘한 세계에서 최상에 거하는 으뜸가는 성스런 존재라는 뜻이지. 온 우주에서 가장 먼저 열반에 오르고 현재는 옥황에 거하며 만유를 교화하는 최고가는 성신(聖神)이란 뜻이야.

옥상원성에게는 며느리가 한 분 있어. 이 분이 그 유명한 구천현녀(九天玄女)이지. 그리고 손자 손녀, 즉 천자나 천녀에 해당하는 소자 손녀들이 있지. 그런데 자식은 없어. 왜 없는 것일까?

옥상원성 또한 영원의 전부터 열반의 보위에 있었던 것은 아니야. 태초가 만들어진 이후 수많은 원시령들 가운데 제일 먼저 열반에 오른 것이지. 本主로서 열반에 오르기 전 육신의 옷을 몇 번에 걸쳐 입게 되지. 이 과정에 자식이 있었어. 그런데 자식은 윤회의 과정에서 미끄러져 천상세계에 오르지 못했고,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9천세계까지 이르게 된 것이야. 그래서 옥상원성님의 계보에는 자식이 없게 된 것이지.


흔히들 옥상원성님이 지구를 다스리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야. 지구는 수많은 세계 중의 하나일 뿐이야. 불교에서는 도솔천이라 하였는데, 이 곳을 다스리는 신은 미륵광불이지. 옥상원성은 최고 신 중 한 분이야. 워낙 높은 차원에 계신지라 이 분을 현몽한 수행자 또한 거의 없는 지경이지. 그래서 탱화라든지 동상 하나 전무한 상태이지.

이걸로 옥상원성 님에 대한 설명은 끝.


....문득 든 생각인데 내 영력이 6천이거든? 그럼 내가 나중에 늙어서 죽고난뒤에 선계에 가면 산황대신이나 용황대신으로 일할 수 있을라나.....
출처 10년차 화랑도 선법 수련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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